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김성수 기자 = 국내 '빅5'병원으로 꼽히는 서울아산병원이 믿기 힘든 기막힌 구설에 올랐다. 이른바 '재벌 씨받이'스캔들에 휘말려서다. '계모'로 유명한 영풍제지 회장 부부에게 불륜 시절 불법시술로 아이를 갖게 해줬다는 것이다. 영풍일가와 서울아산병원이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영풍제지란 회사가 있다. 종이를 만든다. 상장사긴 하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오너나 경영진도 생소했다. 그랬던 영풍제지가 갑자기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계모'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무진 회장이 두 아들(택섭-택노) 대신 후처인 노미정 부회장에게 회사를 넘기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두 아들 밀어내려고?
특히 이들의 나이가 이슈였다. 이 회장은 올해 80세(1934년생), 노 부회장은 45세(1969년생)로 35세나 차이가 난다. 노 부회장은 각각 57세(1957년생), 54세(1960년생)인 택섭·택노 형제보다 약 10세가량 어리다. 2011년 이 회장과 부부가 된 노 부회장은 2년 만에 회사 2인자에 올랐고, 2인자에 오른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후 여성 부호 명단에 포함되는 등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가 여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 회장의 선택은 이례적이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터. 업계에선 평생 어렵게 키운 연매출 1000억원대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새로 얻은 ‘세컨드’에게 맡긴 이유와 배경이 분명히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계모가 전략적으로 이 회장의 자녀들을 회사 밖으로 밀어냈다는 등 설왕설래가 이어졌지만 정확한 팩트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일요시사>는 이 회장의 본처 소생인 두 아들 외에 노 부회장이 낳은 '서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었다. 의심은 틀리지 않았다. 취재 결과 이 회장은 노 부회장과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다소 충격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의 '막장드라마'를 연상시킨다.
2008년께 일이다. 이 회장은 지인의 소개로 노 부회장을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자주 만났고, 어느새 한 이불을 덮는 사이가 됐다. 노 부회장이 이 회장의 '애첩'이 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택섭·택노 형제의 생모인 이모씨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
그런 그가 떡 버티고 있던 '안방'을 노려서일까. 노 부회장은 이 회장의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용한 방법을 총동원할 정도로 자녀 낳기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결과는 매번 실패. 이 회장이 고령(당시 74세)인데다 정관수술까지 받은 상태여서 자연 임신이 불가능했다.
노 부회장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인공수정,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시술) 등의 의학적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노 부회장이 찾아간 곳이 바로 서울아산병원 불임클리닉 센터다. 노 부회장은 이 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김모씨로부터 아이를 낳기 위한 시술을 받기 시작했다. 김씨는 불임 연구 외길을 걸어온 국내 최고의 체외수정 권위자로 유명하다.
김씨는 이 회장의 정자를 채취해 노 부회장의 난자와 체외수정 시킨 뒤 체내에 이식하는 시술을 했다. 노 부회장은 수차례 시도 끝에 해를 넘기지 않고 임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쌍둥이 남매를 출산했다. 이달로 남매는 5세가 됐다.
영풍제지 계모 인공수정으로 쌍둥이 출산
본처 동의없이…산부인과 의사 불법 시술
문제는 노 부회장이 받은 시술이 불법 논란이 있다는 점이다. 시술 당시 법적으로 이 회장의 부인은 이씨였다. 이 회장과 노 부회장이 불륜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도 이 회장은 자신의 정자를 제공했고, 노 부회장은 인공수정 시술을 받았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에 따르면 인공수정 등은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술할 수 없다. 이씨는 동의는커녕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 회장과 노 부회장, 그리고 의사 김씨가 법을 어긴 셈이다.
이 회장의 장남 택섭씨는 지난해 3월 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이들을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그는 "노 부회장이 아버지(이 회장)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뒤 불법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받아 쌍둥이 자녀를 낳았다"며 "노 부회장이 쌍둥이 자녀를 앞세워 우리 형제를 경영에서 배제시킨 뒤 회사를 손아귀에 넣었다"고 주장했다.
소장에 따르면 뒤늦게 남편의 불륜과 출산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큰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는 2010년이 돼서야 노 부회장과 배다른 남매의 존재를 알았다. 이후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다 그해 5월 자택에서 목을 매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 회장과 노 부회장은 이씨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인 2011년 6월 혼인신고를 했다. 쌍둥이 남매도 이 회장의 호적에 올랐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부인의 동의 없이 내연녀에게 인공수정 시술을 해 준 혐의로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인 김씨를 기소했고, 법원은 최근 벌금형을 선고했다.
서울 동부지방법원 형사 6단독(이완형 판사)은 지난달 18일 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판결했다. 김씨는 "(이 회장과 노 부회장이) 실제 부부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35세인 점 ▲진료기록부에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혼'으로 기재된 점 ▲앞서 다른 병원에선 노 부회장이 미혼이란 이유로 인공수정 시술을 거부당한 점 ▲시술 전 협진한 비뇨기과에서 노 부회장을 '(이 회장의) 여자친구'로 명시한 점 등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씨가 정자 또는 난자 제공자의 배우자로부터 서면동의를 얻을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실제 부부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풍제지 측은 해당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일축했다. 오너일가와 관련해서도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측은 "병원과 무관한 사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병원 관계자는 "당사자가 억울한 부분이 있어서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며 "의사 개인의 실수니 병원 이름만 안 나가게 해 달라"고 했다.
충격받은 본처 자살
이 사건은 '영남제분 사모님'사건과 오버랩 된다. 재벌이 등장하고, 불법적으로 이들을 도운 의사가 등장해서다. 영남제분 사모님은 청부살인을 하고도 호화 병원생활을 했는데, 의사가 허위진단서를 발급해준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었다.
당초 별일 아닌 듯 대응했던 세브란스병원 측은 결국 공식 사과했다. 서울아산병원으로선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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