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욕설 방송 천태만상

  • 최현경 mw2871@naver.com
  • 등록 2013.12.02 14: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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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욕하는 대담무쌍 프로그램들

[일요시사=사회팀‘삐∼’ 부적절한 단어가 나올 때 ‘삐’처리하던 방송이 이제는 대놓고 욕을 한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에 방영되는 드라마부터 아이돌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늘어가는 ‘욕설 방송’에 시청자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MBC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가 욕설 논란에 휩싸였다. 앞선 19일 여자 가수 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과 가상 부부로 출연하는 남자 가수 그룹 샤이니 태민은 가을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태민은 평소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손나은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 몰래 카메라를 준비했고, 석고로 손 모양을 뜨는 과정에서 일부러 “불편하다”며 짜증을 냈다. 태민의 차가운 행동에 서운함을 느낀 손나은은 개인 인터뷰에서 이내 속상했던 마음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결> 제작진 출연자에 “개xx구만”
편집 없이 그대로 전파…실수? 의도?

방송 이후 <우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들의 미방분 영상이 올라왔다. 문제는 손나은의 속마음 인터뷰 도중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에서 들리는 “개xx구만?”이라는 욕설이 화근이었다. 욕설을 들은 누리꾼들이 온라인에 문제의 욕설 부분만 편집된 영상을 올리면서 실시간으로 해당 방송이 검색되자, 제작진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해명글을 게재했다.

제작진은 “(욕설을 한) 목소리 주인공에게 확인한 결과 악의를 가지고 태민씨를 욕한 게 아니었다”며 “손나은씨의 속마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은씨가 너무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자 스태프가 나은씨를 위로하다 무의식 중에 그런 말을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시청자들은 “위로로 욕을 하다니” “스태프 하차하고 프로그램 내려라” 등의 반응을 보이며 욕설 자체에 대한 사과없이 ‘편집의 문제’로만 치부해 변명하기 급급한 제작진들의 공식사과문과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상으로 결혼한 남녀 연예인들의 부부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2008년 명절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단독 편성됐다. 당시 20~30대로부터 큰 인기를 얻으며 많은 스타커플들을 양성한 <우결>은 세계판이 제작되는가 하면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위로차원 한 말이
“개xx” 라고?

On style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4>도 욕설과 비방이 편집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방송돼 비난을 받았다.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4>는 3차례의 심사에 거쳐 최종 도전자를 선발해 패션잡지의 표지모델, 화장품 모델의 기회를 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지난 10월 출연자 정하은은 같은 방을 쓰게 된 황현주에게 “너 착한 척 하는 것 같아. 그런 거 재수없어. 너 존x 싸가지 없다. 뒤지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 존x 짜증나니까. 너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네가 한다고 말했지? 내 말 흘려서 듣냐”며 욕을 했다.

정하은의 욕설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을 붙여 욕설이 오갔음에도 이를 여과 없이 방송을 내보내는 제작진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했다. 이에 제작진은“서먹한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솔직한 마음을 터놓기 바랐다”고 해명했다.

며칠 뒤 푸켓을 방문해 다른 도전자들과 야자타임 시간을 가진 정하은은 “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황현주의 질문에 “평소 나를 의식하고 따라한다고 생각해 불편했다”고 답했다.


이후 Top5 선발에서 탈락한 정하은은 황현주를 찾아가 “내가 너를 오해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말을 해야지 했는데 이제는 말할 기회도 없다”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욕설논란으로 정하은과 함께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은 황현주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하은을 따로 만나 사과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시청률 노린
꼼수 아니냐

반면 SBS <런닝맨>은 실수로 출연진의 욕설을 편집하지 않은 채 방송해 곤혹을 겪었다. 지난 7월 14일 중국 상해에서 개최한 SBS <런닝맨> ‘아시안 드림컵 출전권 레이스’ 편에 축구 선수 박지성과 여자 가수 그룹 에프엑스의 설리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런닝맨 멤버인 유재석, 김종국, 하하, 이광수는 드림컵 출전선수로, 나머지 멤버 지석진, 개리, 송지효, 설리는 실내에서 경기에 임한 멤버들을 응원했다. 이 때, 제작진이 출연자 김종국과 지동원 선수가 선발로 앞섰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에서 설리는 ‘차오xx’라고 말했다. ‘차오xx’는 중국 현지에서 상대방의 부모님을 조롱하는 의미의 수위높은 욕설로 알려져 있다.

