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겨울별미 특집 ③거제-외포 대구탕

알 꽉 찬 대구 “겨울철 귀족 납시오”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속담을 아는 미식가들은 겨울이면 거제 외포리로 모여든다. 찬바람이 부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대구 산란기고, 이때 잡히는 대구가 가장 맛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외포리는 대구 산란기에도 조업과 위판이 허용되는 유일한 곳이다.

큰 입, 부리부리한 눈, 얼룩덜룩한 무늬
입 호사시키고, 풍경으로 눈 행복하게

경남 거제 동부 해안가에 위치한 외포리는 전국 대구 물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집산지다. 부산 가덕도와 거제도로 둘러싸인 진해만이 대표적인 대구어장이다. 진해만에서 부화한 새끼대구가 찬 바닷물을 따라 멀리 베링해까지 나갔다가, 성어가 되어 산란하러 돌아오기에 겨울철 거제도는 대구가 풍년이다.
한때 지나친 어획으로 대구가 잡히지 않은 적도 있었다. 대구 한 마리 값이 쌀 한 가마니를 호가하기도 했다. 멸종 위기에 몰린 대구를 살리기 위해 인공수정으로 방류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대구가 거제 앞바다로 돌아왔다.
요즘 대구잡이 배는 매일 새벽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간다. 어장에 설치한 그물을 걷어 올리기 위해서다. 대구잡이에는 통발 모양 호망을 사용한다. 호망은 길그물과 포위망, 그리고 끝에 원추형 통그물이 붙어 있다. 야행성인 대구를 잡기 위해서는 하룻밤 이상 바다에 그물을 설치해 두어야 한다. 대구가 밤에 활동을 하다 그물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물에 꿰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처럼 생긴 망에 가둬지므로 60~70cm 대구가 산 채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산란기여서 암컷은 배가 터질 듯 알을 품고 있다.

새벽 조업이 끝난 대구잡이 배는 외포에 모여 대구를 내려놓는다. 크고 위협적인 입, 부리부리한 눈, 얼룩덜룩한 무늬가 위풍당당해보이는 대구는 오전 10시부터 외포 어판장에서 경매에 부쳐진다. 경매사는 랩을 하듯 빠르게 말하고, 중개인들은 연신 수신호를 한다. 매일 낙찰가에 따라 값이 달라지지만, 겨울철 대구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대구잡이 배가 모이고 경매가 열리다 보니, 외포에는 살아 있는 대구로 요리하는 음식점이 많다. 먹자골목이나 대구탕거리라는 이름이 다소 어색하지만, 포구를 따라 식당 10여 곳이 늘어섰다. 메뉴는 대구탕, 대구찜, 대구회가 대표적이다.
추운 겨울에는 신선한 대구로 끓인 탕이 으뜸이다. 맑게 끓인 대구탕은 뽀얀 국물이 구수하면서도 진한 맛을 낸다. 진하고 약간 기름진데, 느끼하지 않고 개운하다. 아침 해장국으로 이만한 음식이 없다.

약간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개운

거제에서는 대구 대가리로 낸 국물에 대구, 모자반, 무를 넣고 끓이다가 다진 마늘과 생강, 파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간은 소금으로 한다. 대구 대가리를 삶는 것은 구수한 맛을 더하기 위함이다. 대구를 끓는 물에 데치면 비린내가 적고, 살도 풀어지지 않는다.


대구찜은 조금 특별하다. 고춧가루로 매콤하게 맛을 내는 것은 다른 지역의 조리법과 같지만, 거제에서는 생대구 살이 부서지지 않게 김치에 싸서 찐다. 하얀 대구 살의 담백함과 김치의 신맛이 어우러져 맛있다.
생대구회는 산지이기에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겨울철에 대구가 잡히는 지역에서나 접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이지만, 생대구회의 식감은 질기면서 물컹하다. 대구 살에 수분이 많고 기름기가 거의 없어서 맛도 밍밍하다. 그래서 어민들은 생대구회보다 살짝 말린 대구회가 맛있다고 한다. 아가미와 내장을 정리하고 통째로 바닷가에서 3~5일 말리면 수분이 증발되어 더욱 차지고 감칠맛이 난다.

