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데렐라 실화' 재벌가 사위 현주소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0.08 10: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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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잘 만나 팔자 고친 백년손님들

[일요시사=경제1팀]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위는 식구보다는 손님에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벌가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아들 못지않은 사위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위들의 경영참여가 늘고 있는 추세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다. <일요시사>가 '백년손님' 딱지를 뗀 사위와 처가와는 거리를 두고 살고 있는 사위들을 소개해 봤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국내 최초로 처가의 사업을 물려받은 사위들이다. 그들의 장인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는 북한에서 홀로 월남, 슬하에 딸만 둘을 뒀다. 장녀 이혜경 부회장은 76년 현 회장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부산지검의 검사였던 현 회장은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낸 현상윤씨의 친손자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현인섭씨의 3남2녀 중 셋째다.

이듬해인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법조인에서 경영인으로 변신을 한 현 회장은 이 창업주 아래에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81년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땄고 83년 동양시멘트 사장, 88년 동양증권 회장을 거쳐 89년 동양그룹 회장에 올랐다.

둘째 딸 이화경 부회장은 10년 이상 열애 끝에 80년 담 회장과 결혼에 골인했다. 담 회장의 선친은 화교 출신으로 대구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다. 이화경 부회장과는 담 회장이 서울로 유학 오면서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던 담 회장은 결혼 직후 동양시멘트에 입사했다가 1년 뒤 동양제과로 회사를 옮겼고 89년 사장에 올랐다.

인생역전
승승장구

이 창업주가 타계한 89년부터 2001년까지는 '한 지붕 두 사위'시대가 지속됐다.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현 회장은 시멘트와 금융 부문을, 담 회장은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쪽을 맡아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졌다.


분리 후 두 회장은 부부 경영을 앞세워 신사업 확장, 내실 다지기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독자행보를 걸어왔다.

현 회장이 이끄는 동양그룹은 현재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있다. 현 회장이 담 회장에게 친 'SOS'는 거절당했고 지난 9월30일, 1100억원의 기업어음(CP)을 막지 못해 ㈜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사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오리온도 사정이 그리 좋지는 못하다. 지난 2011년 6월 회사 돈으로 고가 미술품을 사들여 자택에 장식품으로 설치하는 등의 수법으로 226억원을 횡령하고 74억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담 회장이 구속기소된 후 지난 4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담 회장의 '두 얼굴'에 혀를 내둘렀고 회사 명성에는 금이 갔다. 여기에 담 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오리온의 실적이 더 오르면서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오리온은 현재 외국인 지분율이 40%에 육박해 경영권도 안전하지 않다. 이는 담 회장이 현 회장의 손을 뿌리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이 창업주의 동양그룹과는 달리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은 재계에서 '사위복'이 가장 많은 기업으로 꼽힌다. 정 회장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고 이정화씨와 결혼해 슬하에 성이, 명이, 윤이, 의선 등 1남3녀를 뒀다.

둘째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의 남편인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사장은  재벌가 사위들 중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정 사장은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의 장남으로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미국 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 이사로 시작해 현대정공,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를 거쳐 지난 2003년 현대카드 사장을 맡아 3년이나 적자였던 현대카드를 공격적이고 과감한 경영과 톡톡 튀는 마케팅으로 취임 2년 만에 흑자로 돌려세웠다.


'동양가 희비' 손 벌린 현재현 등 돌린 담철곤
사위복 터진 삼성·현대차…경영 실적 '방긋'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등의 광고 카피는 모두 그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셋째 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와 혼인한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 역시 철강 경기 침체 속에서 견실한 실적을 거두며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루퍼란대학교 경영학과와 페퍼다인대학 MBA과정을 수료한 그는 95년 현대정공에 입사해 정윤이 전무를 만났다. 2001년 임원으로 승진했으며 2002년 관리본부 부본부장(전무), 2003년 영업본부장 및 기획담당(부사장)을 거쳐 2005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지난 2011년에는 단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영업본부장 시절 1조원대에 머물던 현대하이스코의 연간 매출액을 2조3000억원으로 끌어올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고 지난해에는 매출 8조4000억원, 영업이익 435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9%, 0.3% 성장시켰다.

맏딸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결혼한 선두훈 영훈의료재단선병원 이사장·코렌텍 대표는 현대차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2008년 현대차그룹에서 독립한 인공관절개발사 코렌텍 지분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인공 고관절 수술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다 2001년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 부친이 일구어 놓은 병원에 자리 잡았다. 현재 대전 선병원은 전문 경영인인 둘째 선승훈씨가 경영을 맡고, 치과의사인 셋째 선경훈씨가 치과병원을 담당하면서 삼형제가 이끌어가는 병원으로 유명하다.

선 대표가 이끌고 있는 코렌텍은 국내 인공관절 시장에서 고관절 부문 1위, 슬관절 부문 3위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코렌텍은 세계 최초로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인공관절 제조에 성공해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건희 회장의 사위들도 지난해 우수한 경영성과를 거두면서 '사위복'이 있는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첫째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남편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은 최근 급성장한 회사 실적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서울고를 나와 단국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한 임 부사장은 지난 9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3년 뒤 이부진 사장과 결혼했다. 이후 미국 MIT로 유학을 떠났다가 삼성전자 미주본사 전략팀, 2005년 삼성전기 기획팀 상무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했다. 5년간 상무보와 상무를 거친 후 지난 2009년 12월 전무로 승진했고 지난해 삼성그룹 임원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초고속 승진
핵심보직 중용

삼성전기는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갤럭시S4 출시와 카메라모듈 사업의 성장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1% 상승한 매출액 4조428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각각 33.4%, 31.5% 증가한 3355억원, 2705억원을 냈다.

