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토사구팽 당한 건설업자 사연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0.22 09: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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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사업장 퍽치기 당했다"

[일요시사=사회팀] 한 건설업자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중공업(이하 삼성)을 상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불공정거래로 공정위에 고발한 데 이어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그는 "삼성중공업이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사업권을 강탈했다"고 주장했다.




주택건설업체인 JBS의 대표 정병수씨는 지난 9일 서울 강남 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났다. 앞서 정씨는 지난해 5월30일 옥중에서 삼성중공업과 부동산 신탁회사인 A신탁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및 신탁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슈퍼갑의 횡포?

2011년 8월 A신탁의 형사고발로 구속된 정씨는 같은 해 12월 1심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리고 올해 4월30일 가석방돼 삼성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정씨는 "삼성의 간계로 1년9개월의 감옥신세를 졌다"며 "이제라도 내 억울함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도대체 정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정씨가 지난 6년간 수집한 자료, 정씨가 작성한 고소장, 삼성의 반박서면 등을 토대로 사건을 요약했다. 하지만 양측의 소송이 진행 중인 관계로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수 있음을 사전에 밝힌다.

지금까지 나온 정황을 토대로 본 사건의 쟁점은 크게 3가지. 첫째는 삼성의 계획적인 사업권 강탈 여부, 둘째는 삼성의 불공정 계약 강요 여부, 셋째는 또 다른 소송 당사자인 A신탁과의 공모 여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갈 필요가 있다.

국내 최초의 타운하우스인 헤르만하우스. 정씨는 경기 파주시 교하읍 내 헤르만하우스를 시행·공급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선시공·후분양 방식으로 공급된 헤르만하우스는 정씨에게 100억원 이상의 이득을 안겼다.

2007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파주 헤르만하우스를 방문하면서 정씨의 주가는 더욱 치솟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헤르만하우스를 극찬했다. 이 무렵 헤르만하우스를 위시한 타운하우스 사업은 업계의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하며 호황을 맞았다.

2007년 5월 성공을 맛본 정씨는 헤르만하우스2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서 정씨는 같은 해 1월 사업현장설명회를 개최하고 헤르만하우스2차의 책임준공을 맡을 시공사를 모집했다. 이때 당시 헤르만하우스2차가 들어설 부지는 JBS가 소유하고 있었으며, 사업을 위한 400억원의 대출금도 사전 확보된 상태였다.

처음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 중 최저가를 제시한 곳은 한라건설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분양수입금으로 공사비를 지급하고, 분양수입금이 남지 않을 경우 대물로 변제한다"는 조건으로 시공 의사를 타진했다. 삼성이 내민 파격적인 조건에 정씨의 마음은 흔들렸고, 같은 해 5월31일 JBS는 삼성과 정식으로 업무약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 직후인 6월부터 발생했다. 삼성이 자사 브랜드인 '라폴리움'을 앞세워  타운하우스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삼성은 '라폴리움' 사업을 총 4개 구역(동백·양지·오포·청평)에서 진행했고, 2008년 무렵 사전 분양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9년 3월7일까지 헤르만하우스는 착공도 하지 못한 어정쩡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사전 청약자가 40명이나 있어 수요가 확인됐음에도 삼성이 착공을 고의로 미뤘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아울러 삼성은 정씨가 갖고 있던 청약자 명단을 넘겨받은 뒤 이를 라폴리움 홍보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삼성은 "2007년 5월에는 사업약정만 체결됐던 것"이라며 "약정 체결 후 도면이 나오지 않았고, 정씨가 잦은 설계 변경을 요구해 착공이 미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씨가 반박한 자료를 보면 설계 변경은 삼성 측이 먼저 요구했다. 또 삼성은 원래 약속된 공사비를 522억원에서 567억원으로 다시 713억원으로 부풀렸다. 아울러 삼성은 대주단인 신한은행으로부터 90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을 것과 정씨(JBS)가 소유한 15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각해 공사비로 투입할 것 등을 강요했다. 이는 모두 계약서상에 없던 것들이었다.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대주단 신한은행은 삼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이 '불분명한 이유'로 연기되는 배경에 삼성 측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삼성은 토지신탁회사인 A신탁을 끌어들이며 헤르만하우스 사업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슈퍼갑' 대기업 상대로 외로운 사투 벌여
공정위 고발 이어 법원에 소송 제기

2009년 3월11일 정씨는 삼성과 2차 업무약정을 맺었다. 이미 착공이 늦어지며 손실을 봤던 정씨는 다른 건설사와의 계약이 불가한 상황에서 삼성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때 삼성은 정씨에게 A신탁과 '관리형 토지 신탁' 계약을 맺도록 했다. 헤르만하우스2차가 들어설 부지의 명의 관리를 A신탁에 넘기는 대가로 대주단으로부터 330억원을 대출받는 것이 계약 내용의 골자다. 그러나 이 계약은 몇 년 뒤 정씨를 범법자로 만들었다.

A신탁 명의로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공사, 하지만 분양권을 놓고 정씨와 삼성은 또 다시 갈등을 빚었다. 분양가를 놓고 정씨와 삼성이 이견을 보인 것이다. 정씨는 2011년 5월9일 홍콩 호화투자유한공사와 전 세대를 분양원가(100%)에 매매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삼성은 2011년 6월18일 자체 고용한 텔레마케터 등을 통해 할인분양(68%)을 시작했다. 여기서 정씨는 삼성이 자신의 분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정씨에 따르면 JBS는 헤르만하우스1차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이 있으며, 헤르만하우스2차 역시 계약서상 '분양 책임'이 JBS에 있음을 명시했으므로 JBS가 분양권을 행사하는 게 맞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토지를 담보로 330억원을 대출받았던 정씨의 대출금 상환이 늦어지자 A신탁이 정씨의 채무를 은행에 대위변제한 것. 즉 채무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면서 채무자가 갖고 있던 모든 권리를 (강제로) 양도받은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삼성과 A신탁이 처음부터 짜고 나를 팽한 것"이라며 "대위변제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정씨는 "헤르만하우스2차 분양 과정에서 온갖 불법이 자행됐다"고 말했다.

가령 정씨가 내민 공사도급내역서를 보면 삼성과 A신탁은 2009년 3월4일 정씨를 대신해 공동으로 내역서에 날인했다. 즉 정씨와 A신탁이 위탁 및 수탁 계약을 맺기도 전에 A신탁이 먼저 정씨의 권리를 행사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A신탁은 정씨가 부가세 환급금을 세무서에 잘못 지불한 사안을 놓고, 정씨가 세무서에 남은 환급금을 지불하려 하자 이를 거부한 뒤 정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또 정씨가 고소당하자 삼성 측은 정씨에게 접근해 사업권 포기를 종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배후 있나? 없나?

삼성 측 관계자는 "결국은 시공이 문제였는데 우리가 착공을 미뤄서 얻는 게 무엇이었겠냐"며 "정씨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방문을 통한 자료 확인요구에 대해선 거부 의사를 밝힌 뒤 "상식적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을 아꼈다.

기자가 만난 한 건설 전문가는 사견임을 전제로 "정씨가 분양권을 양도하기로 했는지가 중요할 것"이라며 "분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법정 공방을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소송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진행 중이다. 정씨가 주장하는 피해금액은 분양가와 대출금 이자 등 939억2500만원이다. 하지만 정씨가 정산하지 않은 공사비 332억원(삼성 측 주장 567억원)과 A신탁이 대위변제한 330억원 등을 제하면 실제 손해배상액은 청구금액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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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