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신흥재벌 '왕서방' 추적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2.25 11: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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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부호와 모종의 거래

[일요시사=사회팀] 개인자산만 3조원이 넘는 중국의 대부호가 케이먼 군도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부호와 함께 나란히 유령회사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한 사업가가 있었다. 최초 중국인으로 알려졌던 이 사업가는 확인 결과 한국인 왕모씨로 밝혀졌다. 서울과 중국을 오가며 옷 장사를 하고 있는 왕씨. 왕씨는 왜 중국인과 함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던 것일까.




페이퍼컴퍼니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재계를 아우르는 유명인사들은 케이먼 군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여기서 조세피난처는 실제 발생한 법인 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뜻한다. 또 대부분의 조세피난처는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개인이나 법인 입장에서 '검은돈' 조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는다. 때문에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는 불법적인 비자금 운용이나 탈세를 위한 창구로 의심받는다.


중국인? 한국인!


앞서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 작업한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은 모두 245명"이라고 밝혔다. 공개된 명단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국씨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낸 이수영 OCI 회장, 연극배우 윤석화씨 등 각계 유력인사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사회 고위층의 집단 탈세 의혹에 여론은 들끓었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모르는 일”이라고 혐의를 잡아뗐다. 또 이들은 "명의만 빌려줬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세금을 회피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들은 왜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나라에 계좌를 개설해야 했을까.


지난달 24일 <뉴스타파>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32명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추가된 한국인 명단에는 선궈쥔 인타이그룹(이하 인타이) 회장과 함께 케이먼 군도의 유령회사 '이소 인터내셔널(ESSO International (Group) Ltd)' 공동 이사로 등재된 한국인 왕모씨가 있었다. <뉴스타파>는 왕씨를 서울 강남에 있는 수출업체 대표라고 설명했다.

인타이는 중국 내 유통·부동산 업계의 강자로 국내에선 롯데그룹의 중국 현지 파트너로 잘 알려져 있다. 앞서 롯데그룹은 인타이와 합작으로 '인타이롯데백화점'을 베이징 등에서 운영했지만 실패한 뒤 지금은 파트너십을 해지한 상황이다.

인타이그룹의 총수 선궈쥔 회장은 개인자산만 29억달러(약 3조1000억원)로 추정되는 중국 내 손꼽히는 갑부다. 지난해 그는 '중국의 스티브 잡스'로 알려진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과 함께 물류회사 '차이냐오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를 설립,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선궈쥔 회장은 마윈 현 차이냐오 회장이 만든 중국 내 그룹 총수들의 사교모임 '강남회'의 창립멤버로 소개됐다. 중국 재계에서 선궈쥔 회장의 남다른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류무역업자 왕모씨 수상한 행보
3조 갑부와 손잡고 유령회사 설립


그런데 한국인 왕씨는 이런 선궈진 회장과 어떤 연유에서인지 2007년 5월 케이먼 군도에 '이소 인터내셔널'이라는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이소 인터내셔널'의 이사는 법인을 빼고 모두 3명이며, 이 가운데 왕씨가 포함됐다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또 <뉴스타파>는 "왕씨의 주소지가 중국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JR28'로 시작되는 한국 여권번호(종로구청 발행)를 확인했고, 여권에 기재된 왕씨의 국적이 한국이었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된 왕씨는 도대체 누구일까. <일요시사>는 왕씨가 무슨 연유로 유령회사를 설립했는지 궁금했다. 우선은 왕씨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수출업체 A사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A사는 '영 캐주얼 여성복 브랜드'를 갖고 있다. 해당 브랜드는 중국 내 서버로 운영되는 자체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적힌 브랜드 소개를 보면 '한국 브랜드'라고 명시돼 있다. 즉 왕씨는 자신이 런칭한 브랜드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의류·무역업자다.


패션계 복수 관계자에게 A사를 물었다. 그러나 "알지 못한다"는 답을 들었다. 대신 그들은 "본사는 한국에 있지만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업체가 꽤 많다"고 말했다.

A사는 2006년 2월 서울 강남에서 자본금 30억원 규모로 도매업을 시작했다. 사원수는 200명, 업종은 의류·원단·무역으로 소개됐다. 이로부터 1년 뒤 A사는 인근 건물 3층으로 등록주소를 옮겼다. 그리고 현재는 다른 법인명으로 고급 빌딩 2층에 자리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A사의 설립과 법인명 전환이 페이퍼컴퍼니가 설립된 2007년 전후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정리하면 왕씨는 ▲2006년 2월 A사를 설립한 뒤 ▲2007년 5월 페이퍼컴퍼니의 등기이사가 됐고 ▲2008년 4월 국내 법인명을 전환했다. 여기서 A사의 법인명과 역외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의 법인명은 동일했다.

또 2008년 4월 왕씨는 A사의 법인명을 변경한 것이 아닌 자본금 1억원 규모의 다른 회사(이하 B사)를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A사의 업무가 B사로 이관된 것으로 보인다. 즉 국내에 있던 A사를 해외로 넘긴 뒤 이름만 다른 B사를 새로 만들면서 세무당국의 추적을 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2013년 기준 B사는 등록된 회사 규모가 A사보다 1/20로 작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유명 성형외과가 밀집한 강남의 한 번화가. 기자는 A사가 최초로 임대했던 건물을 찾았다. 그러나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건물을 임대하고 있는 곳은 의류업체였다. 이후 기자는 업체 관계자와 통화했지만 "모른다"는 말만 들었다.

B사가 사무실로 썼다던 다른 건물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 B사는 건물 2층과 3층을 사용했는데 건물 3층은 비어있었으며, 중국집 전단지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2013년 10월부터 전기료가 일부 미납된 것도 보였다. 인근 부동산 업자는 해당 건물 임대료가 "보증금 2000만∼2500만원에 월 150만∼200만원 선"이라고 귀띔했다. 생각보다 큰 금액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현재 B사가 있는 빌딩을 찾았다. 직원 3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일체의 답변을 거부했다. "말할 게 없다. 빨리 나가시라"며 등을 떠밀었다.


"말할 게 없다"


B사의 브랜드는 중국내 70∼80개의 매장에 입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현지에서 유통업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이 같은 대량 입점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인이) 중국산 제품을 한국으로 들여와 역수출하는 건 흔한 경우지만 한국인이 중국 현지에서 시장을 직접 노리는 건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왕씨는 현재 중국 현지에 수백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사세를 확장 중이다.

한국에서 A사가 설립될 당시 실무를 맡았던 ㅅ씨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중국인이란 의혹을 샀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확인 결과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답했다. 왕씨와 비슷한 경우다. ㅅ씨의 유일한 연락처로 남아있는 이메일은 없는 계정으로 확인됐다. 이어 기자는 A사와 B사에서 일했던 복수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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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