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나는 목사다”

논현동 개척교회서 목회활동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김 동지, 이 나라를 한번 살려주십시오. 대한민국 구할 사람은 김 동지밖에 없습니다.” 정치인들의 이 한마디로 1987년 한 젊은 청년은 백주대낮 조직원 100여 명을 이끌고 통일민주당 창당 대회가 열리고 있는 관악지구대를 습격한다. 그 청년은 ‘용팔이 사건’의 주범이 돼 정치깡패로 이름을 떨쳤다. 바로 김용남(65) 목사가 젊었을 때 걸어온 길이다. 


김용남 목사는 1950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씨름꾼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강인한 체력 덕분에 전국체전 3년 연속 금메달을 따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조직 폭력계에 발을 들이고, 정치에 개입하며 ‘용팔이 사건’으로 2년6개월 교도소 수감생활을 했다. 출소 후 교회 생활과 전도 사업으로 목자의 길에 이르게 됐다.
 
2002년 조직 정리
 
용팔이의 상징과 같은 콧수염. ‘이게 과연 60세의 손인가’싶을 정도로 거대한 손과 악수를 하며 그 악력에 기자는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젊었을 때 사진에 비친 매서운 눈이 아닌 푸근한 눈, 깊은 쌍꺼풀, 넓적한 코는 새롭게 태어난 ‘목사 김용남’임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김 목사는 2002년 조직을 정리하고 신앙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처음 교회를 다닐 때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습니다. 유혹도 많았죠.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많은 분들이 나를 다 잡아주시더군요. 어렸을 때 누가 날 그렇게 다 잡아줬다면 깡패 생활을 했을까 싶습니다.”
 
김 목사는 몇 년간 조직과 모든 연락을 끊고 교회에만 전념했다. 그 시간 동안 봉사활동과 신앙생활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처음에는 믿음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했던 조직원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죠.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주님을 향한 내 마음을 흔들 수 없습니다. 지금은 옛 조직원들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아요. 오히려 전도합니다.”

 
인터뷰 중간중간 기자는 김 목사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주님을 믿은 순간부터 내 삶이 완벽하게 변했다. 이야기하면서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하다”며 눈을 닦기도 했다.
 
김 목사는 지난해 5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소속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도순복음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다녔던 서초동 사랑의교회 내부 문제에 불만을 품고 교회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로 사흘 뒤 법정 구속돼 징역 5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소수의 사람이 교회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내려놓지 못해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에야 교회를 열고 첫 예배를 올렸다.
 
논현동 개척교회서 목회활동
유흥가 음지 선교에 자신감
 
강남사랑의교회는 아직 두 달밖에 되지 않은 개척교회지만 신도 수는 벌써 40명에 이른다.
 
“매주 한 두 분씩 새로운 사람들이 제 집회를 들으러 옵니다.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아직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나온 내 과거니깐 잘 이겨낼 것입니다.”
 

김 목사는 파란만장했던 젊은 시절을 겪었다. 그래서일까. 교도소 수감자나 청소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나는 청소년 시절 그 누구보다 불우하게 보냈습니다. 교도소도 많이 다니며 출소하면 기쁘기보다 얼마나 막막한지도 잘 알죠. 그들에게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이끌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교회를 세웠죠.”
 
청소년 문제에 관심
‘양지로’ 바른길 인도
 
김 목사가 세운 강남사랑의교회는 논현동에 있다. 흔히 노른자 땅이라 불리며, 교회가 많아 신도 경쟁도 심한 그 일대에 교회를 세우기란 쉽지 않다. 왜 하필 강남에 교회를 세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 이유가 있다”고 했다.
 
“강남에 청소년들이 많이 모입니다. 사건 사고도 많고, 유흥업소도 많죠. 이들을 상대로 목회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음지에서 누구보다 목회 활동을 잘할 수 있겠다 싶어 교회를 열었죠.”

 
김 목사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앞으로 방향도 뚜렷하게 제시했다. 그래도 세상의 평가는 아직 냉혹하다. 목사가 됐어도 여전히 깡패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김태촌, 조양은이 한몫했다. 신앙을 통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다고 고백했지만 검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제2의 인생 시작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신자들이 내 손을 잡으며 ‘잘 왔다’, ‘복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뒤돌아 손가락질하더군요. 진정한 목회자가 될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누가 뭐래도 나는 목사입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987년 용팔이 사건은?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은 통일민주당의 창당대회를 폭력배들이 방해한 사건이다. 당시 사건 주동자 김용남의 별명 용팔이를 따서 ‘용팔이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지시로 안기부가 개입한 대표적인 정치공작의 하나이다.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는 분위기가 높아졌지만, 신한민주당의 이민우 총재, 이철승 등은 당시 정부의 내각제 개헌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에 반발한 김영삼, 김대중 등은 70여명의 의원들과 함께 신한민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 창당을 추진했다.

1987년 4월20∼24일 통일민주당의 20여개 지구당에 폭력배들이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당원들을 폭행하는 등 난동을 부렸으며, 이로 인해서 창당대회는 인근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약식으로 치러졌다. 통일민주당측은 처음부터 이것은 정부가 개입한 비열한 정치공작이라 규탄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였으나,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1988년 9월이 되어서야 김용남(일명 용팔이)와 이선준 당시 신민당 청년부장이 검거됐다. 검찰은 신민당의 이택희, 이택돈 의원이 청부폭력을 지시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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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