롯데분쟁 2라운드 '장남의 반란' 관전포인트

더이상 물러날 곳 없다 ‘배수의 진’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훗날 조선 3대 임금으로 등극한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숱한 피를 재물로 삼았다.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심지어 아버지로부터 권력마저 빼앗았다. 최근 롯데그룹 꼭대기에서 벌어지는 왕위 쟁탈전도 비슷한 모습이다. 이방원과 조선, 신동빈과 롯데그룹의 관계는 묘하게 닮아 있다. 차이라면 장애물을 철저히 없앤 이방원과 달리 신동빈은 정적에게 도발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롯데그룹이 또 한 번 내홍에 휘말렸다. 돌이켜보면 지난 8월 발생한 형제 간 왕위계승싸움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당시보다 더 큰 규모의 제2막이 시작된 셈이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차남이 우위를 점한 사실은 변함없다. 다만 아버지의 후광을 기으로 장남이 이전보다 면밀히 준비해 온 만큼 섣부를 판단은 금물이다. 차남의 우군을 자처했던 세력이 판도를 좌지우지할 키를 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자신하는 동생
출렁이는 롯데

분쟁의 시작은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롯데그룹 지분 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를 장악하고 동생 신동빈 한국 롯데그룹 회장을 향해 칼끝을 겨누면서 비롯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14일 일본 광윤사 긴급 주주총회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등기이사에서 해임시켰다. 이사회에서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지분 50%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주식 1주를 사들여 과반 지분도 확보했다.

정혜원 SDJ코퍼레이션 상무는 “신동주 전 부회장은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며 이러한 자격으로 지금부터 롯데그룹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바로잡고 개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둔 상황에서 본격적인 경영권 다툼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의 약 1/3에 이르는 종업원지주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승산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신동주의 난’ 노림수 혹은 무리수 
‘정점’광윤사 장악…신동빈 해임

승부의 관건은 지난 8월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드러났듯이 종업원지주회가 어느 쪽에 힘을 싣느냐로 귀결된다. 현재 종업원지주회는 롯데홀딩스의 2대주주(27.8%)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오너일가-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국내 계열사로 정리된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위에서 군림해온 신 총괄회장 일가의 사실상 가족회사다. 신동주 전 부회장(50%), 신동빈 회장(38.8%), 신격호 총괄회장(0.8%),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10%) 등이 100% 소유하고 있다.

또한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주주이다. 롯데홀딩스는 지분 구조는 광윤사(28.1%), 종원원지주회(27.8%), 관계사(20.1%), LSI(10.7%), 오너일가(7.1%), 임원지주회(6.0%), 롯데호텔(5.5%), 롯데재단(0.2%) 등으로 이뤄졌다.

지금껏 종업원지주회의 이사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측근이 맡았고 롯데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큰 변동이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지난 8월 주총에서 돌연 종업원지주회는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종업원지주회의 의결권은 개별 구성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성에 따라 움직인다. 종업원들이 개별적으로 주식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개별 의결권을 포기하는 대신 배당으로 보상받는다.


게다가 종업원지주회의 의결권은 이사장 한명에 의해 행사된다. 의결권을 행사하기 전 이사회 개최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사회 구성이나 구체적인 이사회 결의 방식은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결국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확보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종업원지주회를 끌어들이는 게 숙제다. 그리고 종업원지주회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나설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SDJ코퍼레이션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은 “종업원지주회를 설득하기 위해 신동빈 회장의 경영실패 사례 등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며 “신동빈 회장에 대한 지지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상황이다.

‘이번엔 다르다’
의결권 미지수

일각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준비가 이전보다 착실해진 만큼 이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종업원지주회 지분이 신동빈 회장에게 무작정 쏠린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홀딩스 최대 지분을 보유한 광윤사의 대표이사가 된 이상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종업원지주회를 자신의 우호 지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종업원지주회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 지분 상당수를 종업원들에게 일정부분 나눠준 형태로 출범했다.설립 과정을 감안하면 종업원지주회가 무작정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싣는다고 보기 힘든 셈이다. 오히려 회사에서 발생한 이익을 배당으로 분배하는 만큼 주총 때 최대주주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삼성전자 전체 주식의 3% 남짓을 소유한 이건희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도 어찌 본다면 비슷한 맥락이다. 압도적으로 주식을 많이 보유하지 않는 이상 마찬가지다.
 

물론 종업원지주회가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의중과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종업원지주회는 경영권의 향방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입장에 놓인다. 다만 지금까지 행보를 비춰볼 때 종업원지주회는 그리 능동적인 집단은 아닌 듯한 인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종업원지주회는 설립 취지로 보자면 신동주 전 회장에 가깝지만 신동빈 회장의 편에 선 전례가 있다”며 “신격호 총괄회장의 영향력이 종업원지주회에 어느 선까지 미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롯데홀딩스 최대주주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종업원지주회에 기대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광윤사 등기이사 해임 건이 롯데그룹 후계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 역시 무관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전면에 내세운 안건이 롯데그룹의 중국시장 공략 실패다.

