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요즘 한창 말 많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일요시사>는 이미 2007년 그의 두 얼굴을 도려낸 적이 있다. 당시 대주그룹의 기형적인 성장사와 족벌경영 폐해, 허 전 회장이 쥐락펴락한 법조계 인맥과 풀리지 않는 뉴질랜드 미스터리 등을 집중 취재해 연속 시리즈로 고발했다. 특히 압류 대비용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가 하면 여성편력 등 위험한 사생활도 과감히 파헤쳤다. 지금까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허재호 파일'을 공개한다.
온 나라가 허재호 얘기로 떠들썩하다. 하루 5억원의 '황제노역'주인공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국민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를 감싸거나 방치한 검찰과 법원, 국세청 등도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성난 여론에 떠밀려 허 전 회장은 결국 심판대에 다시 오르게 됐다.
다시 심판대에…
이번에도 버티나
이제 초점은 돈에 맞춰진다. 몸으로 때우는 대신 추징이 가능한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허 전 회장이 5일 동안 탕감 받은 25억원을 제외하고 남은 벌금은 224억원. 여기에 국세 136억원, 지방세 24억원, 금융권 빚 233억원(신한은행 151억원·신용보증기금 82억원)을 내지 않은 상태다.
검찰과 국세청은 끝까지 추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사정당국이 파악한 허 전 회장의 재산은 동양저축은행 땅 128평, 오포 땅 2만평, 미술품과 도자기 141점 등 뿐이다. 물론 이를 다 팔아도 턱 없이 모자란다. 그나마도 채권자들과 밀린 지방세를 받으려는 시·군에서 근저당을 설정해놓은 상태다.
사정이 이렇자 사정당국은 국내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바로 뉴질랜드다. 검찰과 국세청은 허 전 회장이 뉴질랜드에서 활동을 하면서 재산을 현지로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 추적 중이다. 당연히 해외인 만큼 추징 과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허 전 회장이 국내에 숨겨둔 재산은 없을까.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재산이 차명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그의 주변인들을 털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허 전 회장이 자신 소유인 동양상호저축은행 빌딩(3층부터 7층까지) 임대료를 매달 1000만원을 받기로 임차인과 계약을 해 놓고 수년째 차명계좌를 통해 임대료를 받아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부회장 명함 들고
대내외 행사 참석
같은 맥락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한 여성이 있다. 대주그룹 부회장을 지낸 A씨다. <일요시사>가 2007년 검찰 수사 당시 허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을 취재하다 알게 된 A씨는 허 전 회장의 이른바 '세컨드'로, 대주 2인자로 군림했었다. 허 전 회장과 내연 관계인 A씨는 평범하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수백억원의 엄청난 재력가로 부상했다. 물론 그의 뒤엔 허 전 회장이 있었다.
허 전 회장은 4세 연하인 부인 이모씨와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30∼40대인 두 딸은 한때 대주그룹 관계사에서 근무한 것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인적 사항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씨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는 지난해 12월 숨졌다.
검찰 숨겨둔 '검은돈' 끝까지 추징 의지
몰래 빼돌려 차명 관리 여부에 수사 초점
허 전 회장과 이씨는 법적으로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 이씨 자리는 A씨가 꿰찼다. 그룹 내에선 그를 부회장이라고 불렀다. <일요시사> 취재 당시 그룹 측도 A씨의 실체를 인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대충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사람이면 A씨를 사모님이란 호칭 대신 부회장이라 부르면서 깍듯이 대한다"며 "회장은 본부인 이씨를 두고 항상 A씨와 함께했다.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지만 모두 모른 체했다"고 털어놨다.
대주그룹 전직 고위임원은 "과거 보험설계사, 외판원 등을 하던 A씨는 대주그룹 본사 주변의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허 전 회장을 만나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A씨는 조용히 내조만 하다가 갑자기 사모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허 전 회장의 호적상 본처를 대신해 그룹 대내외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 그룹 후원으로 열리는 자선바자회에도 자주 참석했다.
문제는 A씨가 하루아침에 갑부가 된 배경이다. A씨의 인생역전은 허 전 회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허 전 회장과 은밀한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A씨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2003년. 대주그룹이 인수한 H사 등기이사에 취임하면서다.
본부인 있는데 사모님 행세
수수께끼 여인 의문의 재산
2005년엔 H사 회장직을 맡은 A씨는 이 회사의 지분 20%를 보유했다. H사는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 자리 잡은 대주그룹 본사 사옥을 관리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골프장 등 그룹의 레저개발사업 부문도 담당했다.
