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 여주인 살인사건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10 1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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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막가파 뺨치는 동갑내기 2인조?

[일요시사=사회팀] 강원도 속초의 한 펜션을 운영하던 50대 여주인이 살해됐다. 그는 두 명의 남자에게 차례로 성폭행 당한 뒤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펜션 여주인 살해사건'은 그 피해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범인들이 범행 후 저지른 돌출행동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해 7월 제주도에서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대형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제주 올레1코스를 걷던 한 40대 여성은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목숨을 잃었다. 사체 발견 당시 피해 여성의 웃옷은 벗겨져 있었다. 누군가 성폭행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통칭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의 범인 강모(46)씨는 피해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4월 대법원은 강씨에게 징역 23년과 정보공개 10년, 전자발찌 착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감형 없는 중형이었다. 

여성만 노린
사이코 범죄

그러나 이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난 8월 강원도에서는 또 다른 대형 강력 성범죄가 발생해 충격을 안겼다.
이른바 '펜션 여주인 살해사건'은 ▲처음부터 여성을 노린 계획범죄라는 점 ▲성범죄와 살인, 시신유기가 한꺼번에 이뤄졌다는 점 ▲범인(들)이 전과를 갖고 있으며,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였다는 점 등이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과 동일했다.

지난 2일 강원 춘천경찰서는 부녀자를 납치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김모(42·제주)씨와 또 다른 김모(42·전북 군산)씨를 붙잡아 조사했다.


이들은 50대 펜션 여주인을 살해한 후 오대산 국도변에 시신을 유기하고, 또 다른 여성을 납치해 윤간하는 등 범행 수법에서 잔인함을 보였다.

특히 이들 중 한 명은 아동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수배 중에 있던 인물로 알려져 그 충격은 더했다.

두 김씨는 3년 전 서울갱생보호소에서 처음 만났다. 각자 강도상해와 특수강도 등 다수의 전과가 있었던 이들은 출소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친분을 쌓았다. 약속대로 재회한 이들은 곧바로 돈을 구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변변한 직장도 없던 이들에게 뾰족한 방도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남에게서 돈을 빼앗을 궁리를 하는 것뿐이었다. 특히 욕정에 목마른 김씨 등에게 유흥비는 절실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7일 오전 3시께 서울에서 40대 여성 A(44)씨를 납치했다. A씨는 두 김씨가 안면이 있는 사업가로부터 소개받은 인물로 전해졌다. A씨는 한 상조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영업 직군의 사원이었다.

서울서 40대녀 납치해 번갈아 성폭행
경찰 추적 피해 도주 중 펜션에 숨어

김씨 등은 범행으로부터 하루 전 26일 "상조에 가입할 사람들을 소개해주겠다"며 A씨를 불러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15명은 가입시켜 주겠다"는 이들의 꾐에 A씨는 김씨 등을 만나러 갔다.


하지만 A씨를 만난 두 김씨는 돌변했다. 이들은 A씨가 타고 온 차를 탈취한 뒤 강원 춘천시 남산면의 야산으로 A씨를 끌고 갔다. 김씨 등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A씨를 잔인하게 윤간했다. 번갈아가며 성폭행하고 수중에 있던 돈과 체크카드를 빼앗았다.

하지만 A씨의 체크카드에는 잔액이 없었다. 김씨 등이 A씨에게서 빼앗은 돈은 3만원에 불과했다.

27일 오전 7시 현금 인출 시도 과정에서 김씨 등의 경계가 느슨해졌다. 이 틈을 타 A씨는 자신의 차를 타고 서울로 도망쳤다. 오전 7시50분께 A씨는 탈출 과정에서 도로를 이탈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신고했지만
잡지못했다

A씨가 차를 타고 빠져나간 것을 알게 된 범인들은 택시를 타고 속초로 도주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숨을 곳을 찾던 김씨 등은 B씨(54·여)가 운영하는 한 펜션에 묵게 됐다.

그 시각 탈출에 성공한 A씨는 경찰에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을 분석해 이들의 신원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강원에서 김서방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음날 B씨의 펜션에 은신하고 있던 김씨 등은 B씨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돈이 필요했던 김씨 등은 B씨를 새로운 범행 대상으로 정했다.

