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침투한 중국 '흑사회' 실체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24 13: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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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무식한 조폭들이 몰려온다

[일요시사=사회팀] 중국 최대 폭력조직 '흑사회'의 부두목 뤼촨보(44)가 2년 전 국내로 입국해 자취를 감췄다는 소문이 돌았다. 뤼촨보는 국제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는 인물로 중국 현지에서는 거물급 조폭으로 통했다. 지난 11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뤼촨보가 검거됐다. 흑사회가 국내로 잠입했다는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뤼촨보는 왜 한국행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리고 흑사회는 언제부터 한국에 손을 뻗었던 것일까.




지난 3일 중국 최대 폭력조직인 '흑사회' 간부급 조직원이 국내에 입국한 뒤 종적을 감춰 경찰이 수배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011년 국내로 들어와 자취를 감춘 뤼촨보의 행방을 추적 중이라고 알렸다. 뤼촨보는 중국 공안은 물론 인터폴 수사망에도 오른 '거물급 조폭'이었다.

흑사회 조직원들
대한민국 접수?

지난 5월 경찰은 서울에 있는 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뤼촨보가 나타났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경찰은 뤼촨보를 현장에서 검거하는데 실패했다. 평소 뤼촨보를 돕고 있던 재한 중국인 조력자들이 뤼촨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기 때문이다. 뤼촨보는 서울 강남의 한 고급아파트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범죄자에게 영원한 도피처는 없었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인터폴 적색수배자 뤼촨보를 지난 11일 검거했다. 뤼촨보에게 적용된 혐의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이었다. 같은 날 경찰은 뤼촨보의 신병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국제법상 적색수배자는 인터폴 190개 회원국에서 소재가 발견될 시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다. 이에 따라 뤼촨보는 중국으로 추방된 뒤 중국 공안에 신병이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거물 잔혹 범죄 저지르고 국내 잠입
강남 등지서 호화생활하다 2년 만에 검거

경찰에 따르면 뤼촨보는 사형선고를 받은 두목 대신 2000년부터 2011년 초까지 중국 칭다오 지역 흑사회 부두목으로 활동했다. 뤼촨보는 살인·폭력을 이용한 협박·갈취 등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뤼촨보는 살인 현장 CCTV 등에 얼굴이 노출되면서 중국 공안의 추적을 받게 됐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뤼촨보는 2011년 5월 단기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와 인천 송도의 호화 오피스텔 등을 오가며 은신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뤼촨보는 2년여의 도피 생활 동안 체중이 10㎏ 가량 줄었으며, 검거 당시 초췌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구속된 뤼촨보는 회색 반팔 티셔츠에 흰색 바지 차림이었다.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 그는 줄곧 고개를 숙였지만 때때로 경찰을 노려보는 등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경찰은 뤼촨보의 내연녀 중국인 진모(25)씨가 살고 있는 서울 서초구에서 10일간의 탐문 수사를 벌인 끝에 10일 오후 6시께 반포동 아파트에서 은신 중이던 뤼촨보를 체포했다.

뤼촨보 조력자
국내에 더 있다

앞서 경찰은 뤼촨보의 자금줄이자 흑사회 조직원인 덩모(36)씨를 체포했다. 지난달 4일 오후 1시30분께 덩씨는 인천공항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검거됐다. 경찰은 중국 공안으로부터 덩씨가 국내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공조해 덩씨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덩씨는 본래 중국 상하이로 출국하려 했으나 공항 수속을 밟던 중 신분이 탄로 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를 받은 덩씨는 7일 오후 중국으로 강제 추방돼 중국 공안에 신병이 넘겨졌다.