욕설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논란이 되자, 설리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이먼트는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와 출연진이 중국어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의도없이 따라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모르면 아예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다른 나라 연예인이 씨x이라고 욕하고 잘 몰랐다고 하면 괜찮겠냐”며 비난하는가 하면 일부 네티즌들은 욕설 부분을 편집하지 않은 채 내보낸 제작진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런닝맨> 조효진PD는 “방송에 포함된 설리의 중국어 욕설은 미리 알지 못했다”며 “중국어라고 하더라도 확인을 안한 건 우리 잘못이다. 편집했어야 하는 부분인데 실수였다. 앞으로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의 뜻을 밝히고 해당 방송의 ‘다시 보기’ 서비스를 즉각 중단시켰다. <런닝맨> 측은 이후 다시 보기 서비스에서 문제의 장면을 삭제했다.

앞선 3월에는 설리와 같은 소속사인 남자 가수 그룹 샤이니 온유가 ‘손가락 욕’으로 논란이 됐다.
지난 3월 18일 MBC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는 11개월 만에 정규 앨범 3집을 발표하고 타이틀 곡 ‘드림걸’로 활동 중이던 샤이니가 출연했다. 당시 ‘보이는 라디오’가 진행되고 있어 출연진들의 모습이 인터넷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방송 이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샤이니 온유 손가락 욕’이라는 제목의 글과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누군가 손가락 욕을 하고 있는 장면이 캡처된 사진들이 게재됐다.

<도전…> 출연자 대화 여과 없이 노출
가족과 보기 민망…불편한 시청자들

당사자의 얼굴이 방송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손가락 욕을 한 당사자의 소매부분이 노출되면서 누리꾼들은 같은 의상을 입은 온유를 의심했다.

문제의 장면은 DJ인 가수 윤하가 샤이니를 소개하기 전 온유가 멤버들과 장난치는 과정에서 한 행동으로 밝혀졌다. 다음날 온유의 소속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유야 어찌됐건 잘못된 행동이었다. 온유가 손가락 욕을 한 것에 대해 반성 중이다. 주의하겠다”며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고의성의 유무를 알 수 없는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일부 드라마는 극중 인물들의 ‘감칠 맛 나는 욕 연기’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평균 8%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또한 지나친 욕설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으로부터 제재받았다.


<응답하라 1994>는 복고 감성을 자극해 지난해 인기몰이를 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이어 스무살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욕설 논란의 문제는 극중 인물 중 경상남도 삼천포 출신의 삼천포(김성균 분)가 룸메이트인 전라남도 순천 출신의 해태(손호준 분)와 사투리를 쏟아내며 싸우는 장면에서 “눈깔 확 뽑아다가 깍두기랑 오독오독 씹어볼랑까”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방송 전부터 특별판으로 제작된 이들의 욕배틀은 23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쓴소리를 들었다. 

‘욕설’이 있어야
드라마가 재밌다

주인공 성나정(고아라 분)이 하숙집 오빠 쓰레기(정우 분)가 여자친구의 가슴을 만졌다는 말에 “변태xx, 저질, 색마”라는 등의 욕설을 퍼붓는 장면 또한 문제가 됐다.

방송 이후 <응답하라 1994>의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해당 욕설은 방송에서 부적절하다”는 민원을 받은 방통심의위는 지난달 20일 드라마의 사투리 욕설 등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고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 제51조인 ‘품위유지’와 ‘방송언어’ 위반으로 권고조치를 내렸다. 이에 일부 시청자들은 “욕을 해야 재밌는데”라며 아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개연성없는 스토리 전개, 연장 방송 등 ‘막장 드라마’로 뭇매를 맞고 있는 MBC 드라마 <오로라 공주>도 욕설 자막 논란으로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 9월 <오로라 공주>에는 극중에서 제작된 드라마 ‘알타이르’의 마지막 촬영 후 뒤풀이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날 오로라(전소민 분)에게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을 빼앗기고 기분이 상한 박지영(정주영 분)이 노래방에서 드라마 제작진인 윤해기(김세민 분)가 막춤을 추자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장면에서 속마음이 말풍선으로 표현됐다. 말풍선에는 ‘하이구, ㅈㄹ이 풍년이에요’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해당 장면이 본 시청자들은 방송이후 게시판에 “공중파 일일드라마가 맞냐” “황당하다”며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욕설 자막이 삽입된 것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냈다.


<오로라 공주>는 앞선 6월에도 오로라가 남자 주인공 오창석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속마음이 말풍선으로 표현됐다. 오창석이 다른 여자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ㅈㄹ을 떨어요” “놀고들 ㅈㅃㅈㄴ”라는 오로라의 생각이 자막으로 등장해 지난 8월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받고 “저속한 표현 등에 법규를 지키겠다”며 사과문을 내보내기도 했다.

