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들 등친 사기사건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1.02 10: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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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들 울린 못된 ‘할배 카사노바’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2011년 개봉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 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려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나 2013년 현실판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어느 60대 카사노바의 구속으로 씁쓸한 결말을 맞았다. 이 카사노바로부터 억대 사기를 당한 피해 여성들은 경찰 조사에서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들을 상대로 거액의 금품을 뜯어낸 60대 카사노바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23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외로운 처지에 놓인 60∼70대 여성 7명을 유혹해 5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최모(64·무직)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외로움 이용

경찰 등에 따르면 최씨는 서울 송파구를 비롯해 경기 하남·화성, 강원 태백 등 전국을 누비며 사기 행각을 벌였다. 최씨에게 속은 피해자들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돈을 최씨에게 건넸다.

최씨는 165cm의 작은 키에 비교적 평범한 얼굴의 소유자이면서 호탕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전형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그를 만났던 여성들은 한결같이 최씨가 시원시원한 화술을 구사했다고 진술했다.

최씨는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여러 명의 여성과 동시에 교제했다. 현재까지 피해자로 드러난 할머니만 모두 7명. 사건 경과를 지켜봤을 때 수사 과정에서 최씨의 여죄가 드러날 가능성도 낮지 않다.


피해 할머니 A(72)씨는 최씨에게 2억4000만원을 건넸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2009년 10월 서울 송파구 한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A씨는 자신에게 다가온 최씨를 운명으로 믿었다.

이 자리에서 최씨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서로 의지하자”며 A씨에게 접근했다. 취기가 오른 최씨는 "자식들 있어봐야 무슨 소용 있나.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등의 말로 A씨의 환심을 샀다.

남편과 사별한 A씨는 외로워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타난 최씨에게 A씨는 마음을 열었다. A씨가 호감을 갖자 최씨는 거칠 것이 없었다. "머물 곳이 없다"는 말로 운을 띄웠다. 최씨와 A씨는 동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A씨의 돈이 목적이었던 최씨는 곧 본색을 드러냈다. A씨의 명의로 된 아파트를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아야 한다고 A씨에게 요구했다.

A씨는 최씨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2억7000만원을 덜컥 대출받았다. 그러나 최씨는 이 가운데 2억4000만원을 챙긴 뒤 잠적했다. A씨는 연락을 취했지만 닿을 방도가 없었다.

이 무렵 최씨가 향한 곳은 강원도 정선에 있는 한 카지노였다. 그는 A씨에게서 받은 돈으로 도박을 했지만 모두 탕진했다. 돈이 다 떨어진 최씨는 또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서로 적적한 처지인데 의지하며 살자"는 수법은 동일했다.

하지만 최씨의 정체는 사기꾼이었다. 그는 사기죄로만 모두 네 번의 실형을 살았으며, 유흥비 마련을 위해 여자를 만날 뿐이었다. 최씨는 피해 여성들을 만나면서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속였지만 실은 사업장은커녕 주거지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최씨는 주로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필요할 때만 여성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돈을 챙긴 뒤에는 연락을 끊었다. 혹시 모를 추적을 피하기 위한 행위였다.

60∼70대 여성 7명에 5억원 가로채
호탕한 성격과 시원한 화술로 유혹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경찰은 최씨가 서울 중랑구에 있는 한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빌려간 사실을 확인했다. 잠복에 들어간 경찰은 추적 끝에 지난 3일 경기 하남에 있는 한 모텔에서 그를 체포했다.

수사 결과 대부분의 피해 여성들은 남편과 사별한 독거노인이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고 있지만 이처럼 상대방을 유혹해 사기를 치는 경우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물질적인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피해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데 최씨는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다. 5억원이나 되는 돈을 탕진해 놓고도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에서 최씨는 "(여성들에게) 좀 얻어먹기는 했지만 돈은 빼앗아 쓴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또 피해 할머니와의 대질 신문에서도 "XX년아, 내가 언제 그랬어"라며 호통을 쳤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지난 26일 경찰은 "피해 금액이 큰데다 반성하는 기색이 없어 구속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 경찰 관계자는 "최씨의 경우처럼 노년층을 노린 사기 범죄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60세 이상 1인 가정은 120만 가구를 훌쩍 넘었다. 독거노인 가정이 보편화면서 노년층만을 노린 악질 범죄도 비례하여 증가하는 상황이다.

모텔서 체포

하지만 범죄를 예방할 또렷한 해법이 없다는 건 국가와 가정이 함께 안아야 할 숙제다.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들은 지능범죄의 주 타깃이 됨은 물론 피해를 당해도 범죄 사실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 있다.

이 같은 배경으로 지금 대한민국에선 '제2의 최씨'와 '제3의 최씨'가 혼자 사는 할머니를 노리고 있다. 뻔뻔함으로 무장한 카사노바에 속지 않는 것만큼이나 가족 간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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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