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⑫일본군의 양면성

잔인하던 일본군, 투항 후엔 '스스로 길거리 청소'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그렇다! 설득하는 일본군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실과 진심을 담아 설득했기에 바로 오키나와 주민들이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자결을 했던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진실과 진실이 통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 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자결이 설명되지 않는다.

엽기적 자살

오늘날 기록에 남아 있는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의 행동을 봐도 그들이 일본군에 설득되어 미군을 야수 같은 인간으로 철석같이 믿었다는 심증을 뒷받침해 준다. 애기를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은 어머니들의 행동이 그렇고, 손녀딸을 데리고 피신하다가 미군을 만나자 손녀를 보호하겠다고 죽창으로 미군들에게 무모하게 대들다 죽은 할아버지의 행동이 그렇다.

또 딸을 데리고 동굴로 피신한 어머니가 칼로 딸의 목을 쳐 죽이고 자결한 행동 등, 여러 극단적인 행동 등을 보면 당시의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군들에 확실히 설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믿을 만한 증거로 일본 교과서를 들 수 있다. 일본 문부성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 “오키나와 주민의 집단 자결에 일본군의 강제성은 없었다”라고 고쳤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자결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이…….

따라서 수천수만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일본군의 설득을 받아들여, 미군이 상륙하기도 전에 스스로 죽었다는 것은 바로 설득한 일본군 자신들도 “미군에 포로로 잡히면 처절하게 죽는다”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믿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오키나와에서 일본군들은 일본 정부의 선전처럼 ‘명예로운 죽음’을 택해 옥쇄한 것이 아니라, 1)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군들은 “미군은 사람의 인육을 먹는다”는 지도부의 거짓 책동에 세뇌되어 있었던 것 같고, 2) 미군의 엄청난 화력 앞에, 그리고 수천수만의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일본군은 이미 삶을 포기하고 죽음의 공포에 질려 있었으며, 3) 이왕 죽을 거 미군에 잡혀 처참하게 죽기 싫어, 4) 마음 약한 사람들부터 하나 둘씩 자살하자 군중심리를 이기지 못하고 단체로 자살한 것이라고 믿어진다.

앞서 미군에 점령당한 섬에서 있었던 옥쇄 소식과 ‘전진훈’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이미 삶을 포기한 정신적 공황 상태와 거기에 더해진 군지도부의 거짓 세뇌인 것으로 믿어진다.

일본은 막강한 화력을 지닌 미군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습 작전 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한밤중에 여러 방향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기습을 하면 미군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기습 작전은 일본군이 청·일전쟁 이래 구사하던 ‘전가의 보도’와 같은 전술이었다. 하와이의 진주만 공격도 이 같은 기습 작전의 일환이었다.

미군은 이미 많은 일본과의 전투를 통하여 이런 전술을 파악하고 오히려 한밤 중에 자는 척하면서 일본군이 기습 공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듯 이미 드러난 작전을 구사하는 일본군의 전술은 마치 쳐 놓은 그물 속으로 헤엄쳐 드는 물고기와 같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일본군은 기습 작전을 펼 때마다 오히려 역습을 당하면서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자초했다. 그렇다고 열등한 화력으로 전면전을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미군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습 작전밖에 없다며, 이미 드러난 작전을 계속 반복하며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석 달 조금 안 되게 계속된 전투에서 연전연패를 하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었고, 또 수천수만의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완전히 삶을 포기하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공황 상태에서 일본 정부의 거짓 교육은 솜 속으로 빨려드는 물기같이 젖어들었던 것이다.

연전연패 속에서도 묻지마 돌진
오키나와 자결과 필리핀 투항


세 번째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싸운 일본군들에게서는 옥쇄가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싸운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군과 싸웠던 일본군과 달리, 전쟁에서 패했어도 자살이나 단체로 자결을 하지 않고 순순히 항복하고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떠한 문건에서도 “중국 및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전투했던 일본군들이 포로로 잡히는 치욕이 싫어 단체로 옥쇄했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뒤에 얘기할 ‘30년을 나 홀로 투쟁한 일본군’의 내용을 미리 잠깐 살펴보면,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30년 동안 필리핀 정글에 숨어 살던 ‘오노다 히로’와 그 일행은, 자기 부대가 패하자 처음에는 4명이 산속 밀림으로 피신을 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 중 1명이 나머지 3명의 반대를 무릅쓰고 투항한다. 이 투항한 1명이 만일 당시 필리핀에 있던 미군과 필리핀의 연합군들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다고 생각했었다면 결코 나머지 3명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림을 나와 투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노다 히로’의 직속상관이었던 ‘타니구치’ 소령 역시 ‘오노다 히로’를 찾을 당시 도쿄에서 책 판매상을 하고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역시 순순히 투항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귀환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필리핀 전선을 지휘하던 사령관은 육군중장 ‘무토 아키라(武藤 章)’였다. 이 ‘무토 아키라’ 역시 항복을 하고 포로로 잡혀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이송되어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이상의 예로 보아 필리핀 전선에 있던 오노다 히로가 속했던 부대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속했던 부대가 연합군에 패한 후에도 옥쇄를 하지 않고, 투항하여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를 지낸 이광요 총리의 자서전(원제<The Singapore Story>)을 보면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있을 땐 그렇게 난폭하고 잔인하던 일본군들이 일단 전세가 기울어 패색이 짙어지자 뜻밖에 쉽게 투항했고, 또 포로가 된 후로는 고분고분하였고, 수용소 생활도 질서 있게 하면서 스스로 나서서 길거리 청소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전쟁을 하던 부대는 제 7방면 군으로 사령관은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 征四郎)’였다.


30년 숨어살아

영국군을 상대했던 이 부대는 전세가 기울자 순순히 항복했으며, ‘이타가키 세이시로’를 비롯한 군 수뇌부 전원이 영국군에 붙잡혀 현지 감옥에 갇혔다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넘겨져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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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