아침 해장국으로 일품, 뽀얀 대구탕
담백함·신맛 어우러진 특별한 대구찜

대구가 여행객의 입을 호사시켰다면, 거제도의 아름다운 풍경은 눈을 행복하게 만든다. 장승포에서 배로 20분이면 도착하는 지심도는 이맘때 동백이 한창이다. 짙푸른 잎사귀와 붉은 꽃잎, 샛노란 수술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정열적이고 강렬한 동백이 산책로에 뚝뚝 몸을 떨군다. 해안절벽과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만든 포진지, 탄약고 등도 볼거리다.
바람과 함께 추억을 만들기에는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이 제격이다. 해금강 가는 갈곶리 도로 왼편에 바람의 언덕, 오른편에 신선대가 자리한다. 바람의 언덕은 바다와 풍차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경치가 매력이다. 신선대는 신선이 내려와 풍류를 즐길 만한 넓은 바위다. 바다를 향해 서서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처럼 두 팔 벌려 포즈를 잡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돌고래 천국 거제씨월드

색다른 볼거리를 찾는다면 거제씨월드가 제격이다. 큰돌고래 16마리, 흰돌고래 4마리가 쇼를 펼치는 국내 최대의 돌고래 체험 파크다. 점프하고 춤추는 돌고래 쇼가 평일 2회, 주말 3회에 걸쳐 20분간 펼쳐진다. 물속을 걸으며 돌고래와 교감하는 시 트렉도 경험할 수 있다. 돌고래를 직접 만질 기회도 있다.

거제도의 황홀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는 거가대교가 제격이다. 어스름한 새벽 장목면과 부산 가덕도를 연결한 사장교(4.5km)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은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기술력이 더해진 합작품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거가대교에 오색등이 켜지면서 다리의 불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밤을 밝힌다. 다리 위를 지나는 자동차의 불빛이 노란 줄처럼 이어지며 멋을 더한다. 거가대교는 사장교와 수심 48m의 침매터널(3.7km)로 구성되며 거제도와 부산의 거리를 40분대로 줄였다.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도 일출을 보기 좋은 장소다. 사자바위가 위용을 드러내는 바다의 수평선 위로 붉은 얼굴을 드러내는 태양이 장관을 이룬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지심도→장승포항→거제씨월드→외포 대구탕거리→거가대교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바람의 언덕→신선대→거제씨월드→거가대교
둘째 날 : 지심도→장승포항→외포 대구탕거리

관련 웹사이트 주소
· 거제문화관광 http://tour.geoje.go.kr
· 지심도 www.jisimdoro.com
· 거제씨월드 www.geojeseaworld.com

문의 전화
· 지심도 055-681-6007
· 거제씨월드 055-682-0330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거제(고현)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28회(06:40~24:00) 운행, 약 4시간20분 소요.
* 문의 : 서울남부터미널 02-521-8550
           전국시외버스통합예약안내서비스 www.busterminal.or.kr
           고현시외버스터미널 1688-5003

자가운전 정보
대전통영고속도로→통영 IC→남해안대로 거제 방향→신거제대교→거제대로→고현→거제대로→외포교차로→외포 대구탕거리

숙박 정보
· 라이트하우스호텔 : 거제시 장승포로, 055-681-6363, www.geojelighthouse.com (굿스테이)
· 베니키아호텔거제 : 거제시 성산로, 055-991-1000, www.benikeahotel.kr (베니키아)
· 애드미럴호텔 : 거제시 서간도길, 055-687-3761
· 하늘테라스펜션 : 장목면 옥포대첩로, 055-638-3578
· 모네의 정원 : 장목면 유호4길, 055)635-1164, 010-3765-8300, www.mone-garden.com

식당 정보
· 외포효진횟집 : 대구탕, 장목면 외포5길, 055-635-6340, www.055-635-6340.mbiz114.com
· 양지바위횟집 : 대구탕, 장목면 외포5길, 055-635-4327
· 외포등대횟집 : 꽃게장, 장목면 외포5길, 055-636-6426
· 항만식당 : 해물뚝배기, 거제시 장승포로7길, 055-682-4369

주변 볼거리
거제맹종죽테마공원, 외도보타니아, 해금강,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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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