덩씨는 지난해 8월 제주 한 리조트에 5억9000만원을 투자, 관계 법령에 따라 'F-2비자'를 발급받았다. 제주도는 지난 2010년부터 개발지역 내 미화 50만달러 혹은 5억원 이상의 콘도·별장 등 휴양시설을 매입한 외국인에게 국내 거주자격을 주는 F-2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올 7월말 기준 F-2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은 모두 270여명. 이중 90%는 중국인인 것으로 한 지역매체는 보도했다. 제주도는 거주기간 동안 범죄행위 등 특별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는 한 투자자와 직계가족에게 영주자격(F-5)을 주고 있다. 현재 이 투자이민 제도는 흑사회의 합법적 국내 진출 통로로 의심받고 있다.

실제로 덩씨는 이 투자이민제도를 악용했다. 한국과 중국을 합법적으로 오가면서 부두목 뤼촨보에게 자금을 댄 것이다. 뤼촨보가 타국에서 호화로운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금줄이 끊기지 않아서"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뤼촨보가 살던 아파트 보증금은 8000만원, 월세는 250만원에 달했다. 이 아파트 안에는 골프장과 수영장 등 고급 레저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뤼촨보의 생활수준을 가늠케 했다.

뤼촨보 입장에서 덩씨의 돈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덩씨는 국내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하루 3000만원에서 10억원 이상의 돈을 벌었던 것으로 한 매체는 보도했다.

덩씨는 중국인들을 카지노에 끌어들인 뒤 카지노가 벌어들인 수입의 10%를 수수료로 챙겼다. 이 돈의 일부는 뤼촨보의 도피자금으로 지원됐다. 뤼촨보는 검거 당시 약 2000만원의 현금을 쥐고 있었다.

일각에선 뤼촨보가 숨긴 자금이 더 많으며, 덩씨의 월수입은 수백억원에 육박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확한 계좌 추적은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오히려 경찰은 뤼촨보의 도피를 도운 7명의 조력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뤼촨보의 도피생활을 도운 조력자들의 명단을 확보했다. 이들은 대부분 흑사회로 의심받고 있다.
경찰은 7명의 조력자들이 뤼촨보를 대신해 부동산 계약을 하고, 통장을 만들면서 그의 도피생활을 도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비호 아래 뤼촨보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며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더불어 뤼촨보는 조력자들이 타인 명의로 개설한 2∼3개의 휴대전화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중국 흑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토종 조폭과
커넥션 있나

그런데 흑사회가 국내 수사기관의 포위망에 걸려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2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중국을 통해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한 혐의로 중국 흑사회 선양파 두목 정모(35)씨 등 4명을 구속기소했다.


정씨 등은 부산 유태파, 서울 청량리파, 의정부 신세븐파, 충남 논산파 등 토종 조폭과 연계해 필로폰을 국내에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 등은 북한에서 제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로폰을 중국 옌타이항에서 부산항으로 가는 소규모 냉동어선에 실어 보냈다. 부산항에 도착한 필로폰은 국내 총책을 거쳐 각 지역 운반책에게 전달됐다.

정씨 등에 의해 1년여 동안 밀반입된 필로폰은 모두 5.95kg. 시가 기준으로 따지면 198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토종 조폭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그 공급책인 중국 흑사회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금 등 도피 도운 추종자 존재
토종 조폭과 연계 가능성 확인

그렇다면 흑사회는 과연 어떤 조직일까. 사실 흑사회는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흑사회는 이탈리아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처럼 중국의 폭력조직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즉 한국의 양은이파·범서방파처럼 특정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 것.

그 쓰임에 따라 다르지만 흑사회는 ‘어둠의 세계’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혹자는 홍콩·마카오를 기반으로 한 폭력조직 '삼합회'와 비교하지만 '삼합회' 역시 보통명사일 뿐 그 실체는 없는 조직이다. 따라서 "삼합회가 흑사회에서 파생됐다"는 소문은 거짓이다.


통칭 흑사회로 아우를 수 있는 범죄조직은 워낙 많아 그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청홍방 등 4000여개의 조직과 80만∼100만명 규모의 조직원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각 지역에 따라 흑사회가 돈을 굴리는 방법은 다르다. 바다를 끼고 있는 '광둥성 흑사회'는 마약 등 각종 밀수가 유명하며 '홍콩 삼합회'는 도박장과 유흥시설 운영에서 강점을 보인다.

