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계는…' 오너 일가 줄사퇴 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9.16 1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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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만 터지면 '소나기 피하기'

[일요시사=경제1팀]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내려놓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GS그룹 회장의 동생 2명이 물러난 데 이어 최근 SK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까지 자진 사임했다. 기업들은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에 대한 의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외부에서는 계열사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라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최창원 SK건설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최 부회장은 선경직물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3남으로 최태원 SK(주)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최 부회장은 지난 2000년 SK건설 전무로 선임된 이후 13년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SK케미칼과 SK가스의 부회장 겸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한다.

"모든 책임지고…"
자진사임 진실은?

최 부회장은 사임과 함께 보유 중인 SK건설 주식 132만5000주(약 564억원)를 SK건설 법인에 무상증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체 보유주식 227만주(9.61%) 가운데 58%에 이르는 수치로 회사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결정이라는 게 SK측의 입장이다. 이번 결정으로 최 부회장의 지분율은 4%로 낮아지게 됐다.

최 부회장은 사임 이유에 대해 "SK건설의 근본적인 조직 체질개선과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사회 의장과 부회장직을 사임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며 "SK건설의 미래성장을 강도 높게 추진할 역량과 명망을 갖춘 인사 영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최 부회장의 사임 결정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SK건설의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 인사가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SK건설은 올 상반기 29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SK그룹이 최태원 회장 '1인 체제'를 확고히 굳히기 위한 결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촌형제들이 계열사를 나눠 맡아 경영하면서 수차례 계열분리설에 휘말린 만큼 사촌형제들과의 경영권 다툼을 불식시키겠다는 것.

당초 재계에서는 사촌지간인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이 그룹 주력사를 나눌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최 부회장이 SK가스와 SK건설, SK케미칼을 그룹서 떼어내, SK케미칼을 지주사로 하고 그 아래에 건설과 가스를 둘 것이라는 것. 하지만 이번 최 부회장이 물러난 것을 계기로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지난 13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가 국내 62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SK그룹 오너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자산은 2조9013억원으로 집계됐다.

먼저 최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자산 가치는 2조743억원으로 오너 일가 전체 주식자산 가운데 71.49%에 달했다. 최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SK C&C 주식 525만주(10.5%·5723억원)를 보유해 최 회장 뒤를 이었다. 자산비율은 19.72%를 기록했다. 최 부회장이 주식을 증여하기 전 자산평가액은 2222억원. 자산비율은 7.66%로 최 회장과 최 이사장 다음으로 높았다.

경영권 내려놓고 2선 후퇴 결단…진짜 의도는?
대부분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으로 자진사임

현재의 지분율로는 최 부회장이 최 회장의 지원 없이 계열 분리를 이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최 회장이 검찰에 구속돼 실형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촌형제들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 당분간은 계열분리 이야기가 다시 거론되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일단 SK 측은 최 부회장이 실적 악화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SK 측은 "최 부회장은 CEO가 아닌 이사회 의장으로서 역할을 해왔다"며 "오히려 오너로서 지분을 내놓으면서 SK건설이 그룹과 묶여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12일에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동생 허명수 전 GS건설 사장이 대표이사를 사임했다. 빈자리는 전문경영인인 임병용 대표가 물려받았다.

이날 허 전 사장은 '사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회사가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사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허 전 사장은 평소 책임경영을 강조해 온 최고 경영자로 주위의 만류에도 최근 경영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직의 혁신적인 변화를 돕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꾸준히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2주 뒤인 6월27일에는 허 회장의 바로 아랫동생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이 18년간 맡아온 이 회사의 사내이사직을 돌연 사임했다. 이날 GS네오텍은 임원변동 공시를 통해 허정수 회장이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으며 남기정씨가 신규 선임됐다고 밝혔다. 허정수 회장은 지난 7월3일 사내이사에서 해임됐으며 이사임면의 등기는 같은 달 13일 이뤄졌다.

허정수 회장은 GS네오텍 지분 10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GS그룹 계열사 중에서 GS네오텍을 독자 경영해 왔다.

자진 사임인가
압박 퇴진인가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일감몰아주기 논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짙다. GS네오텍은 GS그룹 계열 정보통신, 전기공사 전문업체로 시스템통합 업체 GS아이티엠과 함께 일감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돼 왔다.

GS네오텍은 지난해 기준 매출액 6047억1200만원, 영업이익 210억7900만원, 당기순이익 191억200만원을 나타냈다. 이 중 매출액 3922억3300만원은 GS그룹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쌓았다. 내부거래비율이 65%에 이른다.

