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특집> ⑩명절만 되면 생각나는 추억의 스타들

  • 최현경 mw2871@naver.com
  • 등록 2013.09.17 07: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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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켜면 아이돌 일색…어르신들은 따분하다

[일요시사=특별기획팀]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만 되면, TV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아이돌’ 특집 프로그램들이 수없이 쏟아진다. 우리 부모들에게도 한 때 로망이었던 스타들이 있었다. 이젠 추억이  된 그 스타들. ‘어른’을 위한 스타, 누가 있을까.




요즈음 TV에는 수많은 아이돌이며, 다들 비슷하게 생긴 배우들 등 정신없이 많은 연예인들의 얼굴이 지나간다. 얼굴도 알아보기 어려운 어린(?) 스타들 사이에서 가끔씩 떠오르는 옛 스타들이 있다. 예쁜 외모 또는 뛰어난 노래실력들로 당시의 화제가 되었던 스타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잊혀진 스타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도 후배 연예인들의 성대모사 대상이 되고 있는 ‘꺾기’창법의 대가, 나훈아는 1966년 당시 19세 나이로 ‘천리길’을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강촌에 살고 싶네’ ‘님 그리워’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내며 정통 트로트를 고수했다. 71년 ‘가지 마오’를 통해 KBS 음악대상을 수상하고 그 이후로도 ‘고향역’ ‘머나먼 고향’을 차례로 히트시켰다.

나훈아는 노래실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곡, 작사 능력으로 100곡 이상의 곡을 만들어 내면서 ‘대한민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데뷔 이후 약 2500곡을 녹음하고 19개의 정규앨범을 포함하여 총 200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행적에 대한 관심
언론의 억측들로

가수로서 완벽했던 나훈아는 완벽하지 못한 사생활로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75년 첫 번째 아내, 이숙희씨와 이혼한 그는 76년 당시 유명했던 배우 김지미와 결혼하며 화제를 일으켰다. 그는 공식적으로 3번의 결혼을 했는데 85년 김지미와의 이혼 이후, 후배가수였던 정수경씨와 결혼했지만 현재 이마저도 순탄치 못했다. 2007년 예정됐던 공연 취소를 끝으로 그가 노래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러던 그가 2008년 돌연 기자회견을 자청해 ‘신체절단설’을 부인했고 그것이 공식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간혹 그의 근황이 들리고 있지만 그의 모습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최근 한 종편방송에 출연한 나훈아의 지인은 “나훈아가 양평의 실버타운 같은 비싼 요양원에 있다”고 전했다.

영화 <변강쇠> ‘옹녀’역의 영화배우 원미경은 당시 짙은 농염함으로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섹시배우다.

원미경은 78년, 18세에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서 ‘미스롯데’로 선발됐고 TBC 공채탤런트 20기로 데뷔하며 이미숙, 정애리와 함께 80년대 트로이카로 불렸다.

70∼80년대 스타덤 올랐다 홀연 사라져
은퇴 후 억측기사와 황당소문에 시달려

연기자로서 그의 첫 작품인 79년 MBC 드라마 <청춘의 덫>은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도중 중단되었다. 이어 영화 <청춘의 덫>이 제작되며 영화배우 원미경으로서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청춘의 덫>은 박근형, 한진희, 유지인이 함께 출연한 영화로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다. 당시 그의 나이 20살.

영화 <청춘의 덫>에 이어 영화 <제3 한강교>를 통해 깊이 있는 멜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원미경은 ‘제 18대 대종상-신인상’ ‘백상예술대상-신인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색깔있는 여자> <F학점의 천재들> <심장이 뛰네>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이어나갔다.

