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야생화 탐방 ③포항 기청산식물원

다채로운 표정의 여름 꽃 핀 포항의 무릉도

지난 4월 포항 KTX가 개통했다. 포항은 이제 서울에서 2시간30분, 대전에서 1시간30~40분 거리다. 접근이 편리해지며 포항 여행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그간 포항은 제철 도시의 색깔이 강했다. 여행지는 일출 명소 호미곶과 바다가 앞섰다. 못내 아쉽다. 포항은 훨씬 다채로운 표정이 있는 여행지다. 조금 새로운 발견을 원한다면 북쪽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여름날 꽃과 숲을 만나기 좋다. 처음 찾는 이들은 포항의 심상이 달라진다.

느린 걸음으로 고요한 숲이 주는 안락함 만끽
희귀멸종위기식물원에서 마주하는 진귀한 꽃

첫 방문지는 기청산식물원이다. 기청산은 기(箕)와 청산(靑山)을 합친 말이다. 기는 곡식을 까부르는 데 쓰는 키고, 청산은 익히 아는 대로 유토피아다. 키 모양 대나무 언덕이 있는 무릉도원, 좋은 식물과 사람의 참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삼우 원장의 취지가 담긴 이름이다. 그는 지난 1969년 기청산농원을 열며 식물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현재는 9ha에 식물 2500여종이 자란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했나. 그 가치는 식물원에 들어서는 순간 실감한다. 정문 일대부터 영화나 소설에 나올 법한 숲길이 펼쳐진다. 초록 숲 사이로 알록달록한 꽃들이 반긴다. 비밀의 빗장을 열듯 살며시 걸음을 낸다.
초입의 양치식물원, 자생화원, 울릉식물관찰원을 지나 가장 안쪽의 용연지나 희귀멸종위기식물원까지 다녀온다. 그 중간에 식용식물원이나 암석원, 해변식물원 등이 자리한다. 기청산식물원을 돌아보는 데 정해진 경로나 원칙은 없다. 숲이 주는 안위를 만끽하며 느리게 걷는다. 눈길을 끄는 꽃이나 식물이 있다면 푯말을 보고 이름을 되뇌어도 좋겠다. 또한 멸종위기식물을 눈여겨보면 관람이 좀 더 풍요롭다.

멸종 위기 식물
서식지 외 보전기관

기청산식물원은 지난 2004년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됐다. 환경부가 서식지 내 보전이 어려운 동식물을 서식지 외에서 보호·관리하도록 지정한 기관이다. 경상도 최초이자 민간 식물원으로는 한택식물원 다음이다. 현재 경상도에서 자생하는 멸종 위기 식물 10종을 보전하며 섬개야광나무, 섬현삼, 섬시호 등 울릉도 자생식물이 많다.
이맘때는 멸종 위기종 섬시호를 비롯해 섬말나리, 섬기린초 등이 꽃을 피운다. 섬시호는 바닷가 숲에서 자란다. 7~8월에 노란 꽃이 복산형꽃차례에 달린다. 섬말나리는 백합과 여러해살이풀로 6~7월에 꽃을 피운다. 일본에서는 관상용으로 키울 만큼 화려한 모양을 자랑한다. 섬기린초는 7월에 20~30송이가 우산 모양으로 꽃을 피운다. 마치 포항에서 울릉도 숲을 걷는 듯하다. 


가장 안쪽에 있는 희귀멸종위기식물원도 꽃들이 반긴다. 수줍게 고개를 숙인 자주초롱꽃이다. 백두산에서 채종한 자주초롱꽃이 울릉도 섬초롱꽃과 자웅을 겨룬다. 오가는 길목의 습지에 노랑어리연꽃과 노루오줌 꽃도 앙증맞다. 야생에 피는 꽃 못지않은, 야생인 듯 야생 같은 식물원의 모습이다. 

가족이 함께라면 울릉식물관찰원 북쪽의 낙우송 고목이나 대숲도 볼거리다. 낙우송은 뿌리가 숨을 쉬기 위해 땅 위로 무리 지어 솟아올랐다. 진귀한 현상이라 아이들이 눈을 반짝인다. 낙우송 근처에는 키 모양 대숲이 있다. 대나무 사이 미로를 걷는 재미가 각별하다.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식물원을 알차게 경험하는 방법이다. 야생화 심고 기르기, 나무피리목걸이 만들기를 비롯한 목공예 체험과 천연 염색 체험 등이다. 유료로 진행하는 식물 해설 가이드 역시 기청산식물원을 구석구석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숲이 고요해 가만히 귀 기울이면 새소리도 다채롭다. 

포항 북쪽 생태 여행은 기청산식물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죽장면 경상북도수목원과 송라면 내연산이 약 10km 거리에 있다. 경상북도수목원은 해발 650m에 자리해 우리나라 수목원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다. 더위를 피해 걷기에 제격이다. 전체 면적 역시 2727ha의 국내 최대 규모에 알찬 구성이 매력이다. 만남의 광장을 중심으로 서쪽은 백합원을 지나 삼미담이 나오고, 동쪽은 활엽수원과 울릉도·독도식물원을 지나 전망대까지 오른다. 수변 경관을 볼 수 있는 삼미담은 수목원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 반면 15분 거리의 영춘정 전망대에 오르면 멀리 동해까지 내다보인다.

