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특집>추석 이후 터진다① 폭풍전야 정치권 3災

천둥에 번개, 비바람까지 몰아친다



용산참사·미디어법·노무현 수사 등 국감 이슈 ‘와글와글’
 MB 지지율은 상승…내각 불신임으로 기상도는 ‘흐림’

10월 정치권이 폭풍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9·3 개각 인사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후폭풍은 정치권을 한바탕 휘저을 수 있을 만큼 몸집을 불려가고 있고 굵직한 이슈들을 품고 있는 국정감사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화두는 개헌으로 이어질 도화선이다. 10월 재보선을 향한 여야의 거침없는 질주도 더해진다. 특히 인사청문회나 국감, 재보선은 따로 떨어져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며 파장을 확대시키고 있어 시한폭탄의 시계추를 빠르게 돌려놓고 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이 정치권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추석 연휴에 한숨 돌리고 나면 바로 여야가 격돌할 정치 이슈들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여야 격돌의 시작은 인사청문회 후폭풍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9·3 개각을 통해 인선한 총리와 장관 내정자들에게 ‘큰 하자’가 없는 것으로 보고 인준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이들을 ‘비리백화점’ ‘기네스북에 오를 추악한 내각’이라고 비판하면서 ‘인준 반대’ 방침을 분명히 했다.

드러난 ‘비리 백화점’
‘폐업 선언’ 할까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경우 인준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간 표 대결이 불가피할 정도다. 민주당뿐 아니라 충청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유선진당도 ‘세종시 원안 처리’를 주장하며 정 내정자의 인준을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노당당과 창조한국당도 뜻을 모았다.

한나라당은 인준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훨씬 웃도는 167석을 거느리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정 내정자의 인준은 무난하게 처리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정 내정자는 9·3 개각 인사들 중에서도 수위를 달리는 수많은 의혹을 받았고 대부분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도덕성’에 이미 심한 상처를 입었다.


정 내정자뿐 아니라 이귀남 법무부장관 내정자와 백희영 여성부장관 내정자도 도덕성과 능력 문제로 ‘불가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 내정자는 법을 집행할 최고책임자가 법을 어겼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며, 백 내정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과 전문성 부족 등 자질 문제로 인해 ‘자진사퇴설’이 나오고 있다.

야당 한 관계자는 “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 병역면제 의혹, 배우자 위장전입, 소득세 탈루, 논문 이중게재, 국가공무원법 위반, 아들 이중국적, 1000만원 뇌물수수, 배우자 그림 고가 판매 등 끝없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런 만큼 국민의 실망도 크다”면서 국민의 65.5%가 정 내정자의 총리직 수행이 부적절하다고 한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이 관계자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말처럼 ‘성인군자를 뽑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사람을 뽑자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야당시절 인사청문회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엄격한 도덕적 기준과 잣대를 주장했던 한나라당의 철면피함과 이중적인 태도가 절망스럽다”고 꼬집었다.

정 내정자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많은 의혹이 제기되면서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의혹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이 ‘결격사유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정권 초 ‘강부자 내각’ ‘고소영 내각’에 버금가는 ‘도덕 불감증 내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는 이러한 사태가 내각불신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10월5일부터 시작되는 국감은 각 상임위마다 굵직한 이슈를 안고 있다. 보건복지가족위원회 국감에는 이번 국감 최대 이슈로 부상한 신종플루가 자리하고 있다. 다른 상임위에도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과잉수사, 미디어법,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이 골고루 포진돼 있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 심사를 앞두고 4대강 사업과 감세정책을 조목조목 따져 묻겠다고 나서 여야간 전선은 더 확장될 전망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여야 의원들이 국감에 사활을 걸고 있다”면서 “국감 후 바로 재보선이 찾아오는 만큼 국감 기간 동안 여야가 격렬히 다투는 일이 빈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8·15 메시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 문제도 불씨가 살아 있다. 여야 모두 이를 개헌과 연계시켜 바라보고 있지만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상임위마다 이슈 가득
국감 ‘보물창고’ 열렸네

