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메이커' 박순석 원정도박 파문

한판에 수천만원…비자금 조성했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골프 재벌'로 꼽히는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번엔 불법대출과 원정도박 혐의를 받고 있다. 사무실 압수수색과 측근 체포로 검찰은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막노동'으로 쌓아올린 성공 신화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다.

박순석.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신안그룹 회장인 그는 언론 노출을 꺼리는 편이다. 그렇지만 박순석의 이름은 몰라도 청담동 리베라호텔은 꽤 많은 20∼30대가 알고 있다. 리베라호텔의 지하 나이트클럽인 클럽아이는 2000년대 들어 남녀가 술을 주고받는 '만남의 장소'로 각광받았다.

골프장 재벌

리베라호텔의 실소유주는 박 회장이다. 박 회장은 호텔뿐 아니라 골프장도 여럿 갖고 있다. 그래서 언론은 '골프장 재벌'이라고 박 회장을 묘사한다. 또 박 회장은 신안저축은행을 설립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신안그룹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박 회장은 재계에서 부동산과 금융을 동시에 소유한 몇 안 되는 부호로 꼽힌다.

중견기업가인 박 회장은 특이한 '사생활'로 몇 차례 구설에 올랐다. 주로 남녀관계와 관련한 소문이다.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때문에 일각에선 누군가 박 회장을 음해하기 위해 루머를 퍼뜨린 것으로 추측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 회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세력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호사가들은 박 회장을 '스캔들 메이커'라고 부른다. 튀는 행실 탓도 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향 출신(전남 신안)이라는 점이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일부 언론은 이렇게 만들어진 반DJ 정서에 편승해 박 회장을 공격하는 데 열심이다. 그렇다고 박 회장을 마냥 감쌀 수는 없다. 물의를 일으킨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최근 검찰은 박 회장의 해외 원정도박 의혹을 수사 중이라고 알렸다. 수십억원을 들고 마카오로 날아간 박 회장은 거액의 도박을 하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골프재벌' 불법대출·해외도박 혐의
마카오서 측근과 수억대 카지노 덜미

춘천지검 속초지청(지청장 황병주)은 박 회장이 지난해 5월 마카오의 한 카지노에서 바카라 도박을 한 사진을 입수했다. 당시 박 회장은 개당 140만원짜리(1만 홍콩달러) 칩을 들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바카라 게임에는 보통 수십개의 칩이 쓰인다. 적게 잡아도 수천만원의 판돈을 바카라 게임에 쏟은 셈이다.

이 자리에는 박 회장의 측근인 정모씨가 함께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수자원 개발업체인 A사의 김모 회장에게 신안저축은행 대출상품을 알선하고, 수억원대 수수료를 받아 챙겨 검찰의 표적이 됐다. 지난 3월23일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앞서 검찰은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한편 서울 강남구에 있는 신안저축은행과 대부업체인 그린C&F대부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린C&F대부는 신안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하나로 (주)신안이 회사 지분 41.15%를 갖고 있다.

(주)신안은 박 회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신안그룹의 지주회사다. 아울러 박 회장은 그린C&F대부의 지분 47%를 개인 명의로 보유해 지배력을 넓혔다. (주)신안과 박 회장이 들고 있는 지분의 합은 88.15%로 사실상 1인 지배구조다. 그린C&F대부가 박 회장의 '사금고'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배경이다.

검찰은 박 회장이 그린C&F대부와 신안저축은행을 이용해 불법 대출을 해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A사 김 회장은 "신안저축은행으로부터 48억원을 빌리면서 선이자 명목으로 4억여원을 떼였다"라고 주장했다. 또 "정씨 등에게 컨설팅 명목으로 5억원을 줬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은 관련 진술을 근거로 금융자료를 확보한 뒤 정씨를 구속했다.


나아가 검찰은 김 회장이 정씨에게 건넨 돈 일부가 박 회장의 도박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해외에서 사채업을 하고 있는 B씨에게 박 회장이 돈을 빌렸고, 이 돈을 갚는 과정에서 김 회장의 돈을 썼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박 회장이 원정 도박을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마카오와 필리핀의 출입국 기록을 확보해 체류 일자와 도박 액수 등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지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박 회장의 원정 도박 규모는 1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3년 2월 마카오 MGM카지노를 방문해 2억2000만원(160만홍콩달러)을 썼고, 같은해 5월 다시 같은 장소에서 10억5000만원(750만달러)을 탕진한 것으로 검찰은 추정했다.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이 B씨에게 빚을 졌다는 단서가 포착된 것으로 복수 언론은 보도했다. 검찰은 박 회장이 불법 대출로 마련한 도박자금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피해자를 수소문 중이다.

신안그룹 측은 "불법 대출이 없었다"라는 입장이다. 도박 빚이 있었더라도 박 회장의 자산 규모를 따졌을 때 무리하게 자금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수십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만들어 해외로 빼돌렸다는 주장도 있지만 신안그룹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비자금 주장의 근거는 박 회장이 자주 해외로 나갔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가을과 올 2월에도 마카오로 출국해 바카라 게임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회장의 지인에 따르면 당시 박 회장이 쓴 돈은 1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2015년까지 박 회장의 '베팅액'은 의혹이 제기된 것만 20억원이 넘었다. 실제 게임 액수는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박 회장은 지난 2001년 40억원대 내기 골프를 치고 도박장을 개설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전력이 있다. 2003년 대법원은 상습도박·도박개장·배임·강요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회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러나 법원이 인정한 내기 골프 규모는 10억원대로 줄었다.

박 회장은 즉각 "짜깁기 수사"라며 검찰을 비난했다. 그러자 검찰은 같은 해 박 회장을 '이용호 게이트'와 '굿모닝 게이트'로 엮어 내사를 진행했다. 관련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맡았음에도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검찰과 오랜 악연을 이었던 박 회장이다.

수시로 출국

박 회장은 이른바 '인사(뒷돈 전달)'를 할 줄 모르는 '짠돌이'로 알려졌다. 회사가 크는 과정에서 여러 혜택을 입었지만 주변에 성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나이 열셋에 상경해 맨손으로 매출 수천억원대의 회사를 일군 박 회장. 그의 사방엔 적들이 가득하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순석 회장은?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은 1941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13살에 상경했다. 막노동, 심부름 가리지 않고 일해 돈을 모았다. 1960년 대성철강을 세웠고, 1980년 신안종합건설을 설립해 회사의 기틀을 잡았다. 여러 개발사업 시공사로 참여하며 부를 축적했다.


1996년 이후 금융업으로 발을 넓혔다. 신안주택할부금융, 신안캐피탈 등의 계열사를 거느렸다. 2000년에는 신안저축은행을 조흥은행으로부터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 최근 바로투자증권 주식을 사들여 증권업에 진출했다.

또 박 회장은 2000년대부터 골프장을 대거 사들여 국내 2위(홀 기준)의 '골프장 재벌'로 올라섰다. 같은 시기 호텔·리조트를 비롯한 관광산업에 투자해 돈을 불렸다. 2014년 기준으로 신안그룹 계열사는 20개에 이른다. <석>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