타국과의 경계를 맞대고 있는 헤이룽장성·랴오닝성·지린성 흑사회는 매춘 등 인신매매 및 장기밀수의 원천으로 불리며 상하이 등 대도시로 진출한 흑사회는 한국처럼 기업화·합법화 과정을 밟아 부동산·금융·건설업 등에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뤼촨보가 활동했던 산둥성 역시 흑사회의 역사와 뿌리가 깊은 곳으로 이름 높다. 무엇보다 산둥성 흑사회는 한국 내 마약·밀수조직과 연분을 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산둥성에 칭다오, 옌타이, 웨이하이 등 한국행 해로와 직접 연결된 항구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검찰에 붙잡힌 정씨 등이 활동했던 무대는 산둥성이었다. 때문에 산둥성 흑사회는 국내로 반입되는 마약의 주공급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번에 붙잡힌 뤼촨보 역시 산둥성을 근거로 한 흑사회 거물이라 국내 조직과의 커넥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 뤼촨보가 이끌어 온 조직은 보스의 이름을 따라 '니에레이파'라고 불렸다. 니에레이는 칭다오에서 부동산재벌로 이름을 알렸으며, 중국 공안의 중견간부 등과도 유착해 독자 세력을 형성했다.

니에레이파는 칭다오 인근의 유흥업소 등을 접수하는 한편 청부폭력과 도박장 운영 등 사업 영역을 넓히며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초 중국 공안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두목 니에레이는 체포 후 사형선고를 받았다.

지난해 3월 니에레이가 사형을 언도받자 뤼촨보는 두목을 대신해 흑사회 보스 행세를 했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살인을 사주하고, 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다른 조직원의 신체를 절단하는 등 잔혹한 범죄를 잇달아 저질렀다. 결국 뤼촨보는 두목과 같은 운명을 앞두게 됐다.

연변 흑사회
국내서 성장

비록 뤼촨보는 잡혔지만 아직 국내엔 흑사회를 자처하는 무리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연변·룽징 등 조선족자치구에서 활동하던 흑사회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로 진출, 서울 구로와 경기 안산 등 조선족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마약과 불법 의약품 등을 유통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조직과 연계해 보이스피싱 등 신종 금융사기를 벌이고 있어 관련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은 중국에서 일부 탈북자를 빼돌려 현지 성매매업소 등에 여성을 파는 수법으로 돈을 챙기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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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돌파’ 이재명 사생결단 플랜 B

