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계는…' 오너 일가 줄사퇴 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9.16 1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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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만 터지면 '소나기 피하기'

[일요시사=경제1팀]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내려놓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GS그룹 회장의 동생 2명이 물러난 데 이어 최근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까지 자진 사임했다. 기업들은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에 대한 의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외부에서는 계열사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라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최창원 SK건설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최 부회장은 선경직물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3남으로 최태원 SK(주)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최 부회장은 지난 2000년 SK건설 전무로 선임된 이후 13년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SK케미칼과 SK가스의 부회장 겸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한다.

"모든 책임지고…"
자진사임 진실은?

최 부회장은 사임과 함께 보유 중인 SK건설 주식 132만5000주(약 564억원)를 SK건설 법인에 무상증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체 보유주식 227만주(9.61%) 가운데 58%에 이르는 수치로 회사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결정이라는 게 SK측의 입장이다. 이번 결정으로 최 부회장의 지분율은 4%로 낮아지게 됐다.

최 부회장은 사임 이유에 대해 "SK건설의 근본적인 조직 체질개선과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사회 의장과 부회장직을 사임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며 "SK건설의 미래성장을 강도 높게 추진할 역량과 명망을 갖춘 인사 영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최 부회장의 사임 결정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SK건설의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SK건설은 올 상반기 29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SK그룹이 최태원 회장 '1인 체제'를 확고히 굳히기 위한 결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촌형제들이 계열사를 나눠 맡아 경영하면서 수차례 계열분리설에 휘말린 만큼 사촌형제들과의 경영권 다툼을 불식시키겠다는 것.

당초 재계에서는 사촌지간인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이 그룹 주력사를 나눌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최 부회장이 SK가스와 SK건설, SK케미칼을 그룹서 떼어내, SK케미칼을 지주사로 하고 그 아래에 건설과 가스를 둘 것이라는 것. 하지만 이번 최 부회장이 물러난 것을 계기로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지난 13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국내 62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SK그룹 오너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자산은 2조9013억원으로 집계됐다.

먼저 최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자산 가치는 2조743억원으로 오너 일가 전체 주식자산 가운데 71.49%에 달했다. 최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SK C&C 주식 525만주(10.5%·5723억원)를 보유해 최 회장 뒤를 이었다. 자산비율은 19.72%를 기록했다. 최 부회장이 주식을 증여하기 전 자산평가액은 2222억원. 자산비율은 7.66%로 최 회장과 최 이사장 다음으로 높았다.

경영권 내려놓고 2선 후퇴 결단…진짜 의도는?
대부분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으로 자진사임

현재의 지분율로는 최 부회장이 최 회장의 지원 없이 계열 분리를 이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최 회장이 검찰에 구속돼 실형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촌형제들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당분간은 계열분리 이야기가 다시 거론되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일단 SK 측은 최 부회장이 실적 악화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SK 측은 "최 부회장은 CEO가 아닌 이사회 의장으로서 역할을 해왔다"며 "오히려 오너로서 지분을 내놓으면서 SK건설이 그룹과 묶여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12일에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동생 허명수 전 GS건설 사장이 대표이사를 사임했다. 빈자리는 전문경영인인 임병용 대표가 물려받았다.

이날 허 전 사장은 '사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회사가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사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허 전 사장은 평소 책임경영을 강조해 온 최고 경영자로 주위의 만류에도 최근 경영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직의 혁신적인 변화를 돕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꾸준히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2주 뒤인 6월27일에는 허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이 18년간 맡아온 이 회사의 사내이사직을 돌연 사임했다. 이날 GS네오텍은 임원변동 공시를 통해 허정수 회장이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으며 남기정씨가 신규 선임됐다고 밝혔다. 허정수 회장은 지난 7월3일 사내이사에서 해임됐으며 이사임면의 등기는 같은 달 13일 이뤄졌다.

허정수 회장은 GS네오텍 지분 10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GS그룹 계열사 중에서 GS네오텍을 독자 경영해 왔다.