내연산도 포항의 자랑거리다. 해발고도 710m로 가늠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하다. 여름에는 12폭포가 피서객을 부른다. 쌍둥이 폭포인 상생폭포를 출발해 시명폭포까지 12개 폭포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보경사에서 첫 폭포인 상생폭포까지는 왕복 40분,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관음폭포와 연산폭포까지는 왕복 2시간이 걸린다. 관음폭포와 연산폭포 사이에는 구름다리가 있고, 주변으로 학소대와 비하대 등이 절경이다. 시간을 내서 다녀올 만하다. 길목의 계곡에는 쉴 만한 물가도 여럿이다. 내연산 초입의 보경사도 마음을 다스린다. 602년(진평왕 25) 신라 지명법사가 창건한 사찰로 보경사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 보경사 승탑(보물 제430호) 등 문화재가 있다.

포항의 해운대
영일대해수욕장

여름 바다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 포항 시내에서 가까운 해변을 찾는다. 영일대해수욕장은 ‘포항의 해운대’로 불리는 번화가다. 예전에는 북부해수욕장이었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 누각 영일대가 들어선 뒤 이름이 바뀌었다. 영일대는 일출과 야경 명소로 소문이 났다.

오는 7월 30일부터 8월2일까지 열리는 포항국제불빛축제 때 야경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좀 더 활동적인 레저를 체험하고 싶을 때는 포항해양스포츠아카데미를 찾는다. 윈드서핑, 딩기 요트, 카이트 보딩이나 서핑 등을 배울 수 있다.


정적인 레저는 영일대해수욕장 인근 포항운하의 크루즈가 있다. 포항운하는 동빈내항과 형산강을 잇는 뱃길이다. 크루즈는 포항운하와 바다를 아우르는데 기본 코스(8km)와 내항 코스(6km)로 나뉜다.

선착장을 출발해 죽도시장, 포항함 등을 30~40분간 운항한다. 7월1일부터는 야간 운항도 하고 있다. 예약하는 게 안전하다. 기다리는 동안은 포항운하관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주변 바다 경관이 푸근하게 안기는데, 포항(浦項)이라는 이름이 뜻하는 포구의 길목, 갯메기를 실감한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코스

생태 체험 코스 : 기청산식물원→경상북도수목원→보경사→내연산
체험 여행 코스 : 기청산식물원→영일대해수욕장→포항운하

1박 2일 코스
첫째 날 : 기청산식물원→보경사→내연산 12폭포
둘째 날 : 경상북도수목원→영일대해수욕장→포항운하

관련 웹사이트
· 포항시 문화관광 http://phtour.ipohang.org
· 기청산식물원 www.key-chungsan.co.kr
· 경상북도수목원 www.gbarboretum.org
· 보경사 www.bogyeongsa.kr
· 포항운하 http://innerharbor.ipohang.org

문의 전화
· 포항시청 국제협력관광과 054-270-2373
· 기청산식물원 054-232-4129
· 경상북도수목원 054-260-6100
· 보경사 054-262-1117
· 포항운하 054-270-5177, 5173(주중) 054-270-5176, 5173(주말)
· 포항크루즈 054-253-4001
· 영일대해수욕장(포항시청 해양항만과) 054-270-2843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포항역 :
KTX 하루 8~10회(05:15~22:10) 운행, 2시간3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포항 : 동서울종합터미널 하루 20여회(07:00~24:00) 운행, 약 4시간30분 소요.
*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대련 IC→동해대로 16km→청하 방면 좌회전 청하로 1.8km→ 청하로175번길 방면 좌회전 500m→기청산식물원

숙박
· 베니키아호텔포항 : 남구 중앙로, 054-282-2700, www.benikeapohang.com
· 연산온천파크 : 북구 송라면 보경로, 054-262-5200, www.yeonsanspa.com
· 스타모텔 : 북구 중앙상가6길, 054-232-8255, 8257
· 네이처풀빌라 : 북구 청하면 해안로, 010-6700-1200, www.naturepoolvilla.com

식당
· 운하회·대게식당 : 물회, 북구 죽도시장길, 054-246-5656, www.unha.kr
· 삼보가든 : 산채 요리, 북구 송라면 보경로, 054-262-2224
· 경주종가집장독된장 : 장독된장, 남구 이동로, 054-278-6468
· 까꾸네모리국수 : 모리국수, 남구 구룡포읍 호미로, 054-276-2298


축제와 행사
· 제12회 포항국제불빛축제 : 2015년 7월30일~8월2일, 영일대해수욕장·형산강체육공원 일원
                                         054-270-2255, http://piff.ipohang.org

주변 볼거리
하옥계곡, 덕동문화마을, 환호공원, 죽도시장, 구룡포근대문화역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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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