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데렐라 활극' 동양-오리온 동상이몽 내막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0.01 13:27:10
  • 댓글 0개

사람이냐 회사냐…담철곤은 실리를 택했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 서열 38위 동양그룹을 이끄는 현재현 회장이 벼랑 끝에 섰다. 자금확보를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리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기업어음 등은 하루하루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믿었던 동서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등을 돌렸다. '물'보다 진한 '피'는 '돈'보다는 연했다.




동양그룹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그룹 주력이었던 동양종금을 비롯한 금융계열사들의 부실악화로 퇴출직전 상태에 몰렸던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이를 외면했고 동양그룹은 금융계열사에 자체 자금을 쏟아부어 가까스로 위기탈출에 성공했다.

15년 만의 위기
현 회장 선택은?

15년이 지난 지금 동양그룹은 또 다시 벼랑 끝에 섰다. 동양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최대 원인은 고질적인 재무구조 부실을 꼽을 수 있다. 외환위기 때 악화됐던 그룹 재무구조는 동양증권 등에서 고금리를 약속하고 발행한 동양 관련 CP(기업어음) 등으로 돌려막으면서 간신히 유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증권사가 계열사 CP를 발행하지 못하게 금융투자업 규정이 바뀌면서 자금 조달의 길이 막혔고 미뤄둔 계산서가 한꺼번에 날아든 것이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동양그룹의 CP 규모는 1조1000억원대다. CP외에 채권단 보유 여신도 9000억원 정도에 달한다. 동양그룹은 채권단 보유 여신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 역시 만기를 연장해놓은 상태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동양증권에서 CP 매각도 10월부터는 금지되기 때문에 자금조달 방법이 없고 그렇게 되면 동양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궁지에 몰린 동양그룹은 계열사 보유 자산들을 기초로 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최대 1조원 가량 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낮은 신용등급을 보강하기 위한 신용 제공처를 백방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선뜻 신용보강에 나서는 기업은 없었고 결국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동서지간인 담철곤 오리온 회장에게 SOS를 쳤다. 담 회장과 그의 부인인 이화경 부회장이 보유한 오리온 주식(각각 12.91%, 14.49%)을 담보로 신용을 보강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을 하고 이후 동양매직 등 계열사 매각을 성사시키면 유동성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담 회장 부부의 지분율은 28.81%로 시장 가치로 보면 1조6000여억원에 해당한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사위들이다. 이 창업주의 장녀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이 현 회장의 부인이고, 둘째 딸인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이 담 회장의 부인이다. 부인들로 보면 '자매 그룹'이고 사위들로 보면 '동서 그룹'이다. 두 부부는 서울 성북동에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사촌이기도 하다.

좌초위기 현 회장 'SOS'…담 회장 'NO'
심사숙고 끝에 "동양에 지원없다" 결론

동양그룹의 '사위 경영'은 지난 2001년 9월 시작됐다. 북한에서 홀로 월남한 이 창업주는 슬하에 딸만 둘을 뒀다. 장녀 이혜경 부회장은 1976년 현 회장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부산지검의 검사였던 현 회장은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낸 현상윤씨의 친손자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현인섭씨의 3남2녀 중 셋째다.

이듬해인 77년 동양시멘트 이사로, 법조인에서 경영인으로 변신을 한 현 회장은 이 창업주 아래에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81년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땄고 83년 동양시멘트 사장, 88년 동양증권 회장을 거쳐 89년 동양그룹 회장에 올랐다.

둘째 딸 이화경 부회장은 10년 이상 열애 끝에 80년 담 회장과 결혼에 골인했다. 담 회장의 선친은 화교 출신으로 대구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다. 이화경 부회장과는 담 회장이 서울로 유학 오면서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던 담 회장은 결혼 직후 동양시멘트에 입사했다가 1년 뒤 동양제과로 회사를 옮겼고 89년 사장에 올랐다.


이 창업주가 타계한 89년부터 2001년까지는 '한 지붕 두 사위'시대가 지속됐다.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현 회장은 시멘트와 금융 부문을, 담 회장은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쪽을 맡아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졌다.

분리 후 두 회장은 부부 경영을 앞세워 신사업 확장, 내실 다지기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독자행보를 걸어왔다.
지난 9월10일 이혜경 부회장은 어머니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을 통해 이화경 부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사장도 담 회장 부부에게 동양그룹을 지원해줄 것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오리온의 재무상태다. 양호한 편이지만 넉넉하지만은 않다. 올 상반기 말 계열사를 포함한 오리온의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2조8129억원이고, 이 가운데 유동자산은 1조168억원으로 분석됐다. 이 중 보유현금과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만 놓고 본다면 4000억원 수준이다.