29일 오후 4시50분께 김씨 등은 여주인 B씨에게 "경포대로 놀러가자"며 유혹했다. 이들의 꼬드김에 넘어간 B씨는 김씨 등과 함께 펜션을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B씨는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알지 못했다.

한참을 노닥이던 김씨 등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이들은 30일 새벽 4시20분께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인근 야산으로 B씨를 끌고 갔다. 그곳에서 김씨 등은 B씨를 차례로 성폭행했다.

김씨 등은 B씨에게서 현금 20여만원을 빼앗았다. 범인들의 입장에서는 기대보다 적은 액수였다. 그러자 B씨는 "집에 돈이 더 있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제주에 사는 김씨는 B씨의 얼굴에 비닐을 씌웠다. 김씨는 살의를 갖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김씨가 친구의 행동을 말렸다. 그러나 제주에 사는 김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B씨의 손이 부르르 떨렸고, B씨는 질식사했다.

살인 후 김씨 등은 B씨의 시신을 앞에 두고 제사 지내듯 절했다. 이 절의 의미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불안한 심리상태를 표출한 돌출행동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단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B씨의 죽은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절을 마친 김씨 등은 B씨의 시신을 오대산 인근 풀숲에 유기했다. 그리고 펜션을 떠날 때 타고 온 차를 몰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의문의 뭉칫돈
범죄와 연관성

경찰의 추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지난 1일이다. 범행 후 제주에 사는 김씨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이날 오전 5시35분쯤 경찰 민원상담 전화인 182 민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에서 김씨는 “내가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오대산에 유기했다"며 "곧 자살하겠다"고 말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즉각 통화 내용 등을 토대로 용의자의 위치를 추적했다.

1일 오후 김씨 등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펜션 앞 노상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살하겠다"던 김씨는 비교적 태연한 모습이었다. 경찰은 두 김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1시30분께 경찰은 오대산 8부 능선 비포장도로 옆 풀숲에서 B씨의 시신을 찾아냈다.




경찰 조사에서 두 김씨의 또 다른 범죄 행각이 윤곽을 드러냈다. 제주에 사는 김씨는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지난달 29일 경기 경찰청으로부터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전북에 사는 김씨 역시 특수절도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는 중이었다. 이들은 모두 과거 성범죄 전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이들은 A씨를 성폭행하기 전인 26일 후배의 집에서 시가 680만원 상당의 금(3냥)을 훔쳐 달아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춘천경찰서 김병희 형사과장은 "(범인들의) 전과가 30범 가까이 되기 때문에 수사하는 방법을 다 알고 있어 체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수사진조차 애를 먹은 이들의 도피 행각은 김씨의 돌발 신고로 비교적 쉽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남아있다.

첫째, 김씨 등이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이 수백만원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김씨 등이 후배에게서 훔친 금 3냥을 팔고 남은 돈으로 볼 수 있지만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김씨 등이 보유한 돈은 모두 부정한 범죄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경찰은 김씨 등이 수백만원의 돈을 입수한 경로와 출처 등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둘째, 이번 사건의 주범인 제주에 사는 김씨의 사이코패스 판정 여부다. 앞서 김씨는 182 신고 전화에서 "자살하겠다"고 말했고, 경찰 조사에서도 "죄책감에 자살할 생각이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며 "김씨 등은 도피 생활 중 안마시술소에 가는 등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여주인 야산 끌고가 차례로 몹쓸짓
반항하자 얼굴에 비닐 씌워 질식사

실제로 경찰은 "김씨에게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감지됐다"며 "프로파일러에게 전문 상담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3일 춘전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 직후 "돌아가신 분과 유족들에게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흐느낀 뒤 갑자기 태도를 바꿔 "돈 때문에 그 여자를 죽였다"고 진술하는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이고 있다.