단아함과 청순함의 대표 아이콘이던 원미경은 86년 영화 <변강쇠>에서 섹시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보이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음 해인 87년 당시 출연 중이던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의 담당PD인 이창순과 2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후, MBC 드라마 <아줌마>에서 억척스러운 ‘주부’역할을 하며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섹시스타에서 억척스러운 아줌마까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연기자의 길을 걷던 그는 2002년 MBC 드라마 <고백>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활동을 중단한 원미경은 현재, 남편인 이창순PD와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 중이다. 원미경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 다만 언제라도 좋은 작품이 있으면 실망스럽지 않은 좋은 모습으로 찾아뵐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귀여운 아역배우 출신
시대흐름에 외면당해

“아저씨∼계란 드실라우?”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귀여운 목소리의 아역배우 전영선.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전영선은 영화배우였던 고모 나애심(본명 전봉선)의 권유로 영화 <종말 없는 비극>을 통해 데뷔했다.

아역 전영선의 연기력이 단연 돋보였던 영화는 1961년에 제작된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이다.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최은희, 김진규, 도금봉 등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하며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으로 ‘옥희’역의 전영선 또한 앙증맞은 표정연기와 똑부러진 소녀의 아역배우로 거듭났다.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통해 천재적인 자질을 보여준 전영선은 안성기, 안인숙 등과 함께 '꼬마별'로 불리며 <불효자> <슬픔은 없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등 약 25편의 작품에서 아역을 도맡아 출연했다. 

그 중 신상옥 감독의 영화 <이 생명 다하도록>은 전영선에게 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이 생명 다하도록>에 출연한 전영선은 62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최초로 아역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 당시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독일의 분위기가 분단과 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기 충분했다고.




69년 영화 <암살자>를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사라졌던 그는 75년 고영남 감독의 영화 <서북청년>의 주연을 맡았다. 아역스타답게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되었지만 외모를 중요시하는 시대 흐름 때문에 성인 여배우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다시 영화계의 별이 되고자 했던 전영선은 81년 영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조연으로 출연했고 이 작품이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70년대 당시 연애잡지였던 <아리랑>과 <명랑>은 문희, 남정희, 윤정희를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라 칭했다. 그 이후로 당대 인기있는 여배우들을 ‘2세대, 3세대 트로이카’라고 지칭하곤 했다.

여배우 트로이카
여전히 아름다워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에 이어 70년대 후반에는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가 2대 여배우 트로이카로서 그 뒤를 이었다. 이 중에서도 단연 외모가 돋보였다는 정윤희. 지난 2005년 한 여성잡지에서 영화계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국 여배우 최고 미인’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정윤희’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젊은 층에게 배우 수애와 닮아 관심이 높아진 영화배우 정윤희는 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했다.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여자와 비> 등의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아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및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인기 절정이던 84년, 정윤희는 조규영 중앙산업개발 회장과 결혼하며 영화계 은퇴선언을 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2대 여배우 트로이카, 유지인, 장미희와는 달리 배우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정윤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계속됐지만 결혼 이후 단 한 차례도 공개석상에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그는 2005년 MBC 한가위 특집다큐 <우리가 사랑한 여배우들-카페 정윤희>를 통해 “직접 만나 뵙고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아직까지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자필편지로만 소식을 전했다. 최근 한 언론사에 의해 공개된 그녀의 최근 모습에 대한 네티즌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배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소탈하고 검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팬들의 바람대로
조용히 활동 재개도

70년대 소녀들의 우상이던 포크계의 전설, 그룹 ‘어니언스’. 당시 가요계는 신나는 ‘팝계열’의 음악이 등장하고 있었다. 72년 ‘작은 새’로 가요계에 데뷔한 포크 그룹 어니언스의 등장은 포크음악의 대중화에 본격적으로기여했다. ‘편지’ ‘저 별과 달을’ ‘외길’ 등 이들의 앨범에 수록된 곡 전부가 히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쾌하고 잘생긴 외모 또한 여고생들의 마음을 흔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들의 인기를 당시 한 음악잡지에서는 “이대강당에서 지난 74년 5월 4일 열렸던 어니언스의 리사이틀은 모여든 관객들을 제 시간에 입장시키지 않고 있다가 관객들이 강당에서 이대교문까지 장사진을 이루는 등 대학가에서 흔치 않은 진풍경을 보인 뒤에야 뒤늦게 시작됐다. 교복차림의 중고교생들이 대부분인 것 같은 관객들은….”이라고 했다. 이후 멤버였던 이수영은 영화 <그대의 찬 손>에 출연하는가 하면 74년 KBS 방송가요 대상을 받으며 실력을 검증받았다. 

