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칠순 회장의 황혼 이혼 풀스토리

막장 여성편력…처자식 버리고 ‘첩질’

[일요시사=경제1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모 기업 회장과 부인이 극비리에 '황혼 이혼' 소송을 진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재벌 내외가 평생 해로하지 못하고 불화 끝에 결국 늦은 나이에 갈라서기로 한 것. 양측은 치열한 소송을 벌였다. 의문의 여인들까지 등장한다.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풀스토리를 공개한다.

모 기업 A회장과 부인 B씨가 비밀리에 이혼 소송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 20년차 이상 부부의 '황혼 이혼'이라 눈길을 끈다. A회장이 평소 가정의 소중함과 윤리적인 생활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못 말리는 바람기

70세가 넘은 A회장과 B씨의 인연은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1968년 결혼해 1남3녀를 낳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부부이자 동업자였다. 상류층끼리 혼맥을 맺는 '정략혼'과 거리가 먼 로맨틱한 연애 끝에 결혼, 남들 보란 듯이 '알콩달콩'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도 잠시. A회장의 '여성편력'이 드러나면서 둘의 사이가 틀어졌다. 별거에 들어갔고, 끝내 합치지 못했다. 한 측근은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갈등을 빚다가 별거에 들어갔다"며 "이후 거스를 수 없을 만큼 관계가 악화됐다"고 귀띔했다.

둘은 1980년 이혼했다. A회장은 이듬해 다른 여성과 재혼했지만 2년 만에 다시 이혼했다. 그가 돌아간 곳은 조강지처의 품이었다. A회장과 B씨는 우여곡절 끝에 1983년 재결합했다.

이혼하고 재혼…다시 본처와 재결합
또 외도 내연녀와 동거…혼외자까지


이렇게 부부의 연이 다시 시작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제버릇 남 주지 못했다. A회장의 바람기는 어쩔 수 없었다. 또 한눈을 팔았다. B씨와 재결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여자를 만났고, 급기야 동거를 시작했다. 혼외자까지 낳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분노했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A회장에게 배신을 당한 B씨는 1989년 A회장과 동거녀를 간통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수사는 금방 종결됐다. A회장과 동거녀가 야반도주했기 때문이다. 이후 잠적해 간통 처벌을 받지 않았다.

B씨는 남편 없이 홀로 자녀들을 키웠다. 처자식을 버린 A회장은 2000년대 들어 사업이 크게 성공했다. 재벌 소리를 들을 정도로 승승장구해도 처자식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외부 직책을 맡는 등 사회적으로도 명성을 얻은 A회장은 뒤늦게 나타나 B씨에게 사죄는커녕 또 다시 이혼을 요구했다. 법적으로 부부였기 때문이다. B씨는 위자료를 요구하면서 '도장'을 찍지 않았다.

이혼은 부부가 합의하에 갈라서는 '협의이혼'과 재산분할, 양육권, 위자료 등을 두고 의견이 맞지 않아 재판에 맡기는 '소송이혼'으로 나뉜다. A회장은 소송을 택했다. <일요시사>는 A회장과 B씨가 극비리에 이혼 소송을 진행한 사실을 확인했다.

의정부지방법원에 따르면 A회장은 2011년 10월 B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두 달 뒤인 12월엔 B씨가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맞불을 놨다. B씨는 A회장의 재산 처분을 금지하는 등의 사전처분 신청도 같이 냈다. 이때부터 조정, 합의 실패, 기각, 변호사 변경 등 기나긴 법정 다툼이 시작됐다. 이 재판에 이름을 올린 양측 변호사만 10여명에 이른다.

70세 넘어…비밀리에 소송 진행
결국 패소하고 10억 위자료 판결

지루한 공방이 이어진 소송은 2년 만에 일단락됐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A회장이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을 기각했다. 이혼이 성립되지 않은 것이다. 법원은 A회장이 불륜을 저지르는 등 결혼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배우자'라고 판단했다.


반면 법원은 B씨가 A회장을 상대로 낸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에 대해선 "재산분할 8억원과 위자료 2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보통 이혼할 때 부인이 재산의 절반가량을 분할 받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금액이다. 판결 근거는 A회장의 재산이 A씨와의 혼인 관계가 사실상 끝난 이후 형성됐다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A씨의 재산 전부가 부부가 사실상 별거한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난 뒤 취득한 재산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남편의 부정행위로 인한 부재중에도 B씨가 1남3녀의 자녀를 포기하지 않고 양육한 기여 등을 인정해 별거 이후 형성된 재산의 일부를 분할 대상에 포함시켰다"며 "그동안 정신적 손해를 인정해 위자료도 일부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현 부인 정체는?

양측은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하지 않았다. A회장과 B씨 모두 1심 판결이 끝나고 군소리 없이 항소를 포기했다. 회사 측은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한 관계자는 "회장님이 이혼했냐. 글쎄 잘 모르겠다"며 "개인적인 일을 왜 알려고 하냐.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애써 모른 척했다.

