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무려 40조원에 달했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8화는 31억3500만원을 체납한 정봉규 은성교회 목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은성교회는 2008년 8월부터 등록세 등 2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31억3500만원이다. 그러나 은성교회는 6년 넘게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은성교회의 법인 대표자는 정봉규 목사다. 정 목사는 지난달 28일까지 신도를 모아 놓고 '꿈꾸는 교회'란 주제로 설교했다.
헌금은 받는데
1970년대 후반 교회를 개척한 정 목사는 2년6개월 만에 신도들의 헌금을 모아 12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을 지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매주 목요일 이른바 '찬양집회'를 열어 교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1990년대 후반 등록 교인 수는 1만여명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목사의 선교는 북한으로까지 이어졌다. 미국 영주권을 소유한 정 목사는 1996년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정 목사가 2011년 은성교회 홈페이지에 쓴 글을 보면 은성교회는 태국 치앙라이에 선교방송국을 개국했고,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는 선교센터를 오픈했다. 또 라오스에는 자체 선교체육관 건립을 위한 선교사를 파견했다.
교회의 이 엄청난 돈은 어디서 난 것일까. 신도들의 헌금에서 나온 것이다. 정 목사는 최근 설교에서도 헌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목사는 "헌금은 많이 낼수록 좋은 것"이라며 "목사가 만든 말이 아니다. 성경에 쓰여 있다"고 말했다.
은성교회가 수년째 상습체납법인 명단에 오른 것은 대형 예배당 공사 때문이다. 은성교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성전을 건축하라"는 메시지가 3초마다 한 번꼴로 나온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우장산역 인근에는 지하 3층, 지상 8층 규모의 콘크리트 골조가 방치돼 있다. 대지면적 4966.90m²(약 1500평), 연면적 2만2894.27m²(약 6900평)의 이 공사는 7년째 중단돼 있다.
당시 은성교회는 교회 1년치 예산(20억원)의 30배에 가까운 580억원을 들여 예배당을 짓기 시작했다. 부족한 돈은 신도들의 자택을 담보로 대출받아 그때그때 메웠다. 기독교 전문매체인 <뉴스앤조이>에 따르면 은성교회는 신도들로부터 빌린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를 대납해주고 있다. 41명의 교인이 80억원을 교회에 빌려줬다.
이 무렵 은성교회는 건축헌금 120여억원을 추가 조달했다. 2006년부터 예배당이 들어설 부지를 담보로 900억원가량 대출했다.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1013-3, 1013-8 주소지 등기부등본을 보면 농협, 축협, 프라임저축은행, 미래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땅을 담보로 26억∼115억원을 수차례에 걸쳐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은 예배당 맞은편에 있는 1005-21 부지 및 빌딩(다인빌딩)과 관련해서도 대출을 위한 공동담보로 내놓는 등 재무 상황을 악화시켰다. 당시 화곡동에 있는 고급 아파트가 공동담보로 제공됐는데 이는 교회 신도의 사유재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3년 예배당 부지는 경남에 있는 S기업으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S기업은 204억원을 들여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 은성교회가 300억원을 주고 사들인 다인빌딩도 재건축조합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일각에서는 과거 다인빌딩을 소유했던 한 건설사 사장과 은성교회와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확인되진 않고 있다.
서울 대형교회 31억3500만원 체납
호화예배당 공사과정서 950억 증발
본격적인 시공에 앞서 수백억원의 빚을 떠안은 은성교회는 이해할 수 없는 투자를 강행했다. 2008년 해외 선교를 명목으로 캄보디아 땅 450만평을 매입한 것이다. 당시 캄보디아 부동산 매입에는 63억원가량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은 제때 내지 않으면서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셈이다.
문제의 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매입됐고 매각됐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교회 명의 재산이나 정 목사의 재산으로 확인되면 징세할 수 있다"고 했다. 정 목사는 체납 3년차인 2011년 7월에도 청소년수련원을 만든다며 경기 김포시에 있는 땅과 건물을 매입했다. 해당 거래에는 약 3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2007년 퇴임 예정이었던 정 목사는 2009년 10월 원로목사로 추대된 뒤 최근까지 교회 운영에 개입했다. 설교는 물론 교회 사무도 정 목사가 도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교회 재무는 김모 장로가 정 목사의 재가를 받아 처리한다고 했다. 은성교회는 2009년 12월 정 목사에게 퇴직금 명목으로 30억원을 지급하기로 결의했다.
기자는 은성교회의 입장을 듣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교회를 찾았지만 김 장로를 만날 수 없었다. 연락처를 남겼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공사가 중단된 건물 안쪽에는 은성교회 사무실이 있었다. 하지만 교회 직원은 "출입할 수 없다"고 말렸다. 은성교회는 자체 직원도 고용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 직원은 "몇 달째 월급이 밀린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은성교회 교인수는 2013년 기준 200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짓다 만 건물 어딘가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예배를 드리고 있다. 헌금도 하고 있다. 교회가 진 전체 은행권 빚은 9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 한 관계자는 "정 목사가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이라고 귀띔했다.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수술을 미뤄 왔는데 최근에야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수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 목사는 보름 전까지만 해도 교인들 앞에서 설교했다. 큰 목소리로 "아멘"을 외쳤다. 2005년부터 거의 빠짐없이 1주일에 한 번은 예배를 집도했다. 설교 도중 간간이 헌금을 내라고 독촉했다.
다인빌딩이 있던 곳에선 은성교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상가의 절반 이상이 비어있었다. 법정 분쟁의 후유증으로 추정된다. 앞서 정 목사는 화곡3지구가 재개발되면 교인은 물론 건물 임대수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수백억 빚더미
세무당국 관계자는 "은성교회가 세금을 걷기 쉽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교회의 수입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은성교회는 예배당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등록세 등을 체납했지만 헌금을 빼앗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근혜정부는 당초 예정된 목사·신부·승려 등 종교인에 대한 세금 부과를 2016년까지 유예했다. 새누리당이 유예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2016년에는 총선 등 선거가 계획돼 있고, 다음해는 대선이 있는 해라 이번 정부에서 종교인 과세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