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④천태만상 유학시대 '앞과 뒤'

비행기 탄 아이들이 되돌아 온다 "왜?"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어 교육열풍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당시 돈 좀 있는 집안은 어린자녀를 앞다퉈 해외로 보냈다. 조기유학이 큰 폭으로 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학열풍 15년이 넘은 이 시점, 유학에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두드러지면서 유학열풍이 한풀 꺾인 모양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유학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2000년 이후 조기유학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떠났다. 개중에는 유수의 명문대에 진학해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학생이 있는 반면 학업에 흥미를 잃어 탈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학지에서 방황하는 학생 대부분은 ‘치맛바람’에 억지로 떠밀려 타지에 홀로 남겨진 상태였고 이들 중 다수는 조기유학에 실패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조기유학의 문제점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채
각종 위험 노출
 
A씨는 부모의 권유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린 나이에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 하는 게 여간 어려웠다. 언어의 장벽과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은 A씨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결국 A씨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언어도 학위도 무엇 하나 얻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왔다. 마냥 빈손은 아니었다.
 
A씨는 유학생활 중 외로움을 달래고자 접했던 마약을 끊지 못해 미국인 친구를 통해 국제택배로 마약을 제공 받아 서울 강남, 홍대 클럽가에서 흡연하고 주변에 유통시킨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마약에 관대한 문화에 익숙한 탓에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A씨의 부모는 대학교수로 알려져 충격이 더했다. 유학생활 중 마약을 배우고 국내에 마약을 밀반입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마 종자를 밀반입해 직접 재배하고 거래까지 한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유학지의 환경도 한 몫 한다. 필리핀에 조기유학을 간 10대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억지로 술을 먹이는가 하면 성추행까지 저지른 기숙사 운영자에게 징역 6개월이 선고되는 일이 지난해 3월 벌어졌다. 당시 법원 등에 따르면 2007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 유학생 기숙사를 운영해온 최모(38)씨는 2011∼2012년 A(18)군을 수차례 손찌검하고 각목, 플라스틱 파이프 등으로 허벅지 등을 때렸다. A군이 농구 경기 중 실수를 했다거나 다른 학생을 빨리 불러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최씨는 2012년 10월에는 기숙사 인근 식당에서 A군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거부하자 최씨는 “어른이 주는데 안 먹어?”라고 위협했고,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맥주 40여병을 구입해 구토를 할 때까지 계속 마시게 했다. 또한 최씨는 2012년 1월 B(16)군의 기숙사 방에 들어가 B군의 성기를 만지는 등 추행하기도 했다. 최씨는 학생들에게 “한국에 가서 부모님에게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한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해 영국 <데일리메일>은 외국 이민자 및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흉기를 이용한 무자비한 폭력행위를 저지른 십대 청소년 갱단이 처벌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청소년 갱단은 UCLAN(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에 다니는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형 학교 기숙사 건물에 수시로 침입해 테러행위를 했다.
 
기숙사 주변에 수시로 출몰하며 유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는 등 여학생이 혼자 머무는 방을 밖에서 파괴하려 시도하는 등 공공기물 파손 및 주거 침입과 같은 악질적 범죄 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청소년 갱단의 각종 방해 행위 때문에 유학생들은 기숙사 밖을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학교도 출석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다.

고스펙 인재 넘쳐
유학 실패 증가
 
일련의 사건들은 조기유학의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06년 교육부는 ‘조기유학 제대로 알기’라는 책자를 만들어 배포한 바 있으나 이후 해외 조기유학이나 해당 기숙사들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조기유학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기유학을 비판하는 이들은 조기유학의 문제점을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찾는다. 한국 학교와 달리 외국 학교는 자유시간이 많다. 외국 학교의 경우 오후 3시는 전후로 수업이 끝난다. 이후 시간은 학생 각자에게 맡겨져 있다. 한국처럼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어떤 아이는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지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적지 않다. 특히 부모와 떨어져 혼자 유학하는 경우에는 통제가 힘들어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어렵다.
 
그럼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담배와 마약 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유학생 출신 청소년 갱단원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탈은 정체성혼란에서 나온다. 낯선 곳에서 타인종과 어울려 생활한다는 자체가 곤욕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성인도 힘들어 하는 영어 공부를 매일 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한다. 종합해보면 조기유학생들은 유학지에서 문화차이, 언어문제, 보호자 부재, 외로움 등으로 힘들어 한다.
 
돈 좀 있는 집안 어린자녀들 앞다퉈 해외행
각종 부작용 드러나면서 유턴…그럼 어디로?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0년 발표한 SERI 경제포커스 제310호 ‘국제 유학시장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7명 중 1명이 유학을 떠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2012년 발표한 KB daily 지식 비타민 <한국의 유학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유학 연수비용은 2000∼2011년 중 367% 증가해 동기간 도시가계지출 증가율을 큰 폭으로 상회했다.
 
한국의 해외유학 연수비용은 2011년 기준 44.7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해외유학 연수비용은 지속적인 증가를 보이다가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감소세로 전환됐으나 2010년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2011년 기준 한국인 해외 유학생 수는 28만9000명이며, 이 중 57%는 학위를 위해, 37%는 어학연수를 위해 유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캐나다, 일본은 학위를 위한 유학생 비중이 높은 반면, 중국, 영국, 호주 등은 어학연수를 위한 유학생 비중이 높았다.
 