현재 A회장의 곁엔 언론 등에 '부인'이라고 소개된 의문의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의 정체를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본부인을 버리고 지금까지 내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세컨드'가 아니냐는 의견과 A회장의 여성편력을 이유로 전혀 다른 제3, 4의 '첩'일 수 있다는 의심도 있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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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방부는 내란 특별검사팀이 해소하지 못한 건을 발본색원하려 했다. 특별수사본부 외에도 TF팀을 꾸렸으나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상규명 핵심 기관인 정보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의혹의 상당수가 근거가 빈약해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인사도 문제다. 내란에 연루된 핵심 기관임에도 인적 쇄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본부에 조사관들이 상주까지 했는데 밝혀진 게 없다.” 한 정보사령부 영관급 장교의 말이다. 정보사를 둘러싼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 차원의 특별수사본부와 헌법존중 TF(테스크포스)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제보와 투서 내란 특별검사팀의 후신인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정보사에는 대북공작 전문가들인 휴민트(HUMINT·인간정보·820)가 있다. 휴민트 부대인 HID(북파공작부대)와 이들을 지휘하는 100여단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들은 대북공작 실행 부대로 전략·기획은 특수사업처가 담당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사 특수처는 최근 특수·대외·훈련평가 등 3개의 부서를 특수·대외로 개편했다. 신임 정보사령관에는 1988년 이진백 사령관 이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비육사 출신인 조선대학교 학군장교(ROTC)출신 박민영 육군정보학교장이 임명됐다. 참모장은 육사 출신 한모 준장, 정보단장은 하모 준장(3사)이 맡게 됐다. 100여단장이던 육사 출신 정모 준장은 제2작전사령부로 전보됐다. 국방부는 당분간 100여단장 자리를 공석 상태로 놔두기로 했다. 휴민트 조직이 12·3 내란에 깊숙하게 연루된 만큼 특수본의 수사가 끝난 이후 진급 심사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정보사는 검찰과 경찰, 내란 특검팀 수사에 의해 부서명이 노출돼 기밀이 새 나가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홍도 격화되고 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에 제보와 투서가 빗발치고 있는 점이 정보사 내부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한 군 관계자는 “‘진급 시즌’ 때문이라고 해도 의혹에 그치는 제보가 많다. 중요한 내용도 있지만 타 부서의 간부를 언급하며 ‘문제가 있어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약물 공작’ 문건 본거지 특수처 압수수색 패스 논란의 인물들 되레 진급 “장군 인사로도 거론”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을 통해 드러난 ‘약물 공작 문건’ 이후에는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건 작성자인 이모 대령(현 속초 HID 부대장)과 군무원 외에도 당시 특수처장이던 A 대령과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박 의원이 확보한 해당 문건은 정보사 특수처 산하 대외 담당실에 존안돼있었다. 문건 작성 및 책임자인 A 대령과 이 대령 모두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다만 특검팀의 수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검팀에 파견됐던 한 경찰 관계자는 “특수처 간부 중 일부는 수사에 협조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지시로 작성하게 됐다는 것 외에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의 연결고리가 의심됐으나 정황을 포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는 관련 의혹을 면밀하게 들여다봤다. 실제 담당 조사관들은 정보사 안양 본부에 상주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약물 공작 문건 외에도 지난해 2월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준장)이 국회에서 증언했던 ‘2016 계획(가칭)’도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준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2016년 속초 HID 부대장으로 있을 때 당시 노상원의 지시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며 “대북 중요 임무를 6개월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여러 불합리한 지시가 많았지만 특히 요원들을 폭사시키라던 지시가 생각난다. 노상원은 요원들에게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 보낸 뒤 임무를 끝내면 폭사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계획은 노상원 전 사령관이 취임 이후 자신의 비서실장과 특수처장, 사업단장을 해임한 이후 모의됐다. 일반적 공작처럼 북한 내 쿠데타를 야기하거나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실제 수십명의 공작관들이 강제로 동원돼 노 전 사령관의 비상식적 계획을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상원 폭사 지시 ‘2016 계획’도 조사 바짝 붙었는데 빈손…진상규명 어려울 듯 한 국방부 관계자는 “TF에서 해당 사안을 조사했던 건 사실”이라며 “차후 어디서 수사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복수의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2016 계획’이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한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소실됐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 전 사령관은 2016 계획 외에도 대북공작 관련 보고서를 ‘특수’가 아닌 ‘일반’ 문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제한된 공간에 보관한 후 통제했다고 한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안양 본부에 가서 보고하는 절차에서 노상원이 직접 100여단을 방문해 보고를 받았다. 시스템이 이상하게 바뀌었는데 문상호도 똑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반 문서로 분류한 대북공작 문건들은 김용현에게 따로 보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노상원은 사실상 수년간 김용현에게 휴민트들이 작성한 첩보를 갖다 바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 정보기관 간 갈등도 폭발 직전이다. 또 다른 군 정보기관인 777사령부에 대한 ‘인사 차별’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앞서 777사령부에 소속된 시긴트(SIGINT·신호정보·820) 전문가들은 휴민트와 같은 820 정보병과다. 다만 ‘인간’과 ‘신호’로 구별될 정도로 업무 자체가 전혀 다르다. 정보사는 관행대로 육군 소장이 신임 정보사령관을 맡게 됐지만 777사령부는 공군 준장으로 격하 보직된 데 이어 지휘관의 군종까지 뒤집히는 전례 없는 조치가 단행됐다. 777사령부는 정보사와 다르게 내란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바 없다. 인사만 놓고 보면 두 군 정보기관 간 인사에 차이가 있다는 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주먹구구 인사 국방부 인사를 담당하던 한 소식통은 “777 입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인사”라며 “정보사 육사 출신들의 진급이 대거 배제됐다고 해도 외형적으로만 그럴듯해 보이지 속사정은 다르다. 실질적 지휘 체계는 뒤바뀌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적 쇄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TF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했다. 16일 조사를 마무리한 TF는 조만간 결과를 검토해 다음 달 13일까지 승진 취소 및 징계성 전보 등 인사 조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적어도 이날까지는 군 정보기관 내 파열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