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어려지는 성폭행범 천태만상

초등생이 그짓을…이러다 유치원생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몇 년 전 초등학생 3명이 지적장애 여성을 강간해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이후 청소년 성폭행 범죄가 크게 늘었다. 형사상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변변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는 청소년 성범죄를 점검한다.
지난 2013년 초등학생 3명이 20대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강원 원주경찰서는 지적 장애여성을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강간)로 A군(당시·11·초교 6년) 등 동급생 3명을 붙잡아 조사했다. 이들은 평소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B씨(당시·23·지적 장애 2급)를 원주시의 한 공사장으로 유인해 차례로 성폭행했다. 
 
음부에 이물질
옷 벗기고 사진
 
B씨는 강하게 저항했지만 3명이 합세해 덤비는 바람에 막지 못했다. 범행에 앞서 A군 등은 가위 바위 보를 통해 순번을 정하고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속칭 ‘야동’을 돌려보기도 했다. 
 
이들의 범행은 사건 다음달 B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고교생 C(17)군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면서 드러났다. C군은 길에서 B씨를 우연히 만나 안부를 묻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A군 등을 동네 놀이터로 불러내 범행 사실을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B씨는 병원 치료를 받은 뒤 경찰에 출석해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하지만 A군 등 3명의 처벌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미성년자인 관계로 소년부로 송치됐다. 형법 제9조에는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고, 소년법에는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범에게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하게 돼 있다. 이들은 형사처벌을 물을 수 없는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이다. 
 
따라서 모두 열한살인 3명의 가해 초등학생들은 소년법에 근거해 가정법원이나 지방법원 소년부 판사의 심리를 받게 된다. 검찰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사건을 송치한 것이다.
 
사건이 법원으로 송치되면 심리를 맡은 판사는 감호위탁·사회봉사·수강교육·보호관찰·소년원 송치(1개월∼2년) 등을 결정하게 된다. 가해 학생들이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는 벌은 ‘소년원 2년 수용’인 셈이다.  
 
아동 상대 성범죄 급증 “가해자 연령도↓” 
겁없는 10대들…초등학생 2년간 3배 증가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수위가 가볍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성년자에 대해 처벌을 성인과 동등하게 적용하여 나이가 어려도 죄질이 나쁠 경우 성인과 동등한 처벌을 하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게 됐다. 
 
현행 14세 미만으로 규정된 촉법소년 연령을 12세 미만으로 고치자는 소년법 개정안은 2년째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다. 그런 사이 촉법소년이 성폭행 가해자가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한 해 300여 건씩 일어나고 있다. 2011년 224건이었던 촉법소년 성폭행은 해마다 증가해, 3년 만에 61%가 늘었다.
 

10대 청소년들이 갈수록 겁이 없어지고 성범죄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해 마다 10대 성폭력이 수천건에 달하면서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여중생 후배를 집단으로 성폭행 한 10대들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변성환 부장판사)는 3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특수강간) 혐의로 기소된 A(15)군과 B(15)군에게 각각 장기 3년, 단기 2년 6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각각 8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했다.
 
처벌없다는 점
노리고 범행도
 
A군 등은 지난해 6월5일 오후 7시께 전주시 산정동의 한 빌라 옥상에서 C(13세)양을 번갈아가며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군 등은 C양을 성폭행하기로 마음먹고 미리 콘돔을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만 13세에 불과한 피해자를 윤간한 피고인들의 범죄는 그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면서 “게다가 피해자를 육체적·정신적·인격적으로 무참히 짓밟는 참담한 범행을 저지르고서도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보인 진술 태도 등을 고려할 때, 비록 피고인들이 소년임을 감안하더라도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8월에는 10대 2명이 가출한 또래 자매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성매매를 강요하며 돈을 갈취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10대들은 성매매 알선(포주)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위협한 조폭에게 다시 돈이 뜯겼다. 오모(19)군 등 2명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오군 등은 지난해 8월 가출 청소년 A(14)양과 A양의 언니(18) 등 자매를 울산의 한 모텔로 유인해 성폭행했다. 이후 오군 등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A양 자매에게 성매매를 제안한 뒤 스마트폰 채팅앱 등을 통해 성매매를 알선했다. 자매가 성매매 대가로 받은 돈 대부분은 오군 등이 강제로 가져갔다.
경찰은 “수사 결과 10대 남성이 여성 청소년의 성매매를 알선한 것도 충격적인 일이지만 여성 청소년끼리 서로 성매매를 알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성폭력 가해자 중 청소년이 증가하는 추세다. 학생 성폭력 사건은 2012년 642건 대비 2014년에는 1429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지역별로 살펴보면 ▲경북(10건→79건, 7.9배) ▲울산 (12건→44건, 3.7배) ▲경남(32건→104건, 3.3배) ▲제주(4건→13건, 3.3배)순으로 증가비율이 높았다.  
 
