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 즉 사실과 픽션 즉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각하, 찾으셨습니까?”
이 부장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무실이 담배 연기로 뽀얗게 뒤덮여 있었다. 그 속에서 네 사람의 굳은 표정을 살피고 심상치 않은 감을 느꼈는지 멀뚱하게 서서 김 총리와 장 장관을 번갈아 주시했다.
“왔으면 앉지 않고 뭐하는 겐가.”
이 부장이 다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봐.”
“무엇을 말씀이신지‥‥‥.”
“뭐긴 뭐야. 윤대중 말이지!”
이 부장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실은.”
이 부장이 말하다 말고 장경호 장관을 바라보았다. 장 장관이 슬그머니 고개 돌려 시선을 외면했다.
“제가 독단으로 일을 벌였습니다.”
“그건 알고 있고. 지금 상황을 이야기해보란 말이야!”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도쿄에서 납치해 오사카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배로 공해상으로 진입하였습니다.”
“공해상으로.”
“그곳에서 처리하려 합니다.”
“처리라면.”
“여차하면 수장시키려 합니다.”
이 부장이 작심했다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박 대통령이 가당치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 측에서도 누구의 소행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완벽합니다.”
“지금 당장 작전 취소하라 연락해!”
“예!”
마치 의외의 답을 들었다는 듯 이 부장의 표정이 급격히 당혹스럽게 변해갔다.
“임자!”
“네, 각하.”
“자네는 완벽이 존재할 수 있다 보는가. 일본 아이들은 병신들이냐 이 말이야. 단지 시간 문제지 일본에서 우리가 개입되어 있음을 반드시 밝힐 거네. 그리고 미국 CIA‥‥‥ 그 사람들은 벌써 이 일에 대해 샅샅이 꿰고 있을 거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각하.”
잠자코 듣고 있던 김 총리가 낮은 목소리로 개입했다.
“이 부장, 왜 우리가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었는지 모르겠는가.”
“그야 자주국방 즉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아닙니까.”
이 부장이 핵이란 단어에 힘주어 답하자 모두의 얼굴에 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걸 아는 사람이 일을 이리 끌어가는 겐가.”
이 부장이 차마 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자네가 남북관계에 들인 공이 아쉬워 그런 모양인데 지금 우리 입장에서 통일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나 소련, 중공(중국) 등이 우리의 통일을 정말 원하고 있다 생각하는가?”
“그야 아닙니다만.”
“내 누누이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자주국방이 우선이라고. 하여 남북관계를 잠시 그런 차원에서 활용하자고.”
이 부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의욕은 인정하네. 그러나 이런 식의 일처리는 용납할 수 없네.”
“그러면 어떻게 처리할까요. 다시 일본에 데려다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대한민국으로 데려 와야지. 지금 다행스럽게도 일본 영해를 빠져 공해상에 있다 하니 이리 데려 오라 하게.”
“그 후에는 어찌 처리합니까.”
“집에 데려다 주게. 그리고 일본 측에서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모양인데 절대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게. 자칫하면 심각한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
이 부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는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윤대중을 수장시키기 전에 빨리 조처 취하겠습니다.”
이 부장이 나서는 모습을 보며 박 대통령이 다시 담배를 물었다.
“참, 저 사람 무슨 일처리를 저리 하는 겐가.”
“각하, 외람된 말씀이지만‥‥‥.”
“김 총리, 마저 이야기하게.”
“이 부장이 윤세용 사건에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는 모양입니다. 아울러 이 일도 그를 만회하기 위해 과잉 충성을 보인 게 아닐는지요.”
지난 4월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윤세용이 사석에서 이병선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형님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이 줄줄이 옷 벗은 일을 의미했다.
“그 일은 다 잊자 하지 않았는가.”
“그야 그렇지만.”
“여하튼 이거 또 저 사람 뒤치다꺼리 해야겠구먼.”
박 대통령이 담배를 깊게 빨고 천장을 향해 연기를 뿜어냈다.
윤대중 탈환 대책회의
전문가의 수법 “저항조차 못했다”
공해상으로 사라진 그들, 어디로?
“의장님 계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조총련 오사카 지부장인 문상대가 중앙의장인 신덕수의 호출을 받고 도쿄에 위치한 본부를 찾았다. 비서인 오영수가 서둘러 안내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신덕수를 포함하여 부의장인 이재노, 박계필, 홍재필, 김진규, 장봉수가 함께 모여 숙의 중이었다.