담 회장 지원 거부
경영권이 우선

게다가 오리온은 돈쓸 곳도 많다. 중국시장 판매 확대를 위한 선양공장 신축에 내년까지 총 1억달러가 소요된다. 또한 담 회장이 지난 4월 대법원에서 횡령·배임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던 터라 회사 차원에서의 지원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담 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추석연휴 전 담 회장은 '지원 불가'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런 입장이 금융감독원에 전해졌고 금감원은 발표를 미룰 것을 요구했다. 추석 연휴에 동양그룹 계열사의 CP와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는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동양증권 특별 점검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담 회장의 심경 변화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 이사장도 이날 담 회장에게 발표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장모의 사위사랑
지분 무상 증여

그러나 담 회장은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인 23일 동양그룹에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격 발표했다. 담 회장 부부는 이어 지원 불가 심경을 토로하는 내용의 '사랑하는 오리온 가족 여러분께 전하는 글'을 사내 인터넷망에 올렸다. 이 글은 이화경 부회장이 주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부는 "동양그룹에서 자금 지원 요청을 받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어떤 결정이 최선일지 고민했다"며 "추석 내내 아버지의 체취가 담긴 책 <동양보다 큰 사람>을 읽으며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식으로서, 동생으로서, 경영자로서 모두를 충족시키는 완벽한 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가슴에 평생 안고 갈 빚이 될 테지만 저희와 오리온그룹은 독립경영을 할 것이며 동양그룹이 요청한 자금 지원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부부는 또 "혈연 앞에서조차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경영자'라는 이름의 자리가 이번만큼 힘든 적은 정말 없었다"며 "오리온의 대주주로서, 경영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이번 저희의 결정으로 인한 어떤 비난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업계는 담 회장 부부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담 회장은 이날 임원회의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40% 육박하는 상황에서 잘못되면 오리온이 외국인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담 회장 부부의 지분은 개인 지분이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 지분이라고 할 수 없다. 오리온이 동양을 지원한 후 행여 동양그룹이 발행한 ABS를 상환하지 못하는 사태에 당면할 경우 결국 담 회장 부부의 오리온 지분을 매각해 상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오너 주식의 담보 제공이 경영권 문제로 퍼지고 결국 회사 가치 하락으로 동반부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이사장이 동양그룹 지원에 나서고 동양네트웍스 측이 오리온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 9월24일 이 이사장은 동양네트웍스에 무상대여한 오리온 주식 2.66%(15만9000주)를 증여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동양네트웍스 측은 "이 이사장의 증여 결정은 오리온 그룹의 동양그룹 지원 여부와 무관하게 결정됐다"며 "이번 오리온의 발표로 친족기업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서운한 속내를 드러냈다.

동양네트웍스 측은 이어 "오리온그룹은 이 이사장의 의지와 달리 동양그룹 지원을 공식 거절했다"며 "친족기업이면서 계열분리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이유를 들어 동양그룹의 지원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오리온그룹과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팔 수 있는 건 다 팔겠다"
10월 CP 못막으면 법정관리

담 회장만 바라보던 현 회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이사장이 사재 출연에 나섰다고 하지만 이는 동양네트웍스의 부채비율(723.8%)을 120%로 낮춰 자금조달에 작은 숨통이 뚫린 정도. 10월 말 돌아오는 회사채와 CP 등 4200억원을 막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재계는 동양그룹이 이를 갚지 못하면 주요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정관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계열사는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이다. 두 계열사는 이미 완전자본잠식 상태인데다 10월 중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와 CP 등이 그룹 내에서 가장 많기 때문이다. 동양레저의 경우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CP가 1329억, 동양인터내셔널은 1898억원이다. 또한 두 계열사 모두 10월까지 갚아야하는 회사채가 모두 800억원에 이른다.


동양그룹의 지배구조는 현 회장→(주)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시멘트→동양파워→삼척화력발전소와 현 회장→동양레저→동양증권 순으로 지분을 보유한 구조로 돼 있다.

이중 동양레저는 ㈜동양 지분 36.25%, 동양증권 지분 14.8%, 동양파워 지분 24.99%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동양인터내셔널은 동양증권 19%, 동양시멘트 1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두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그룹 전체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그룹 지주회사격인 ㈜동양의 대주주가 동양레저이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단 동양그룹은 "팔 수 있는 건 다 판다"는 입장이다.

동양그룹은 동양매직과 ㈜동양의 섬유사업 부문을 매각해 각각 2500억원, 800억원을 확보하고 당장 1000억여원을 현금화할 수 있는 레미콘사업장 20곳 등도 팔 계획이다.

특히 일부 지분만을 매각하려고 했던 동양파워는 전량 매각 방침으로 돌아섰다. 동양파워는 동양시멘트와 함께 그룹의 차기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발전사업을 담당하기로 한 기업이다.

동양파워 지분 100%의 가치는 2020년부터 나올 매출액에 대한 미래 가치를 추산해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파느냐다. 동양파워 매각은 매수인 우위로 진행되는 인수·합병(M&A)이다. 통상 M&A는 매각 공고 후 빠르게 매각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4~5개월은 족히 소요된다. 연말까지 돌아오는 채권과 CP 규모가 1조원을 웃도는 지라 동양그룹은 매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사방팔방이 '벽'
타개책 있나?

매각이 빨리 진행되더라도 제값을 받을 수 있는가도 문제다. 매도인이 급하면 매수인은 가격을 깎으려고 한다. 삼척에서 건설 중인 화력발전소 건설이 2019년에나 마무리 된다는 점도 가격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올 하반기 대형 매물인 STX에너지도 걸림돌이다. 에너지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업체들은 STX에너지의 가치가 동양파워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STX에너지 인수에 실패할 경우 차순위로 동양파워 인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STX에너지 인수 과정을 기다리다보면 마음이 더 급해지는 건 동양그룹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동양이 계열사 법정관리를 감수하고 핵심 계열사도 매각하는 초강수를 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동양파워에 동양시멘트를 함께 묶어 매각하는 방법으로 가치를 높이거나 동양증권을 매각하는 방법 등을 동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 회장은 벼랑 끝에 서있다. 싸늘한 시장반응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사방팔방이 벽으로 막혀버린 상황에서 15년 전의 그 날처럼 다시 일어설지 재계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