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 사는 옛 스타들

  • 최현경 mw2871@naver.com
  • 등록 2013.10.15 15: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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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과거 안녕… TV 밖서 새 길을 찾다

[일요시사=사회팀] TV 속에서 사라진 스타들의 ‘인생 2막’소식이 간간이 들린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들이 연예계를 떠난 이유와 연예인이 아닌 제2의 삶을 살아가며 인생의 반전을 맞이한 스타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특이한 할머니 분장으로 90년대 인기를 누린 개그우먼 정재윤. 1987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최연소자로 입상하면서 방송계에 데뷔한 정재윤은 리포터, MC 등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하다 98년 결혼과 동시에 방송계를 떠났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한 방송에 출연하며 피부미용관리사로서의 삶이 공개됐다. 방송에 출연한 그는 어린 나이에 시작해 힘들었던 방송생활과 이른 결혼으로 빈 그의 자리를 후배들이 채워 방송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와 연예인 최초로 제1회 피부미용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미용관리사로서의 삶을 고백했다.

피부미용관리사 에 대한 경력사 협회 자격증, NGO 국제발관리협회 자격증, 한국네일협회자격증 등 8개의 자격증을 보유한 그는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향장미용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호서전문학교 피부미용학과 겸임교수 및 방송의상예술학부 특임교수를 맡고 있다. 피부미용 전문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정재윤은 피부관련 프로그램 출연과 LA에서 강연을 하는 등 미의 전도사로 활동중이다.

80년대 하이틴
세계적 요리사로

그는 “피부미용을 공부하고, 내 이름을 내건 화장품까지 내놓으면서 화장품에 관해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섰다”면서 “앞으로 열심히 연구해 여성들의 노화를 최대한 늦춰주는 명품 화장품을 개발해 세계로 수출함으로써 미용의 한류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90년대 <뿌요뿌요> <바다> 등의 히트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4인조 혼성그룹 ‘유피(UP)’의 리더 김용일은 현재 국내에서 손꼽히는 웨이크보드 선수다.

97년 침체기에 빠져있던 ‘유피’가 해체되며 그룹 ‘옵션’을 결성해 활동했지만 이마저도 인기를 얻지 못한 그는 가수로서의 생활을 중단하고 웨이크보드 선수로 전향했다.

이후 각종 국내·국제대회에서 순위권에 들며 웨이크보드 선수로서 이름을 알린 김용일은 국내 최고의 웨이크보드 선수로 인정받았다. 웨이크보드 마니아들의 ‘우상’인 그는 지난 7월에 열린 ‘2013 웨이크보드 케이블파크 러시아 세계 챔피온십’에서 2위를 수상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활약 중이다.

웨이크보드 선수이자 지도자인 김용일은 ‘웨이크보드 교실’을 운영하며 그만의 뛰어난 묘기와 라이딩 실력을 일반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가 지도한 팀이 전국 웨이크보드 아마추어 동호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지도자로서의 실력 또한 입증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솔직하게 연예인 생활보다 지금 스포츠를 하는 게 나에게는 적성에 맞는 것 같다. 그냥 살아있는 것 같다. 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것 같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보트 뒤에서 물을 가르며 웨이크 보드를 즐기는 게 훨씬 더 좋은 것 같다”고 밝혔다.

90년대 인기가수
세계적인 선수로

<할 수 있어> <대한건아 만세>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낸 90년대의 대표적인 꽃미남 그룹 NRG의 멤버였던 문성훈은 현재 가방 디자이너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1997년 이성진, 천명훈, 노유민과 함께 NRG로 가수활동을 시작한 문성훈은 2004년 그룹을 탈퇴하며 가수활동을 중단했다. 종종 방송출연을 하는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2011년 KBS <여유만만>을 통해 가방 디자이너 겸 CEO로 변신한 모습을 공개했다. 지갑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가방 제작을 배우게 되면서 가방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가죽공예를 배우며 실력을 쌓아 5년째 가방제작 사업을 하며 가방 제작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가방 제작 교육기관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방송에 출연한 그는 “(연예계 활동 당시에는) 내 열정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 만큼 그때 열심히 했으면 아마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꿈을 버린 것이 아니니까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여러분을 방송에서 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연예계에 복귀하고픈 희망도 내비쳤다.

80∼90년대 아이돌 멤버들 이색 직업 화제
변호사, 요리사, 스포츠 선수로 ‘제2의 삶’

배우 문근영이 영화 <어린 신부>에서 불러 유명해진 <난 사랑을 아직 몰라>의 원조는 80년대 하이틴 여가수 이지연이다. 청순한 외모로 많은 남성을 설레게 했던 이지연은 <난 사랑을 아직 몰라>로 데뷔하며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등을 히트시켰다.

인기의 절정을 누리던 90년, 이지연은 그룹 ‘히파이브’ 출신인 사업가 정국진씨와 미국에서 결혼하며 3집 음반발표를 마지막으로 연예계를 떠났다.

18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한 그는 어린 시절 배운 요리 실력으로 애틀란타 소재 유명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뢰’에 입학해 식품영양학, 식당경영학, 요리 실기 등의 수업을 받았다. 전 과목을 A학점으로 졸업한 그는 각종 요리대회에서 수상하며 세계 최고급 호텔에서 일류 요리사로 성장했다.