자진 사임인가
압박 퇴진인가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일감몰아주기 논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짙다. GS네오텍은 GS그룹 계열 정보통신, 전기공사 전문업체로 시스템통합 업체 GS아이티엠과 함께 일감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돼 왔다.

GS네오텍은 지난해 기준 매출액 6047억1200만원, 영업이익 210억7900만원, 당기순이익 191억200만원을 나타냈다. 이 중 매출액 3922억3300만원은 GS그룹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쌓았다. 내부거래비율이 65%에 이른다.

올들어 국세청이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2012년 영업이익분에 대한 증여세 납부기간을 7월 말로 못 박은 바 있다. 허정수 회장은 증여세 납부마감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돌연 사임한 것이다. 그 '의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의도'를 의심케 하는 오너 일가의 자진 사임은 또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3월15일 열린 신세계와 이마트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신세계 측은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 사퇴는 지난 2011년 이마트 기업분할 때부터 예정된 것"이라며 "향후 정 부회장은 그룹 총괄 경영을 강화하고 복합 쇼핑몰 등 미래성장동력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과 관련된 각종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어 오너 일가가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당시 정 부회장은 검찰로부터 베이커리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고용노동부로부터는 이마트가 직원사찰 활동을 벌였다는 의혹으로 특별근로 감독을 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 신세계는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 사임이 검찰조사 등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지난 3월 진행된 정기주총에서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은 7년 만이다.

물러난 총수들
책임 회피 의도?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은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다"면서 "롯데쇼핑 대표에서 물러났지만 롯데케미칼과 롯데제과 등 다른 계열사의 대표와 롯데쇼핑의 신사업과 해외사업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의 사임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대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한발 물러나 경영을 해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롯데쇼핑 대표이사직만 사임한 것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압박이 가장 심한 유통업계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비난도 받았다. 정부가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업계 등의 출점을 제한하고 특히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롯데그룹의 유통사업을 책임지는 롯데쇼핑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이야기다.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다가 간암 치료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지난해 6월 보석으로 풀려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도 미심쩍은 사임을 선택해 논란이 됐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2월9일 회장직을 포함한 일체의 지위에서 사임했다. 태광그룹 측은 "회장단이 그룹 문제로 재판을 받는 등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일체의 직위에서 사임했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대표이사를 포함해 티브로드홀딩스, 티알엠 등 계열사 사내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업계에서는 재벌개혁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 총수가 법적 책임을 이유로 퇴진한 사례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회사에 문제 생기면 '회피용 카드'
잠적 후 은근슬쩍 복귀하는 사례도

하지만 이 전 회장의 사임 시기가 선고공판을 10여 일 앞둔 때여서 법원의 선처를 겨냥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전 회장은 무자료 거래와 회계 부정처리, 임금 허위지급 등으로 회삿돈 약 300억원을 횡령했다. 또 골프연습장 헐값 매도 등으로 그룹에 975억원의 손해를 끼쳐 지난 2011년 1월 구속 기소됐다. 이 전 회장은 재판 도중 간암수술을 받고서 건강 상태를 참작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1·2심에서 모두 징역 4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영 일선에서 제 발로 떠난 오너 일가가 은근슬쩍 복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저런 사건·사고 이후 이를 무마할 목적으로 '사임 카드'를 꺼냈다가 사태가 잠잠해진 틈을 타 당당하게 혹은 소리 소문 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지난해 2월3일 롯데그룹에서는 '롯데가 황녀'로 불리던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신 이사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맏딸이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누나다. 신 이사장은 쇼핑 지휘봉을 내려놓은 대신 롯데복지재단·롯데장학재단·롯데삼동복지재단을 총괄하게 됐다.