셋째, 이들이 갖고 있던 명함 60여장과 추가 범행의 상관성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지난 4일 <동아일보>는 "제주 출신 김씨가 체포될 당시 보험사, 상조회사 등 영업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명함 60여장을 가지고 있었다"며 "(김씨에게) 명함의 용도를 묻자 김씨가 ‘다 죽이려고 했다. 살려주면 금방 잡히니까"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씨 등은 확보한 명함을 토대로 여성들에게 접근, 돈을 빼앗으려고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경찰은 현재 이 부분도 보강 수사 중이다.

형량 높여도
강간은 계속

일각에서는 이번 '펜션 여주인 살해사건'이 경찰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B씨가 살해되기 전 김씨 등은 이미 경찰의 수배를 받는 상황이었지만 수사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제2의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또 경찰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 4대악 근절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늘어나는 성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그야말로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경찰청이 최근 발간한 '2012 범죄통계'를 봐도 지난해 발생한 성범죄는 1만9670건으로 2011년에 비해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국민적 불안은 매년 가중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를 단기간에 해소할 뚜렷한 해결책은 현재로서 전무하다. 한쪽에선 '형벌의 수위를 높이면 강력범죄가 줄어들 것'이라 단언하지만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진 올해에도 '용인 살인사건' '펜션 여주인 살해사건' 등과 같은 강력 성범죄는 작년과 다름없이 반복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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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어설픈 양다리 작전

