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⑱ 사무라이의 특권

평민계급 죽여도 책임 묻지 않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영지 안에서는 영주가 그 위치를 확고히 하면서 주종 관계가 강화되었고, 밖으로는 이웃한 영주들로부터 침략을 받고, 침략도 하면서 영주와 가신 사이에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영지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영주와 가신은 한배를 탄 처지가 된 것이다.

자신의 주군이 다른 영주로부터 침략을 받아 멸망하면, 가신인 자신도 죽거나 아니면 낭인으로 전락하고, 식구들 또한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손마저 대대로 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주군이 이웃 영주 공략에 성공하면, 할당받는 자신의 영지는 커지고, 부하 군사도 늘어나고, 하인도 더 많아지면서 생활은 윤택하여진다. 그래서 할당받는 영지가 점점 더 늘어나면 언젠가 작은 영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책과 녹봉은 대물림되어 자손 대대로 영화를 누리게 된다.

영지의 중요성

사무라이에게 있어 영지는 그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는 밥줄이자, 신분을 나타내는 벼슬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갖고 있는 영지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고, 남의 영지는 악착같이 더 빼앗아야 했다. 여기에 사무라이들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주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손들의 영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해야 했다. 주군의 멸망이 곧 자신의 멸망이고, 주군의 번창이 바로 자신의 번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지를 잃어버려도 농부나 상공인으로서 살아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목숨만이라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그러나 이 또한 현실에 있어서는 대단히 어려웠던 것 같다. 사무라이에게 있어 영지를 잃는다는 것은, 그것이 침략을 받아 빼앗기든 아니면 영주에게 잘못 보여 몰수당하든, 이것은 단순히 밥줄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배 계급에서 천민 계급으로 신분이 떨어진다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도 자신만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비참한 처지로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뚜렷한 신분 제도를 유지했다.

바로 ‘사농공상’이라는 신분 제도였다. 무사, 즉 사무라이가 지배 계급이자 귀족 계급이었고, 그 다음이 농부이고,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장사꾼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여겼다. 엄밀히 얘기하면 ‘사농공상’ 외에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히닌(非人)이라는 계급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시체를 처리하거나 사형장에서 형을 집행하는 일을 했다. 조선시대의 백정과 같은 신분이었다.

사무라이에게는 농부나 상공인들이 갖지 못하는 3가지의 특권이 주어졌다. 첫째는 칼을 지닐 수 있었고, 둘째는 성(姓)을 가질 수 있었으며, 셋째는 농부나 상공인들을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것을 다이토(帶刀 : 무사가 도검을 차는 것), 묘지(苗字 : 성씨(姓氏) 등 가문의 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기리스테 고멘(斬捨御免 : 서민을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이 세 가지는 무사의 대표적인 특권이었다.

영지는 곧 사무라이의 목숨
영주가 명령하면 할복까지 


성(姓)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가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고, 농부나 상공인들을 즉결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은 농부나 상공인이 불순하다고 여겨지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의 제재나 허가 없이 즉석에서 칼을 뽑아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민의 처지에서 보면, 사무라이를 대할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떨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칼 맞아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 같은 인생으로 평생을 비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평민들이 얼마나 파리 같은 목숨으로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무사도>라는 책에 있다.

한 상인이 사무라이에게 벼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공손히 “벼룩을 잡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 상인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벼룩이란 동물에게나 붙어사는 미물인데, 자신에게 그런 미물이 있다고 함으로써 자신을 동물 취급했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농민이든 상공인이든 모든 평민들은 이 같이 참담하고 비굴한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이 신분은 대물림되는 것이었다. 무사의 자손은 무사로서 살아가고, 상공인의 자손은 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성(姓)도 없고, 가문도 없이 그마저도 파리 같은 목숨으로 삶을 구걸하며 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평정하고도 무사로서 최고 직책인 ‘쇼군’이 되지 못하고, ‘간파쿠(關白)’라고 하는 행정대신이 되어 일본을 통치했던 이유도 바로 그가 무사 집안의 자손이 아니라 상인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당시는 엄격한 신분 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사무라이가 농부나 상공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마 조선시대에 양반이 천민으로 떨어져 살아가는 처지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신분의 하락이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굶어 죽을지언정 ‘어흠’거리며 양반으로 지내려고 했던 것처럼, 주군과 영지를 잃은 사무라이들도, 농부나 상공인으로 살아가려고 하기보다는 낭인으로 지내면서 이 전쟁터, 저 전쟁터를 기웃거리며 재기를 노렸던 것이다.

주군은 사무라이들에게 있어서 절대자였다. 주군의 신임을 통해서만 입지도 굳힐 수 있었으며, 주군의 번창을 통해서만 보다 큰 영지도 하사받을 수 있고, 부리는 하인과 군사의 수도 늘어나서 생활의 윤택 뿐 아니라, 영주로서 출세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전쟁꾼 사무라이

영주가 싫다고, 주군이 싫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없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가문을 중심으로 무사 세력들이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새로운 주군을 만난다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사회였다. 특히 전국시대에는 중앙 세력인 막부가 없어지면서 각 영지가 하나의 독립된 작은 국가처럼 된 마당에 새로운 곳을 찾아 옮겨간다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영주마다 군사력 강화를 위하여 이미 분에 넘치는 사무라이들을 고용함으로써, 여유 세수입도, 나누어 줄 영지도 없는 처지에서 자체 가신도 아닌 타 영지에서 온 사무라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법도 없고, 규범도 없다. 영주가 절대자가 된 마당에, 영주가 곧 법이자 규범이 된 것이다. 영주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했다. 죽는 시늉만 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시늉만 했다가는 결국 본인도 죽고, 직책과 영지도 몰수당하고, 그 가족까지 하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죽으라고 할 때 실제로 할복이라도 해서 충성심이라도 있는 척하며 죽어야 할당받은 농지도 유지할 수 있고, 그 아들은 무사로서 계속 일할 수 있으며, 그 부인과 딸은 하녀나 ‘게이샤’로 전락되는 신세라도 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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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