신 이사장의 대의는 젊은 피를 위한 세대교체. 하지만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던 신 이사장이 돌연 사임하자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가-롯데가 황녀 전쟁'으로 불렸던 루이비통 유치전에서 패한 데다 '재벌가 빵집' 논란의 여파가 원인이라는 것. 빵집을 운영하던 신 이사장의 자녀와 사위는 대통령까지 나서 일침을 가한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백기를 들고 사업을 철수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신 이사장과 그의 자녀와 사위가 보여준 행보는 '비가 쏟아지자 잠시 우산을 폈다가 그치자 다시 접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로 현업에 복귀했으며 차녀 장선윤씨는 지난해 1월 베이커리 사업을 철수한다고 공표했다가 다시 확대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여론의 불똥이 다시 튀었다.

장씨의 남편 양성욱씨도 수입 포이달 물티슈의 롯데마트 입점을 취소하고 대표이사에서 사임한다고 밝혔지만 롯데마트에 해당 매장이 입점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두산그룹은 2005년 7월 '형제의 난'을 겪은 후 ▲두산가 형제들의 회장직 사퇴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의 수습책을 내놓고 같은 해 11월 두산그룹을 이끌던 박용성-용만 형제는 동반 사퇴했다.

등기임원 사퇴
책임경영 실종

두산그룹은 새 전문경영인을 영입했고 사태가 잠잠해지자 두산가 형제들은 은근슬쩍 돌아왔다. '형제의 난'과 관련해 횡령과 분식회계 관여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을 선고받은 박용성 회장은 2007년 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후 경영 보폭을 넓히다가 두산중공업 등기이사로 경영에 복귀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중공업과 ㈜두산의 이사로 선임되면서 ‘형제의 난’이전 상황을 연출했고 현재 두산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은 2006년 3월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쌍용건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가 2007년 2월 특별사면 돼 1년 만에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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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대문’ VS ‘어대명’ 차이 해부

