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분쟁 2라운드 '장남의 반란' 관전포인트

더이상 물러날 곳 없다 ‘배수의 진’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훗날 조선 3대 임금으로 등극한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숱한 피를 재물로 삼았다.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하고 심지어 아버지로부터 권력마저 빼앗았다. 최근 롯데그룹 꼭대기에서 벌어지는 왕위 쟁탈전도 비슷한 모습이다. 이방원과 조선, 신동빈과 롯데그룹의 관계는 묘하게 닮아 있다. 차이라면 장애물을 철저히 없앤 이방원과 달리 신동빈은 정적에게 도발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롯데그룹이 또 한 번 내홍에 휘말렸다. 돌이켜보면 지난 8월 발생한 형제 간 왕위계승싸움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당시보다 더 큰 규모의 제2막이 시작된 셈이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차남이 우위를 점한 사실은 변함없다. 다만 아버지의 후광을 기으로 장남이 이전보다 면밀히 준비해 온 만큼 섣부를 판단은 금물이다. 차남의 우군을 자처했던 세력이 판도를 좌지우지할 키를 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자신하는 동생
출렁이는 롯데

분쟁의 시작은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롯데그룹 지분 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를 장악하고 동생 신동빈 한국 롯데그룹 회장을 향해 칼끝을 겨누면서 비롯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14일 일본 광윤사 긴급 주주총회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등기이사에서 해임시켰다. 이사회에서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지분 50%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주식 1주를 사들여 과반 지분도 확보했다.

정혜원 SDJ코퍼레이션 상무는 “신동주 전 부회장은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며 이러한 자격으로 지금부터 롯데그룹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바로잡고 개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둔 상황에서 본격적인 경영권 다툼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의 약 1/3에 이르는 종업원지주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승산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신동주의 난’ 노림수 혹은 무리수 
‘정점’광윤사 장악…신동빈 해임

승부의 관건은 지난 8월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드러났듯이 종업원지주회가 어느 쪽에 힘을 싣느냐로 귀결된다. 현재 종업원지주회는 롯데홀딩스의 2대주주(27.8%)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오너일가-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국내 계열사로 정리된다.

광윤사는 한·일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위에서 군림해온 신 총괄회장 일가의 사실상 가족회사다. 신동주 전 부회장(50%), 신동빈 회장(38.8%), 신격호 총괄회장(0.8%),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10%) 등이 100% 소유하고 있다.

또한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주주이다. 롯데홀딩스는 지분 구조는 광윤사(28.1%), 종원원지주회(27.8%), 관계사(20.1%), LSI(10.7%), 오너일가(7.1%), 임원지주회(6.0%), 롯데호텔(5.5%), 롯데재단(0.2%) 등으로 이뤄졌다.

지금껏 종업원지주회의 이사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측근이 맡았고 롯데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큰 변동이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지난 8월 주총에서 돌연 종업원지주회는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종업원지주회의 의결권은 개별 구성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성에 따라 움직인다. 종업원들이 개별적으로 주식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개별 의결권을 포기하는 대신 배당으로 보상받는다.


게다가 종업원지주회의 의결권은 이사장 한명에 의해 행사된다. 의결권을 행사하기 전 이사회 개최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사회 구성이나 구체적인 이사회 결의 방식은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

결국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확보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종업원지주회를 끌어들이는 게 숙제다. 그리고 종업원지주회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나설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SDJ코퍼레이션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은 “종업원지주회를 설득하기 위해 신동빈 회장의 경영실패 사례 등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며 “신동빈 회장에 대한 지지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상황이다.

‘이번엔 다르다’
의결권 미지수

일각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준비가 이전보다 착실해진 만큼 이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종업원지주회 지분이 신동빈 회장에게 무작정 쏠린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홀딩스 최대 지분을 보유한 광윤사의 대표이사가 된 이상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종업원지주회를 자신의 우호 지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종업원지주회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 지분 상당수를 종업원들에게 일정부분 나눠준 형태로 출범했다.설립 과정을 감안하면 종업원지주회가 무작정 신동빈 회장에게 힘을 싣는다고 보기 힘든 셈이다. 오히려 회사에서 발생한 이익을 배당으로 분배하는 만큼 주총 때 최대주주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삼성전자 전체 주식의 3% 남짓을 소유한 이건희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도 어찌 본다면 비슷한 맥락이다. 압도적으로 주식을 많이 보유하지 않는 이상 마찬가지다.
 

물론 종업원지주회가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의중과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종업원지주회는 경영권의 향방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입장에 놓인다. 다만 지금까지 행보를 비춰볼 때 종업원지주회는 그리 능동적인 집단은 아닌 듯한 인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종업원지주회는 설립 취지로 보자면 신동주 전 회장에 가깝지만 신동빈 회장의 편에 선 전례가 있다”며 “신격호 총괄회장의 영향력이 종업원지주회에 어느 선까지 미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롯데홀딩스 최대주주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종업원지주회에 기대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광윤사 등기이사 해임 건이 롯데그룹 후계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 역시 무관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전면에 내세운 안건이 롯데그룹의 중국시장 공략 실패다.

