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②집무실 대책회의

감쪽같이 사라진 남자, 배후는?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 즉 사실과 픽션 즉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각하, 찾으셨습니까?”

이 부장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무실이 담배 연기로 뽀얗게 뒤덮여 있었다. 그 속에서 네 사람의 굳은 표정을 살피고 심상치 않은 감을 느꼈는지 멀뚱하게 서서 김 총리와 장 장관을 번갈아 주시했다. 

“왔으면 앉지 않고 뭐하는 겐가.”

이 부장이 다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봐.”


“무엇을 말씀이신지‥‥‥.”

“뭐긴 뭐야. 윤대중 말이지!”

이 부장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실은.”

이 부장이 말하다 말고 장경호 장관을 바라보았다. 장 장관이 슬그머니 고개 돌려 시선을 외면했다. 

“제가 독단으로 일을 벌였습니다.”

“그건 알고 있고. 지금 상황을 이야기해보란 말이야!”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도쿄에서 납치해 오사카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배로 공해상으로 진입하였습니다.”

“공해상으로.”

“그곳에서 처리하려 합니다.”

“처리라면.”

“여차하면 수장시키려 합니다.”

이 부장이 작심했다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박 대통령이 가당치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 측에서도 누구의 소행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완벽합니다.”

“지금 당장 작전 취소하라 연락해!”

“예!”

마치 의외의 답을 들었다는 듯 이 부장의 표정이 급격히 당혹스럽게 변해갔다.

“임자!”


“네, 각하.”

“자네는 완벽이 존재할 수 있다 보는가. 일본 아이들은 병신들이냐 이 말이야. 단지 시간 문제지 일본에서 우리가 개입되어 있음을 반드시 밝힐 거네. 그리고 미국 CIA‥‥‥ 그 사람들은 벌써 이 일에 대해 샅샅이 꿰고 있을 거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각하.”

잠자코 듣고 있던 김 총리가 낮은 목소리로 개입했다.

“이 부장, 왜 우리가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었는지 모르겠는가.”

“그야 자주국방 즉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아닙니까.”


이 부장이 핵이란 단어에 힘주어 답하자 모두의 얼굴에 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걸 아는 사람이 일을 이리 끌어가는 겐가.”

이 부장이 차마 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자네가 남북관계에 들인 공이 아쉬워 그런 모양인데 지금 우리 입장에서 통일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나 소련, 중공(중국) 등이 우리의 통일을 정말 원하고 있다 생각하는가?”

“그야 아닙니다만.”

“내 누누이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자주국방이 우선이라고. 하여 남북관계를 잠시 그런 차원에서 활용하자고.”

이 부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의욕은 인정하네. 그러나 이런 식의 일처리는 용납할 수 없네.”

“그러면 어떻게 처리할까요. 다시 일본에 데려다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대한민국으로 데려 와야지. 지금 다행스럽게도 일본 영해를 빠져 공해상에 있다 하니 이리 데려 오라 하게.”

“그 후에는 어찌 처리합니까.”

“집에 데려다 주게. 그리고 일본 측에서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모양인데 절대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게. 자칫하면 심각한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

이 부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는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윤대중을 수장시키기 전에 빨리 조처 취하겠습니다.”

이 부장이 나서는 모습을 보며 박 대통령이 다시 담배를 물었다.

“참, 저 사람 무슨 일처리를 저리 하는 겐가.”

“각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김 총리, 마저 이야기하게.”

“이 부장이 윤세용 사건에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는 모양입니다. 아울러 이 일도 그를 만회하기 위해 과잉 충성을 보인 게 아닐는지요.”

지난 4월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윤세용이 사석에서 이병선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형님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이 줄줄이 옷 벗은 일을 의미했다.

“그 일은 다 잊자 하지 않았는가.”

“그야 그렇지만.”

“여하튼 이거 또 저 사람 뒤치다꺼리 해야겠구먼.”

박 대통령이 담배를 깊게 빨고 천장을 향해 연기를 뿜어냈다.

윤대중 탈환 대책회의
전문가의 수법 “저항조차 못했다”
공해상으로 사라진 그들, 어디로?

“의장님 계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조총련 오사카 지부장인 문상대가 중앙의장인 신덕수의 호출을 받고 도쿄에 위치한 본부를 찾았다. 비서인 오영수가 서둘러 안내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신덕수를 포함하여 부의장인 이재노, 박계필, 홍재필, 김진규, 장봉수가 함께 모여 숙의 중이었다.

