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나타난 김우중 노림수

칼 갈던 킴기즈칸 “반격 시작됐다”

[일요시사 경제1팀] 김성수 기자 = '킴기즈칸'(김우중+칭기즈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입을 열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제기하면서 특정 세력이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80세가 다 된 노구는 억울하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그는 왜 이제 와서, 하필이면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일까. 그 노림수가 될 만한 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우특별포럼이 열렸다. 예정대로 참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단상에 섰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김 전 회장의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후속 격인 김 전 회장의 대화록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다른 의도 없다"]
[ 명예회복 차원? ]

김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당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우그룹 해체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제기하면서 특정 세력이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적어도 잘못된 사실은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과연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 명확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간의 관심은 김 전 회장의 의도에 쏠리고 있다. 1999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되고 15년 만에 입을 연 진짜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특정 인사들의 반발이 심할 게 불 보듯 뻔한데도 세상에 나와 폭로한 속사정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입을 여는 동기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의문을 더한다. 그는 왜 이제 와서, 하필이면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일까.

김 전 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우실업은 30여년 만인 1998년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7000억원에 달하는 재계 2위의 대우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9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대우맨들은 단순히 명예회복 차원에서 김 전 회장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측근은 "책을 낸 것도 단지 김 전 회장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라며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전했다.


1999년 대우 해체 둘러싼 의혹 제기
"억울하다…특정 세력이 기획" 주장

김 전 회장의 말에도 명예회복 의지가 묻어난다. 그는 "과거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 일을 정당히 평가받아야 한다.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을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우가족 모두에게 15년 전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억울함과 분노도 없지 않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여서 감내하려고 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나 적어도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또 "평생 동안 앞만 보고 성실하게 달려왔다. 그것이 국가와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거기에 반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명예회복과 함께 'DJ 사람들'에 대한 반격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중에서도 타깃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대우그룹 해체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이 전 부총리는 대우그룹 해체를 사실상 주도해 김 전 회장과는 악연으로 얽혀 있다. 이번에 출간한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엔 이 전 부총리를 직접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회장은 회고록을 통해 이 전 부총리가 2012년 펴낸 회고록 <위기를 쏘다>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총리는 자신의 책에서 "대우그룹을 해체시킨 건 재벌개혁의 신호탄이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비정상적으로 몸집을 불려온 대우그룹을 한국경제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위험요소로 판단했다"며 "그래서 대우그룹 워크아웃을 추진했고, 결국 해체수순을 밟게 됐다"고 기술했다.

["이헌재 잘못했다"]
[ DJ 사람들에 복수? ]

이에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기획 해체'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DJ 정권 때 정부논리와 반대되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경제관료들과 충돌했고, 이게 유동성 악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며 "경제관료들이 자금줄을 묶어놓고 대우에 부정적인 시장 분위기를 만들면서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고 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해 사사건건 날선 대립각을 세운 김 전 회장과 이 전 부총리는 사실 악연보다 인연이 먼저였다. 이 전 부총리는 김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 또 대우에서 4년을 보낸 '대우맨'이기도 하다. 행정고시 수석 합격 후 재무부 관료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 전 부총리는 관료 생활을 그만두고 야인생활을 할 때 김 전 회장의 도움으로 ㈜대우 상무, 대우반도체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이 인연은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악연으로 변했고, 이번 김 전 회장의 등장으로 다시 주목받게 됐다.


[추징금 안내려…]
[단순히 돈 때문?
]

단순히 돈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안내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선고받은 18조원에 가까운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우그룹 전직 임원들의 추징금까지 합치면 23조원이 넘는다.

김 전 회장은 2005년 41조원대의 분식회계와 22조9000억원대의 업무상 배임, 44억달러 규모의 재산 해외 도피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어진 항소심에선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이 형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07년 12월 특별 사면됐지만,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 있다.
 