지난 1997년 부회장 승진한 이래 신동빈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다. 지난 2008년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 2009년 두산 주류부문, 2010년 필리핀 펩시 공장, 2010년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수, 올해 더 뉴욕 팰리스 호텔까지 연이어 인수하면서 신동빈 회장은 빠르게 롯데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그 사이 롯데그룹의 자산도 급증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이 취임한 2011년 이후 4년간 롯데그룹의 총 자산은 약 20%, 매출액은 약 40% 늘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성공리에 안착한 건 아니다. 특히 중국시장에서 겪은 손실은 신동빈 회장의 그간 행적을 희석시킬 만큼 커다란 악재였다. 이를 두고 신동주 전 부회장은 손실 규모가 1조원에 이른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으며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사재를 털어서라도 물어내라며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 세력의 결집력이 과연 기대 이상의 힘을 발휘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 롯데그룹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신동빈 회장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날렸다고 보긴 힘들고 그렇다고 확실한 우군을 확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영권 다툼에서 한차례 패배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비슷한 형태로 또 한 번 고배를 마실 수 있다는 견해가 부담스럽다. 달리 말하자면 신동빈 회장이 지난 8월과 동일한 수순으로 형제 간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동주 뜨니
주가는 하락

아직까지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배신했던 종업원지주회의 신임을 엊지 못하고 있다. 종업원지주회의 의중은 지난 8월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확인됐고 불과 2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별다른 변동사항이 없었던 만큼 판세 뒤집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 측은 종업원지주회를 확실한 우호세력으로 바라보는 인상이 짙다. 이 경우 자기주식+우호지분은 50%를 상회한다.


신동빈 회장 측이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만 보유한 가족회사에 불과하다”며 “신동빈 회장의 이사 해임이 그룹의 경영권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승부 키는 종업원지주회
각자 설득 작업에 나서

경영권 분쟁을 겪은 후 빠르게 회사를 수습하고 나선 신동빈 회장의 행보가 긍정적으로 비춰진다는 것도 신동주 전 부회장의 부담요소다.

비록 장남은 아니지만 신동빈 회장은 주주들에게 자신의 경영권을 위임받았다는 점에서 정통성을 지닌다. 지난달 17일 국정감사 증인 출석 당시 “이사회에 막강한 권한을 줬다”며 “이사회가 결정하면 저를 해임할 수도 있고 해직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정통성을 자신했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다시 신동빈 회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주주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단순 지분율을 넘어 ‘경제적 가치’라는 낯선 개념까지 강조하며 ‘소유=경영’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킨 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8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광윤사 지분율이 50%고 롯데홀딩스에 대한 경제적 지분 가치가 36.6%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지분 가치가 이렇게 높은 대주주를 아무런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해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의적인 해석일 뿐 신동주 전 부회장의 실제 지분은 28.1%에 국한된다. 그가 주장한 경제적 지분가치는 의결권 없는 주식 비중을 배제했을 뿐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호텔롯데의 상장과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확보 방안을 발표하며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416개에 달하는 순환출자 고리를 연내에 80% 이상 해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전문가들도 기존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게다가 형제 간 분쟁이 롯데그룹 관련주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신동빈 회장에게 호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처음으로 부각됐던 지난 7월말 롯데그룹 관련주들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이후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형제 간 대결에서 승리하자 롯데 관련주는 조금씩 반등에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도 벌써부터 비슷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롯데 관련주는 조금씩 요동치고 있다. 이른바 ‘오너리스크’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버지 선택은?
신격호에 주목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 소송의 뜻을 밝힌 지난 8일 이후 롯데쇼핑은 4.09% 주가가 하락했다. 롯데푸드,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등 롯데 그룹주들도 같은 기간 각각 3.77%, 2.77%, 2.07% 주가가 떨어졌다. IB업계 관계자는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롯데그룹 주가에 좋이 않은 영향을 주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며 “최근 이미지 쇄신에 노력하는 롯데그룹의 행보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똘똘 뭉친 신동주 사람들

롯데그룹 경영권 쟁탈전이 또 한 번 부각되면서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보좌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8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신 전 부회장의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이다.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이 최근 국내에 설립한 SDJ코퍼레이션의 고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민 고문 옆에는 김수창 법무법인 양헌 대표와 조문현 법무법인 두우 대표 변호사가 함께 했다.

산업은행 총재와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했던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과 오랜 시간 교류해 온 인물로 꼽힌다. 최근에는 나무코프, 티스톤 파트너스 등 사모펀드 업계에서 활약해왔다. 주목할 점은 그가 금융계 전문가로서 정·관계에 막대한 인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민유성 주도…가신들 모습 드러내
닻 올린 SDJ 실무진 10여명 구성

실제로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에게 고교 동창인 두 변호사 친구를 소개해 이른바 ‘신동주 자문단’을 구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민 회장의 인맥을 통해 새로운 인사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재 신동주 사단은 이들 외에도 실무진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막 닻을 올린 SDJ코퍼레이션이 규모를 키울 경우 운영진의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SDJ코퍼레이션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최근 한국에서 설립한 회사로 향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한국 내 전초기지가 될 법인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단독 대표이사로 올랐고 전자와 생활제품 무역업 및 도소매 등을 사업 목적으로 등록했다.

더불어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 주주총회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소베 테츠를 신임 이사로 선임하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공동전선도 분명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14일 광윤사 주총에서 신임 이사로 선임된 이소베씨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비서로 20년 이상 보필한 최측근으로 꼽힌다. 그가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의 이사회로 선임되면서 광윤사 대표이사로 선임된 신 전 부회장의 무게감도 더욱 커지게 됐다. <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