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관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이해 단체가 4곳이나 되지만 어느 한 곳도 속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 난방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기념관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일요시사>가 가봤다.
지난 9월 1000만원에 육박하는 전기료를 미납해 폐관 위기에 몰렸던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하 매헌 기념관)이 또 다시 수백만원에 달하는 전기료를 내지 못하는 등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존폐의 위기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 '시민의 숲' 초입에 있는 매헌 기념관은 윤봉길 의사의 업적과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윤 의사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4월 죽음을 무릅쓴 폭탄 투척으로 나라를 잃은 민족의 울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해방 후 우리 정부는 윤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며 예우했다. 이듬해에는 사단법인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가 발족했다. 정부와 민간의 지속적인 관심은 매헌 기념관 건립 준비로 이어졌다. 이들의 노력은 1988년 12월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개관 25년 만에 매헌 기념관은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재원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1000만원의 성금은 밀린 공과금 납부에 쓰였다. 누구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매헌 기념관 직원들을 찾았다.
지난 17일 매헌 기념관 주변은 동장군의 맹위로 한산했다. 기념관 정면에 마련된 주차장도 드문드문 차가 있었을 뿐 실제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기념사업회 측은 "아무래도 공원에 왔다가 기념관에 들르는 사람이 많아서 추운 겨울보다는 봄이나 여름에 관람객이 더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3층 높이의 기념관 외관은 겉보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기왓장으로 덮인 지붕 정면과 측면의 색깔이 달랐다. 이유가 있었다. 기왓장 교체 공사가 재정 부족으로 일부 구간에서만 진행된 것이다.
당초 기념관 측은 기왓장 낙하 등 안전사고를 이유로 지붕 전면 교체 공사를 추진했다. 하지만 견적이 어마어마한 공사라 시급한 곳부터 처리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교체되지 않은 기왓장 일부가 또 다시 낙하하고 있다는 것. 다행히 기념관 입구와는 거리가 먼 곳이라 인명 피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혹시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 기념관 측은 해당 구역에 접근 근지 라인 등을 설치한 상황이다.
기념관 내부는 한기가 스민 듯 쌀쌀했다. 정문 쪽 간이 데스크에서 안내를 맡은 직원은 두꺼운 다운점퍼를 입고 근무하고 있었다. 난방비를 절감하기 위함이다. 이 직원은 근무 시간 내내 추위와 씨름해야 했다.
1층 전시장 내부도 관람객이 많지 않을 때는 전원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단체 관람객이 없는 평일 전시장은 어두컴컴하다. 월 평균 200만원이 넘는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어 벌어지는 일들이다.
또 1층 전시장에는 기록물 보관을 위한 온·습도 조절장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념관 측은 "에어컨을 통해 조절하고 있다"고 했지만 습도에 취약한 구조는 기록물 훼손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웠다.
기념관 관리 책임자인 양시헌 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을 만났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진과 연예인 매니지먼트사 대표 등을 역임한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양 처장의 화려한 이력보다는 취재 내내 다운점퍼를 벗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 더 뇌리에 박혔다.
전기료 또 미납 "직원들 추위와 씨름"
재원 이미 바닥…내부시설도 위태위태
그는 "기념사업회가 현재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은 맞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한 모금 운동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쓸데없는 오해를 사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다.
양 처장은 그간 기념관 운영비가 "기념사업회 회원들의 회비로 마련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월 1500만∼1800만원에 달하는 운영비의 적자 보전은 임원들이 내는 특별회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전했다. 이마저도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임원들의 지갑 또한 얇아졌다는 후문이다.
주차장 수입 등 기념사업회 측이 조달할 수 있는 월 최대 운영비는 1200만∼1300만원이다. 그러나 겨울에는 주차장 수요가 줄어 수익이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다. 자연스레 기념사업회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양 처장이 밝힌 직원 급료는 월 90만∼100만원 선이다. 4인 가구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열악한 급여를 이유로 얼마 전 입사했던 젊은 여직원이 그만뒀다. 여기서 생긴 업무 공백은 자연스레 남은 이들의 몫이 됐다. 마음 같아선 결원을 충원하고 싶지만 월 100만원을 받고 일할 수 있는 구직자는 많지 않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상황. 해결책은 없을까. 양 처장은 "국고를 지원받는 것만이 만성 적자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국가가 소유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백범 김구 기념관'은 매해 8억원에서 13억원에 달하는 국가보훈처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매헌 기념관이 받는 국고 보조금은 0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매헌 기념관은 민간 소유에서 서울시로 기부채납 됐다가 지방분권이 촉진되면서 서초구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중앙 정부 기관이 처음부터 소유권을 갖고 있던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는 성격이 다른 셈이다. 때문에 매헌 기념관은 이해단체인 국가보훈처로부터 영속적인 재정 지원을 받기 힘든 구조로 전해진다.
서울시는 기념사업회 측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소유권을 갖고 있는 서초구와 협의해 매헌 기념관의 소유권을 국가보훈처로 이전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이다. 아직 세부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서울시와 서초구, 국가보훈처 모두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국고 지원 시급
연간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은 약 4만명으로 추산된다. 양 처장은 "돈을 본다면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이 정말 바라는 건 더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윤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봉길 의사 '훙커우 의거'는?
독립운동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많지만 매해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추모되는 대표적인 의인이 있다. 바로 1932년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윤봉길 의사다.
윤 의사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일본군 전승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했다. 윤 의사의 의거로 상하이 침공의 상징적인 인물인 시라가와 육군대장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며, 10여명의 일본군 전범은 함께 처단됐다.
후일 '훙커우 의거'로 명명된 이 사건은 당시 꺼져가던 조선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였던 장제스 총통이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탄복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조선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윤 의사는 일본군에게 붙잡혀 같은 해 12월19일 총살 처형됐다. 윤 의사의 유골은 조선이 해방된 이후에야 고국에 안치됐으며, 정부는 윤 의사의 뜻을 기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