김 전 회장은 책 출간과 맞물려 자신의 추징금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식회계, 배임 등의 혐의에 따른 징역형 및 추징금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이미 유력 변호사를 통해 헌법소원을 위한 법률적 검토를 마쳤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15년 만에 입을 연 까닭이 추징금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제와 입 연 진짜 이유는?
세상에 폭로한 속사정 주목

김 전 회장 측은 그동안 추징금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한 게 아니라 회사일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니 정치인들의 추징금과 성격이 다르다고 항변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김우중 추징법'도 거론된다. 이를 대비하기 위한 선제 행보로 보인다는 의심이다. '김우중 추징법'에 불을 지핀 것은 '전두환 추징법'이다.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전두환 추징법'은 공무원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를 늘리고 추징 대상을 제3자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골자.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만세'를 부르는 계기가 됐다. 추징시효가 연장됐고, 가족들을 상대로 추징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법은 '공무원'으로 대상자를 정하고 있다.

[가족 재산을 지켜라]
['김우중법' 대비책?]

이에 따라 그 범위를 일반인으로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불똥은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김 전 회장에 튀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8월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인까지 압수수색과 금융거래 추적 등의 추징금 집행이 가능한 '김우중 추징법'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전 전 대통령 일가처럼 제3자 명의로 은닉해 놓은 재산에 대해서도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추징 집행이 가능해진다.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은 전 전 대통령의 100배, 국내 총 미납 추징금 중 84%에 달한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을 지속적으로 집행해왔지만,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은 887억8376만원으로 0.5%에 불과하다.

김 전 회장은 무직인 상태다. 돈 나올 구멍이 없다. 공식적으로 '빈털터리'인 김 전 회장과 달리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부인 정희자씨는 아트선재센터 관장을 맡아 여전히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과시하고 있다. 아들 선엽씨는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CC 대주주다. 딸 선정씨는 시세로 200억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 재기설 '솔솔' ]
[재계 복귀 교두보?]

재계에선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우그룹의 기획 해체설을 공개적으로 꺼낸 것은 재기를 노린 포석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면된 후 두문불출하던 김 전 회장의 대외활동 소식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이번 복귀설은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김 전 회장은 요즘 들어 자주 해외 방문길에 오르는가 하면 여러 행사에 참석하는 등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대부분 베트남에서 지내고 있다. 2009년 한 건설사가 베트남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이 베트남에서 본격적인 재기의 발판을 다지는 것 아니겠냐는 해석도 나왔다.

정작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은 재기설을 부인하고 있다. 한 측근은 "김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베트남에 머물고 있을 뿐 확대 해석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추징금, 나이, 건강 등으로 인해 사실상 재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분석도 있다. 김 전 회장의 사업 재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대우그룹의 부도로 6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정부와 국민들이 떠안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김 전 회장의 등장을 두고 음모론이 돌고 있다. 왜 하필 지금이냐가 논란거리다. 김 전 회장이 정치적 의도를 품고 대중 앞에 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김 전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역대 모든 대통령들과 관계가 좋았던 유일한 기업가로 꼽힌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은 책에서 유독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 전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부각했다.


책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의 아버지는 박 전 대통령의 고등학교 은사였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1년에 수차례 청와대로 불러 비서관 없이 단독으로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곤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나를 김 사장이나 김 회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우중아'라고 불렀다. 나도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김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동생 박씨에게 옛 삼양산업 인수를 위한 자본금 9억원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심상찮은 음모론]
[ 왜 하필 지금? ]

대우그룹은 박 전 대통령의 임기 중인 60∼70년대를 거점으로 전자와 중공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의계약 등의 이유로 특혜 의혹이 자주 불거졌었다. 책에선 대우그룹을 금융 중심의 기업집단으로 키우려다 박 전 대통령의 부탁으로 중화학산업으로 선회한 비화도 공개됐다. 김 전 회장은 "당시 폐허상태에 놓였던 옥포조선소를 인수,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김우중 그 사람밖에 없어'란 말을 듣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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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