2012∼2014년 3년 동안 심의된 사건 총 2949건 중 ▲초등학교(533건, 18.1%) ▲중학교(1672건, 56.7%) ▲고등학교(678건, 23%) 등 초·중학생 사건비중이 전체 75%에 이르렀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2012년 93건 대비 2014년에는 310건으로 2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으며, 사건의 내용 또한 초등학생이 일으킨 사건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심각했다. 부산에서는 한 초등학생이 피해 학생의 음부에 이물질을 삽입하는 사건이 있었고, 대전의 한 초등학생은 동급생의 옷을 벗기고 사진을 찍어 다른 친구들에게 전송했으며, 인천의 한 초등학생은 유치원생 3명을 7차례에 걸쳐 강제 추행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접하기 쉬운
음란물 원인?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기준 또한 지역별로 제각각이었다. 학생 성폭행 사건에 대해 경기 지역은 퇴학 조치가 내려졌지만, 충북 지역은 전학, 충남 지역은 사회봉사 5일, 울산 지역은 특별교육 5시간, 경남 지역은 출석정지, 제주 지역은 특별교육 10일 등 모두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성폭행 사건 발생 후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현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경기, 고등학교 남학생이 모텔에서 여학생을 성폭행-퇴학 ▲충북, 중3 남학생이 학교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중2 여학생을 성폭행-전학 ▲충남, 중학생이 여학생을 아파트 상가로 강제로 끌고 가 성폭행-사회봉사 5일 ▲울산, 여관에서 술에 취해 정신없는 여학생을 성폭행-특별교육 5시간 ▲경남, 고등학생이 여학생과 게임에서 지면 술마시기 내기를 하여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피해자를 강간-출석정지 ▲제주, 중3 남학생이 8세 어린이에게 휴대폰을 주고 성폭행-특별교육 10일 등이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유재중 새누리당 의원은 “유사한 사건에 대해 어떤 학교에서는 퇴학처분을 하는 반면 어떤 학교에서는 출석정지, 교육이수 처분에 그치는 등 징계 기준이 제각각인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비슷한 또래 겁주고 단체로 포주노릇

넘쳐나는 소년원…촉법소년은 면죄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2013∼2014년 두 해 동안 전국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총 2247건으로 하루 평균 3.1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에는 848건이던 성폭력이 2014년에는 1399건으로 1.6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처럼 청소년 성범죄가 날로 지능적이고 흉폭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청소년들의 강력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합당한 처벌로 경각심을 줘야 재범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재범 가능성이 더 커 별도의 처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범죄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해 처벌이 아닌 예방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에 필요한 환경을 마련해 주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며 “포기하지 말고 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처벌 뒤에 이어지는 ‘낙인’에 대한 우려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이 청소년 성범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 청소년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음란물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아이들 첫 성교육 선생님이 되는 셈이다. 음란물로 그릇된 성 가치관을 형성한 아이들이 조기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 학생 10명 중 6명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 중·고등학생의 휴대폰 보유율은 90%를 웃돌았다.
 
솜방망이 처벌
재발방지 미흡
 
성교육 상담센터 이현숙 소장은 “음란물은 대부분 성폭력 상황이 설정되어 있고 영상 속 여성이 피해를 당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왜곡된 성 가치관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며 “강간을 수용하는 정도가 높아지면 성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이어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지 않거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소년 성범죄' 최다 발생 지역은?
 
최근 5년간 만 15세 이하 아동·청소년 성범죄는 제주와 광주·전남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새누리당 황인자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아동·청소년 성범죄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제주 68.33건, 광주 40.17건, 전남 38.33건, 전북 33.77건 등의 순으로 발생했다. 
 
사건 발생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서울로, 제주보다 6.11건이 적다. 2011년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일어난 성범죄는 1만4117건으로 드러났다. 연도별로는 2011년 2709건, 2012년 2987건, 2013년 3270건, 2014년 3145건이 발생했으며, 2015년 8월까지 2006건이 발생했다. 
 
아동 성범죄 발생 비율 역시 가장 높은 지역은 제주로 인구 10만 명당 22.2건이 발생했다. 이는 전국 평균 10.21건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어 전남 15.18건, 울산 13.79건, 광주 13.45건, 전북 13.02건 등의 순이었다. 발생률이 가장 낮은 지역은 충북으로 7.88건이었다. <창>
 
 

<기사 속 기사> ‘군 성범죄’ 추이
 
군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사건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21일 군사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군 성범죄 사건’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간 군인에 의한 성폭력범죄 기소 건수가 2.8배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1.4배 증가했고, 군형법상 강간·추행죄로 기소된 건수도 5.5배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군내 성적 문란행위 징계 현황’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간부의 군내 성적 문란행위 징계 건수 증가율은 47%로 일반 병사의 증가율(37%)보다 높게 나타났다. 군별로는 육군 간부가 50%, 해군 간부가 13%, 공군 간부가 88%의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공군 간부의 경우 2013년에 전년 대비 125%나 증가했다. 일반 병사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간부들이 오히려 성범죄 사건의 주범이 되고 있다고 서 의원은 지적했다.
 
앞서 국방부는 군의 성 군기 문란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자 2013년 ‘성 군기 사고예방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해에는 ‘성 군기 사고 예방활동 지침’, 올해는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등을 내놨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군 성범죄를 줄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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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