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전 WBC 챔피언 박찬희

“박지성 인기는 댈 게 아니었죠”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영웅이었다. 1970년대 박찬희 선수는 한국의 매니 파퀴아오였다.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은 TV 앞에 모였다. WBC(세계권투평의회) 챔피언에 오르며 최초로 5차 방어전까지 성공했던 그는 그야말로 국민 영웅이었다. 한국프로복싱의 황금기를 열었던 그가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고, 그게 복싱인가” 지난 3일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렸던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경기를 보고 박찬희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 이어 “권투를 좋아하는 팬이나 전문가들도 모두 실망스러웠던 경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젊었더라면 한 번쯤 정말 붙어보고 싶은 상대들이라고 평가했다. 
 
노병의 추억
 
그는 한국이 낳은 복싱선수 중 최고의 순발력과 기량을 겸비한 것으로 회자된다. 1974년 고등학교 2학년 때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 아마추어 전적으로 127전 125승으로 경의적인 기록. 이어 1979년 프로데뷔 1년8개월 만에 멕시코의 미겔 칸토를 물리치고 WBC 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그가 23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미겔 칸토는 14차례 타이틀을 방어 중이었으며 링의 대학교수라 불리는 멕시코 영웅이었다. 이후 박 선수는 5차례 타이틀 방어를 한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타이틀 방어를 5차례까지 갔다. 하지만 그는 1980년 일본의 오쿠마쇼지와의 경기에서 타이틀을 내주게 된다.
 
박 선수는 마지막 6차 방어전 당시 “시합 날 손 하나 까닥하기도 싫었다”고 밝혔다. “세계 타이틀전을 두 달에 한 번 꼴로 했다. 쉴 시간도 없었다. 또 운동만 하니깐 너무 힘들었다.” 보통 세계챔피언의 방어전은 4∼6개월 간격으로 치러지는 게 정상이다. 반면 박 선수는 지나친 경기 일정으로 혹사당했다.  
 

“날 제대로 한 번 때려라” 사람들은 그가 오꾸마쇼지의 페이스에 밀려 누적된 공격에 KO패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지친 나머지 자신이 KO패를 당하더라도 빨리 경기가 끝나길 바랐다. 
 
그는 “너무 힘들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깐 상대방의 주먹이 피해졌다”며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경기는 9회까지 가는 등 접전을 벌였다. 9회 초반 그는 오꾸마쇼지의 보디공격으로 KO패를 당했다. 박 선수는 “배를 한 대 맞았는데 그냥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았다”며 “그래서 시합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부와 명예 누렸지만…
은퇴 후 어려움 겪어
 
그는 “국민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그날 시합에 지고 나니깐 너무 편하고 좋았다”며 “세계 챔피언이 될 때보다 챔피언을 빼앗겼던 그 날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방어하는 동안 그가 얼마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찬희 데리고 오면 출연시켜줄게” 1980년 MBC의 한 PD가 가수 조용필에게 했던 말이다. 당시 박찬희는 방송사들이 가장 섭외하고 싶은 1순위 스타로 통했다. 그 시절은 박찬희가 TV에 나오면 시청률이 80%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반면 방송에 나오고 싶어 했던 조용필은 신인 가수였다.
 
박 선수는 “TV 출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며 “조용필이 나에게 같이 방송에 출연하자 부탁했었다”며 당시 출연 비화를 전했다. 이 때문에 박 선수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당시 그의 인기를 “박지성의 100배”라고 말했다. 박 선수는 “70∼80년대 인기 스포츠 종목은 복싱밖에 없었다”며 “스포츠 스타들이 연예인들보다 더 잘나갔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박 선수 지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기환씨가 박 선수를 불렀을 정도다”며 “그만큼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늘날 복싱은 옛날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비인기 종목으로까지 전락했다. 박 선수는 “복싱은 가난한 나라에서 인기가 많다. 한국 복싱이 호황이던 시절도 가난한 시절이었다”며 “모두가 먹고살기 위해 복싱을 했다. 당시 한국에서 많은 챔피언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필리핀의 파퀴아오를 주목했다. 파퀴아오 역시 가난한 필리핀의 빈민가 출신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한국 복싱이 발전할 수 없는 이유를 ‘헝그리 정신의 부재’로 꼽았다. 박 선수는 “요즘 도장에서 헝그리 정신으로 운동시켰다간 다 망할 것”이라며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를 향해 “챔피언한테 관심은 많지만, 챔피언을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비인기 종목이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은퇴한 운동선수들은 대체로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대한체육회가 은퇴 선수 29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3%에 해당하는 1272명이 직업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운동만 하고 살아왔다. 이 때문에 은퇴 후 사회적 부적응 등 어려움을 겪는다. 박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81년 24살의 나이로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박 선수는 당시 2억원의 돈을 벌었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로 환산하면 약 100억원이 넘는 돈이다. 하지만 이 돈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다 없어졌다. 
 
30년 전 함성 아직도 귓가에
타이틀 뺏긴 날이 가장 행복
 
박 선수는 “은퇴 이후 여기저기서 ‘돈 빌려 달라’ ‘보증 좀 서주라’ ‘같이 사업하자’ 등으로 돈이 5∼6년 사이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할 줄 아는 게 운동뿐이니 주변 사람의 말만 믿었다가 쪽박을 많이 찼다”고 토로했다. 또 박 선수는 “세계 챔피언 방어를 실패한 것은 무리한 일정 때문”이라며 “매니저는 시합에 나가기만 해도 돈벌이가 되니깐 경기 일정을 무리하게 잡았다”고 밝혔다. 당시 박 선수의 대전료는 3000만원에 달했다. 
 
 
박 선수는 지인을 통해 이곳저곳 전전하는 등 선수생활 은퇴 후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세계 챔피언 출신이라는 경력 덕분에 SBS 해설위원, 공군사관학교 지도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그는 한 무역회사에서 상무를 지내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박 선수는 “주현무역이라는 곳에서 김영신 회장님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며 “복싱 선수가 매니저가 있는 것처럼 현재 김 회장님은 나의 매니저같은 분이다”고 말했다. 
 
“영웅이었다”
 
박 선수는 벌써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시간이 흘러 그를 아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현재 그의 존재가 잊혀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그를 아는 사람은 ‘박찬희 정말 대단했지’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모두가 배고프고 힘든 시절 박찬희라는 존재가 국민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엿볼 수 있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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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