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⑱ 사무라이의 특권

평민계급 죽여도 책임 묻지 않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영지 안에서는 영주가 그 위치를 확고히 하면서 주종 관계가 강화되었고, 밖으로는 이웃한 영주들로부터 침략을 받고, 침략도 하면서 영주와 가신 사이에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영지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영주와 가신은 한배를 탄 처지가 된 것이다.

자신의 주군이 다른 영주로부터 침략을 받아 멸망하면, 가신인 자신도 죽거나 아니면 낭인으로 전락하고, 식구들 또한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손마저 대대로 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주군이 이웃 영주 공략에 성공하면, 할당받는 자신의 영지는 커지고, 부하 군사도 늘어나고, 하인도 더 많아지면서 생활은 윤택하여진다. 그래서 할당받는 영지가 점점 더 늘어나면 언젠가 작은 영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책과 녹봉은 대물림되어 자손 대대로 영화를 누리게 된다.

영지의 중요성

사무라이에게 있어 영지는 그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는 밥줄이자, 신분을 나타내는 벼슬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갖고 있는 영지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고, 남의 영지는 악착같이 더 빼앗아야 했다. 여기에 사무라이들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주군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손들의 영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해야 했다. 주군의 멸망이 곧 자신의 멸망이고, 주군의 번창이 바로 자신의 번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지를 잃어버려도 농부나 상공인으로서 살아갈 수는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목숨만이라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그러나 이 또한 현실에 있어서는 대단히 어려웠던 것 같다. 사무라이에게 있어 영지를 잃는다는 것은, 그것이 침략을 받아 빼앗기든 아니면 영주에게 잘못 보여 몰수당하든, 이것은 단순히 밥줄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배 계급에서 천민 계급으로 신분이 떨어진다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도 자신만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비참한 처지로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뚜렷한 신분 제도를 유지했다.

바로 ‘사농공상’이라는 신분 제도였다. 무사, 즉 사무라이가 지배 계급이자 귀족 계급이었고, 그 다음이 농부이고,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장사꾼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여겼다. 엄밀히 얘기하면 ‘사농공상’ 외에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히닌(非人)이라는 계급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시체를 처리하거나 사형장에서 형을 집행하는 일을 했다. 조선시대의 백정과 같은 신분이었다.

사무라이에게는 농부나 상공인들이 갖지 못하는 3가지의 특권이 주어졌다. 첫째는 칼을 지닐 수 있었고, 둘째는 성(姓)을 가질 수 있었으며, 셋째는 농부나 상공인들을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것을 다이토(帶刀 : 무사가 도검을 차는 것), 묘지(苗字 : 성씨(姓氏) 등 가문의 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기리스테 고멘(斬捨御免 : 서민을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것)이라고 하며, 이 세 가지는 무사의 대표적인 특권이었다.

영지는 곧 사무라이의 목숨
영주가 명령하면 할복까지 


성(姓)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가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고, 농부나 상공인들을 즉결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은 농부나 상공인이 불순하다고 여겨지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의 제재나 허가 없이 즉석에서 칼을 뽑아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민의 처지에서 보면, 사무라이를 대할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떨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었다. 언제 어떻게 칼 맞아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 같은 인생으로 평생을 비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평민들이 얼마나 파리 같은 목숨으로 살았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무사도>라는 책에 있다.

한 상인이 사무라이에게 벼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공손히 “벼룩을 잡아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 상인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벼룩이란 동물에게나 붙어사는 미물인데, 자신에게 그런 미물이 있다고 함으로써 자신을 동물 취급했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는 농민이든 상공인이든 모든 평민들은 이 같이 참담하고 비굴한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이 신분은 대물림되는 것이었다. 무사의 자손은 무사로서 살아가고, 상공인의 자손은 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성(姓)도 없고, 가문도 없이 그마저도 파리 같은 목숨으로 삶을 구걸하며 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평정하고도 무사로서 최고 직책인 ‘쇼군’이 되지 못하고, ‘간파쿠(關白)’라고 하는 행정대신이 되어 일본을 통치했던 이유도 바로 그가 무사 집안의 자손이 아니라 상인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당시는 엄격한 신분 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사무라이가 농부나 상공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마 조선시대에 양반이 천민으로 떨어져 살아가는 처지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신분의 하락이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굶어 죽을지언정 ‘어흠’거리며 양반으로 지내려고 했던 것처럼, 주군과 영지를 잃은 사무라이들도, 농부나 상공인으로 살아가려고 하기보다는 낭인으로 지내면서 이 전쟁터, 저 전쟁터를 기웃거리며 재기를 노렸던 것이다.

주군은 사무라이들에게 있어서 절대자였다. 주군의 신임을 통해서만 입지도 굳힐 수 있었으며, 주군의 번창을 통해서만 보다 큰 영지도 하사받을 수 있고, 부리는 하인과 군사의 수도 늘어나서 생활의 윤택 뿐 아니라, 영주로서 출세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전쟁꾼 사무라이

영주가 싫다고, 주군이 싫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도 없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가문을 중심으로 무사 세력들이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새로운 주군을 만난다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사회였다. 특히 전국시대에는 중앙 세력인 막부가 없어지면서 각 영지가 하나의 독립된 작은 국가처럼 된 마당에 새로운 곳을 찾아 옮겨간다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영주마다 군사력 강화를 위하여 이미 분에 넘치는 사무라이들을 고용함으로써, 여유 세수입도, 나누어 줄 영지도 없는 처지에서 자체 가신도 아닌 타 영지에서 온 사무라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법도 없고, 규범도 없다. 영주가 절대자가 된 마당에, 영주가 곧 법이자 규범이 된 것이다. 영주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했다. 죽는 시늉만 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시늉만 했다가는 결국 본인도 죽고, 직책과 영지도 몰수당하고, 그 가족까지 하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죽으라고 할 때 실제로 할복이라도 해서 충성심이라도 있는 척하며 죽어야 할당받은 농지도 유지할 수 있고, 그 아들은 무사로서 계속 일할 수 있으며, 그 부인과 딸은 하녀나 ‘게이샤’로 전락되는 신세라도 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