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으로 번진 '이석채 수사' 파장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1.04 13: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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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포화’ 사방이 적 “입 열면 여럿 다친다!”

[일요시사=사회팀] 이석채 KT 회장이 아프리카로 떠난 사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의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그야말로 사방이 적인 이 회장에게 정치권 역시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그런데 이번 수사가 이 회장 개인의 배임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첩보가 사정기관 지근에서 들린다. 그 징후는 바로 비자금 의혹이다.




KT본사가 압수수색을 당한 다음날, 청와대 출신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석채를 찍어내기 위한 프로젝트가 가동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온갖 구설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이석채 KT 회장.

그러나 이번 압수수색으로 ‘이석채 체제’가 끝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여의도를 중심으로 ‘이석채 수사’가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흔들리는 이석채
사정기관 정조준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양호산)는 KT 본사를 비롯해 KT 광화문지사, 서초지사, KT 회장 자택 등 16곳에서 전 방위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이 회장이 참여연대로부터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피소된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고발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료 제출이 이뤄지지 않아 압수수색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이 회장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았다. 먼저 고발 주체인 참여연대 측에서 작성한 자료를 보면 이 회장은 ▲스마트몰(SMART Mall) 사업 ▲OIC랭귀지비주얼 사업 ▲사이버MBA 사업 등에서 특정 인물에게 이득을 안겨 준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각 사업들의 배임 정황을 간략히 살펴보면 먼저 스마트몰 사업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5·6·7·8호선의 역사 및 전동차에 IT시스템을 구축, 상품홍보 및 판매를 도모하는 규모 2140억원대의 광고권 임대 사업이다.

참여연대 측은 KT 내부보고서를 인용, KT가 수백억원의 적자를 예상하고도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스마트몰 사업을 강행했으며, 최초 5억원만 투자했던 특수목적법인에 60억원을 재투자함으로써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전방위 압수수색 이후 비자금 의혹 불거져
정치권으로 수사 확대 가능성 ‘여의도 술렁’

또 스마트몰 사업은 ‘MB라인’으로 불리는 음성직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의 뇌물수수 사건과도 연결돼 있는데 음 전 사장은 지난해 스마트몰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한 업체에게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진행 중이다.

OIC랭귀지비주얼 사업은 이 회장과 친인척 관계인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이 KT의 사업 파트너로 선정되면서 ‘먹튀’ 의혹이 불거진 경우다.

KT는 지난 2009년 이 회장과 8촌 관계인 유 전 장관이 운영하던 법인과 공동출자 방식으로 OIC랭귀지비주얼(이하 OIC)을 설립했다. 교육 회사로 출발한 OIC는 2011년 지분 구조가 바뀌는데 당시 유 전 장관은 시세가보다 2배 높은 가격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수억원의 이득을 봤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KT는 57억원을 OIC 증자에 투자했고, 다음해엔 아예 계열사로 편입했다. 그런데 문제는 계열사 편입 당시 OIC가 3억96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 전 장관이 연루된 수상한 사업은 또 있다. 이 회장은 유 전 장관이 회장을 역임하고, 최근까지 지분을 보유한 ㈜사이버MBA를 인수하면서 기존 주식가보다 9배 비싼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 2012년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77억원 규모의 손해를 끼친 의혹을 받고 있다.

잇따른 배임 의혹
관건은 돈의 흐름

해당 의혹들이 불거진 시점은 지난 2월이다. 당시 KT 측은 관련 의혹들에 대해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KT 측의 해명을 요약하면 “경영상의 판단이었으므로 배임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달 10일 참여연대는 “이 회장이 KT 사옥 39곳을 헐값에 매각했다”며 ‘부동산 헐값 매각’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에 두 번째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이 회장 재임 기간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모두 39곳의 사옥을 매각하면서 이중 28곳의 사옥을 감정가보다 25% 낮은 헐값에 팔아넘겼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10년부터 현금 확보를 명목으로 서울 노량진, 경기도 성남 등에 있는 사옥을 매각했다. 이렇게 확보한 현금은 980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는 이 과정에서 회사와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이 최대 869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T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KT 사옥을 시세보다 싸게 판 뒤 ▲해당 건물에 비싼 임차료를 내고 재입주하는 수법으로 ▲특정인(들)에게 이득을 안겨줬다.

KT 사옥을 매입한 자본은 바로 사모펀드. KT의 부동산자산운용 담당 자회사인 KT AMC 등이 모집한 펀드들은 사옥을 사들인 뒤 KT에게 재임대하는 방법으로 매달 비싼 임대료를 챙기고 있다.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펀드 투자자가 누구인지를 밝힌다면 이 회장의 배후가 드러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압수수색 과정에서 검찰은 KT가 집행한 자금 내역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좌 추적에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익명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사모펀드로 흘러갔던 자금의 종착지를 확인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결국엔 TK 쪽으로 돈이 모인 것 같은데 검찰 입장에선 수사를 배임 선에서 끝낼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확대할지를 지휘부 차원에서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에 의하면 ‘이석채 수사’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조사부가 담당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특수부로 일부 수사가 이관될 가능성이 있다. 수사 방향의 컨트롤타워가 대검찰청에 있는 까닭이다.

오래 전부터 정치권과의 염문설이 끊이지 않았던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확대된다면 그 불똥은 고스란히 여의도로 옮겨 붙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회장에 대한 여야의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이 회장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있다.


