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대기업 전문경영인 빛과 그림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0.21 18: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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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한마디면…파리 목숨 사장님

[일요시사=경제1팀] 파리 목숨이다. 3년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다. 대기업 전문경영인 얘기다. 국내 500대 기업 중 3년 임기를 넘긴 이는 3명 중 1명. 경쟁이 치열한 30대 그룹, 10대 그룹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막고 합리적인 경영노선을 이끌던 전문경영인들이 최근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1973년 고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올해로 40년째를 맞은 국내 전문경영인 체제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국내 500대 기업 현직 전문경영인(CEO) 중 법정 임기 3년을 넘겨 재선임된 사람은 3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30대 그룹, 10대 그룹 등 규모가 커질수록 CEO의 재선임 비율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6일 기업경영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연말 재계의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500대 기업 현직 CEO 516명의 재직기간을 조사한 결과, 3년 임기를 한 번이라도 넘긴 재직자는 총 188명으로 36.4%에 불과했다. 3명 중 1명꼴이라는 얘기다.

회사 규모 커질수록
재선임 비중 하락

규모가 큰 대기업으로 올라갈수록 CEO의 재선임 비중은 낮아졌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CEO가 되더라도 임기를 채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500대 기업 내 30대 그룹 소속 CEO의 경우 3년 이상 재직자는 총 227명 중 69명으로 30.4%에 불과했고, 10대 그룹은 150명 중 39명으로 다시 26.0%로 낮아졌다.

반면 30대 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중견 기업들의 3년 이상 중임자 비중은 41.2%로 대기업 그룹 계열사들보다 훨씬 높았다.


CEO 평균 임기로 따져도 500대 기업 현직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3.1년에 달한 반면 30대 그룹은 2.6년에 불과했다. 500대 기업 내 30대 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기업들의 CEO 재임기간은 3.6년으로 30대 그룹 소속보다 1년이나 길었다.

특히 신세계와 대림, 현대, 부영, 동국제강 등 5곳은 3년 이상 재임자가 단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와 동국제강 현직 CEO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0.6년에 불과했고, 부영도 0.9년으로 1년 미만이었다. 대림과 현대는 각각 1.1년, 1.6년이었다.

5대 그룹 중에서는 삼성의 재선임자 비중이 3.3%로 매우 낮았다. 총 30명 중 단 1명만이 3년 임기를 넘겼다. 5대 그룹 현직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롯데 3년→현대차 2.9년→LG 2.7년→SK 2.4년→삼성 1.6년이었다.

CEO 체제는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경영인에게 거대 기업의 경영전략 전반의 수립과 이행권한 등을 맡기는 일이다. CEO는 기업 오너와 직원 사이에서 경영 관리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국내 CEO 체제는 고 정수창 두산그룹 회장이 처음 열었다. 1967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출된 고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은 공직에 전념하기 위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결심, "자기가 사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들이나 동생이 사장을 계승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박 회장이 선택한 후계자가 정 회장이었다. 정 회장은 광복 후 적산기업이 된 '소화기린맥주'에서 미군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통역, 즉 의사소통 역할을 담당하면서 박 회장 밑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았다. 입사 7년 만에 동양맥주 상무에 올랐으며 박 회장과 함께 동양맥주 정상화, 양조기술 자립, 맥아공장 가동, 와인 ‘마주앙’ 생산 등 수많은 일을 함께 했다.


'CEO 수난시대' 3명 중 1명만 재선임
대부분 3년 임기 못 채우고 ‘집으로’
신세계·대림·현대·부영 '툭하면 교체'

하지만 전무 승진 후 2년 만인 1965년 정 회장은 돌연 삼성그룹 계열인 새한제지로 자리를 옮겼다. 보수적 경영을 하는 박 회장 밑에서는 CEO로서의 성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4년간의 외도를 마친 그를 박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시 불렀고 정 회장은 1973년 박 회장 폐암 판정과 동시에 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후 정 회장은 10여년간 자리를 지키며 두산그룹 제2 중흥기를 이끈 후 1981년 박두병 회장의 장자인 박용곤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가 1991년 페놀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다시 그룹 총수로 복귀, 상황을 안정화시키며 능력을 발휘했다.

정 회장의 CEO로서의 탁월한 능력은 한국 재계에 CEO 시대를 열었다. 과거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이 분리되지 않아 소유주가 직접 경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던 한국 재계도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CEO의 필요성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 오너 못지않은 CEO 3인방으로 꼽히는 이들은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협) 의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이석채 KT 회장이다.

1974년 선경합섬(현 SK케미칼)에 입사, 현재 SK에 재직 중인 임직원 중 입사 기수가 제일 빠른 최고참인 김 의장은 국내 4대 그룹 중 하나인 SK의 수장으로 SK 최고 의사결정지구인 수펙스협을 이끌고 있다.

그는 오너 부재는 물론 한·중·일 권력교체, 미국 재정위기 등 유례없는 격동기 속에서도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초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 오너 총수들 사이에서 "우리 정부의 창조경제와 미국 정부의 국가혁신전략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그 결과로 글로벌 경제가 새롭게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기업도 노력하겠다"며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연임된 정 회장은 결단력 있는 리더십으로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11년 한국거래소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주회한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점과 감사 업무의 독립성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창근·정준양·이석채
국내 CEO 3인방

정 회장은 미국 발 금융위기와 유럽 발 재정위기 등 세계 경제 위축이라는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베트남 냉연공장 준공, 인도네시아 제철소 착공 등 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취임한 이 회장은 희망퇴직을 통해 직원 6000여 명을 줄이고 KT와 KTF의 합병을 두 달 만에 이끌어내는 등 과감함으로 승부했다. 같은 해 말 아이폰을 국내에 들여오며 스마트폰 혁명을 이끌었으며 지난 1월에는 숙원이던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에 성공했다.