“어서 자리하게.”
문상대가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 잡으며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무슨 일로 그러하십니까?”
문상대가 자신의 호출에 대한 영문을 묻는다는 듯 신덕수 의장을 주시했다.
“아참, 문 지부장은 아직 모를 수도 있겠구려.”
“무슨 내용인지‥‥‥.”
“윤대중 선생이 사라졌다네.”
“네!?”
“어제 저녁 무렵으로 추정되는데, 오늘 아침 숙소에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사람을 보냈다네.”
“그런데요?”
“깨끗하게 증발해버렸네.”
“증발이라니요?”
문상대가 목소리를 높이자 신덕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네.”
“납치라니요. 누가, 무엇 때문에!”
홍재필의 보충 설명에 문상대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납치당했다면 당연히 남조선 측에서 벌이지 않았겠는가.”
“숙소에서 말입니까?”
“어제 점심에 남조선에서 온 양일영 통일당 대표 일행을 만나기 위해 룸을 나섰다가 사라졌다 하네.”
“그러면 그 작자도 개입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직 알 수 없네. 다만 그를 만난 이후 행방불명된 것으로 판단할 뿐이네.”
“말씀 들어보니 그 작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자자, 지금 너무 사건을 비약하지 말고 차일 사무국장이 경시청을 방문했으니 조만간 소식을 가지고 돌아올 거네. 그러니 잠시 기다려 보세나.”
대화를 지켜보던 신덕수 의장이 좌석을 정리했다.
“그러면 어제 윤대중 선생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신덕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문상대가 마땅치 않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아 이 사람아, 다른 장소도 아니고 호텔에 머물러 있는데 누가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침묵을 지키던 장봉수 부의장이 역시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그래도 오후에 체크는 해봐야 했을 것 아닌지요.”
문상대의 목소리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그저 오후에 쉬는가 생각했지.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네.”
“말씀 듣고 보니 남조선 측의 중앙정보부가 개입된 듯합니다. 그렇게 감쪽같이 일처리 할 수 있는 곳은 거기 외에는 없으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문상대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조총련 사무국장인 차일이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섰다.
“그래, 뭐라던가?”
신덕수가 급했는지 차일이 미처 자리도 잡기 전에 다그쳤다.
“경시청도 납치로 결론 내렸습니다.”
“누가?”
“그 부분은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범행 수법으로 보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인물들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위에 대해서는 말이 없던가?”
“어제 남조선에서 방문한 양일영 의원 일행과 점심 겸해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던 중 납치되었답니다. 이어 납치범들이 호텔에 얻어놓은 방에 잠시 머물러 있다 곧바로 오사카 항으로 이동되었답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답니까?”
“그 부분 때문에 전문가들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혀 반항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합니다.”
대화에 개입했던 문상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는 겐가?”
“지금 오사카 항으로 움직였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빨리 비상을 걸고 흔적을 추적해 봐야지요.”
“허허, 이 사람아. 그 사람들이 아직 오사카에 있다 생각하는가?”
“하면.”
“지금쯤 아마도 공해상 저 멀리 나갔을 것이네.”
말을 마친 신덕수가 차일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토해냈다.
“경시청에서 납치범들이 굳이 요코하마 항을 두고 오사카 항을 선택한 데에는 고도의 책략이 숨어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잠깐, 그를 살피면 남조선 애들 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신덕수가 말을 이었다.
“그런 연유로 경시청에서도 확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경시청에서는 다섯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조사에 임하겠다 하였습니다.”
“다섯 가지라니?”
“첫째는 한국정보기관에서 납치했을 가능성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 반대해 망명생활을 하고 있으니 달가운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재일민단 조직에서 했을 수 있다 했습니다.”
“민단에서?”
“한국 정부를 돕기 위한 애국심이 동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럴듯하군. 세 번째는?”
“북조선 소행일 수도 있다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북조선에서 했다면 우리가 모를 턱이 없지 않은가.”
“북조선의 조직과 활동 등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취한 행동일지 모른다 했습니다.”
“결국 북조선이 남조선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취했다 이 이야기로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저희 조총련이 했을 수도 있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조국인 북조선을 위한다는 사유입니다.”
“그건 제쳐두고, 다음은?”
“윤대중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답니다.”
“뭐라, 자작극!”
“윤대중이 남조선의 현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고 국민의 동정과 인기를 사기 위해 꾸민 연기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차일의 발언이 끝나자 모두의 입에서 가느다랗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