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기획특집②>친일논란 재벌기업 족보&현주소 해부

‘일제 완장’재벌들 출발부터 남달랐다

해마다 돌아오는 광복절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대기업들이 있다.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몰락한 기업이 태반. 그런가하면 아직 떵떵거리는 기업도 많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재계에도 깊게 뿌리박힌 셈이다. 물론 선대의 과오나 오점을 무턱대고 후손들에게 지게 하는 것은 잔혹하다. 하지만 부의 세습이 이뤄지는 재계 특성상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출발부터 남달랐던 기업은 어디일까.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이긴 하지만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친일 내지 소극적 협일 행적을 보인 창업주 가문과 그들이 일군 기업 현주소의 대문을 활짝 열어봤다.

미완의 과제 ‘친일 청산’재계도 깊게 뿌리
협일 행적 보인 창업주 가문 ‘대대로 떵떵’


친일 논란 기업 하면 현대그룹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현정은 회장의 조부가 일제시대 때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준호씨인 탓이다. 중추원 참의는 친일규명법에서도 명기된 민족반역자로 분류된다.
호남의 대부호였던 현씨는 1920년 호남은행을 설립해 대표를 지내다 1930년 중추원 참의가 된 직후부터 일제 편에 섰다. 조선총독부 편찬 공로자 명단에 오르는가 하면 일본의 정책을 대중에 선전하는 시국강연회에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또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 참여했으며 비행기까지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세 ‘부 세습’
정말로 깨끗할까

현씨는 이 댓가로 2002년 국회가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현씨뿐만 아니라 부친 현기봉씨도 전라남도 참사, 전남도평의회 의원, 중추원 참의 등 일제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현씨의 후손들은 재계에서 이름을 날렸거나, 현재까지 날리고 있다. 현씨의 셋째 아들 현영원씨는 1995년까지 신한해운(현 현대상선) 회장을 지냈다. 그의 부인은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 대주주로 현 회장의 사업적 위기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딸 넷을 뒀는데 차녀가 현 회장이다. 1976년 정몽헌 회장과 결혼한 현 회장은 사망한 부군 대신 그룹 지휘봉을 잡았다. 1남2녀를 둔 현 회장의 장녀 정지이씨는 현대U&I 전무이며 차녀 정영이씨와 외아들 정영선씨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삼양그룹도 친일 논란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현씨와 함께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연수 창업주 때문이다. 두 사람은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서 같이 활동했다. 역시 호남 대지주였던 김 창업주는 이밖에도 만주국 명예총영사, 국민총력연맹 후생부장,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등 많은 ‘일제직함’을 보유했었다.

게다가 1935년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공로자명감>에까지 등재됐다. 이런 이유로 김 창업주도 각 민족단체가 꼽은 친일파 명단에 올라있다. 1948년 9월 시작된 반민특위에서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정상참작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김 창업주는 1961년 전경련 전신인 전국경제협의회장을 맡는 등 재계에 다시 발을 붙였다.

김 창업주는 7남6녀를 뒀다. 김 창업주가 1924년 설립한 삼양그룹은 그의 자녀들이 쪼개 갖고 있다. 3남 김상홍 명예회장과 5남 김상하 전 회장이 2000년대 초반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이어 김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 김상하 전 회장의 장남 김원 사장이 바통을 받았다. 이들의 형제들과 사촌들도 그룹 계열사에 몸담고 있다.

삼양그룹과 사돈기업인 경방그룹도 김 창업주 손에서 컸다. 경방그룹은 김 창업주의 형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가 1919년 설립한 경성방직이 전신이다. 1970년 경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줄곧 김 창업주가 경영하다가 1945년 광복 후 매제인 김용완 전 명예회장이 맡았고, 다시 그의 장남 김각중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김용완-김각중 부자는 2대에 걸쳐 전경련 회장을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금은 김 명예회장의 두 아들 김준 사장, 김담 부사장 형제체제로 그룹이 운영되고 있다.

김용완 전 명예회장의 부인은 김 창업주의 여동생 김점효씨다. 또 김각중 명예회장과 김상홍 명예회장의 부인들이 자매로 둘은 동서지간이다.
두산그룹 창업주도 친일 족적을 남겼다. 박승직 창업주가 주인공이다. 박 창업주는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등을 지냈다.

