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다. 성탄절의 기쁨과 연말연시의 행운을 기원하는 듯 반짝이는 불빛에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형 트리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트리 위에 장식된 십자가 때문이다.
지난 9일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하 종자연) 홈페이지에 한 편의 논평문이 게재됐다.
‘공공의 장소에 특정종교의 상징물인 십자가를 부착한 성탄 트리 설치는 공직자 종교중립 위반’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십자가가 걸린 성탄 트리는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종자연은 한국에서의 크리스마스가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이 기쁨과 행운을 기원하는 날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특정 종교를 의미하는상징물의 설치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장소인데…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높이 18m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됐다.
서울시청 앞에 성탄절을 축하하는 트리가 설치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당시 서울은행이 기증한 20m 높이의 산전나무로 제작된 성탄 트리는 ‘시민공동성탄수’로 불렸다. 74년 에너지소비정책의 일환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시청 앞 트리는 7년 만인 80년에 다시 세워졌다. 81년에는 전구 1만 여개가 달린 10m 높이의 트리 꼭대기에 88올림픽대회 유치를 축하하기 위한 한국올림픽 위원회기가 장식되기도 했다. 이후 에너지 절약을 이유로 전구수와 트리 위 전구 점화시간의 미묘한 변화는 있었지만 성탄 트리의 설치는 지속됐고, 트리 위에는 항상 별 모양의 장식이 있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별 모양의 장식이 십자가 모양으로 바뀌었다. 서울시청에 따르면 시청 앞 광장의 성탄 트리가 처음 세워진 60년대부터 2001년까지는 서울시에서, 2002년 이후부터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CTS(기독교 방송국)가 설치를 맡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서울시청 앞에 설치되는 트리에는 매년 십자가가 장식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울시청 앞 트리는 여의도순볶음교회와 CTS가 설치를 담당했다.
트리 위 십자가 장식물 설치에 일부 시민들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무교인 직장인 정씨는 “기독교의 날이라는 걸 너무 강조한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일반 기념일처럼 지내고 싶었는데 그걸(십자가) 보면 종교적인 기념일로 다가오는 듯해 반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씨 또한 “서울시청은 공공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바라보는 곳인데, 십자가를 종교적인 의미로 설치한 거라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처음 설치된 60년대부터 꼭대기 별모양 달아
2002년 이후 갑자기 기독교 십자가 모양으로
반면 기독교인 직장인 이씨는 “크리스마스 기원이 기독교랑 연관되어 있으니 트리에 십자가를 두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다만 공공장소인 서울시청 앞에는 중립적인 상징물을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특정 종교를 의미하는 상징물에 부정적인 일부 시민들의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종자연에 따르면 2008년에도 한 시민이 시청 앞 성탄 트리와 관련하여 공직자 종교차별신고센터(공직자의 종교차별 사례를 신고하는 센터)에 민원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시에 공문을 통해 “크리스마스 트리 위의 십자가는 타종교 기념일 때 설치되는 상징물 등과의 형평성 관계로 많은 논란이 예상되므로 국민의 정서 등을 감안하여 종교계 자체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종교시설 설치장소 사용허가 시 종교 간 형평을 고려하고 종교시설 설치 주최 측과 충분한 대화와 논의 등을 통해 종교상징물로 인한 일반국민의 불편과 종교차별의 오해가 없도록 권고해 줄 것”이라며 시정권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2013년 현재까지도 십자가가 달린 트리의 설치는 계속 되고있다. 종자연은 이를 방관하는 서울시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9일 한국교회연합 홈페이지에는 앞서 게재된 종자연의 논편문을 반박하는 글이 올라왔다.‘종자연은 종교의 자유 침해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글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기독교 최대 기념일에 십자가를 달아도 상관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기독교 기념일?
CTS 측은 이와 관련해 “향락을 즐기는 날로 전락해버린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트리를 설치하고 있다”며 성탄 트리 설치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트리 상단의 십자가 조형물은 소비와 향락으로 물들어 의미가 변질되어버린 성탄절에 인류의 구원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그의 사랑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지속적으로 설치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청의 한 관계자는 서울광장에 십자가 트리설치와 관련해 “종교적 자유를 제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계속되는 시민들의 (트리관련) 민원에 대해서는 “12월 중으로 “열린광장위원회를 개최해 안건에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트리 논란’벨기에선
기독교계 “트리 치워”
과거 벨기에에서도 수도 부루셀 시내에 설치된 82피트(약 25미터) 높이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논란이 된 바 있다. 기존의 성탄 트리와 다른 형태의 트리가 설치되면서 온갖 비난에 이어 온라인 청원운동까지 벌어졌다.
부루셀 시내에 설치된 새로운 트리는 녹색빛을 내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부루쉘의 현대적인 이미지와 전통의 뿌리를 형상화하기 위해 제작됐다. 그러나 제약회사 로고와 유사한 디자인에 시민들은 ‘난해하고 추상적이다’ ‘약국같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철거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했다.
기독교계는 “부루셀 시청이 전통적인 디자인의 트리가 이슬람 신자나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거스를 수 있다는 이유로 난해한 디자인을 채택했다”며 철거를 요구했다. 트리 디자인 논란에 부루셀 시장은 “오히려 벨기에가 기독교 문화권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굳이 트리까지 기독교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번 트리는 기독교보다는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희망을 상징하는 빛을 주제로 삼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