이처럼 CEO 체제는 경영인이 전문성을 발휘하고 조직 내부에서 민주적 의사소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투명성 높은 주주 중시 경영을 펼친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실적부진·사고책임
잇따른 CEO 교체

최근 오너 일가인 설윤석 전 사장이 경영권을 내려놓는 등 유동성 위기에 빠져있는 대한전선의 경우 CEO의 잘못된 의사결정과 사익추구가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회장 비서실장 출신인 임종욱 전 부회장은 2002년 대한전선 대표이사에 오른 후 무주리조트를 시작으로 선인상가, 남부터미널부지 매입, 쌍방울 인수, 진로인수전 참여,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남광토건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2008년까지 투자한 금액은 무려 2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도래로 부동산과 증권 등에 투자해 몸집을 불렸던 대한전선에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2009년에는 54년간 이어온 흑자 신화가 붕괴됐다. 총자산 중 절반 이상이 투자자산이던 대한전선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했고 2009년에는 차입금 규모가 2004년의 8배가 넘는 2조5000억원에 달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설 전 사장이 부회장에 오른 2010년은 상황이 더 악화한 후. 임 전 부회장이 망쳐놓은 회사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 전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회사의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업계는 대기업 오너뿐만 아니라 CEO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한다는 법원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박기석 전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는 지난 7월26일 발생한 삼성정밀화학 내 SMP(폴리실리콘 생산법인)사의 신축 공사장 물탱크 파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8월1일 전격 경질됐다. 이 사고로 삼성엔지니어링은 3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15명의 사상자를 냈다.

지난 6월 물러난 서종욱 전 대우건설 사장의 경우 사측은 서 전 사장이 과로로 인한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4대강 사업 담합과 수주관련 비리의혹 등 수사에 연루되자 서 전 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대우건설은 4대강 담합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의 받고 있는데다 건설업자 윤모씨의 사회 유력인사 불법로비의혹 수사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당했다. 서 전 사장은 지난 2월 낙동강 칠곡보 사업의 비자금 비리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CEO 체제는 실적 중심의 성과경영을 낳기도 했다. 경영실적에 따라 CEO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이뤄졌고 이는 CEO들의 단명으로 이어졌다. 보령제약그룹의 경우 계열사 보령메디앙스에서 2006년 김은정 부회장 취임이후 5년간 CEO 4명이 교체됐다. 매출 실적 부진이 이유였다. 보령메디앙스의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은 10억원 안팎으로 특히 2011년에는 적자 전환해 10억원의 손실을 낸 바 있다.

2008년 3월 취임한 이상희 대표이사 사장은 1년6개월 만인 2009년 12월 해임됐으며 2010년 3월 취임한 유승재 대표이사 부사장은 9개월 만에 사임했다. 2011년 부임한 최기호 대표이사 또한 1년 후 사임했다. 현재는 경영전략실장을 지낸 윤석원 대표이사가 김은정 부회장과 각자 대표를 맡고 있다.

체제 도입 40년…오너 경영 전환 목소리도
장점만 살린 '오너+CEO' 협업체제 부상

증권가에서도 CEO 교체는 이어졌다. 실적 부진이 정권교체와 맞물려 몇몇 증권사 CEO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10일에는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 대표이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황 전 사장은 지난해 6월 연임에 성공했으며 임기는 오는 2015년 6월까지였다.

이에 앞서 6월4일에는 이승국 전 동양증권 사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했다. 지난해 현대증권 부사장에서 동양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던 이 전 사장은 취임 1년 만에 중도하차하게 됐다. 업계는 동양증권의 CEO 교체를 두고 실적악화와 함께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진행에 따른 이유로 분석했다.

5월23일에는 현대증권이 김신·윤경은 각자 대표체제에서 김신 대표의 사임에 따라 윤경은 단독 대표체제로 변경됐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현대증권 사장에 취임, 1년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초 임기는 2015년 4월까지였다.

김 전 대표의 사임 이유로는 현대그룹 경영진과의 갈등과 업계의 전반적 불황 속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짊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CEO 교체 바람은 유관기관에도 불었다. 김봉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5월 자진 사퇴한 데 이어 우주하 코스콤 사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대기업 전현직 CEO들이 법정구속, 갑작스런 퇴진 등 잇따른 악재로 수난을 겪자 재계는 'CEO체제의 한계'라며 술렁이고 있다. 연말 대기업 인사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업계 분위기가 전면적인 CEO교체 쪽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국감에 기업인 200여 명이 증인으로 채택되고 '기업국감'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각 사 CEO들은 좌불안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계에서는 CEO체제 전환 이후 실적부진 등 악재가 이어진다면 오너 경영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임기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재임기간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CEO체제는 기업의 내적 성장보다 가시적인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인 전력을 앞세워 거시경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춘 오너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재계 연말 인사
CEO 좌불안석

하지만 오너 경영은 지나치게 독단적인 의사결정으로 기업을 결정적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오너 경영과 CEO 경영의 장점만을 살린 '협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인데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는 오너 경영이지만 최지성·권오현 부회장이 CEO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그룹에 행사하고 있다.

물론 '오너 경영' 'CEO 경영' '오너+CEO 경영'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지금 당장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성공적인 오너들이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수난을 겪고 있는 CEO들이 고생 끝에 빛을 볼 수도, 협업 체제의 단점이 나타날 수도 있다.

협업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한 경제전문가는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각각의 체제의 장점만을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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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