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퀸’에서 ‘뮤지컬 디바’로, 2000년 이후 뮤지컬 붐을 타고 많은 스타급 연예인들이 뮤지컬 무대를 밟았지만 살아남은 이는 옥주현, 바다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가수 아이비가 도전장을 던졌다. 요즘도 국립극장에 <키스 미, 케이트>를 성황리에 공연하고 있다. 외형상 화려하다. 하지만 보이는 게 하나면 보이지 않는 것은 더 많은 법. ‘뮤지컬 디바’로 거듭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아이비를 만나 보았다.
신분상승 꿈꾸는 댄서 로아레인 등 1인2역
‘방송춤’ 버리고 ‘무용춤’ 익히느라 구슬땀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뮤지컬로 재구성한 브로드웨이 코미디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원작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 극중극 형태로 꾸몄다.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공연되는 무대와 배우들의 공간인 분장실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려낸 것. 아이비는 나이트클럽 댄서 출신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로아레인 역과 <말괄량이 길들이기> 속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 비앙카 역을 동시에 맡았다.
“로아레인은 배우를 꿈꾸며 나이트클럽 댄서가 됐고, 자신의 매력을 활용해 연출자에게 꼬리를 치죠. 비앙카는 온 동네 남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소녀예요. 말괄량이 언니 때문에 시집을 못 갈까봐 전전긍긍하며 아버지를 부추길 때는 여우같은 면도 보이죠.”
지옥훈련 거뜬히 소화
두 캐릭터 모두 여성스러운 면이 강조되는 배역이다 보니 연기할 때 애교는 필수. 평소 스스로를 ‘미련한 곰’에 비유해 온 아이비는 애교 연기에 힘들단다.
“제 실제 성격과는 차이가 있어 연기하는데 애를 먹고 있어요. 최대한 닭살스럽게 오버하면서 콧소리를 내고 있죠. 근데 연기를 하면서 ‘나에게도 귀여움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
가수로서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아이비지만 뮤지컬 배우의 발성이 가수의 발성과 달라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도 신경 쓰고 있는데 가끔 사람들이 발음하는 게 안 들린다고 하세요. 뮤지컬은 가사가 대사인데,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가사 전달을 잘해서 관객들이 제대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해야죠.”
그간 ‘유혹의 소나타’ ‘터치 미’ 등의 음악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섹시 여전사’로 군림해 온 아이비지만 ‘몸치’여서 선배들에게 굴욕도 당했다.
“‘춤 되게 잘 추지 않았냐’면서 ‘TV에서 보던 그 아이비는 대체 어딨냐’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원래 몸치인 데다 뮤지컬 속 춤은 부드러운 손동작이 필수인 무용이 대부분이라 힘들었어요. 남경주 선배님이 발레를 추천해 주셨어요. 공연 끝나면 배우러 다니려고요.”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한 아이비는 오래 전부터 뮤지컬에 도전하고 싶었다. 캐스팅 제의를 받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옥주현, 박경림의 한마디가 힘이 됐다.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거든요. ‘이런 것도 해봤다’ 이런 말을 정말 좋아해요. 주현 언니는 저를 믿는다고 하면서 ‘평소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경림이도 공연 연습하는 것을 보고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캐스팅이 된 뒤 지난 5월 중순부터 시작된 연습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기도 했다. 두 달 동안의 노력의 결과일까.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역시 아이비!”라는 찬사를 쏟아낸다.
“첫 공연하는 날은 두렵고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요. 어머니가 청심환을 사주셔서 먹고 무대에 올랐어요. 관객들이 알아볼 정도의 실수는 아니었지만 박자를 조금 놓쳤어요. 잘 봐주셔서 감사 드려요. 회가 거듭될수록 완벽한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해야죠.”
여성그룹의 양대 산맥이었던 SES와 핑클에서 보컬을 맡았던 바다와 옥주현은 현재 뮤지컬배우로 변신에 성공하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아이비는 두 사람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 됐다.
“<시카고> 욕심나요”
“두 분 모두 가수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로 느껴질 만큼 위화감이 없고 잘 소화해 나가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주현 언니가 출연하는 <몬테크리스토>를 봤는데, 정말 감동했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따라 잡아야죠.”
뮤지컬을 하면서 배우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가수는 3분30초 노래하면 끝이지만 배우는 두 시간이 넘게 극을 이끌어가야 한다. 아이비는 ‘뮤지컬의 디바’로 거듭나고 싶단다.
“이제 첫 발을 내디뎠지만 너무너무 매력 있어요. 힘들기도 한데 생활의 활력소예요. 내년엔 <시카고>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꼭 주현 언니가 한 록시 역할에 도전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