현재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서 한국식 바비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고유의 음식 재료와 미국인의 입맛을 아우르는 그의 요리는 미국의 각종 언론에 소개되며 베스트 식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애틀란타의 명성있는 요리평론가들이 뽑는 ‘베스트 요리 10선’에서 ‘매운 돼지고기 샌드위치’가 6위를 차지해 명성을 이어갔다.

지난 5월 SBS <땡큐>에 출연한 그는 힘들었던 가수생활을 고백하며 “과거는 과거일 뿐이며 이제는 최고의 요리사로 인정받는 것만이 남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라고 말했다.

가수, 리포터거쳐
유명 영어강사로

지난 3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걸그룹 망하고 토익 강사가 된 여자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사진의 주인공은 그룹 O-24(오투포)의 멤버 안미정이었다.

O-24는 90년대 청순한 ‘힙합 여자그룹’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자유> <첫사랑> 등의 곡을 발표한 걸그룹이다. 멤버 주연정이 탈퇴하면서 3인조로 활동을 이어가던 이들은 2집 <그로잉 업>의 타이곡이 표절시비에 휘말리며 소리없이 해체했다.





이후 안미정은 수원 SBS 리포터로 방송계에 얼굴을 알리며 2007년 SBS <뉴스와 생활경제> 리포터로 방송에 복귀해 미모의 리포터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곧 방송을 그만둔 그는 2009년, 한 영어 전문학원의 강사로 활동하며 ‘미모의 토익강사’로 입소문을 탔다. 현재는 토익강사를 거쳐 노량진에서 경찰영어 강사로 활동중이다.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본래 영어 교육과 방송에 관심이 많았다”며 “공부를 꾸준히 하다보니 가르치는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며 가수에서 강사로 전향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시청자의 입장에서 스타들을 응원하겠다”며 강사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 밝혔다.

가요계 엄친딸
미국 변호사로

가요계의 소문난 ‘엄친딸’ 가수 이소은은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다. 꾸밈없이 맑은 목소리의 16세 소녀로 데뷔한 이소은은 당시 가요계에서 가장 어린 솔로 여가수였다. EBS <청소년 창작가요제> 출신인 그는 앨범을 발표하기 전부터 가수이자 작곡가인 윤상과 이승환, 이적으로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키친> <오래오래>를 비롯해 김동률과의 듀엣곡 <기적> <욕심쟁이> 등을 부르며 소녀적인 감성의 발라드 가수로 인정받았다.

가수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던 2009년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며 방송생활을 중단했다. 변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한 그는 지난해 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현재 미국의 한 로펌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8월 YTN <이슈 앤 피플>에 출연한 이소은은 “어릴 때부터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가수 생활을 하면서 나의 영향력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됐고 일종의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받은 관심에 비해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릴 때 데뷔하며 충분히 다른 꿈을 꿀 수 있었다. 나 자신에게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시 돌아온 스타는?
기자님도, 목사님도 컴백

조정린이 TV조선 <연예해부, 여기자 삼총사가 간다>의 진행자로 돌아왔다. 2002년 고등학생이었던 조정린은 MBC 설날특집 <팔도 모창 가수왕>에서 뛰어난 성대모사 실력과 입담을 선보이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MBC 시트콤 <논스톱5> <두근두근체인지>에 출연한 그는 Mnet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의 진행을 맡으며 라디오 DJ, 리포터 등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로 주목받았다. 잘 나가던 그는 2008년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서 몇 년간 자신을 칭찬하는 글이 자작극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비호감 연예인으로 전락했다.

이후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조정린은 지난해 9월 TV조선 방송기자로 입사해 화제를 모았다. TV조선 문화연예부 소속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 8월 <연예해부, 여기자 삼총사가 간다> MC로 복귀했다. 조정린은 “과거에는 내 부분(MC)에만 힘을 쏟았다면 이번에는 프로그램의 진행은 물론이고 취재, 섭외, 리포트 등 할 일이 많다”며 “그래도 프로그램 전반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 보람을 느끼고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설렌다”고 MC 발탁 소감을 밝혔다.

지난 6월 서세원도 채널A <서세원 남희석의 여러 가지 연구소(이하 여러 가지 연구소)> MC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 연구소>는 다양한 인생의 문제를 놓고 색다른 질문과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토크쇼다.

1996년부터 KBS <서세원쇼>의 명MC로 사랑을 받았던 서세원은 2004년 방송사 PD 등에게 홍보비를 건넨 혐의를 받으며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방송을 중단한 그는 미국의 한 신학 교육기관에서 정규과정을 수료한 뒤 2011년, 목사 안수를 받아 청담동에 개척교회를 세우고 선교활동을 해왔다. 목사가 된 이후 방송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 밝히며 방송복귀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던 그가 <여러 가지 연구소> MC로 복귀소식을 알렸다.

6년 만에 방송에 복귀한 그는 “오랜만에 방송국에 오니 굉장히 기쁘고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 직업이 개그맨이기에 웃기는 것이 내 본분인 것 같다”며 복귀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방송 한 달 만에 프로그램이 폐지되며 그의 재치있는 입담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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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