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의류 '소문과 진실'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23 11: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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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감에 피묻은 구제옷…혹시?

[일요시사=사회팀] 중고의류를 흔히 ‘구제’라고 부른다. 괜찮은 상품은 대부분 일본, 미국 등에서 수입한다. 발품만 잘 팔면 A급 상품을 구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모래 속 진주 찾기지만, 간혹 중고명품도 보인다. 그런데 구제 옷에 얽힌 섬뜩한 이야기가 있다. 죽은 사람의 옷이 아니냐는 의문이다. 그 소문과 진실은 무엇일까.




한국은 구제 옷 수출국이자 수입국이다. 우리의 헌 옷을 제3국으로 수출하면서, 동시에 일본, 미국, 이태리 등으로부터 구제 옷을 수입한다. 구제시장은 현재 유행하는 스타일과 차별화된 모습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한 상태다. 과거에는 패션디자인과 학생이나 연극인들이 주 고객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스타일창고’가 됐다. 단골 여부에 따라 A급 상품을 고를 수 있는 특권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구제 옷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찝찝한 얘기들

보통 구제 옷은 세탁되지 않은 상태로 판매된다. 이렇게 판매되다 보니 간혹 옷 주머니에서 정체모를 영수증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영수증은 애교다. 구제이기 때문에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옷의 안감 등에서 혈흔을 발견했다면 어떨까.

실제로 일부 구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구제 옷이 죽은 사람의 옷이라고 주장한다. 외국에서 사망한 노숙자의 옷이라는 것. 정확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구제 옷이 무게를 달아 대량으로 수입되다 보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와 관련된 괴담도 떠돌고 있다.

대학생 A씨는 온라인 구제숍을 통해 고가의 명품 가방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가방을 멨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 낯선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A씨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후 이러한 꿈은 계속 반복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 좋은 일들이 이어졌다. 불안감을 느낀 A씨는 결국 무속인을 찾아갔다. 무속인은 A씨의 가방에 원한이 있기 때문이라며 가방을 당장 버리라고 했다.


B씨는 구제숍을 통해 고가의 청바지를 구입했다. 그러나 기장이 길어 수선하기 위해 세탁소로 찾아갔다. 세탁소 주인은 밑단을 접다가 노란 얼룩을 발견하고는 “이거 혈흔이었던 것 같다”며 “혹시 다리를 다친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B씨는 당황하며 청바지를 들여다봤다. 그는 얼룩을 혈흔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찝찝한 기분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처럼 구제 옷과 관련된 괴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구매자의 망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구제 옷의 유통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구제의류 수입업자가 일본 미국 이태리 등지에서 수집한 중고의류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과 현지에서 깨끗한 상품으로 선별해 수입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국내에서의 도매는 원 수입회사에서 직접 도매를 관장하는 곳과 상품을 추출해 도매를 하는 구조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의류수거함 안에 있는 옷들 중 일부도 구제시장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기불황에 저렴한 구제시장 북적북적
구매자 사이에 황당한 ‘괴담’떠돌아

지난 17일 구제 옷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광장시장의 구제상가를 방문했다. 광장시장 내 2층에 위치한 구제상가는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쇼핑 중이었다. 그들과 함께 발걸음을 맞춰봤다.

일단 어떤 상품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구제 옷이라 그런지 듣던 대로 독특한 상품들이 눈에 띄었다.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은 없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일 것 같은, 유니크한 스타일의 옷들로만 꽉 차 있었다. 옷걸이가 촘촘히 걸려있을 정도로 물량은 충분했다.

구제 숍마다 특징이 있었다. 가방 파는 곳, 바지 파는 곳, 니트 파는 곳, 신발 파는 곳 등이었다. 그리고 구제숍을 지날 때마다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동생 이거 6만원에 줄게” “그냥 4만원에 주세요” “오케이 4만5000원, 더 이상은 안 돼”


흥정 소리에 집중하고 있던 기자의 팔을 한 판매자가 붙잡았다.

“삼촌 뭐 찾아요? 말만 해요 바로 찾아드릴게” “재킷 괜찮은 거 있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판매자는 재킷 여러 장을 펼치며 “얼마 생각하는데?”라며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라고 했다. 시장조사를 전혀 못한 탓에 얼마까지 해줄 수 있냐고 묻자, 판매자가 직접 가격을 제시했다. “이건 4만원, 이건 6만원….” 가격을 듣고 나가려고 하자 판매자는 파격 제안을 했다. “오케이! 기다려봐, 6만원짜리 4만원에 줄게” 끝내 거절하자 한 번 더 붙잡고는 “오늘 첫 손님이니까 진짜 그냥 준다. 3만5000원에 가져가” 이렇게 고무줄 같은 흥정은 태어나서 처음 느꼈다. 알아서 가격이 내려갔다. 아마 일반 의류였다면 이러한 흥정의 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구제니까 가능한 그림이었다.




재킷 등 몇몇 옷들의 가격을 물어보면서 구제 옷들의 시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시장조사가 된 상태에서 다시 다른 숍들을 찾았다. 보통 셔츠와 니트는 5000원에서 2만원 사이, 바지는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재킷류도 가죽 등 소재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었다. 쉽게 말해, 5만원을 들고 가면 적어도 최소 2∼3개의 옷을 집어올 수 있다. 물론 구제도 구제 나름. 브랜드와 상태에 따라 옷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구제 옷은 딱히 하자가 없었다. 우려했던 얼룩은 찾기 힘들었다. 이왕 방문한 김에 하나라도 건지자는 생각에, 한 숍에 들어갔다. 쭉 둘러본 결과 10만원이 넘는 브랜드 니트를 2만원에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판매자에게 항간에 떠도는 괴담을 전했다.

“그런 이야기는 예전부터 돌고 돌았어요. 근데 여기 옷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그런 상품은 아예 취급을 안 해요. 그리고 저희 숍은 1주일에 2∼3번 새로운 물건들이 대량으로 들어와요. 보통 미국, 일본, 이태리 등에서 무게 달아 따오는 거죠. 솔직히 가죽제품 같은 건 잘 찾아보면 여기서 사는 게 이득이에요. 상태 좋은 거 헐값에 가져갈 수 있어요. 가끔은 택 달린 옷도 볼 수 있죠. 구제도 고르는 방법이 있어서 단골들은 A급 상품을 알아서 잘 골라가요.”

잘 고르면 횡재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옷 좀 입는다는 구제마니아들에게 구제상가는 ‘보물창고’였다. 그리고 단골들은 대부분 패션디자인과, 시각디자인과 학생, 인근 대학로에 있는 연극인들이라고 전해진다. 저렴하고 독특한 탓에 많이 찾는다는 것. 그런데 요즘에는 일반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의 발걸음도 늘었다고 한다. 다시는 생산되지 않는 구제 옷의 희소성 때문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류수거함 헌옷 가져가면?

의류수거함에 있는 헌옷을 가져가면 절도죄가 성립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의류수거함에 담긴 헌옷은 수거함 설치자 개인의 소유라는 판단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임성근)는 지난 15일 의류수거함에 있는 의류를 꺼내간 혐의 등(강도상해 등)으로 기소된 장모(50)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류수거함 설치자가 주기적으로 옷들을 수거한 점 등에 비춰 수거함에 담긴 재활용 옷들은 설치자 소유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가정형편이 어렵고 수거함 관리자와 원만하게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1심이 선고한 징역 3년6개월보다 형량을 낮췄다.

장씨는 지난 4월 수원의 주택가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에서 재활용 의류 40kg를 꺼내 갖고 이를 제지하는 의류수거함 관리자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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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