현대, 삼양, 경방, 두산, 동원INC 선대 ‘친일 족적’
효성, 금호, 대림, CJ, 대한전선 선조 ‘일본 나랏밥’


특히 박 창업주는 1933년 김연수 창업주와 같이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해 친일 의혹을 더 짙게 한다. 소화기린맥주는 적산기업(일본인이 운영하다 버리고 간 기업)으로, 그는 이를 통해 두산그룹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오비맥주 전신)의 기틀을 마련했다.
1896년 개점한 ‘박승직상점’을 운영하던 박 창업주는 광복 후 불하받은 소화기린맥주를 장남 박두병 초대회장에게 맡겼다. 이는 두산그룹이 ‘맥주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박 초대회장은 6남1녀(용곤-용오-용성-용현-용만-용욱-용언)를 뒀다. 두산그룹은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과 달리 지난 100년 동안 ‘박승직→박두병→박용곤’으로 연결된 대물림에 이어 차남(용오), 3남(용성)이 차례로 그룹의 회장을 맡는 ‘형제경영’의 전통을 만들었다.
하지만 2005년 ‘형제의 난’이 벌어지면서 이 원칙이 깨졌고, 두산일가는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지난 3월 4남(용현)이 그룹 회장직에 오르는 등 3남(용오)을 제외한 두산가 형제들이 그룹을 재장악한 상태다. 여기에 두산가 4세들까지 속속 경영일선에 전진 배치되고 있다.

아예 대놓고 일제에 적극 협력한 인물도 있다. 친일파 명단 상위에 올라있는 이해승씨가 그렇다. 이씨는 일제로부터 당시 조선인으론 가장 높은 작위인 후작과 매국공채 16만2000원을 받고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등 식민지 지배에 앞장섰다. 친일 공로로 일본 정부의 대훈장인 이화대수장 등 각종 서위까지 받았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조선 왕족이란 사실이다. 이씨는 조선조 25번째 왕인 철종의 형 연평군의 손자다. 이씨의 지저분한 행적은 이를 무색케 한다.
이씨는 6·25 전쟁 때 행방불명됐지만, 왕족신분 때 나라에서 내린 재산은 고스란히 후세인 이우영 동원INC 회장이 꿰찼다. 이씨의 손자 이 회장은 현재 서울 홍은동에 있는 그랜드힐튼 서울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이 호텔이 있는 부지가 이씨가 남긴 땅이다. 이 회장은 부친 이완주씨가 일찍 세상을 뜨자 할아버지 이씨의 밑에서 자랐고, 그의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홍은동 호텔 부지엔 원래 전계대원군과 회평군, 영평군 등 이 회장의 선조들 묘소가 있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1988년 이 선산을 포천으로 옮기고 호텔을 세웠다. 호텔은 이 회장이 경영하는 동원INC(60%), 스위스항공(20%), 네슬레(20%) 등이 투자한 합작형태로 운영되다 2001년 이 회장이 모든 지분을 인수하면서 100% 소유하게 됐다.

친일재산조사위는 2007년 이 회장 소유의 홍은동과 포천 등 토지 약 200만㎡(시가 300억원대)를 국가 귀속하기로 결정했고, 이 회장은 이에 반발해 환수 취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같이 직접적으로 친일 행보를 보여 민족반역자와 그의 후손들이란 오명을 쓴 기업인들이 있는가 하면 단지 일가 윗대 중 한 명이 일제 식민지 시절 ‘나랏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욕먹는’기업들도 있다. 효성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대림그룹, CJ그룹, 보광그룹 일가가 대표적이다.

효성가 직계는 일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조석래 회장의 장인 송인상씨가 민족단체들로부터 부일협력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1950∼1960년대 한국은행 부총재와 재무부 장관까지 지낸 송씨는 일제시대 식산은행에서 일한 은행원 출신이다.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은 식산은행은 일본이 조선에서 신용기구를 통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기 위해 만든 은행이다. 송씨는 1935년부터 이 은행에서 근무해 심사부장까지 역임했다.

윗대는 행방불명
재산만 물려받아 

 
이 과정에서 송씨는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친분을 쌓았고, 이 인연은 사돈으로 이어졌다. 조 창업주의 장남 조 회장과 송씨의 3녀 송광자씨가 결혼한 것.
송씨는 조 창업주가 1978년 건강 악화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동양나이론 회장, 효성T&C 회장 등을 맡았다. 지금은 효성그룹 고문으로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인천 창업주는 1924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 영광경찰서 순사로 취업해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광복 무렵까지 경찰간부로 근무했던 박 창업주의 최종 계급은 경부였다. 일부 민족연구가들은 “이만하면 친일명단에 올라야 하는 수준”이라고 단언하지만, 박 창업주의 친일행적이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는 경찰직에서 나와 1946년 17만원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2대를 사들여 광주택시를 설립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했다. 광주택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다. 박 창업주는 금호실업, 광주고속, 삼양타이어, 전남제사, 한국합성고무, 삼화교통㈜ 등 계열사 6개사로 1973년 ‘그룹’체제를 출범했다.
이 중 사업다각화의 스타트를 끊은 전남제사는 적산기업으로 꼽힌다. 전남제사는 1926년 일본인 등이 세운 방직업체로 광복 후 전남대학교에서 소유했는데 경영부실로 어려움을 겪다 박 창업주가 1954년 인수했다.