이들은 75년 멤버 이수영의 군입대와 함께 해체됐다. 홀로 남은 임창제는 ‘어니언스 임창제’라는 이름으로 가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이수영은 군 제대를 하며 79년 ‘하얀 면사포’와 80년 ‘숙녀’라는 이름의 두 앨범을 마지막으로 가요계를 떠났다. 가요계를 떠난 그는 종합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2002년 건설업 중견 사업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이수영과 임창제는 ‘어니언스’라는 이름의 와인바와 카페를 각자 운영해오며 팬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2004년, 어니언스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싶다는 팬들의 바람에 따라 ‘추억의 낭만 콘서트’를 통해 해체 후 30년 만에 변하지 않는 호흡을 보여줬다. 같은 해, 8월 이수영은 ‘프레셔스 메모리즈’를 발표하며 홀로 음악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다른 멤버인 임창제는 지난 2월 KBS의 한 프로에 딸 임나경과 함께 출연해 과거 싱어스 누들(성대에 생긴 양성종양)로 인한 후유증 등을 고백하며 근황을 전했다.


좋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면…
복귀 언제쯤? 기약 없는 귀환

66년 걸쭉하고 허스키한 저음으로 무대를 압도하던 소녀, 문주란. 당시 16세란 나이와 앳된 소녀얼굴과 달리 카리스마있는 저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가수다. 데뷔와 함께 주목을 받았던 10대 신인스타, 문주란은 ‘보슬비오는 거리’ ‘파란 이별의 글씨’ ‘낙조’ 등의 히트곡을 내며 무명생활없이 스타가 되었다.

65년 잡지 아리랑에서 주최한 연말 시상식에서 최고 인기상 독수리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MBC 10대 가수 가요제 가수상, TBC 신인상 수상 등을 수차례 수상하며 당대 최고가수였던 남진, 이미자와 같은 선배들과 한 무대에서 섰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며 인기를 누리던 문주란은 데뷔 3년 만에 한 방송국 PD와의 스캔들과 언론의 억측기사들로 힘들어하다 음독자살을 시도를 하며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80년대 다시 가요계로 돌아온 문주란은 일본에서 활동하며 국내에서도 ‘백치 아다다’ 등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곧 활동을 중단했다. 그 이후에도 국내 가요계에 간혹 앨범을 발표하며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길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신곡 ‘양재동 거리’를 발표하며 SBS <도전 1000곡>,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한 방송에 출연해 인간 문주란으로서의 모습을 공개했다. 청평의 한 카페를 운영하며 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던 그는 데뷔 45년만인 지난 6월 첫 대형 콘서트를 시작으로 중후한 매력의 가수 문주란으로 돌아왔다.

 

최현경 기자 <mw287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제2의 전성기 스타들
안방 여왕들 속속 귀환

연예계를 은퇴했던 스타들이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다시 복귀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MBC 드라마 <모래시계>를 끝으로 배우 고현정은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10년만에 이혼하며 연예계에 컴백한 고현정은 SBS 드라마 <봄날>을 시작으로 <선덕여왕> <대물> <여왕의 교실>등의 드라마를 통해 실력있는 연기파배우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미스코리아 진 출신의 배우 오현경 비디오 파문으로 은퇴한 지 2년 만에 결혼하며 배우활동을 중단했다. 지난 2006년 안타까운 이혼소식과 함께 돌아온 오현경은 SBS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로 연예계에 복귀한 이후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등을 통해 다양한 매력의 연기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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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