국민의힘 어설픈 양다리 작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은 안 된다”는 말로 강성 지지자들과 중도층의 마음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한다. 이질적인 집단의 지지를 모두 얻으려면, 융통성 있는 정치력과 지휘력·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국민의힘에선 과연 누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지난 12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선 서울시·서울연구원이 주최하고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이 주관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가 진행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지방정부에 예산·인력·규제·교육·고용·이민 등 권한을 이양해 중앙집권적 국가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국을 5개의 초광역 경제권으로 나눠, 각 지역의 강점을 극대화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경제 중심지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5대 강소국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A지만, B다” 국힘 유행어 이날 토론회엔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이양수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를 포함한 소속 의원들 48명이 참석했다. 김기현 의원·추경호 전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과 김상욱·김예지·김건 의원 등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도 다수 참석했다. 오 시장의 지지자들도 다수 참석해 환호했다. 국민의힘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문 대행이 고등학교 동문 카페에 게재된 미성년자 음란물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가 조작한 사진이었다. 국민의힘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지난 14일 “여러 일을 처리하는 과정서 사실관계 점검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당이 국민께 사과드릴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90여명은 문 대행의 자택이 있는 아파트단지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지난 17일 ‘음란 수괴 문형배’ 등 피켓을 들고, ‘문형배 사형’ 등 구호를 외쳤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18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헌법기관 및 국가기밀 취급 기관에 외국인 공무원 임용을 제한하고, 이미 임용된 외국인·복수 국적 공무원에 대한 보안 심사를 대폭 강화한다”는 취지의 국가공무원법 및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엔 ‘헌법연구관과 사무처 공무원 임용 시 대한민국 국적 보유 필수 명시’ ‘외국 국적자 및 복수 국적자인 공무원에 대한 국가보안 심사 및 재임용 심사 제도 도입’ 등 내용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선 “중국 개입설을 토대로 한 부정선거론을 헌재와 연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서 ‘조기 대선’이란 말은 금기어로 통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인용되면, 60일 안에 대선이 진행된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를 가정한 조기 대선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겉으로는 조기 대선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론 윤 대통령을 두둔해 강성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오 시장 등 중도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 대선주자를 사실상 관리하는 ‘양다리 작전’으로 대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KPI뉴스>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1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범보수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22.3%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15.1% ▲오세훈 서울시장 9.6%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8.8% ▲홍준표 대구시장 7.0%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4.9%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3.6%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2.6%를 기록했다. 이재명 유죄로 중도 낙마 구상? 윤 대통령 하야로 필승 재집권? 다만 이들 중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양자 대결을 가정한 조사에서 이 대표를 추월하는 수치를 기록한 주자들은 없었다. 이 같은 추세가 유지되는 상황서 조기 대선이 진행되면, 김 전 장관과 오 시장이 큰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유 전 의원과 한 전 대표는 당내 비토 세력의 지지 비중이 크다. 홍 시장과 안 의원은 당내 기반이 약하다. 국민의힘으로선 김 전 장관과 오 시장의 대결로 흥행몰이 해서 보수와 중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이 대표에게 대적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국민의힘 내부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적잖은 불씨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은 집토끼 단속에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논리적 모순과 엇박자가 속출하고 있다. 집권당이자 원내 제2당이 폭동을 공공연하게 옹호할 순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지난 1월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해서도 “폭력은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불법·폭력 행위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야당 대표에게도 똑같은 사법적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등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한 발언도 내놨다. “A지만 B다”라는 논리는 국민의힘이 지난해 12월부터 유지해오고 있는 논조다. 이들 주요 구성원들은 정국 관련 발언을 할 때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이란 단서를 달고 나서 견해를 밝힌다. 나 의원은 지난해 12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비상계엄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을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지난 15일엔 “더불어민주당은 ‘계엄 유발자’ 역할을 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헌재와 민주당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서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과도한 조치”라면서도 헌재와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 “제가 비상계엄 해제 표결 현장에 있었어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은 잘못됐다”는 말은 세간의 비판과 중도층의 시선을 의식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도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A지만, B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물론 A와 B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일이지만, 상대방이 유발한 것이기 때문에, 고치진 않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 구조가 만들어진다. 하야설에 날 선 반응 권 비대위원장은 부정선거론에 대해서도 “A지만 B다”라는 발언 구조를 이어나갔다. 그는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선관위가 나서서 객관적인 검토를 받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어떨지 생각해봤다”며 애매한 발언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씨에 대해선 “큰 영향력을 가진 분이 그렇게 전향하신 부분에 대해선 굉장히 감사하다”는 등 ‘본심’을 드러냈다. 전씨가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서 활동했던 것을 고려한 발언이었다. 