올들어 국세청이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2012년 영업이익분에 대한 증여세 납부기간을 7월 말로 못 박은 바 있다. 허정수 회장은 증여세 납부마감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돌연 사임한 것이다. 그 '의도'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의도'를 의심케 하는 오너 일가의 자진 사임은 또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3월15일 열린 신세계와 이마트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신세계 측은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 사퇴는 지난 2011년 이마트 기업분할 때부터 예정된 것"이라며 "향후 정 부회장은 그룹 총괄 경영을 강화하고 복합 쇼핑몰 등 미래성장동력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과 관련된 각종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어 오너 일가가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당시 정 부회장은 검찰로부터 베이커리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며 고용노동부로부터는 이마트가 직원사찰 활동을 벌였다는 의혹으로 특별근로 감독을 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 신세계는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 사임이 검찰조사 등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지난 3월 진행된 정기주총에서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은 7년 만이다.

물러난 총수들
책임 회피 의도?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은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다"면서 "롯데쇼핑 대표에서 물러났지만 롯데케미칼과 롯데제과 등 다른 계열사의 대표와 롯데쇼핑의 신사업과 해외사업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의 사임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대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한발 물러나 경영을 해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롯데쇼핑 대표이사직만 사임한 것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압박이 가장 심한 유통업계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비난도 받았다. 정부가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업계 등의 출점을 제한하고 특히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롯데그룹의 유통사업을 책임지는 롯데쇼핑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이야기다.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다가 간암 치료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지난해 6월 보석으로 풀려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도 미심쩍은 사임을 선택해 논란이 됐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2월9일 회장직을 포함한 일체의 지위에서 사임했다. 태광그룹 측은 "회장단이 그룹 문제로 재판을 받는 등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일체의 직위에서 사임했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대표이사를 포함해 티브로드홀딩스, 티알엠 등 계열사 사내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업계에서는 재벌개혁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 총수가 법적 책임을 이유로 퇴진한 사례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회사에 문제 생기면 '회피용 카드'
잠적 후 은근슬쩍 복귀하는 사례도

하지만 이 전 회장의 사임 시기가 선고공판을 10여 일 앞둔 때여서 법원의 선처를 겨냥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전 회장은 무자료 거래와 회계 부정처리, 임금 허위지급 등으로 회삿돈 약 300억원을 횡령했다. 또 골프연습장 헐값 매도 등으로 그룹에 975억원의 손해를 끼쳐 지난 2011년 1월 구속 기소됐다. 이 전 회장은 재판 도중 간암수술을 받고서 건강 상태를 참작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1·2심에서 모두 징역 4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영 일선에서 제 발로 떠난 오너 일가가 은근슬쩍 복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저런 사건·사고 이후 이를 무마할 목적으로 '사임 카드'를 꺼냈다가 사태가 잠잠해진 틈을 타 당당하게 혹은 소리 소문 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지난해 2월3일 롯데그룹에서는 '롯데가 황녀'로 불리던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신 이사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맏딸이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누나다. 신 이사장은 쇼핑 지휘봉을 내려놓은 대신 롯데복지재단·롯데장학재단·롯데삼동복지재단을 총괄하게 됐다.

신 이사장의 대의는 젊은 피를 위한 세대교체. 하지만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던 신 이사장이 돌연 사임하자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가-롯데가 황녀 전쟁'으로 불렸던 루이비통 유치전에서 패한 데다 '재벌가 빵집' 논란의 여파가 원인이라는 것. 빵집을 운영하던 신 이사장의 자녀와 사위는 대통령까지 나서 일침을 가한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백기를 들고 사업을 철수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신 이사장과 그의 자녀와 사위가 보여준 행보는 '비가 쏟아지자 잠시 우산을 폈다가 그치자 다시 접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로 현업에 복귀했으며 차녀 장선윤씨는 지난해 1월 베이커리 사업을 철수한다고 공표했다가 다시 확대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여론의 불똥이 다시 튀었다.

장씨의 남편 양성욱씨도 수입 포이달 물티슈의 롯데마트 입점을 취소하고 대표이사에서 사임한다고 밝혔지만 롯데마트에 해당 매장이 입점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두산그룹은 2005년 7월 '형제의 난'을 겪은 후 ▲두산가 형제들의 회장직 사퇴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의 수습책을 내놓고 같은 해 11월 두산그룹을 이끌던 박용성-용만 형제는 동반 사퇴했다.

등기임원 사퇴
책임경영 실종

두산그룹은 새 전문경영인을 영입했고 사태가 잠잠해지자 두산가 형제들은 은근슬쩍 돌아왔다. '형제의 난'과 관련해 횡령과 분식회계 관여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을 선고받은 박용성 회장은 2007년 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후 경영 보폭을 넓히다가 두산중공업 등기이사로 경영에 복귀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중공업과 ㈜두산의 이사로 선임되면서 ‘형제의 난’이전 상황을 연출했고 현재 두산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은 2006년 3월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쌍용건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가 2007년 2월 특별사면 돼 1년 만에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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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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