박 창업주는 5남3녀(성용-경애-정구-강자-삼구-찬구-현주-종구)를 뒀는데, 딸을 제외한 아들들에게 각 계열사 경영을 맡겼다. 형제경영의 시초다. 하지만 최근 3남 박삼구 명예회장과 4남 박찬구 전 회장이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여 이 전통은 산산이 부서졌다.
대림그룹은 이재준 창업주의 부친 이규응씨가 일제시대 경기도 시흥군 남면(현 산본 일대) 면장을 지낸 경력이 문제다. 또 이 창업주의 형 이재형 전 의원도 일제시대 때 총독부가 설립한 금융조합의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금융조합 이사는 총독이 임면권을 갖고 있었다.

민족반역자협회 측은 “대림가가 친일의 대가로 재산을 늘려나간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림그룹의 모태는 1939년 이 창업주가 부평역 앞에 문을 연 목재와 건자재상 점포다. 이 창업주는 그룹의 모기업인 대림산업을 장남 이준용 명예회장에게 물려줬다. 현재 대림산업은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 이해욱 부사장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외할아버지 손영기씨는 일제시대 때 경기도 장단군 군수와 총독부 소속 관료로 근무했다. 광복 후 농림부 양정국장과 경기도지사,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회장 등을 역임했지만, 지난해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부문에 선정됐다.

손씨의 딸 손복남 CJ그룹 고문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와 결혼했다. 손씨와 이 창업주는 사돈 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손씨는 이 창업주의 부인 박두을씨와 외가 쪽으로 6촌 인척이기도 하다. 그의 아들은 손경식 CJ그룹 공동회장(대한상의 회장)이다.
보광그룹 일가도 민족단체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홍석규 회장의 부친 홍진기씨가 일제 치하에서 법관을 지낸 탓이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목록에 오른 그는 광복 전까지 경성지법 사법관시보와 검사대리, 전주지법 판사 등을 지냈다.

1960년대 이병철 창업주와의 인연으로 삼성그룹 소유의 서울중앙라디오방송과 중앙일보 사장으로 있었다. 1967년엔 장녀 홍라희씨를 이건희 전 회장에게 출가시켜 삼성가와 사돈을 맺었다.
홍진기는 4남2녀를 뒀다. 장남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차남 홍석조 보광훼미리마트 회장, 3남 홍석준 보광창투 회장, 4남 홍석규 보광 회장 등 그의 아들들은 1999년 삼성으로부터 분할한 보광그룹 계열사를 나눠 경영 중이다. 막내딸 홍라영씨는 리움박물관 수석 부관장과 삼성문화재단의 상무를 겸하고 있다.

대한전선그룹 일가의 선대도 석연치 않은 행보를 걸었다. 설경동 창업주는 일본 유학 후 1921년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 판매 사업을 벌인 것. 1936년엔 함경북도 청진에 동해수산공업을 설립해 대부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해방 직후 친일파로 몰려 북측 공산군에게 재산을 몰수당한 뒤 어선 몇 척을 몰고 월남해 대한전선그룹을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설 창업주는 1954년 자유당 재정부장과 중앙위원 등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근 적이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부정축재자로 몰리기도 했다.

“조상의 과오·오점
 후손에 책임 잔혹”

이에 대해 반론도 있다. 그를 조명한 여러 문헌들은 “설 창업주를 친일파로 단정할 근거가 없다. 누군가 억울한 누명을 씌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4남2녀를 둔 설 창업주는 장남 설원식씨와 차남 설원철씨에게 각각 대한산업과 대한방직을, 3남 설원량씨에게 대한전선을, 4남 설원봉씨에게 대한제당을 넘겨줬다. 이 중 설원식씨는 일제시대 때 식산은행 총재를 지낸 임송본씨의 딸 임희숙씨와 결혼했다. 설원량씨는 양귀애 대한전선그룹 고문과 결혼해 2남을 뒀는데 장남 설윤석 상무가 그룹 적통을 계승할 준비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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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