국민의힘의 양다리 작전은 당 안팎에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의 그 많은 “A지만 B다”를 모두 모아 요약하면 “비상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탄핵 기각 시 윤 대통령은 이론상으론 직무에 복귀한다. 그런데 현재 윤 대통령은 피고인 신분으로 서울구치소에 갇혀 있다. 구속 피고인은 원칙상 2개월 동안 수감되지만, 심급별로 2회에 걸친 연장을 할 수 있으므로 심급당 최장 6개월까지 수감이 가능하다. 피고인에 대한 구속 기간 연장은 통상적으로 대부분 이뤄진다. 서울구치소서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까? 서울구치소서 국빈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각종 행사에도 한 발짝도 갈 수 없다.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현실적으로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해답으로 ‘이재명’이라는 세 글자에 집중력을 투입한다.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지역구(부산 수영)에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시당도 부산 전체에 이 현수막을 내걸었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설 연휴 동안 (많은 사람이)‘이재명은 안 된다’는 강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가장 바라는 그림은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항소심서 사실상 낙마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제1심서 징역 1년형·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서도 이 형량이 유지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항소심이 빨리 진행돼 집행유예 선고를 유지하고 상고심도 빠르게 진행돼 확정하면, 국민의힘은 더 수월한 상태서 조기 대선을 치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국민의힘은 당 차원서 재판을 통한 이 대표의 조기 낙마를 노리고 있다. 그림은 크지만… 당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은 주진우 의원은 지난달 22일엔 항소심 재판부에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9일엔 이 대표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을 비난하면서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또다시 제출했다. 이를 고려해서인지, 일각에선 ‘윤 대통령 하야설’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 13일 변론기일서 “헌재가 탄핵 심판을 지금처럼 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지난 14일 YTN 라디오 <이익선·최수영의 이슈앤피플>에 출연해 “이재명 재판만으로 여론을 크게 흔들기 어려울 것”이라며, “진짜 변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하야가 선거판을 크게 흔들 수 있다”며 “동정 여론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반이재명 진영에도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그 근거로 “인기와 아쉬움이 있을 때 하야를 선언하는 것이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이 반영되면 윤 대통령의 형사재판서도 불구속 재판 가능성이 커지고 이 대표와 민주당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물론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모두 이를 부인하고 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일원인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14일 채널A와의 인터뷰서 “하야를 운운하는 건 탄핵 공작하는 이들의 사악한 상상력이자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권 비대위원장도 “현실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이를 견제하기 위해 직접 반응을 보였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하야 꼼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의원도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승만의 길을 가건, 박근혜의 길을 가건, 국민 관심 밖이며, 그 선택은 이미 늦었다”고 반응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일국의 집권당이자 보수 대표 정당이란 점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 책임 있는 유력 정당은 재집권 명분을 청사진 제시를 통해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국민의힘의 정치철학과 정책이 얼마나 빈곤한지 드러내고, 이 대표의 맞상대로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대선주자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자폭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각 당의 강성 지지자들과 중도층은 이질적인데, 이는 민주당도 경험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중도층 공략을 위해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 허용 ▲상속세 완화 등 ‘잘사니즘’을 제시했다. ‘강성+중도’ 두 마리 다 놓칠라 이질적 집단 아우를 정치력 부재 그러자 노동계가 민주당에 반발하는 일이 있었다.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며 “우향우 깜빡이를 켰으면 계속 우측으로 달려주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요란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지지 정당을 압박한다. 반대로 중도층은 조용하다. 양당으로부터 각각 실리를 얻길 바라면서, 그때그때 양당을 선택한다. 조용하므로 반응은 선거서만 확인할 수 있어, 경향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파악하기 어렵다고 무시할 수 있는 비중도 아니다. 양당은 각각 30~40%의 지지를 얻고 있고, 무당파는 20~30%의 비중을 차지한다. 딜레마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강성 지지자든 중도층이든, 선거에선 각각 1표씩밖에 행사할 수 없다. 강성 지지자들의 불만을 사지 않으면서 중도층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융통성 있는 정치력과 지휘력·통솔력을 갖춰야 한다. 호감을 얻기에 비교적 어렵지 않은 강성 지지자들에 의존하는 정치로는 정당과 정치인의 지휘력·통솔력을 확인할 수 없다. 이질적인 두 집단을 모두 묶을 수 있는 지휘력·통솔력이야말로 진정한 정치력이다. 이는 현대 정치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제15대 대선 당시 DJP연합과 국민신당 이인제 당시 후보가 신한국당을 탈당한 흐름을 타고 약 39만표 차이로 신한국당 이회창 당시 후보를 상대로 신승했다. 이회창 후보는 당내 경선을 함께 치른 후보들을 통합하는 데 실패해 이인제 후보의 탈당을 막지 못했다. 이 후보는 5년 후 제16대 대선에 다시 출마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원하면서 재차 낙선했다. “개혁 성향의 영남권 대선후보를 선택해 영남권 표심 일부를 이탈시키고, 호남이 전력으로 지원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대전략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힘엔 당 지도부와 유력 대권주자를 가리지 않고, 이질적인 집단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A지만 B다”라는 어설픈 모순 발언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하면 양쪽의 반발만 살 뿐,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림만 클 뿐, 치명적인 모순이 될 수도 있다. 강성 지지자들은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두둔한다. 중도층은 양당 모두를 객관적으로 살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모순에 민감하다. 모순이 큰 정치인일수록 지지하길 꺼린다. 지난 20대 대선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일컬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표현이 유행했던 이유도, 두 사람 모두 사적 행보와 공적 언행의 불일치가 컸기 때문이었다. 어설프면서 솔깃한 이유 국민의힘은 배출하는 대통령마다 구치소로 가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대통령의 일부 핵심 측근 외엔 지역구를 토대로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의원들은 겉으로만 대통령을 두둔할 뿐, 몰락한 대통령을 가차 없이 버리고 자신의 정치 생명에 몰두하는 것을 체화하게 된다. 따라서 중도 성향 대선주자를 옹립했다가 중도 공략 실패로 대선에 패배할 경우, 책임을 그 중도 성향 대선주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특정 인물에게 책임을 몰기는 쉬운 탓이다. 국민의힘의 ‘양다리 작전’이 어설프면서도 솔깃할 수도 있는 이유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