‘어대문’ VS ‘어대명’ 차이 해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한민국의 흑역사’가 10년도 안 돼 반복되고 있다. ‘평행이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같고 다를까? 2024년 12월은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현직 대통령은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으며 사상 초유의 체포 작전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여객기 사고로 179명의 아까운 목숨도 잃었다. 8년 만에 재연됐다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10여년 전 우리나라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이 실종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파면됐다. 2000년대 들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된 사례는 세 번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 전 대통령,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헌재서 탄핵안이 기각되면서 직무에 복귀했다. 직무가 정지된 윤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불과 8년 새 두 명의 보수 진영 대통령이 헌재 심판대 위에 섰다.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절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가까이에서 볼수록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단적인 예로 박 전 대통령은 ‘태블릿PC’ 보도가 불씨를 댕겼다면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시발점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헌재의 탄핵안 인용-특검 수사-사법 처분 등의 과정을 거쳐 단죄됐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사이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된 때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있다. 2017년 5월9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보궐선거가 열렸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윤 대통령의 상황은 박 전 대통령보다 복잡하다. 헌재의 탄핵 심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의 내란죄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양쪽에서 압박하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소용없는 중범죄라서 수사 속도가 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빠른 상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 호감도 만큼 비호감도↑ 정치권의 눈은 조기 대선에 쏠려 있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최우선에 놓고 심리 중이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 이전에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탄핵안이 인용되면 6월경에는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여야 잠룡들은 헌재의 탄핵안 인용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파면이 결정된 날부터 두 달 사이에 대선을 치러야 하기에 기존에 인지도와 지지율을 어느 정도 확보한 인물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눈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쏠리는 이유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대표는 압도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위 그룹과 큰 격차를 보이면서 1위위로 질주하는 중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이 대표가 3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오세훈 서울시장(7%), 홍준표 대구시장(7%),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5%),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4%) 등이 뒤를 이었다.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32%였다. 이번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3.1%포인트, 응답률은 22.8%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4~6일 만 18세 이상 2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조사에서도 이 대표는 45.1%를 얻었다. 홍준표 대구시장(9.7%),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7.8%),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7.2%), 오세훈 서울시장(6.1%) 등이 뒤를 이었다. 빠르면 6월 보궐선거로 이 대표의 지지율은 여당 후보 5인(홍준표·한동훈·원희룡·오세훈·안철수)의 지지율을 모두 합한 수치(33%)보다 오차범위 밖에서 높았다. 이번 조사는 휴대전화 100% RDD 방식으로 실시했고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조원씨앤아이 홈페이지 참조). 최근 정치권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과 함께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나돌았던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당시 문 전 대통령의 상황과 현재 이 대표의 상황은 천차만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서 박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했다. 당시 대선은 제3당 후보 없이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의 맞대결로 치러졌다. 양측 모두 짜낼 수 있을 만큼 모조리 다 짜낸 선거서 패하자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지지세를 회복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암흑기로 보냈다. 문 전 대통령을 야권의 압도적인 대선주자로 만든 결정적 한 방은 국정 농단 사태였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파생 의혹이 쏟아졌다. 1300만명(누적)의 국민이 거리로 나왔다. 국민적 인기를 등에 업은 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재서 인용될 무렵 ‘차기 대통령’으로 완벽하게 눈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하지만 현재 이 대표의 상황이 당시 문 전 대통령과 비슷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여론조사 수치상으로는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는 말이 들린다. 이 대표가 가진 사법 리스크에 더해 ‘비토층’이 상당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도 싫지만, 이 대표도 싫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전면 나오면 공격거리 많아 실제 최근 나온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호감도, 비호감도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뉴스핌>의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6~7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39.1%가 이 대표를 꼽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9.5%, 홍준표 대구시장 9.3% 등이 뒤를 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도 이 대표는 40.8%로 단연 1위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3.5%, 홍준표 대구시장이 12.2% 등이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호감도 1~4위(이재명·오세훈·홍준표·원희룡)와 비호감도 1~4위가 같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여야의 대선후보군이 어느 정도 추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대은 미디어리서치 대표는 “대선후보군은 ‘이재명 1강’ 독주 속에 범여권의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는 양상”이라며 “범여권 유력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이 대표 한 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마저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한 달 만에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이재명 대항마’는 사실상 실종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비호감도 1위 원인으로는 사법 리스크를 지목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때 불거진 대장동 개발비리 특혜 의혹서 시작된 사법 리스크를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만 5개고 검찰서 추가로 수사 중인 사건도 2개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의혹은 1심 판결이 나왔다. 특히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당선무효형이 나오면서 대선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법원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수준이다. 발목 잡는 사법 리스크 박 때와 다른 보수 결집 위증교사 1심 재판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실제 법조계에서는 선고 전 공직선거법 위반보다 위증교사 혐의의 유죄 가능성을 더 크게 봤다. 위증교사 혐의는 양형 기준에 따라 무죄 아니면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어 항소심서 판결이 바뀌면 이 대표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상대 후보의 공격 포인트 역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연루된 의혹과 논란에 크게 실망했다. 윤 대통령이 퇴장하고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검증을 받기 시작하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층의 결집이 심상찮은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 진영은 친박(친 박근혜)과 비박(비 박근혜) 등으로 사분오열했다. 탄핵안 표결 당시 찬반이 갈리면서 물리적으로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당시 야당과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 표는 171표였다.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표수(200표)는 29표였지만 그보다 많은 63표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서 나왔다. 당이 쪼개질 수밖에 없는 이탈표였다. 반면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는 2번의 표결 끝에 간신히 정족수를 넘겼다. 찬성은 204표로 국민의힘서 12표가량의 이탈표가 나왔다. 탄핵안이 가결된 뒤에도 국민의힘은 강경 지지층을 등에 업고 결집 중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지키기’에 나선 보수층과 국민의힘의 힘을 빼기 위해 ‘머릿수’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 과정서 중도층의 이탈이 표면화되는 모양새다. 애매한 표수 걸림돌 될까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궤멸 직전까지 몰렸던 보수층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태도로 대응하는 점은 민주당은 물론 이 대표에게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명확하게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은 유보층이 상당하다는 점을 봤을 때 중도층을 놓치면 대권서 멀어질 수 있다. 진보 진영의 지지만으로는 ‘어대명’은 완성될 수 없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