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토사구팽 당한 건설업자 사연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0.22 09: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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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사업장 퍽치기 당했다"

[일요시사=사회팀] 한 건설업자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중공업(이하 삼성)을 상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불공정거래로 공정위에 고발한 데 이어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그는 "삼성중공업이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사업권을 강탈했다"고 주장했다.




주택건설업체인 JBS의 대표 정병수씨는 지난 9일 서울 강남 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났다. 앞서 정씨는 지난해 5월30일 옥중에서 삼성중공업과 부동산 신탁회사인 A신탁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및 신탁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슈퍼갑의 횡포?

2011년 8월 A신탁의 형사고발로 구속된 정씨는 같은 해 12월 1심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데 이어 2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리고 올해 4월30일 가석방돼 삼성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정씨는 "삼성의 간계로 1년9개월의 감옥신세를 졌다"며 "이제라도 내 억울함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도대체 정씨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정씨가 지난 6년간 수집한 자료, 정씨가 작성한 고소장, 삼성의 반박서면 등을 토대로 사건을 요약했다. 하지만 양측의 소송이 진행 중인 관계로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수 있음을 사전에 밝힌다.


지금까지 나온 정황을 토대로 본 사건의 쟁점은 크게 3가지. 첫째는 삼성의 계획적인 사업권 강탈 여부, 둘째는 삼성의 불공정 계약 강요 여부, 셋째는 또 다른 소송 당사자인 A신탁과의 공모 여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갈 필요가 있다.

국내 최초의 타운하우스인 헤르만하우스. 정씨는 경기 파주시 교하읍 내 헤르만하우스를 시행·공급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선시공·후분양 방식으로 공급된 헤르만하우스는 정씨에게 100억원 이상의 이득을 안겼다.

2007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파주 헤르만하우스를 방문하면서 정씨의 주가는 더욱 치솟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헤르만하우스를 극찬했다. 이 무렵 헤르만하우스를 위시한 타운하우스 사업은 업계의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하며 호황을 맞았다.

2007년 5월 성공을 맛본 정씨는 헤르만하우스2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서 정씨는 같은 해 1월 사업현장설명회를 개최하고 헤르만하우스2차의 책임준공을 맡을 시공사를 모집했다. 이때 당시 헤르만하우스2차가 들어설 부지는 JBS가 소유하고 있었으며, 사업을 위한 400억원의 대출금도 사전 확보된 상태였다.

처음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 중 최저가를 제시한 곳은 한라건설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분양수입금으로 공사비를 지급하고, 분양수입금이 남지 않을 경우 대물로 변제한다"는 조건으로 시공 의사를 타진했다. 삼성이 내민 파격적인 조건에 정씨의 마음은 흔들렸고, 같은 해 5월31일 JBS는 삼성과 정식으로 업무약정을 체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 직후인 6월부터 발생했다. 삼성이 자사 브랜드인 '라폴리움'을 앞세워  타운하우스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삼성은 '라폴리움' 사업을 총 4개 구역(동백·양지·오포·청평)에서 진행했고, 2008년 무렵 사전 분양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9년 3월7일까지 헤르만하우스는 착공도 하지 못한 어정쩡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사전 청약자가 40명이나 있어 수요가 확인됐음에도 삼성이 착공을 고의로 미뤘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아울러 삼성은 정씨가 갖고 있던 청약자 명단을 넘겨받은 뒤 이를 라폴리움 홍보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삼성은 "2007년 5월에는 사업약정만 체결됐던 것"이라며 "약정 체결 후 도면이 나오지 않았고, 정씨가 잦은 설계 변경을 요구해 착공이 미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씨가 반박한 자료를 보면 설계 변경은 삼성 측이 먼저 요구했다. 또 삼성은 원래 약속된 공사비를 522억원에서 567억원으로 다시 713억원으로 부풀렸다. 아울러 삼성은 대주단인 신한은행으로부터 90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을 것과 정씨(JBS)가 소유한 15억원 규모의 부동산을 매각해 공사비로 투입할 것 등을 강요했다. 이는 모두 계약서상에 없던 것들이었다.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대주단 신한은행은 삼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이 '불분명한 이유'로 연기되는 배경에 삼성 측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삼성은 토지신탁회사인 A신탁을 끌어들이며 헤르만하우스 사업의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슈퍼갑' 대기업 상대로 외로운 사투 벌여
공정위 고발 이어 법원에 소송 제기

2009년 3월11일 정씨는 삼성과 2차 업무약정을 맺었다. 이미 착공이 늦어지며 손실을 봤던 정씨는 다른 건설사와의 계약이 불가한 상황에서 삼성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때 삼성은 정씨에게 A신탁과 '관리형 토지 신탁' 계약을 맺도록 했다. 헤르만하우스2차가 들어설 부지의 명의 관리를 A신탁에 넘기는 대가로 대주단으로부터 330억원을 대출받는 것이 계약 내용의 골자다. 그러나 이 계약은 몇 년 뒤 정씨를 범법자로 만들었다.

A신탁 명의로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공사, 하지만 분양권을 놓고 정씨와 삼성은 또 다시 갈등을 빚었다. 분양가를 놓고 정씨와 삼성이 이견을 보인 것이다. 정씨는 2011년 5월9일 홍콩 호화투자유한공사와 전 세대를 분양원가(100%)에 매매하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삼성은 2011년 6월18일 자체 고용한 텔레마케터 등을 통해 할인분양(68%)을 시작했다. 여기서 정씨는 삼성이 자신의 분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정씨에 따르면 JBS는 헤르만하우스1차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이 있으며, 헤르만하우스2차 역시 계약서상 '분양 책임'이 JBS에 있음을 명시했으므로 JBS가 분양권을 행사하는 게 맞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토지를 담보로 330억원을 대출받았던 정씨의 대출금 상환이 늦어지자 A신탁이 정씨의 채무를 은행에 대위변제한 것. 즉 채무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면서 채무자가 갖고 있던 모든 권리를 (강제로) 양도받은 것이다. 그러나 정씨는 "삼성과 A신탁이 처음부터 짜고 나를 팽한 것"이라며 "대위변제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정씨는 "헤르만하우스2차 분양 과정에서 온갖 불법이 자행됐다"고 말했다.

가령 정씨가 내민 공사도급내역서를 보면 삼성과 A신탁은 2009년 3월4일 정씨를 대신해 공동으로 내역서에 날인했다. 즉 정씨와 A신탁이 위탁 및 수탁 계약을 맺기도 전에 A신탁이 먼저 정씨의 권리를 행사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A신탁은 정씨가 부가세 환급금을 세무서에 잘못 지불한 사안을 놓고, 정씨가 세무서에 남은 환급금을 지불하려 하자 이를 거부한 뒤 정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또 정씨가 고소당하자 삼성 측은 정씨에게 접근해 사업권 포기를 종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배후 있나? 없나?

삼성 측 관계자는 "결국은 시공이 문제였는데 우리가 착공을 미뤄서 얻는 게 무엇이었겠냐"며 "정씨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방문을 통한 자료 확인요구에 대해선 거부 의사를 밝힌 뒤 "상식적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을 아꼈다.


기자가 만난 한 건설 전문가는 사견임을 전제로 "정씨가 분양권을 양도하기로 했는지가 중요할 것"이라며 "분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법정 공방을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소송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진행 중이다. 정씨가 주장하는 피해금액은 분양가와 대출금 이자 등 939억2500만원이다. 하지만 정씨가 정산하지 않은 공사비 332억원(삼성 측 주장 567억원)과 A신탁이 대위변제한 330억원 등을 제하면 실제 손해배상액은 청구금액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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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