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신문고-억울한 사람들> ⑦쫓겨나게 생긴 한경미씨

“맘 편히 장사하고 싶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일곱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건물에서 쫓겨나게 생긴 한경미씨 이야기입니다.


한경미씨는 동작구 숭실대 앞에서 10년째 감자탕집을 운영했다. 가게 위치가 도로변에 있고 대학가 근처라 장사가 썩 잘 됐다. 지난해 9월 중국 상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건물주가 찾아왔다. 건물주는 내년 4월29일까지 가게를 무조건 비워달라고 했다. 어차피 한씨의 건물 계약이 올해 4월29일까지였다. 한씨는 건물을 나갈 생각에 건물주에게 “그럼 양도양수 해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세입자에 소송
 
그런데 건물주는 미국 기업이 들어오기 때문에 양도양수를 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당시 건물주는 미국에서는 권리금이 없기 때문에 양도양수를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한씨와 건물주는 양도양수에 대해 오랜 시간을 이야기 했지만 건물주는 해줄 수 없다며 고집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지난 2월부터 건물주의 친척이라는 사람이 한씨를 찾아왔다. 이들은 “왜 아직도 가게를 안 비웠느냐”며 “이런 식으로 하면 보증금도 못 준다”며 한씨에게 말했다. 한씨는 이게 싸울 일도 아니고 어차피 계약 기간도 곧 끝나기에 건물을 나가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하지만 새로운 건물을 찾기도 막상 쉽지 않았다. 대부분 비싼 권리금 때문에 쉽사리 점포를 구할 수 없었다. 한씨는 건물주에게 “새로운 가게를 구할 동안 시간을 조금 달라”며 “직원이 4명인데 이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부탁했다. 하지만 건물주는 자신에게 피해가 간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다 한씨는 건물 계약이 아직 한 달이나 더 남았는데도 지난 3월30일 건물주에게 명도소송 소장을 받았다. 
 

한씨는 2층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다 지난 3월에 나간 세입자에게 이번에 새로 들어온다는 세입자가 스타벅스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스타벅스는 건물을 3층까지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3층에 있던 학원과 2층에 있던 커피숍이 나간 상태였다. 이들 역시 권리금은커녕 계약기간에 맞춰 등 떠밀리듯 가게를 내줬다.
 
이 말을 듣자 한씨는 건물주에게 스타벅스가 들어온다면 양도양수를 해달라고 따졌다. 이어 “스타벅스는 나갈 때 권리금을 받고 나갈 것 아니냐”며 “그럼 나도 권리금을 받고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세입자는 스타벅스는 미국 기업이라 안 된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말에 화가 난 한씨는 “그딴 소리하지 마시죠. 여기가 미국입니까”라고 항변했다. 
 
 
한씨는 한동안 강하게 버텼다. 그러자 건물주는 스타벅스가 들어오기로 한 2층과 3층에 대한 것까지 한씨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씨는 “솔직히 이런 말 들으면 불안하고 무섭다. 한편으로는 ‘내가 진짜 물어야 하나’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씨는 소장조차 읽는 게 어려워 변호사에게 물어보러 갈 정도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동작 숭실대서 10년째 감자탕집 운영
스타벅스 입주…다짜고짜 “가게 비워”
권리금은 커녕 양도양수 거부
 
그러다 7월2일 건물주는 건물명도단행가처분을 신청했다. 건물명도단행가처분이란 명도소송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1∼2개월 이내 빠른 기간에 결론이 난다. 즉, 이미 명도집행이 진행 혹은 마쳐진 건물에 세입자가 침입 또는 점유 등을 한 경우에 소를 제기한다. 
 

한씨는 “건물명도단행가처분을 신청하려면 변호사를 또 선임해야 한다. 사건번호가 아예 다르다”며 “건물주는 돈이 많으니깐 할 수 있겠지만, 먹고 살기 바쁜 장사꾼이 변호사를 두 번이나 선임할 돈이 어디 있느냐”며 성토했다. 한씨는 이 소장을 받고 억울하고 답답했다. 
 
한씨는 “작년 10월에 스타벅스와 건물주가 계약을 했다”며 “내가 여전히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건물주가 마음대로 스타벅스랑 계약을 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벅스가 들어오기로 한 날은 이번 7월1일이다. 상식적으로 계약을 했으면 7월1일에 가게를 안 비워주면 계약이 깨진다”며 “스타벅스가 당연히 손해배상소송을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은 권리금도 없이 들어오며 손해 보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깐 내가 쫓겨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작년까지 건물주와 세입자들이 원만히 해결한 줄 알았다. 우리도 피해자다”며 “건물주와 세입자가 문제를 잘 해결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벅스는 그 동안 한국에 700개 매장을 오픈하면서 권리금을 주거나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스타벅스는 애초에 건물주와 세입자가 문제 해결이 된 줄 알았다는 입장이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당연히 스타벅스가 들어오는 게 이득이다. 건물에 들어올 스타벅스는 월세 1300만원을 내기로 했다. 이는 한씨를 비롯해 전에 있었던 세입자들이 내는 월세보다 두 배가량 많다. 또 스타벅스가 들어온다면 건물 값도 오른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건물주는 “권리금은 누구도 줄 수 없다”며 무조건 나가라는 입장이고, 스타벅스는 회사 정책상 권리금을 줄 수 없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실정이다. 한씨는 “부동산에서 ‘가게 내놓을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가 올 정도로 좋은 자리다. 심지어 이 가게를 얻으려고 부동산에 권리금을 들고 찾아온 사람도 있다”며 “우리는 주인 말 한 마디에 권리금이 날아간 거나 마찬가지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씨처럼 ‘나가라는 건물주’와 ‘버티는 세입자’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건물주가 세입자가 초기에 투자한 권리금과 시설투자 비용을 주지 않고 내보내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5월13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건물주가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세입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게 주 내용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입자들은 법에 보호를 받지 못하고 힘겹게 싸우고 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스타벅스코리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맘상모는 이날 기자 회견에서 대기업 프렌차이즈와 기획부동산에 의해 쫓겨나는 임차상인 피해 사례 발표 및 상생을 촉구했다. 

“있는 사람이 더해”
 
맘상모는 “건물주 입장에선 스타벅스가 입점하면 건물의 값어치도 오르기 때문에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임차상인들과 상생을 도모해야 하는 사회에 도덕적인 책임을 묻고 싶다”고 말했다. 한씨는 “열심히 일한 국민이 외국 기업한테 권리금도 못 받고 내몰리는 게 맞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며 “정부와 법에 묻고 싶다”고 성토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맘상모는?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은 상가세입자들이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인 상가세입자들의 모임이다. 맘상모는 지난 2013년 5월에 출범했다. 
 

억울하게 쫓겨난 몇몇 세입자가 모여 상인들을 대책 없이 내쫓고 있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전면적 개정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법과 제도의 미비로 억울한 처지에 놓인 세입자들의 생존권 쟁취를 위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싸움을 진행 중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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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