A씨의 재산은 또 있다. 광주시 서구에 있는 D골프연습장이다. 2004년부터 이 골프연습장 대표이사를 맡은 A씨는 골프연습장 부지와 시설의 실제 소유주로 확인됐다. 2001년 개장한 D골프연습장은 총 6000여평 부지에 비거리 150미터, 60타석 규모의 광주·전남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골프연습장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500여평의 클럽하우스도 갖추고 있다.
A씨는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서 명품가구 전문점 M사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오픈한 이 가구점은 유럽에서 수입한 '초호화 럭셔리'가구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지하 2층 지상 5층의 M사 건물 소유주는 따로 있다. 공교롭게도 M사의 임대계약자는 A씨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H사의 대표이사다. 이 대표이사는 A씨 언니의 남편, 즉 형부다. 이 건물 1∼3층을 임대한 M사의 보증금은 수억원. 매달 월세로 수천만원씩 내고 있다. M사 관계자는 "회장님은 주로 지방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가구점에 어쩌다 한번 들른다"고 했다.
그룹 측은 "M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지만, 여러 가구점이 모여 있는 M사 주변엔 대주그룹이 가구사업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 가구점 직원은 "M사가 대주그룹 안주인이 운영하는 것 아니냐"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서울에서 지낼 경우 한남동 H빌라에서 머물렀다. H빌라는 강북의 대표적 고급 주거단지인 '유엔빌리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 1%'가 모여 사는 부촌 중 부촌으로 유명하다. 70여평에 달하는 이 빌라는 대주그룹의 계열사로 알려진 대한건설(옛 두림건설)이 시공했다. 허 전 회장도 서울에 머물 땐 H빌라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H빌라 시세는 수십억원에 달한다.
한푼 없던 그녀가 옛 대주 관계사·골프연습장·빌딩
고급빌라·명품가구점·호화주택·외제승용차 소유
A씨는 현재 광주 남구 월산동에 100여평의 호화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평소 외제 승용차로 드나든다는 게 인근 주민의 전언이다. A씨는 그룹 본사가 있었던 광주에 빌딩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한 측근은 "A씨는 안 그래도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데다, 요즘 말이 너무 많아 언론에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또 "A씨의 재산은 허 전 회장과 무관하다"고 일축하면서도 "A씨가 개인사업체를 차릴 때 허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도와줬을 수는 있다"고 말끝을 흐렸다.
허 전 회장은 이씨와 두 딸 외에 A씨와 사이에서 숨겨둔 아들 B군도 두고 있다. B군은 현재 뉴질랜드에서 지내고 있다. B군은 대주그룹의 뉴질랜드 대주하우징이 분양한 오클랜드 빅토피아 주상복합아파트에 거주했다. 이는 허 전 회장이 벌이고 있는 뉴질랜드 현지 사업과 무관치 않다.
대주그룹 전직 임원은 "B군은 뉴질랜드로 유학간 지 꽤 오래됐다"며 "현지에 가족이 없기 때문에 파견돼 있는 대주그룹 해외사업팀 직원들이 음으로 양으로 뒷바라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대주그룹이 뉴질랜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부터다. 뉴질랜드 주택시장에 진출한 것은 국내 건설사로는 최초였다. 허 전 회장이 직접 선봉에 섰다. 허 전 회장은 B군의 유학 문제로 먼저 뉴질랜드를 방문했고, 이후 대주그룹이 현지 투자를 시작했다.
늦둥이 외아들이라 B군을 남다른 애정으로 '금이야 옥이야' 키운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를 제집 드나들 듯 왔다 갔다 했다. 1년 중 3∼6개월가량을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 주택건설 사업에 뛰어든 이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현지에서 생활해왔다.
"허재호 비자금
열쇠 쥐고 있다"
현지에서 사업을 챙기는 틈틈이 골프를 치거나 바다낚시를 즐겼다. 허 전 회장은 골프광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필드에 나갔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 내에선 이미 유명 인사다. 현지인들의 평가도 매년 '교민 10대 뉴스'에 뽑힐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뉴질랜드에선 삼성보다 대주를 더 알아준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대주그룹도 뉴질랜드 한인 사회에 많은 공을 들였다.
허 전 회장과 A씨의 친인척도 '검은돈' 키맨으로 의심할 만하다. 허 전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동생과 사촌동생은 대주그룹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A씨의 동생과 언니, 형부 등도 대주그룹 임원 명함을 들고 다녔다.
검찰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면서 '전두환 털기' 때처럼 강력한 수사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A씨가 관리하고 있는 허 전 회장의 차명 재산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다만 A씨가 '허재호 비자금' 행방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분명하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