이 대통령은 선거구제 행정구역 개편 문제를 언급한 데 이어 지난 15일에는 개헌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제한적 개헌론’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처리하려면 이뤄지기 힘든 만큼 “정치권에서 아주 신중하게 현실성 있도록 범위를 좁혀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행정구역 개편이나 선거구제 개편 문제를 놓고 여기에 통치 권력이나 권력구조에 대해 제한적으로 개헌하면 검토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상수 원내대표는 “개헌은 시대적 요구”라며 “빠른 시일 내에 의원총회를 소집해 당내에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 10월 재보선이 끝나면 국회에서도 개헌특위가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개헌특위가 구성되면 본격적으로 권력구조 중심의 개헌 논의를 다뤄 내년 상반기까지 완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몽준 대표는 “개헌은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집권 초기에 해야 하는데 늦었다”고 제동을 걸었다.

이강래 원내대표도 “개헌은 졸속하게 몰아치듯 속도전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면서 “개헌과 관련해서는 국민적 공감대와 여건이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은 여야가 개헌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만큼 재보선 후 다시 한 번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사청문회 이후 내정자들에 대한 문제 제기, 국감 등 각종 정치 이슈가 결국 향하는 곳은 10월 재보선이다. 사안마다 여야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재보선에 미칠 영향력을 배제한 채 이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재보선이 확정된 곳은 경기도 수원 장안과 안산 상록을, 강원 강릉과 경남 양산, 충북 증평 진천 괴산 음성이다.

민주당은 손학규, 김근태라는 ‘빅카드’로 다시 한 번 ‘수도권 상륙작전’을 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손학규 전 대표가 불출마 선언과 함께 지원유세를 약속하고 나서면서 김근태 카드까지 포기했다. 대신 수원 장안에 한나라당 후보로 박찬숙 전 의원이 뛰게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장상 최고위원을 ‘대항마’로 내세우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양산에는 박희태 전 대표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 민주당에서는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원을 받고 있는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이 출격 준비를 마무리했다. 박 전 대표라는 ‘거물’이 버거울 것이라는 평이지만 한나라당 공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이들이 무소속으로 속속 출마를 준비하고 있어 여당이 지리멸렬하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제법 탄탄한 친노 진영의 ‘뒷배’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안산 상록을은 지역 일꾼들의 승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재보선 지역에 포함된 충북 증평 진천 괴산 음성에는 아직 후보군만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경제회복의 신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데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고 있다. 야권의 ‘중간심판론’을 견제하며 ‘지역 일꾼’에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4월 재보선에서의 아픈 패배로 당 지도부가 휘청거렸던 만큼 이번 재보선에서도 쓴잔을 마신다면 대대적인 당 개혁과 조기전당대회를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국감에서 현 정부의 실정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데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상임위별로 4대강 살리기 사업, 세종시법, 부자 감세 이슈들을 역할 분담해 여권의 아킬레스건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정치 이슈도, 국감도
목표는 10월 재보선

특히 충청권이 재보선에 포함됨에 따라 정국 최대 현안으로 급부상한 ‘세종시’ 문제를 이슈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정 내정자까지 세종시를 변경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 충청권 민심을 움직일 ‘호재’가 될 수 있다는 것.

한 정치분석가는 “이번 재보선에서는 4월 재보선 때보다 여권에 유리한 구석이 보인다”면서도 “재보선은 여당보다는 야당에 유리한데다가 재보선 바로 전에 있을 국감에서 정부의 실정이 계속해서 거론될 것이기 때문에 여당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10월 정치권엔 수많은 이슈들이 혼재돼 있어 어떤 사안이 얼마만큼의 파장을 일으킬지 예측이 힘들다”면서 “여야간 정쟁으로 재보선 판도가 바뀌게 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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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