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온기 도는데… 정부가 찬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부동산 대책 보니…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맞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중 부동산과 관련한 내용은 혼란만 가중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겨냥한 졸속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란 것. 구체적인 안이나 방안도 없이 일단 발표하고 보자는 식의 대책은 오히려 시장을 더 교란시키고 사회적인 비용만 더 유발해 살아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월세시대 대비 한다더니 임대차 선진화 방안
일단 발표하고 보자?…오히려 시장혼란 지적

4년 전부터 서울 강남 논현동 영동시장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해온 이호영(58) 씨는 작년 말 건물 주인으로부터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세 들어 있는 건물이 팔려 장사를 조만간 접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씨가 점포를 오픈하면서 실내 인테리어, 집기, 권리금에 들어간 자금은 약 1억5000만원 정도다. 하지만 장사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갑자기 문 닫게 되면서 쏟아 부은 투자비를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이씨는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받아 장사를 시작했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잃게 됐다”고 말했다.

말 많은 권리금
양성화 & 보호

앞으로 이씨처럼 식당이나 커피전문점·치킨집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건물주의 무리한 요구나 세입자의 과도한 권리금 요구로 피해를 보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상가 권리금 보호제도 도입 방안을 밝힌 것은 권리금 법제화 논의의 첫 단추를 꿰었다는 평가다. 그동안 권리금은 용산 참사 등 숱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유발한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정부는 그동안 임차상인 간 관행으로 치부해 수수방관해 왔었다.
▲권리금 표준화 = 정부 방안은 권리금 양성화와 보호라는 ‘투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비교적 저항이 덜한 양성화 부분부터 시행될 계획이다. 우선 법적으로 권리금을 정의해 돈의 성격부터 규정할 방침이다. 권리금은 법으로 인정받지 못해 법적 정의조차 없었다.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임차상인이 건물주에게 매번 패소한 이유다. 이로써 건물주의 횡포에 대항할 법적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영세 임차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권리금 거래 표준 계약서’를 도입하고 권리금 피해를 구제해주는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점포 권리금은 상가 임대차 계약과는 별도로 점포 내 설비나 입지 여건, 기존 영업권 등 상가 운영과 관련한 유무형 이익을 환산해 임차인들 간에 주고받는 돈을 말한다. 1960년대 이후 상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새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이 기존 세입자에게 웃돈 성격으로 주던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문제는 점포 세입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주고받는 권리금에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 언젠가는 한 명의 세입자가 권리금 없이 장사를 접어야 하는 ‘폭탄 돌리기’와 같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임대기간이 끝나고 나서 건물주가 기존 상가와 다른 업종으로 변경해 다시 임대하거나 건물 리모델링이나 재개발, 매각 목적으로 점포를 비워달라고 요구할 경우 임차 상인은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된다.
정부는 상가 임대차 시장에 만연해 있는 불합리한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권리금 제도를 양성화하고 보호 장치도 마련하기로 했다. 우선 모든 상가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해 임대 기간 중에 건물주가 바뀌어도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제시하는 영업기간(5년)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서울의 경우 환산 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원 이하인 임차인만 보호하고 있다.
권리금 표준계약서 제도도 도입한다. 신규 임차인이 기존 상인에게 지급한 권리금 내역 등이 적힌 ‘권리금 거래 표준계약서’를 임대차계약서와 함께 구청이나 세무서에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상가 세입자가 권리금을 떼일 경우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정부는 거래를 맡은 중개사가 권리금 계약서를 활용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정부는 권리금을 떼일 위기에 놓인 임차인을 보호하는 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권리금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는 조정기구도 만들 방침이다. 또 건물주의 요구로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빼앗길 경우 남은 임대 기간 동안 임차인이 벌 수 있는 영업 가치를 계산해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키로 했다. 일본에서는 건물주가 상가 세입자를 내보낼 경우 단골고객 수에 따라 권리금을 보상해주며 영국에서는 건물 주인이 운영을 잘해 건물 가치를 높인 임차인을 내보낼 경우 가치 상승분에 대해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상가 권리금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임차인 간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상가 권리금 내용을 이면으로 계약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도 우려되며 권리금 시장이 더 음성화될 수도 있다.
건물주인 입장에서는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받는다는 분석도 있다. 시설·영업권 등으로 나뉜 권리금의 성격부터 명확히 하고 정부가 법으로 보장해줄 적절한 범위를 정해야 하는데 양성화하는 취지는 좋지만 재산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권리금이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금융사들은 상가담보 대출시 우선 변제가 가능한 권리금을 감안해 대출금액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에 건물주가 빌릴 수 있는 돈이 예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
또 권리금 제도를 양성화하고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임차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건물주가 권리금을 근거로 임대료를 높이는 부작용도 벌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권리금은 건물은 노후되어 임대료는 낮은데 영업이 잘되는 점포에서 높게 형성되고 건물주가 권리금액을 바탕으로 가게 영업 상황을 파악, 임대료를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 권리금은 개인 간의 거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점포 세입자나 부동산중개업소 외에는 시세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상가 임대차 시장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권리금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 언제 시행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임대차 선진화 = 서울과 지방에서 각각 주택을 보유 중인 이진희(55) 씨는 서울의 아파트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려다 얼마 전 생각을 바꿨다. 3억원에 전세를 주고 있던 서울 아파트를 월세로 돌리려고 했지만 지난달 26일 정부가 발표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본 후 전세를 더 올려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월세 소득에 대한 세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아서다.

