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노숙자’ 19억 분실소동 전말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0 11: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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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 돈가방 들고 방랑생활

[일요시사=사회팀] 자신을 50억원대 자산가라고 주장하는 50대 노숙자가 19억여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경찰에 분실신고를 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자로만 매월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받는 ‘귀족 노숙자’였다. 그가 돈뭉치를 들고 거리를 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숙자가 19억을 분실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10시쯤 부평철도경찰센터. “19억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박(53)씨가 센터에 들어와 쭈뼛쭈뼛 꺼낸 이 한마디에 사무실 안이 술렁였다. 그는 “서울 동대문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의자에 앉은 채 부천역으로 가던 중 깜빡 잠든 사이 인천역까지 왔는데, 일어나 보니 1억원짜리 수표 19장 등 19억1200만원이 든 지갑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남은 건 소주 3병과 통닭 한 마리뿐이었다.

물려받은 재산

19억원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는 주장과 그 큰 금액이 지갑에 들어간다는 사실 모두를 믿지 못한 경찰은 “그게 말이 되냐”며 추궁했다. 하지만 박씨가 주장한 매수의 지폐는 작은 지갑에 모두 들어갔다. 이에 경찰은 당장 1억원짜리 수표 19장 등을 모두 정지했다.
이어진 박씨의 주장은 신빙성을 더했다. 박씨는 경찰에게 “나는 과거 신문에 보도된 바 있는 ‘50억원 노숙자’이다”고 말했다. 2년 전 보도된 노숙자 이야기가 자신이라는 것.
확인 결과, 당시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된 노숙자의 이름과 나이가 박씨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50억원 노숙자’의 사연은 이미 알려진 바 있다. 박씨는 2011년 8월31일 오전 5시30분쯤 인천 중구 인현동 일대에서 노숙을 하다가 돈가방을 잃어버린 뒤, 이를 중부경찰서에 신고하면서 ‘귀족 노숙자’의 황당한 내용이 보도됐다.
당시 노숙자였던 박씨는 경찰에서 “술을 먹고 공원에서 잠깐 잠이 든 사이에 현금 500만원과 20돈짜리 금장 시계줄 등 1000만원 상당의 금품과 신분증 등이 든 돈가방을 분실했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실제로 이 가방을 훔친 임모(53)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의 사연은 놀라웠다. 충남 논산 출신인 박씨는 젊은 시절 부모에게 물려받은 토지 보상금 50억원 정도를 은행에 넣어둔 채, 이자로만 매월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으며 노숙을 해온 귀족 노숙자였던 것.

지하철서 졸다 지갑을…경찰에 신고 ‘술렁’
알고보니 50억 자산가 “이자만 월 1000만원”
“답답한 생활 싫어”3년 전부터 길거리 전전

당시 결혼도 하지 않고, 집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던 박씨는 경찰에서 “젊은 시절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고 한때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며 “변변한 직업 없이 지내다 2010년 초부터 노숙하기 시작해 인천, 서울, 천안 등을 전전했다”고 말했다.
노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호텔이나 모텔 등에서 잠을 자면 감옥 생활 같고 답답하기 때문”이라면서 “자유롭게 운동하고 밖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노숙자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씨의 지갑분실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국토교통부 서울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박씨는 지금도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게 맞다”면서 “단순 분실 등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에 있는데 지갑이 사라진 만큼 소매치기를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부평철도경찰센터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현재 본인(박씨)과 관련된 내용이 기사화되는 걸 매우 꺼린다”며 “기자들의 보도 때문에 많이 화난 상태다”라며 추가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자신과 관련된 내용이 복수의 언론사에서 보도되자 박씨는 흥분하며 경찰센터에 직접 전화해 기자들을 상대하지 말라고 항의했던 것.
박씨는 과거부터 인천시내 공원과 회관 등지를 떠돌며 숙식을 해결하는 등 자진해서 노숙자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8월 말에 500만원 상당의 금시계와 현금 500만원이 들어있던 가방을 도난당해 경찰에 이를 신고하면서 50억 자산가이면서도 노숙자 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씨는 이같은 절도 사건으로 자신의 사연이 언론에 공개되자 앞으로도 계속 노숙자 생활을 해야 하는데 신변에 불안을 느껴 쉽지 않게 됐다며 경찰에 항의한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

이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노숙자 생활을 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다.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이런 박씨에 대해 “자유를 추구하는 기인인 것 같다”고 전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 부양 가족이 없는 박씨는 검은색 가방에 자신의 금시계와 이자로 나오는 현찰을 넣고 다니며 홀로 노숙생활을 해왔다. 박씨에게 50억이라는 돈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외국인 노숙자 실태

이젠 길거리도 다문화 시대?

국내에도 외국인 노숙자가 꽤 눈에 띈다고 한다. 경제적 이유, 가정불화 등이 노숙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정확한 수는 파악되지 않지만 서울의 임시 보호소 4곳에 60여명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미뤄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에 족히 200∼300명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국적도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으로 다양하다.

외국인 노숙자는 관련 규정이 없어 내국인 노숙자처럼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고, 임시보호시설에서도 20일 이상 머물지 못한다. 또 합법적인 체류자인 경우 출입국관리법 위반이 아니기 때문에 본국으로 강제 송환하기도 힘들다. 선진국은 외국인 노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지 오래다. 노숙자 다문화시대를 맞은 셈인데, 뾰족한 수가 없다고 방치하기보다 보호 대책을 제도화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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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