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이상한 장학금' 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0.22 1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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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동네서…몇푼 받으려 애 낳는다?

[일요시사=사회팀] 셋째 자녀에게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일명 '다산장학금' 제도.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이 제도는 해당 사업의 타당성과 실효성 여부를 놓고 그간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런데 서초구가 최근 자체 운용하고 있는 다산장학금 제도를 둘러싸고 구의회와의 법적분쟁을 앞두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초구청은 서초장학재단 조례안 개정을 놓고 서초구의회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심성 행정?

관련 보도에 의하면 서초구청은 지난달 16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장학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12일 서초구의회는 장학재단의 사업, 기금 출연과 지출에 관한 조항을 담고 있는 일부개정조례안(이하 개정안)을 찬성 12표, 반대 2표, 기권 1표로 본회의를 거쳐 통과시킨 바 있다.

서초장학재단 조례는 서초구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다자녀 가정의 셋째 이상 자녀를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업 규정 등이 포함돼있다.

앞서 서초구청은 지난해 12월 보도자료를 통해 "서초구는 올해(2012년) 서초다산장학재단을 설립, 구가 출연한 10억원과 관내 기업 기탁금, 구청 공무원들이 십시일반 기탁한 금액 등 총 17억원을 토대로 올해 하반기 등록금 일부를 지원했다"고 홍보했다.


서초구청은 해당 장학 사업을 위해 2011년12월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그리고 서초구의회는 "구가 장학재단에 출연할 수 있는 기금은 일반회계 본예산의 0.3%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다시 말해 서초구청이 임의대로 구예산을 남용해 장학기금을 지출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구 관계자 진술 및 구의회 회의록, 관련 보도 등에 따르면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총 100억원의 장학기금 조성을 위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매해 2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모두 60억원을 출연하려고 했다. 그러나 서초구의회는 재정악화 등을 근거로 서초구청이 요구한 예산 중 일부를 삭감했다. 2013년 기준 서초구 일반회계 예산은 3105억원으로 서초구청은 이중 0.6%를 장학기금 조성을 위해 편성했던 셈이다.

개정안 통과 당시 구 한 관계자는 "장학재단 때문에 10억원의 예산을 올렸지만 반대로 서초구 내 초·중·고교에 지급돼야 할 경비들이 예산서에서 삭감됐다"고 말했다. 즉 다산장학금 예산 마련을 위해 기초교육 예산을 손봤다는 얘기. 그런데 서초구의회가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배경은 따로 있다.

개정안의 대표 발의자인 서초구의회 김안숙 의원은 "서초장학재단 사업 추진 당시 서초구청은 100억원의 기금 출연이 이뤄지고 나면 원금 이자를 통해 장학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의회는 '이자'를 통해 장학사업을 하겠다는 취지로 조례를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초장학재단은 지난해 5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1억2500만원을 지급했고, 이 때문에 구가 출연한 원금이 훼손됐다는 게 다수 의원들의 입장이다.

서초구의회가 통과시킨 개정안은 다음 두 가지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첫째, 앞서 언급한대로 장학금 출연 금액은 해당년도 본예산 일반회계 예산의 0.3% 범위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할 것. 둘째, 기금 지출을 조례 제정취지에 맞도록 장학기금이 100억원 이상 확보된 후 원금을 제외한 운영 수익금만으로 장학금을 지출할 것이다. 그리고 서초구의회는 지난 16일 서초구청이 재의를 요구한 개정안에 대해 개정안 원안을 유지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급한 불이 떨어진 건 서초구청이다. 서초구청이 설립한 서초다산장학재단은 지난 1일부터 11일까지 셋째 이상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생 신청을 받았다. 신청 접수는 서초구청 안에 있는 교육전산과가 담당했는데 이를 토대로 서초다산장학재단은 현재 장학금 지급자를 선별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서초구청은 서초구의회가 의결한 개정안에 대해 "위법성이 있다"며 가처분 신청 등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구청은 구의회가 서초구청장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대법원은 "지방의회가 지자체장이 편성한 예산안에 대해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 기금 출연의 범위를 사전에 제한하는 규정을 조례로 신설한 것은 지방자치법 제22조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또 서초구청은 서초다산장학재단이 독립된 법인으로서 의결기구인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므로 의회 조례가 재단 운영을 간섭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장학재단 운영과 관련해서 서초다산장학재단은 자체 사무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사무국 업무는 서초구청 교육전산과가 대행하고 있다.

조례 통과 후 구청과 구의회 갈등 증폭
출산율 제고 등 실효성 의문…법적분쟁
"권리 침해"vs "원금 훼손" 팽팽

이와 관련해 재단 관계자는 "인건비 지출 등 현실적인 요건을 감안해 구청 직원이 재단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으며 서울시 내 다른 구청도 서초구와 같은 형태로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단 내 모든 결정은 구청이 아닌 이사회에 일임하고 있으며, 관련 조례에 따라 공무원이 겸직을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즉 장학재단 사업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정당한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서초구청 측 입장이다. 그러나 한편에선 해당 장학 사업이 '보여주기식 행정'이란 비판이 있다.

구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만남에서 지난 2004년 있었던 '우면산내셔널트러스트' 사업을 예로 들었다. 그는 "조남호 전 구청장 때도 녹지를 지킨다는 취지로 주민들의 돈을 모아 땅을 매입하는 사업이 있었지만 조 전 청장이 퇴임한 후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흐지부지 됐다"며 "구비가 현 집행부(서초구청)의 성과내기 용도로 사용돼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또 복수 관계자는 "이미 박근혜정부의 공약이기도 한 '다산장학금' 제도를 서초구가 중복해서 운용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며 "결국 장학금 사업은 내년 선거를 노린 '선심성 행정'이 아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진 구청장은 서초다산장학재단의 설립취지를 설명하면서 "교육비 부담으로 출산을 꺼리는 경우가 줄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실효성 논란

그러나 셋째 이상에게만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제도의 실효성 여부는 중앙정부에서조차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4일 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교육부 국정감사 자리에서 "다산장학금은 박근혜 대통령의 교육공약 성과를 위한 꼼수 사업"이라며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말하지만 지금 아이를 낳은 세대가 자녀를 대학에 보낼 나이가 되려면 최소 20년은 걸리는데 이를 받기위해 자녀를 낳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지적했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산장학금 국감 도마 왜?
"1% 위한 꼼수 사업"

정부가 내년부터 셋째 이상 자녀에 대해 대학등록금을 지원해 주기로 한 것과 관련해 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교육공약 성과를 위한 꼼수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윤 의원은 지난 14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출산장려를 이유로 셋째 이상 자녀에 대한 대학등록금 지원 사업에 1225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며 "이는 전체 대학생 중 1%를 위한 예산"이라고 질의했다.


윤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대학생은 300만명(전문대 포함) 수준이고, 이중 셋째 이상 대학생은 10만9000명이다. 하지만 정부가 편성한 1225억원의 예산으로는 2만7000명 밖에 혜택을 볼 수 없다는 지적. 윤 의원은 "이 돈을 차라리 국가장학금으로 편성했다면 모든 대학생에게 조금이라도 혜택이 더 돌아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윤 의원은 교육부장관에게 "셋째 대학생 등록금 지원이 출산율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느냐"며 "지금 아이를 낳은 세대가 자녀를 대학에 보낼 나이가 되려면 최소한 20년 이후에 받을 수 있는데 그때를 생각해서 자신 있게 자녀를 낳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질책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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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