지난 1997년 부회장 승진한 이래 신동빈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다. 지난 2008년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 2009년 두산 주류부문, 2010년 필리핀 펩시 공장, 2010년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수, 올해 더 뉴욕 팰리스 호텔까지 연이어 인수하면서 신동빈 회장은 빠르게 롯데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그 사이 롯데그룹의 자산도 급증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이 취임한 2011년 이후 4년간 롯데그룹의 총 자산은 약 20%, 매출액은 약 40% 늘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성공리에 안착한 건 아니다. 특히 중국시장에서 겪은 손실은 신동빈 회장의 그간 행적을 희석시킬 만큼 커다란 악재였다. 이를 두고 신동주 전 부회장은 손실 규모가 1조원에 이른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으며 신격호 총괄회장 역시 사재를 털어서라도 물어내라며 압박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 세력의 결집력이 과연 기대 이상의 힘을 발휘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 롯데그룹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신동빈 회장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날렸다고 보긴 힘들고 그렇다고 확실한 우군을 확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영권 다툼에서 한차례 패배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비슷한 형태로 또 한 번 고배를 마실 수 있다는 견해가 부담스럽다. 달리 말하자면 신동빈 회장이 지난 8월과 동일한 수순으로 형제 간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동주 뜨니
주가는 하락

아직까지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배신했던 종업원지주회의 신임을 엊지 못하고 있다. 종업원지주회의 의중은 지난 8월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확인됐고 불과 2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별다른 변동사항이 없었던 만큼 판세 뒤집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 측은 종업원지주회를 확실한 우호세력으로 바라보는 인상이 짙다. 이 경우 자기주식+우호지분은 50%를 상회한다.


신동빈 회장 측이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만 보유한 가족회사에 불과하다”며 “신동빈 회장의 이사 해임이 그룹의 경영권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승부 키는 종업원지주회
각자 설득 작업에 나서

경영권 분쟁을 겪은 후 빠르게 회사를 수습하고 나선 신동빈 회장의 행보가 긍정적으로 비춰진다는 것도 신동주 전 부회장의 부담요소다.

비록 장남은 아니지만 신동빈 회장은 주주들에게 자신의 경영권을 위임받았다는 점에서 정통성을 지닌다. 지난달 17일 국정감사 증인 출석 당시 “이사회에 막강한 권한을 줬다”며 “이사회가 결정하면 저를 해임할 수도 있고 해직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정통성을 자신했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다시 신동빈 회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주주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단순 지분율을 넘어 ‘경제적 가치’라는 낯선 개념까지 강조하며 ‘소유=경영’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킨 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8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광윤사 지분율이 50%고 롯데홀딩스에 대한 경제적 지분 가치가 36.6%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지분 가치가 이렇게 높은 대주주를 아무런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해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의적인 해석일 뿐 신동주 전 부회장의 실제 지분은 28.1%에 국한된다. 그가 주장한 경제적 지분가치는 의결권 없는 주식 비중을 배제했을 뿐이다.

반면 신동빈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호텔롯데의 상장과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확보 방안을 발표하며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416개에 달하는 순환출자 고리를 연내에 80% 이상 해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전문가들도 기존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게다가 형제 간 분쟁이 롯데그룹 관련주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신동빈 회장에게 호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처음으로 부각됐던 지난 7월말 롯데그룹 관련주들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이후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형제 간 대결에서 승리하자 롯데 관련주는 조금씩 반등에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도 벌써부터 비슷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롯데 관련주는 조금씩 요동치고 있다. 이른바 ‘오너리스크’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버지 선택은?
신격호에 주목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 소송의 뜻을 밝힌 지난 8일 이후 롯데쇼핑은 4.09% 주가가 하락했다. 롯데푸드,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등 롯데 그룹주들도 같은 기간 각각 3.77%, 2.77%, 2.07% 주가가 떨어졌다. IB업계 관계자는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롯데그룹 주가에 좋이 않은 영향을 주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며 “최근 이미지 쇄신에 노력하는 롯데그룹의 행보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똘똘 뭉친 신동주 사람들

롯데그룹 경영권 쟁탈전이 또 한 번 부각되면서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보좌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지난 8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신 전 부회장의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민유성 나무코프 회장이다.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이 최근 국내에 설립한 SDJ코퍼레이션의 고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민 고문 옆에는 김수창 법무법인 양헌 대표와 조문현 법무법인 두우 대표 변호사가 함께 했다.

산업은행 총재와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했던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과 오랜 시간 교류해 온 인물로 꼽힌다. 최근에는 나무코프, 티스톤 파트너스 등 사모펀드 업계에서 활약해왔다. 주목할 점은 그가 금융계 전문가로서 정·관계에 막대한 인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민유성 주도…가신들 모습 드러내
닻 올린 SDJ 실무진 10여명 구성

실제로 민 회장은 신 전 부회장에게 고교 동창인 두 변호사 친구를 소개해 이른바 ‘신동주 자문단’을 구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민 회장의 인맥을 통해 새로운 인사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재 신동주 사단은 이들 외에도 실무진 등 10여명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막 닻을 올린 SDJ코퍼레이션이 규모를 키울 경우 운영진의 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SDJ코퍼레이션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최근 한국에서 설립한 회사로 향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한국 내 전초기지가 될 법인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단독 대표이사로 올랐고 전자와 생활제품 무역업 및 도소매 등을 사업 목적으로 등록했다.

더불어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 주주총회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소베 테츠를 신임 이사로 선임하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공동전선도 분명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14일 광윤사 주총에서 신임 이사로 선임된 이소베씨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비서로 20년 이상 보필한 최측근으로 꼽힌다. 그가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의 이사회로 선임되면서 광윤사 대표이사로 선임된 신 전 부회장의 무게감도 더욱 커지게 됐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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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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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