극중 학생 입서
‘새x∼’‘지x∼’

스타배우들의 출연과 흥미로운 소재로 올해 인기를 끈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속물 국선전담변호사 장혜성(이보영 분)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 소년 박수하(이종석 분), 바른 생활 사나이 차관우(윤상현 분)가 만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드라마다.

지난 6월 12일에 방영된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국선변호사 장혜성이 살인미수로 기소된 고등학생 고성빈(김가은 분)의 변호를 맡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고등학생 신분의 피의자 고성빈이 피해 여학생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저 xx 끝까지, 야 이xx야, 뭐라고 xx리는지 면상을 보고 말겠다” 등의 욕설을 내뱉었다. 강도가 심한 욕설은 무음으로 방영됐으나 일부 욕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지난 7월 18일에 방송에는 주인공 장혜성이 회의 중에 자신을 위협한 살인마 민준국(정웅인 분)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민준국 소가 새끼를 낳으면 송아지고 개가 새끼를 낳으면 너다. 민준국 이 나쁜 xx야. 나 이제 너 하나도 안 무서워. 너 따위한테 겁 안 먹어. 꺼져버려”라고 욕설을 퍼부어 드라마 관련 검색어로 ‘욕’이 오르기도 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배째라 방송’ 1등은?

경고 받고도 ‘나몰라라’

지난 7월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종편사업자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제재조치 이행결과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출연자의 막말·저질 발언이나 선정적인 발언에 대한 제재가 이뤄졌음에도 해당 종편들이 출연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출연자로 인해 가장 많은 제재조치를 받은 종편은 ‘채널A’로 모두 10건의 ‘제재’를 받았으나 6건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채널A는 지난해 11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더티(dirty)한 작당”  “애송이 같은 아마추어” 등의 표현으로 ‘주의’조치를 받았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이에 최민희 측은 “오히려 윤 전 대변인은 2주 뒤인 채널A <이언경의 세상만사>에 출연해 ‘후보단일화는 막장드라마’ ‘후보단일화 TV토론은 사기꾼 같은 이야기’라고 말해 선거방송심의에서 ‘경고’ 제재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지난 6월에는 시사평론가 이봉규가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와 비난을 표해 ‘주의’조치를 받았다. 이에 채널A는 이봉규에게 ‘구두경고와 1개월 출연정지’ 조치를 내렸으나 지난 2월 이후 3차례에 걸쳐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봉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에 대한 막말 발언으로 또다시 ‘경고’조치 받았다. 채널A는 출범 당시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방송언어 순화 계획’의 일환으로 ‘막말 방송 3진 아웃제 실시’를 내세웠으나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았다. ‘3진 아웃제’는 방통위나 자체 심의규정 등을 연간 3회 이상 위반한 출연자를 해당 프로그램에서 퇴출시키는 제재방법이다.

 

저속한 용어 <SNL 코리아> ‘경고’
욕먹고 억울한 김구라

방송인 김구라는 욕 때문에 억울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구라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스타>에서 후배 개그맨인 맹승지가 동료 개그맨인 정명옥을 언급하자 “내가 <SNL 코리아>에서 정명옥에게 욕을 먹는 연기를 했다”며 “억울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8월 <SNL 코리아>는 ‘김구라의 말싸움 대행서비스, 일오xx에 x팔x팔’코너에서 “이 펠리컨같이 생긴 xx야, 니가 왜 xx이야, 이 xx야. 니 하관이 풍년이다. 이 개xx야. 이 풍년 xx야”, “이 또라이 같은 x아. 이런 거지같은 x을 봤나” “이런 싸가지 없는 개xx, x놈의 개 호로xx를 봤나, x팔 x끼, 턱주가리를 주먹으로 날려버리기 전에 똑바로 해. 개x끼, 이 마징가 x끼야”라고 언급하는 장면 등을 삐음으로 처리해 방송했다.

방통심의위는 회의를 열어 지나친 욕설과 저속한 용어 사용 등의 이유로 <SNL 코리아>를 ‘경고’ 조치했고, 이 사실이 일부 매체에 ‘SNL 김구라편 지나친 욕설’ ‘욕설, 비속어 SNL 김구라편 경고’ 등의 제목으로 보도됐다. 이에 김구라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프로그램이 징계를 받은 걸로 안다”며 “사실 정명옥이 내게 한 욕 연기 때문에 징계를 먹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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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