임대인도 부담
임차인도 부담

최근 부동산업계 및 시중은행에 따르면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월세 소득과 관련한 임대인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임대사업자 등록 후 소득을 신고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유리한지, 그렇지 않으면 월세를 전세로 돌리거나 아예 처분하는 것이 더 유리한지 임대인의 손익 계산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임대시장 자체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임대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세액공제 확대로 인한 세원 노출이 주요인이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내놓으면서 2주택자 이하(월세 소득 연 2000만원 이하)에 대해 분리과세키로(14%) 했지만 기존에 세금을 전혀 안 내던 임대인 입장에서 이를 혜택으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이번 방안 발표로 사실상 임대등록제가 실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분리과세 혜택이 있지만 소득 노출로 월세를 계속 놓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임대인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고액 월세가 많은 서울 강남권에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들은 고소득자가 많아 종합소득과세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황이다. 이번 조치로 세원이 노출된 임대인의 경우 보유 주택 수와 임대소득 등에 따라 임대소득과 연봉을 합산해 최고 38%의 세율을 부담할 수 있다. 1주택자여도 9억원 초과 주택에서 2000만원이 넘는 월세 소득을 얻는다면 종합소득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월세 시대’를 대비했다는 정부 의도와 달리 전세 공급이 오히려 늘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 전세의 경우 아예 전세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전세 공급 증가로 인한 가격 하락 효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전세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대수익이 기대되는 월세에 대한 보상심리로 전세 가격을 높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법의 국회통과 등 과세 관련 방침이 명확해지기까지 월세 계약을 미루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임대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임대인이 월세를 유지하는 경우 월세를 올려 세금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이 경우 임차인은 세액공제에 따른 혜택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또 임대인이 세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유주택자나 총급여 7000만원 이상 세입자를 가려 받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로 인해 이번 조치가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을 밝히는 등 큰 방향에선 맞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하거나 추가적으로 보다 세밀한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우 은퇴 이후 월세로 생활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선진화 방안대로 되면 이들의 투자가 위축돼 임대주택 공급이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리츠나 사업자에 의한 임대시장이 걸음마 단계인 상황에서 개인 임대인의 공급 역시 위축될 수 있고 2주택자에 대해서는 비과세를 해주는 등 완충지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집주인 과세 강화 = 집주인의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강화된다.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겉으로는 임차인에게 세액공제를 통한 혜택을 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부족한 세금을 집주인에게서 걷어내겠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월세 부담을 줄이는 방편으로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은 임차인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 소득구간 3000만원 내외의 저소득층에게는 10%의 세액공제가 기존 소득공제에 비해 대략 40여만원 정도의 이익이 있어 매력적일 수 있지만, 세액공제 한도가 연 750만원의 10%인 75만원으로 정해져 있어 중산층 월세세입자들은 불과 10여만원의 이익이 있을 뿐 실제 큰 실익이 없다.
문제는 집주인들이다. 집주인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됐다. 특히 그동안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월세를 주고 매달 월세 수입을 받고 있었지만 굳이 세무서에 신고를 하지 않았던 관례들이 깨지게 되면, 집주인들은 당장 월세를 놓은 집을 팔아야 할지, 아니면 다시 전세로 돌려야 할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이번 방안 발표 이후 대책의 파장과 장단점 및 주택 매도나 전세전환 등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최근 모처럼만에 수도권 주택시장에 거래가 늘어나고 매수세가 늘면서 온기가 감돌고 있는 분위기가 금번 대책으로 인한 적지 않은 충격파로 시장에 냉기를 불어넣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현장의 분위기다. 이번 방안은 최근 야당에서 꾸준히 추진을 검토해온 ‘주택임대사업자 의무등록제’가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마치 이러한 법안이 실질적으로 상당부분 시행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주택시장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주택시장 정상화 의지를 통해 그동안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특히 다주택자 양도세중과 폐지 등을 통해 다주택자들의 징벌적 과세를 폐지한 것은 물론, 다주택자들과 잠재적 예비 다주택자들(추가로 주택을 매수하려는 유주택 수요자)로 하여금 주택 매수에 제동을 걸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었다. 하지만 이번 방안은 세입자 지원과 투명과세라는 명분은 있지만, 기존 주택시장 정상화 방안과 엇박자가 날 수도 있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집주인들의 고민
꼼수만 늘어날 듯

전문가들은 특히 주택 한두채를 통해 월세를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의 경우, 소득 감소에 따른 타격과 다주택자들의 주택 매수심리가 상당부분 약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또 다시 주택 거래가 감소하는 부작용을 염려하고 있다. 월세 소득이 적은 집주인은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월세 금액이 높은 서울·수도권 주요지역 월세 임대소득을 올리고 있는 집주인들은 이번 대책으로 상당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더 우려되는 부분은 집주인들이 월세를 전세로 돌리거나 월세지원액만큼 월세를 올려 임차인들의 실질 혜택이 거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집주인들이 소득세 부과와 소득노출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으로 인해 주택을 매도하거나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예비 주택매수자들도 매수 심리가 약해져 시장 자체가 오랜만에 찾아온 온기가 냉기로 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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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