초·중·고 유학생 수는 2006년을 정점으로 이후 3년간 지속적으로 감소세였으나 2010년에는 18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2010년 기준 초·중·고 유학생 중 초등학생이 8794명으로 가장 많았다. 중학생 5870명, 고등학생 4077명 순이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5.1%, 2.6%, 1.3% 증가했다. 2010년 기준 학생 1만명당 유학생 수는 중학생이 29.7명, 초등학생이 26.7명, 고등학생이 20.8명으로 특히 중학생이 유학을 많이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학을 떠난 국가별로 살펴보면 초·중·고 유학생은 미국과 동남아 중심으로, 대학 유학생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유학했다. 전체적으로 유럽보다는 북미와 아시아권에 유학생이 집중돼 있었다. 고등학생은 49.5%가 미국에 집중돼 있었다. 이는 2008년 대비 5.9% 증가한 수치다. 대학 유학생은 초·중·고 유학생에 비해 미국 및 동남아 비중이 낮은 반면, 중국, 일본, 호주, 영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다 다양한 나라에 유학 중이다.

유학 성공해도
취업난 사슬에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14서울교육통계 분석자료집>을 보면 서울시 강남구와 서초구의 유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초등학생을 제외한 중학생, 고등학생 유학 비율은 감소세다. 2003년과 2013년 유학생 수를 비교한 결과 초등학생은 13.8% 증가한 반면 중학생은 -21.4%, 고등학생은 -20.5% 감소했다. 유학 실패사례 등 각종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기홍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으로의 조기유학 청소년의 적응과 열망’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조기유학은 성공의 가능성보다 훨씬 큰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드러난 비용에 더해 숨은 비용을 고려하면 그 대가가 막대하게 크다는 것이다.
 
 
또 조기유학생들의 경우 발달과정에 있으며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학업 성취의 문제뿐 아니라 언어소통조차 불편한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이 용이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기유학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자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에게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조기유학생들은 같은 또래의 이민자 자녀들에 비해 우울증의 평균 수치는 23%가 높았으며 자살 관념의 평균 수치는 90%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학교중퇴, 청소년범죄, 폭력조직 구성, 마약, 음주 등 탈선은 물론 자살에 이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공식적인 통계 수치로 확인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조기유학생의 절반 정도는 학업을 포기하고 중도에 귀국한다는 추정도 있다. 이 교수는 청소년을 조기유학으로 내모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사회구조를 바로잡는 일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유학에 성공했다고 해서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인재시장에서 나타난다. 헤드헌팅업체 탑앤스카우트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어서 해외대 출신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외국계 기업에서는 해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등한 학위를 갖고 있다면 취업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피성은 대부분 실패…중도 포기 많아
국내대 출신이나 해외대 출신이나 비슷
 

헤드헌팅업체 써치앤컴퍼니 관계자는 “해외대 출신을 선호하지만 100위권 대학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기”라면서 “요즘에는 고스펙 인재가 많아서 50위권, 30위권 대학을 나와야 인재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급인재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예외지만 해외대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유명 해외대 석사학위나 박사학위가 있어야 고급인재로 인정받는다고 전해진다. 업계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닌 이상 사실상 국내대 출신과 해외대 출신 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해외 유학이 예전과 같지 않자 적은 비용으로 해외대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유학에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송도가 국내 유학지로 부상하고 있다. 인천 송도의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대학생 5000명이 공부할 수 있는 강의동과 도서관, 기숙사, 게스트하우스, 교수아파트, 복합문화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2단계로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추가해 10개 대학의 1만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현재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한국뉴욕주립대, 조지메이슨대, 미국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벨기에 겐트대 등 4대 대학이 자리를 잡았다. 4개 대학 정원은 3876명이다. 현재 학부·대학원 등 재학생은 606명, 외국인 학생은 66명이다. 앞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컨서바토리(피아노·관현악·성악·합창지휘과)와 미국 네바다주립대(호텔경영학), 러시아 불쇼이국립발레아카데미(지도자·무용수·안무가 과정) 등도 입주할 예정이다.
 
인천글로벌캠퍼스 내 대학은 한국 대학처럼 수능으로 학생들을 뽑지 않는다. 고등학교 공식 성적 증명서와 영어 능력 증명서가 평가 기준이 된다. 영어는 토플 IBT 80점 이상, LELTS(영국·호주 영어테스트 시험) 6.5이상, SAT Critical Reading 450점 이상, ACT-English(미국 대학입학학력고사) 20점 이상의 기준 가운데 한 가지를 충족하면 입학에 도전할 수 있다. 

조폭, 마약 등 
만만찮은 부작용
 
현실적으로 일반 고등학교에서 글로벌캠퍼스에 입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목고와 국제고나 홈스쿨링, 대안학교 등 제도권 밖 교육이 인기다. 문제는 진입장벽이다.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글로벌캠퍼스는 고사하고 그 길목이 되는 학교에도 진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리잡은 대안교육 '허와 실'
 
대안학교는 서구 교육계의 ‘얼터너티브 스쿨(alternative school)’에서 나온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억압적인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자연친화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학교를 말한다.
 
대안학교는 특성을 살려 건학 이념에 따라 생태농업, 건축, 대중매체이해 등 다양한 특성화 과목을 가르친다. 이외에도 종교·환경·시민단체에서 주말이나 방학에 자연답사, 체험활동, 방과 후 학습활동 등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상설 대안학교 등이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대안학교 특별전형으로 대안학교 출신을 선발하기도 한다.
 
대안교육의 교육적 가치는 훌륭하나 사회성 발달이 뒤쳐진다는 단점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학교와 달리 자유로운 학풍 때문에 대안학교 안에서는 적응을 잘 하지만 밖에서는 사회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자연주의나 자급자족과 같이 스스로 생활하는 방식을 중시하는 대안학교의 특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자칫 사회와 동떨어진 주변인으로 남게 될 우려가 적지 않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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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