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여드름하면 사춘기가 떠오른다. 여드름은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시기에 흔히 볼 수 있는 피부 트러블로 보통 성인이 되면 상태가 완화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드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여드름은 단순한 피부트러블이 아니다. 분명 ‘질환’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정부가 이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여드름 치료에 ‘부가가치세’를 지불토록 한 것이다.
정부가 이달부터 여드름 치료비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부과키로 해 논란이다. 여드름 치료가 부가가치세 대상에 포함되면서 피부과 의사들과 여드름 때문에 피부과를 찾는 청소년과 20대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탄식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신규세원 발굴 방안의 하나로 꺼낸 카드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신규세원 발굴
만성적인 여드름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자신감을 잃은 직장인 A(29·여)씨는 자주 다니는 단골 피부과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여드름 부가가치세’ 관련 소식이었다. 처음엔 ‘설마’ 했지만 진짜였다. 사춘기 때부터 지금까지 여드름 치료를 받고 있는 그에게 부가세 10%가 반가울 리 없었다. 지출액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A씨는 여드름 치료를 위해 한 달에 평균 25만을 투자해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치료비용의 10%의 세금도 내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치료를 중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A씨는 “업무 특성상 외부 미팅이 잦은 편이라 피부에 더욱 민감하다”며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가세 10%가 큰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꾸준히 치료를 하는 환자로서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가 여드름까지 건드려 세금을 충당하는 것 같다”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A씨 같은 만성 여드름 환자는 지속적으로 병원에 가야하기 때문에 치료비가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여드름이 질병이라고 말한다. 반면 정부는 미용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세수확대를 위해 피부·성형 분야의 의료부가세 대상을 확대한 데 따른 것이란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월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피부·성형 의료 부가세 대상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3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세법 개정에 따라 대부분의 미용·성형 의료 시술에 부가세를 부과하는 ‘미용·성형 의료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관련 지침’을 관련 단체에 배포했다.
개정안에는 양악 수술, 점, 주근깨, 검버섯 등 색소 질환 치료술과 함께 겨드랑이나 이마 등의 털을 제거하는 제모술, 보톡스, 필러, 레이저 등 미용 목적 피부 관련 시술, 그리고 여드름 치료가 포함됐다. 모두 국민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다.
정부 이달부터 피부과 치료비 10% 부과
미용으로 분류…질환 주장 환자들 불만
이번 개정안에 의료계는 우려를 나타냈다. 개정된 시행령에서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할 수 있는 영역을 정부가 일괄적으로 ‘질환 여부’를 판단해서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의사전문가 단체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의료정책을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포스터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들은 ▲조세법률주의 원칙 위배 ▲치료목적과 미용목적의 구별기준 모호 ▲건강보험법상 비급여 항목 규정을 과세대상의 기준으로 삼는 것의 문제점 ▲국민 세부담 증가 등을 지적하며 정부에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여론 조사 기관 갤럽에 의뢰한 설문조사(16∼69세 503명)에 따르면 63.4%가 이번 부가세 확대 방안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대한의사협회 홍보실 관계자는 “각 해당 병원 의사가 질병 여부를 결정하는 게 맞는데 기재부가 판단한 건 분명 문제”라며 “환자들의 치료비용 상승과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피부과 의사회는 ‘여드름 치료의 대다수는 질병 진료이고 건강보험 재정이 취약해 이 분야까지 아직 보험 혜택을 주지 못해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될 뿐인데 부가세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한 피부과 병원장은 “여드름 치료는 엄연히 질병 치료가 맞다”며 “보험을 적용해도 모자랄 판에 부가세를 만들어 의사들이 장사치로 비춰지게 생겼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부가가치세제과 관계자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이후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도 여드름에 부가세를 매기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행위 이용 빈도 등을 고려해 정책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이라며 “여드름 치료에는 질환 치료 목적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비급여 항목이라고 해서 포괄적으로 부가세 과세 대상에 넣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시행령 개정안 검토 의견서를 냈다.
10만명 발끈
정부는 다만 여드름·탈모 질환을 치료하지 않고 처방전을 써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치료보단 약을 먹으라고 유도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과거 영국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여드름 치료를 받은 환자 중 95%는 흉터가 남는다. 따라서 여드름이 결코 가벼운 질환만이 아니기에, 상태에 따라 부가세 적용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병·의원에서 여드름 진료를 받은 사람은 총 10만3304명이다. 의료기관 방문 건수는 23만여건이다. 과거에 비해 수 만명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 이 수치는 건강보험이 적용된 여드름 환자 인원으로, 비급여 항목(연고 사용, 얼굴 붉어짐 감소 시술, 피지 제거 시술, 여드름 흉터 방지 치료 등)의 치료를 포함한 여드름 진료 인원은 한해 약 3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기수술도 부가세
대부분의 미용성형에 대해 부가가치세가 붙는 가운데, 성기확대 수술도 이에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구체적 성형수술의 범위로는 성기확대 수술을 포함해 ▲소음순성형술 ▲유방성형술 ▲엉덩이성형술 ▲복부성형술 ▲배꼽성형술 ▲종아리퇴출술 ▲사지연장술이 있다. 이중 성기확대술은 발기부전 및 불감증 또는 생식기 선천성기형 등의 비뇨생식기 질환 치료, 포경수술, 외상후 재건술, 기능 개선을 위한 시술은 과세 제외되며, 사지연장술은 신장을 늘리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로 제한했다.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