‘정면돌파’ 이재명 사생결단 플랜 B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순항하던 이재명호가 위기다. 지난 15일 위증교사 사건 1심서 무죄를 받았지만 공직선거법에 대한 여진이 남아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선두로 현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방법을 택했다. 서로를 격려하며 다독였지만 어째서인지 허들만 늘어나는 현실이다.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서 1심대로 확정될 경우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돼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대선 과정서 보전받은 434억원도 토해내야 한다. 앞으로 뚜벅뚜벅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서 무죄, 유죄더라도 100만원 이하의 형을 예상했다. 이 대표가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한 답변이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특히 어떠한 인물에 대해 ‘안다’와 ‘모른다’는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 없어 애초에 기소돼선 안 됐을 사건이라며 무죄에 힘을 실었다. 예상을 깨고 법원이 징역형을 내리자 민주당에서는 당혹스러운 기류가 감지됐다. 이날 굳은 얼굴로 법정을 나선 이 대표는 “오늘 이 장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될 것”이라며 “현실 법정은 두 번 더 남았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사실 인정부터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상식과 정의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를 앞세워 정권교체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민주당이 첫판부터 치명타를 입었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이 대표의 리더십에 금이 갈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선고 다음날인 지난 16일 민주당은 비상연석회의를 소집하고 “저들이 아무리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끊으려 해도 이 대표는 결코 죽지 않는다”며 오히려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 역시 서울 광화문서 열린 ‘김건희·윤석열 국정 농단 규탄 및 특검 촉구’ 제3차 집회서 “이재명, 펄펄하게 살아서 인사드린다”며 건재함을 강조했다. 지도부는 리더십 교체에도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민주당 김윤덕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 대표 교체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민주당은 흔들림 없이 싸우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뚜벅뚜벅 나아갈 것이다. 상당히 많은 의원으로부터 격려 전화가 오고 있으며 당이 더 잘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장외 집회에 속도를 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21일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30일에는 전국적인 집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 대동단결 민주당 흐르는 법원의 시간…조기 대선 승부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기본소득당 등 다른 야당과 달리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보다 ‘김건희 특검법 수용’에 중점을 뒀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탄핵이라는 직접적인 발언을 삼가며 단어 선택에 신중을 가하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에 가까워지는 만큼 혹시 모를 역풍에 대비해 특검법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탄핵을 직접적으로 외치지 않았을 뿐, 이 대표 방탄을 위해 ‘탄핵 굴뚝’에 불을 때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의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 민주당 주도로 개헌을 하든, 탄핵을 하든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려 조기 선거를 치르려는 속셈”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할 일은 범죄 방탄, 아스팔트 정치를 중단하고 사법부 판단을 겸허히 기다리는 것”이라며 “그리고 그 판결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거법 등에 따르면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 선고는 앞으로 6개월 안에 이뤄져야 한다. 이는 내년 5월 이전까지로, 대권주자를 노리는 이 대표에게 있어 길지 않은 시간이다. 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의혹 등 추가 재판이 예정돼 대법원 판결까지 다소 시간이 지연될 수 있지만 2027년 대선까지 대법원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이 장외 투쟁을 통해 조기 대선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민주당을 탈당한 개혁신당 조응천 총괄특보단 역시 이 대표의 출구전략으로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제시했다. 조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당선무효로 피선거권 박탈로 확정이 될 것 같으니까 그전에 대선에 들어가는 트럼프식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지난 대국민 담화서 임기 단축 가능성을 닫아놨고 최근 들어서는 지지율이 회복세에 오른 만큼 이를 꺾기 위한 민주당의 공세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젖은 장작 연기만? 문제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처럼 민심에 불이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장외 집회가 열렸던 지난 2일과 9일 각각 30만명, 2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1만7000명, 1만5000명이 참가했다고 추산했다. 이 대표의 1심 선고가 발표된 직후인 지난 16일 집회 역시 주최 측 추산으로는 30만여명이 모였지만 경찰은 2만5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봤다. 민주당과 혁신당을 비롯한 야당은 ‘분노한 시민’의 참여율이 저조한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집회가 시민의 공감대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해 단순히 당원 결집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혁신당 내부에서는 행진 시 정당 깃발을 사용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당 역시 각 시도당위원회와 지역위원회에 집회서 깃발 사용과 파란 의상 착용을 자제해달라는 공지를 보냈다. 