연이은 압수수색
퇴진론 고개들까

하지만 이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십자포화에도 정면돌파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사실상 ‘퇴진’을 종용하는 것임에도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내년도 신사업을 논의하고, 예정된 아프리카 출국을 강행하는 등 광폭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KT 한 관계자는 “검찰 입장에선 꽃놀이패를 쥔 것”이라며 “이 회장이 자진해서 나가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이대로 버티면 또 다른 쪽으로 칼끝을 돌려 괴롭히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회장은 ‘친박 인사’를 대거 영입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나선 전력이 있다. 그러나 공 들여 영입한 친박계들도 이번에는 어찌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낙하산 인사’의 대표격으로 전해진 홍사덕·김종인·김병호 전 의원 등은 KT 경영고문 및 자문위원의 직함을 달고 있음에도 이번 수사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증명하듯 검찰은 지난달 31일 밤과 1일 오전 사이에 KT 분당사옥, 서초사옥 등 모두 8곳에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임직원의 차명 계좌에서 거액의 비자금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온 뒤 또다시 벌어진 압수수색이었다.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는 김일영 코퍼레이트센터장(사장), 김홍진 G&E부문장(사장), 권순철 전무(비서실장), 옥성환 상무(비서실), 심성훈 상무(전 비서실장) 등의 자택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한 검찰 출입 기자는 “이 회장의 비자금이나 횡령 혐의 등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검찰이 고발 내용 외에 추가 혐의점을 잡고 수사를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또 최근 한 IT업계 관계자는 “‘KT판 4대강’으로 불리는 BIT 사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IT는 KT와 KTF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전산망을 하나로 통일하는 시스템 개발 사업으로 최초 예정됐던 투자규모는 3800억원이었다. 그러나 ‘어센츄어’란 업체에 용역을 맡겼던 BIT 사업은 당초 예상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9000억원을 투입하고도 아직까지 미완으로 남아있다.


수상한 사업 재점화
배임 혐의 드러날까

특히 BIT 사업에 참여했던 몇몇 IT 엔지니어들은 “처음부터 가이드도 없었고, 사실상 실패한 프로젝트”란 믿기 힘든 증언까지 내놓고 있다. 아울러 BIT 개발사업은 사업추진 과정에서 특정 업체로의 일감 몰아주기, 전문성이 떨어지는 외국인 인력 고용, 인건비 계상 부풀리기 등 수많은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향후 수사 과정에서 BIT 사업을 둘러싼 시비가 가려질지 주목된다.

지난해부터 업계를 중심으로 퍼진 “아들 회사를 편법으로 인수했다”는 의혹도 초미의 관심사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관련 의혹의 핵심은 아들이 있던 모 소프트웨어 업체를 KT가 인수하면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는 내용이다.

지난 3월 기자가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이 회장의 아들로 지목된 A씨는 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의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런데 이 업체는 이 회장 재임기간 중 KT와 50억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설립하는데 해당 합작법인의 주축 연구원이 바로 A씨다. 합작법인의 인력 대부분은 A씨가 있던 개발업체에서 충원됐다.

이후 이 합작법인은 KT의 한 계열사로 흡수 합병됐다. 즉 유 전 장관이 연루된 OIC의 인수합병 과정과 비슷한 절차를 밟은 것이다.

기자는 제보자가 이 회장의 아들로 지목한 A씨가 일했던 몇몇 업체 관계자와 접촉했지만 “권한 위임이 안 되는 특수한 조직구조라서 그런 민감한 정보들은 일절 공개되지 않았었다”는 답변만 받았다. 당시 KT 측은 “동명이인이며 A씨는 아들이 아니다”란 해명을 내놨었다.

비자금설 모락
소환조사 촉각

이 같은 의혹의 중심에는 이 회장이 있다. 이제 관심은 이 회장이 언제 소환될 것이냐에 쏠린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KT 임원들을 먼저 소환한다는 방침이다. 전례에 따라 이 회장은 맨 마지막에 소환될 확률이 높다. 이 회장 입장에선 말 그대로 ‘압박수사’가 예고된 상황. 그러나 “혐의점이 쉽게 드러나진 않을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입을 열었다.

그는 “이 회장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직접 돈을 받는다든지 증거를 남기는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 대선을 앞두고도 야권 출신 한 정치인에게 줄을 대려다가 실패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돈을 주지 않아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다”고 덧붙였다. 

KT는 최근 사내방송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이석채 회장의 비자금 관련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공지했다.

복수 언론보도에 따르면 KT는 지난달 29일 저녁 사내방송 인트라넷 페이지에 “일부 언론에서 (검찰의) 압수수색 결과 거액의 비자금 계좌가 발견됐다고 보도했지만 검찰이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했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KT의 해명이 과연 사실로 드러날지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KT ‘낙하산 인사’해부
“전현 정부 연합군 장악”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소위 ‘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는 KT 전현직 인사 36명의 명단을 지난달 14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KT 낙하산 인사로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선대본부장을 지냈던 홍사덕 민화협 상임의장(KT경영고문)과 공보단장을 지낸 김병호 전 의원(KT경영고문), 국민행복기금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병원 사외이사 등 박근혜정부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김은혜 전무와 이춘호 EBS이사장(KT사외이사) 등 이명박 정부 인사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석>

 

[KT 낙하산 인사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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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