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정은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 <루루공주> <연인>, 영화 <가문의 영광> 등의 작품에서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편안함과 코믹함까지 더하며 김정은만의 매력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런 김정은이 영화 <식객:김치전쟁>에서 냉철한 천재 셰프 장은 역을 맡아 생애 첫 독한 변신을 꾀했다.
세계적인 셰프 장은 역…생애 첫 독한 변신
몸 고생보다 신경전 등 내면 연기가 어려워
지난 2007년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성공을 거둔 <식객>의 속편인 <식객:김치전쟁>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점 춘향각을 배경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셰프 장은과 3대 식객 성찬(진구)의 김치 대결을 그렸다.
“<식객:김치전쟁>을 통해 삶을 배웠어요. 이번 영화에서는 칼과 요리도구를 자연스럽게 다뤄야 했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이 영화를 촬영하며 김치 정도는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어요. 영화에서 퓨전 김치를 주로 만들지만 구절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실력을 쌓았어요. 단순히 연기를 넘어 삶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어요.”(웃음)
장은은 오로지 자신의 목표만을 좇으며 성찬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이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 어찌 보면 악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냉정하고 차가운 여자다.
달콤한 코믹 그만
“장은은 냉철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는 천재예요. 어렵고 고통스러웠죠. 포커페이스가 된 역사를 갖고 있는 인물인데 관객에게 그걸 어느 정도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가늠하기가 힘들었어요. 감독님의 주문은 ‘울지 마라. 단 눈물방울은 고여 있어야 한다’였죠. 감정은 소용돌이 치는데 참는 게 어렵더라고요.”
김정은은 장은으로 변신하기 위해서 촬영 3개월 전부터 각종 요리 도구를 손에 익히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각종 김치는 뚝딱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손을 베고 다쳤던 때도 수십 차례. 김정은은 이런 과정을 통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요리의 지존, 카리스마 넘치는 장은을 만들어냈다.
“갖가지 김치를 매일같이 담갔죠. 명색이 천재 셰프인데 김치 갖고 노는 모습이 어설프면 안 되잖아요. 촬영 막바지에는 배추 소 넣는 모습이 제법 전문가 같다는 칭찬도 들었어요.”
사실 김정은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랑니>(2005)에서 시작됐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을 거쳤다. 김정은은 <사랑니>의 정지우 감독을 붙잡고 갔듯 이번에도 감독을 믿고 따랐다. 숱한 NG에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지만 김정은은 톱스타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신인의 마음으로 임했다.
“냉정한 제 모습이 낯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스스로는 <사랑니>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통해 서서히 변화를 주고 있었어요. 여배우는 나이가 들수록 배역 선택이나 작품에 있어서 좀 더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게 낫다고 깨닫고 있는 중이에요.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진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연기하는 것이 제일 오래 여배우로 건강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인연은 노력으로 안돼
요리를 해보니 좋은 사람들에게 먹이고 싶은 생각을 안할 수가 없더란다. 이제 그도 알콩달콩한 신혼을 즐길 때가 된 걸까.
“퇴근시간에 장 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지글지글 요리를 하는 그림은 정말 언제 그려도 아름다운 것 같아요. 하지만 결혼을 너무 강요하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일은 열심히 하면 날 배반하지 않지만 인연이라는 건 그게 성립하지 않더라고요. 연기, MC 등 일은 열심히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데 남자를 만나는 인연만큼은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내가 존중하고 존경할 만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 이젠 결혼할 거예요.”
<식객:김치전쟁> 촬영은 거의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됐다. 충남 태안, 경북 상주, 전라도 광주 등 맛으로 유명한 지역을 돌아다녔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일주일에 딱 하루 <김정은의 초콜릿> 녹화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2년째 진행하고 있는 <김정은의 초콜릿>은 그의 친구이자 삶의 유일한 탈출구다.
“<초콜릿>은 ‘청량제’ 같은 존재였어요. 꼭 기숙학원 같은데 갇혀 있다가 일주일 휴가 받아서 옷 예쁘게 입고 클럽 가는 애처럼 신났던 것 같아요. 고단한 삶을 풍요롭고 또 행복하게 해줘요. 그래서 전 ‘건강보험’이라고 부르죠. 관객들과 함께 밤이 주는 여백을 오래도록 만끽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