“어서 자리하게.”

문상대가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 잡으며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무슨 일로 그러하십니까?”

문상대가 자신의 호출에 대한 영문을 묻는다는 듯 신덕수 의장을 주시했다.

“아참, 문 지부장은 아직 모를 수도 있겠구려.”

“무슨 내용인지‥‥‥.”

“윤대중 선생이 사라졌다네.”

“네!?”

“어제 저녁 무렵으로 추정되는데, 오늘 아침 숙소에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사람을 보냈다네.”

“그런데요?”

“깨끗하게 증발해버렸네.”

“증발이라니요?”

문상대가 목소리를 높이자 신덕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네.”

“납치라니요. 누가, 무엇 때문에!”

홍재필의 보충 설명에 문상대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납치당했다면 당연히 남조선 측에서 벌이지 않았겠는가.”

“숙소에서 말입니까?”

“어제 점심에 남조선에서 온 양일영 통일당 대표 일행을 만나기 위해 룸을 나섰다가 사라졌다 하네.”

“그러면 그 작자도 개입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직 알 수 없네. 다만 그를 만난 이후 행방불명된 것으로 판단할 뿐이네.”

“말씀 들어보니 그 작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자자, 지금 너무 사건을 비약하지 말고 차일 사무국장이 경시청을 방문했으니 조만간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 거네. 그러니 잠시 기다려 보세나.”

대화를 지켜보던 신덕수 의장이 좌석을 정리했다.

“그러면 어제 윤대중 선생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신덕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문상대가 마땅치 않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아 이 사람아, 다른 장소도 아니고 호텔에 머물러 있는데 누가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침묵을 지키던 장봉수 부의장이 역시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그래도 오후에 체크는 해봐야 했을 것 아닌지요.”

문상대의 목소리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그저 오후에 쉬는가 생각했지.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네.”

“말씀 듣고 보니 남조선 측의 중앙정보부가 개입된 듯합니다. 그렇게 감쪽같이 일처리 할 수 있는 곳은 거기 외에는 없으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문상대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조총련 사무국장인 차일이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섰다.

“그래, 뭐라던가?”

신덕수가 급했는지 차일이 미처 자리도 잡기 전에 다그쳤다.

“경시청도 납치로 결론 내렸습니다.”

“누가?”

“그 부분은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범행 수법으로 보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인물들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위에 대해서는 말이 없던가?”

“어제 남조선에서 방문한 양일영 의원 일행과 점심 겸해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던 중 납치되었답니다. 이어 납치범들이 호텔에 얻어놓은 방에 잠시 머물러 있다 곧바로 오사카 항으로 이동되었답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답니까?”

“그 부분 때문에 전문가들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혀 반항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합니다.”

대화에 개입했던 문상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는 겐가?”

“지금 오사카 항으로 움직였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빨리 비상을 걸고 흔적을 추적해 봐야지요.”

“허허, 이 사람아. 그 사람들이 아직 오사카에 있다 생각하는가?”

“하면.”

“지금쯤 아마도 공해상 저 멀리 나갔을 것이네.”

말을 마친 신덕수가 차일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토해냈다.

“경시청에서 납치범들이 굳이 요코하마 항을 두고 오사카 항을 선택한 데에는 고도의 책략이 숨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잠깐, 그를 살피면 남조선 애들 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신덕수가 말을 이었다.

“그런 연유로 경시청에서도 확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경시청에서는 다섯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조사에 임하겠다 하였습니다.”

“다섯 가지라니?”

“첫째는 한국정보기관에서 납치했을 가능성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 반대해 망명생활을 하고 있으니 달가운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재일민단 조직에서 했을 수 있다 했습니다.”

“민단에서?”

“한국 정부를 돕기 위한 애국심이 동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럴듯하군. 세 번째는?”

“북조선 소행일 수도 있다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북조선에서 했다면 우리가 모를 턱이 없지 않은가.”

“북조선의 조직과 활동 등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취한 행동일지 모른다 했습니다.”

“결국 북조선이 남조선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취했다 이 이야기로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저희 조총련이 했을 수도 있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조국인 북조선을 위한다는 사유입니다.”

“그건 제쳐두고, 다음은?”

“윤대중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답니다.”

“뭐라, 자작극!”

“윤대중이 남조선의 현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고 국민의 동정과 인기를 사기 위해 꾸민 연기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차일의 발언이 끝나자 모두의 입에서 가느다랗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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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