둘째 딸인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과 결혼한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도 탁월한 실적을 선보이며 그룹 내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2002년 제일기획 상무보로 입사, 2004년부터 제일모직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1년 12월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맡은 김 사장은 지난해 9월 볼리비아 국영석유가스공사 'YPFB'와 8억4000만달러 규모의 플랜트 건설 계약을 체결하며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엔지니어링은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건설사 순위 20위권에 진입하는 쾌거를 올렸다.

범삼성가로 꼽히는 신세계에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사위인 문성욱 이마트 부사장이 있다. 2001년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과 결혼한 문 부사장은 2011년 말부터 이마트 해외사업을 총괄해오고 있다.

현대가 맏사위
"내 갈길 갈란다"

장영신 애경 회장의 맏사위 안용찬 애경·제주항공 부회장도 맹활약하는 사위 중 한명이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MBA를 거쳐 87년 애경에 입사한 안 부회장은 처남인 채형석 부회장의 소개로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과 결혼했다.

지난 2006년 생활·항공 부문 부회장을 역임하며 관할 사업을 총괄하기 시작한 그는 제주항공과 네오팜 등 계열사들의 실적을 크게 개선시키면서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 한 해 동안 항공기 4대를 새롭게 도입하고 신규 노선 공략에도 적극 나섰으며 아토피 피부염 보조치료용 보습제를 만드는 네오팜 또한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견고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항공은 올 상반기에만 매출액 2057억원, 영업이익 62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매출액은 지난 2011년 한 해 액수와 맞먹고 영업이익은 지난해 실적(22억원)을 크게 넘어섰다. 네오팜은 올 상반기 100억원의 매출과 1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고 최종건 SK 창업주의 둘째 사위인 박장석 SKC 사장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79년 SK네트워크에 입사한 박 사장은 2004년부터 SKC 사장을 맡아 비디오테이프, CD, DVD 등 주력사업 쇠퇴로 맞은 SKC를 위기에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SKC는 2조6292억원의 매출액과 144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32.1% 감소했으나 태양광사업 침체 속에 선방했다는 분석이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의 외동딸 윤자원씨와 결혼한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이사는 미국에서 MBA과정을 수료하고 컨설턴트 회사에 근무하며 해태제과 인수 작업을 주도한 장본인으로 2005년 해태제과 상무로 입사했다. 이후 윤 회장과 함께 공동대표이사를 맡았으며 2008년 멜라민 파동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며 경영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대부분 처갓집 도와 경영
거리 두고 개인플레이도

사회적으로 사위들의 경영참여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서 사위의 경영참여 불가 등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그룹들도 있다. LG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코오롱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양자 광모씨를 포함, 1남2녀를 두고 있다. 지난 2006년 장녀 연경씨와 결혼한 윤관 블루런벤처스 사장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공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2000년부터 블루런벤처스에서 일해 왔다. LG그룹의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연경씨도 가사에 전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윤 사장의 LG그룹 경영 참여가 조심스레 점쳐지곤 하지만 딸들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LG그룹 일가의 가풍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딸 자혜씨와 결혼을 한 이재연 아시안스타 회장과 막내딸 자영씨와 부부 사이인 이재원 전 일성제지 회장은 LG그룹 계열사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구 창업주의 자리를 이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딸 미정씨와 결혼한 최병민 대한펄프 회장도 마찬가지로 한국제지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등 그의 부친인 고 최화식 대한펄프 창업주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사위는 '백년손님'일 뿐이다. 고 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의 맏딸 경애씨는 경상도 출신 제헌의원인 배태성씨의 장남 영환씨에게 시집갔다. 영환씨는 현재 삼화고속 회장직을 맡고 있다. 차녀 박강자 금호미술관 관장은 강대균 대한전자재료 회장과 결혼했다. 삼녀인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스 부회장은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박 창업주의 차남인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은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장녀인 은형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남 김선협 포천아도니스CC 대표와 결혼했으며 차녀 은경씨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차남인 장세홍 대표와 혼인했다. 3녀인 은혜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 대표와 결혼했다.

그룹 경영권을 이어 받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녀인 세진씨는 최성욱 변호사에게 시집을 갔고 최 변호사는 김앤장법률사무소에 재직 중이다.

잘 키운 사위
아들딸 안부럽다

코오롱그룹 또한 정·관계는 물론 재계 유력가문들과의 사돈 관계를 통해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사위들이 있음에도 이들의 경영 참여를 배제하고 오너를 통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현재 장자승계 방식을 통해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만 창업주에 이어 장남인 이동찬 명예회장과 장손인 이웅렬 회장이 차례로 그룹을 승계했다. 이외 다른 형제나 사위들은 모두 기업 경영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먼저 이 명예회장의 장녀인 경숙씨는 영남대 교수인 이문조씨와 결혼했다. 차녀인 상희씨는 고 고흥명 한국파이롯트 회장의 외아들인 고석진씨와 결혼했으며 삼녀인 혜숙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동혁씨는 현재 고려해운 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 석사를 마치고 해운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사녀 은주씨는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외아들인 영철씨와 가정을 꾸렸으며 막내딸인 경주씨는 사업가인 최윤석씨와 결혼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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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