두 가지 대책 모두 정당 색을 배제하고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그래도 시민이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16년 탄핵 집회는 시민단체가 주도하고 정당이 참여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됐다”며 “금투세 폐지 등 최근 민주당이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민단체 측 반발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정당과 당원만으로는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언뜻 보면 (민주당과 혁신당은)한목소리 같지만 이 대표는 방탄을 위한 임기 단축을, 조국 대표는 복수를 위한 탄핵을 외친다”며 “같은 야당이어도 단합이 안 되다 보니 일반 시민도 ‘꼼수 집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집회 참여는 곧 방탄’이라는 선입견을 깨트려야 (일반 시민이)광장에 나오고 성난 파도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흔들림 없이 이 대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대표가 1심서 집행유예를 받은 만큼 앞으로의 발언과 행보에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당에 화력을 더해야 하지만 그럴수록 ‘방탄용’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최근에 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는 다시 한번 격돌했다. 지난 14일 발의된 해당 개정안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를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물밑서 조용히 박 의원은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현행법상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경쟁 후보의 공직 적격성에 대한 의혹 검증을 위해 확인하는 경우까지 낙선 목적 허위사실공표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날에는 민주당서 공직선거법상 피선거권 박탈 기준을 기존 벌금 100만원 이상서 1000만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개정안도 연달아 발의했다. 이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려서라도 이 대표를 구하겠다는 일종의 아부성 법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장동혁 최고위원 역시 “민주당 입장에서는 법안이 통과되면 최선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반성적 고려에 의해 처벌 규정에 대한 개정 논의만 있어도 법원에서는 이를 유리한 양형 사유로 참작하는 경우가 있다”며 “어떤 경우라도 이 대표를 위한 꼼수 입법”이라고 보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9일 이 대표가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혐의로 기소되면서 민주당의 부담이 가중됐다. 이 대표와 당시 경기도지사 비서실장 정씨, 전 경기도 공무원 배씨 등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공무와 무관하게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아울러 검찰은 이 대표가 개인 음식값과 세탁비 등을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고도 보고 있다. 사적으로 사용한 배임 금액이 1억653만원으로 추산된다는 게 검찰 측 입장이다. 이번 사건으로 이 대표가 기소되면서 재판은 5개로 늘어났다. 가장 먼저 1심 선고가 난 공직선거법 사건을 비롯해 위증교사 사건(지난 25일 무죄 선고),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등 재판이 이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은 곧바로 논평을 내고 검찰을 향해 날을 세웠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검찰이 이토록 집요하게 억지 기소를 남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며 “제1야당 대표이자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정치 지도자를 법정에 가두고 손발을 묶으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지금은 원팀, 재판 후에는? 3총·3김에 초일회까지 꿈틀 이어 “검찰은 ‘이 대표가 법인카드를 쓴 것도 아닌데 몰랐을 리 없다’는 억지 춘향식 논리를 뻔뻔하게 들이밀었다”며 “이미 경찰 수사에서 이 대표에게 혐의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부득부득 사건을 되살려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역시 “증거는 없지만 기소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체제를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민주당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재판이 거듭될수록 당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남은 재판서 줄줄이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이재명 불가론’이 고개를 들 것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 대표는 민주당을 이끌어야 대권주자로 거듭나는 것이지, 당으로 자신을 방어하려 해서는 민주당도 죽고 본인도 죽는다”는 게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야권 관계자의 평가다. 지도부는 ‘플랜 B’ ‘포스트 이재명’ 등에 대해 딱 잘라 말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과연 차기 당 대표는 누가 될 것인지 저마다 점지하고 나섰다. 친명(친 이재명)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한발 뒤로 물러설 것이란 이야기가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지난 총선서 ‘공천 학살’을 당했던 비명(비 이재명)계가 다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응천 총괄특보단은 “이 대표에 점 하나 찍은 사람이 (대안으로)올라가지 3김(김두관·김경수·김동연·김부겸 등)이나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고려의 대상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권리당원의 반절 이상이 대선 이후에 들어온 강성 친명”이라며 “당원민주주의 한다면서 당헌·당규 같은 것을 다 바꿨다. 강성 당원들의 의지대로, 뜻대로 가게 만들어놨다”고 덧붙였다. ‘3총(이낙연·김부겸·정세균 전직 총리)·3김(김두관·김경수·김동연 등)’의 역할에도 눈길이 쏠린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번 달 초 독일서 회동을 했다. 원외 비명계 모임인 ‘초일회’는 다음달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초청해 특강을 주최하고 내년 1월에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의 만남을 예고하면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다만 비명계는 “나설 때가 아니다” “당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아끼고 있다. 어쩌면 열린 결말 한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의 법원 선고와 관련해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우리가 우려했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어 무척 안타깝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본인이 한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아는 만큼 객관성을 잃은 채 남의 탓으로만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명계 세력이 다시 뭉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지난해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으셨냐”면서도 “당장은 정치 공간이 좁아 쉽지 않겠지만 대안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답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