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최근 경찰은 청소년 유해환경 집중 단속 결과를 발표하면서 상당수의 10대가 위조 또는 변조된 신분증을 사용·매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술집을 비롯해 클럽, 모텔 등 미성년자 출입이 제한된 곳을 '뚫기' 위해 위조된 신분증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위조된 신분증이 청소년 사이에 이미 공공연한데도 이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리스크는 자연스레 업주들이 떠안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아 들뜬 분위기 속에 일부 10대들이 유해환경에 노출되고 있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출입이 제한된 유흥업소도 자유로이 드나들고 있다. 이에 경찰은 수능을 전후로 해 청소년 유해환경 집중 단속 기간을 갖고 6만70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했다.
교묘한 방법
그런데 집중 단속에 적발된 청소년 중 상당수는 위조 또는 변조된 신분증을 사용하고 있거나 매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년들의 신분증 위·변조는 각종 자격증 및 증명서 위조 등 중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까닭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서울 종로구와 마포구 등 번화가가 밀집한 지역을 찾으면 고교생으로 보이는 남녀가 술을 마신 채 숙박업소로 들어가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현행법상 모텔 업주가 미성년자의 이성 간 혼숙 장소를 제공할 경우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업주도 할 말이 있다. 미성년자가 위·변조된 신분증을 내밀 경우 속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 일부 청소년들은 교묘한 수법으로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수법은 자신의 신분증에서 특정 숫자를 긁어낸 뒤 다른 숫자를 기입하는 것이다. 가령 96년생인 한 청소년은 신분증에 쓰인 숫자 6을 0으로 바꾸면 성인으로 둔갑할 수 있다.
이밖에도 기상천외한 신분증 위조 수법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검색사이트인 구글에서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면 신분증 위조 방법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일부 10대들은 웹사이트를 이용해 위·변조한 신분증을 또 다른 청소년에게 되파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등록증 제작'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시도하면 수백여개의 신분증 위조 사이트가 자동 링크된다.
이처럼 공공연한 불법에 주점 주인은 울상이다. 미성년자 출입이 적발되면 대개 영업정지를 당하는데 심한 경우 손실을 메꾸지 못해 가게 문을 아예 닫기도 한다.
한 주점 주인은 고용했던 아르바이트생이 알고 보니 미성년자였던 황당한 사건에 휘말렸다. 몇 개월을 함께 일했던 직원이 겨우 19살이었던 것. 해당 아르바이트생 역시 위·변조된 신분증을 써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3일 경기 화성에서는 김모군 등 청소년들이 술을 마신 뒤 난투극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음주 측정을 한 경찰은 곧장 김군 등이 술을 마신 장소를 캐물어 실적을 올렸다. 관할 경찰은 청소년에게 신분을 묻지 않고 13만원 상당의 주류와 안주를 판매한 혐의로 주점 업주 1명을 입건했다.
같은 날 경찰은 청소년 우범지역을 순찰하던 중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고교생 무리를 발견했다. 경찰은 즉각 담배를 수거조치하고 담배를 판매한 업주를 역추적해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청소년들은 담배를 살 때 위조된 신분증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업주가 처벌을 피할 방도는 없다.
주점·클럽 출입 위해 범행
청소년 유해환경 단속 강화
신분증 위조 사범 대거 적발
최근 경찰은 지난 10월28일부터 12월13일까지 총 7주간 진행된 '청소년 유해환경 집중 단속'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경찰은 수능 및 동계방학을 앞두고 음주와 흡연 등 청소년 비행에 대한 우려가 증가함에 따라 학교·지자체·NGO와 함께 집중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청소년에게 술·담배와 같은 유해약물을 판매하거나 주점 등 유흥업소에 출입시키는 행위를 적발해 모두 1172명을 검거했다고 알렸다. 특히 유흥업소와 숙박업소 등에 출입하기 위해 신분증을 위·변조하거나 매매한 청소년은 174명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인터넷을 통해 신분증 위·변조 방법을 공유하거나 거래를 조장하는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사이트(혹은 게시물) 139개를 폐쇄 또는 삭제 조치토록 했다.
이중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제작·판매한다는 글을 게시한 26개 사이트에 대해서는 사이버수사팀에 강력수사 의뢰를 했다.
그러나 경찰의 집중 단속 후에도 신분증 위조는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제보자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홍대 클럽에 갔는데 스스로를 미성년자라고 한 여학생이 꽤 많았다"면서 "신분증과 실제 이름이 다른 걸 보면 다른 사람의 신분증에 자신의 사진을 갖다 붙인 것 같다"고 전했다.
10대들이 이처럼 신분증 위조에 거리낌이 없는 건 범죄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주민등록증 위조는 엄연한 형사 처분 대상이며, 10년 이하의 징역을 내릴 수 있는 중범죄. 그러나 실제 법집행이 엄격히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10대 범죄에 너그러운 사회 분위기가 일조한다.
관할부처 및 치안당국은 신분증 위조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지만 또렷한 대안은 없는 상황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전자 신분증 도입을 한 방법으로 언급하기도 했지만 편성 예산 등 제반사항을 고려했을 때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술과 이성 때문에…
치안당국도 뾰족한 해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 한 경찰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노출되고 있는 신분증 위조 게시글에 대해 꾸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비교적 범죄 사실이 큰 신분증 위·변조 사이트에 대해서는 법적용을 엄격히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