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관광지의 변신은 무죄, 재탄생한 여행지 ③경북 봉화

‘칙칙폭폭’ 백두대간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낭만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는 200여 명이 사는 산골마을이다. 태백산과 청량산, 통고산 등 백두대간 산자락에 둘러싸여 외지인의 발길이 뜸하고, 빈집이 늘어가던 마을이다. 적막감이 감돌던 마을에 최근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분천역이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의 기착지가 되면서 수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채화 같은 오지의 속살…협곡열차의 매력
자연과 예술을 한꺼번에 즐기는 ‘힐링 여행’

하루에 여섯 차례 무궁화호 열차가 서고 화물열차만 오가던 분천역이 인기 있는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수백 명이 V-train을 타기 위해 분천역을 찾는다.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맞아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 하면서 분천역의 외관도 스위스 샬레 분위기로 단장했다. 체르마트역은 스위스 빙하특급열차가 출발하는 역으로, 백두대간 협곡을 달리는 V-train이 서는 분천역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이 여행자들은 분천역 이곳저곳을 돌며 기념사진을 찍고, 역사 안에 비치된 기념 스탬프도 찍는다. 여유가 있다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분천마을을 돌거나, 카 
셰어링(car sharing) 서비스를 이용해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다. 기차를 타고 분천역에서 내린 여행자들이 친환경 전기자동차를 타고 인근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어 호응이 뜨겁다. 

산골 마을의 화려한 변신

역만 변신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오면서 조용하던 산골마을도 덩달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어른들도 웃을 일이 많아졌다. 마을 입구에 주차장과 간이화장실이 만들어지고 민박도 생겼다. 주민들이 뜻을 모아 식당을 열고 푸근한 인심까지 얹어 음식을 낸다. 산채비빔밥이나 메밀묵밥 등 산골하면 떠오르는 메뉴를 중심으로 집에서 먹는 밑반찬을 함께 올리니 여행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청정한 산골마을에서 즐기는 파전에 동동주 한 잔도 꿀맛이다. 
이색적인 체험거리로 조랑말 세 마리가 있다. 스코틀랜드산 조랑말은 아이들이 타기 딱 좋은 크기로,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꽃마차에 연결하면 온 가족이 타고 분천마을을 돌아볼 수도 있다. 


1일 3회 분천과 철암을 왕복 운행하는 V-train은 비동, 양원, 승부, 석포를 거치는 동안 백두대간 협곡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세 칸짜리 관광 열차다. 분천에서 철암까지 1시간10분 정도 열차를 타는데, 평균 시속 30km 내외로 운행하는 열차에 앉아 창밖으로 펼쳐지는 비경을 즐길 수 있어 주말은 두 달 전에 예약이 완료된 상태다. 
백두대간을 누비던 백호를 형상화한 기관차와 이국적인 관광열차를 닮은 분홍색 객차는 잠자는 듯 고요하던 분천역 철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4인용 좌석과 다정하게 마주 볼 수 있는 2인용 좌석이 배치되었고, 간단한 음료나 간식을 파는 매점도 있다. 추운 겨울이 오면 군고구마를 즐길 수 있도록 전용 난로까지 마련했다. 승무원이 창밖으로 지나가는 마을과 지형에 대해 설명도 해준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객차 지붕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해 그 힘으로 열차가 운행되고, 객실 안의 선풍기도 돌아가는 친환경 열차라는 점이다. 객실 창으로 들어오는 협곡의 바람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계곡 따라 흐르는 봉화의 추억

분천역을 출발한 V-train은 화전민이 모여 살던 비동에서 잠시 정차한 뒤 양원역에 도착한다. 양원역은 ‘국내 최초의 민자역사’라는 별칭이 있는 간이역이다. 양원마을에는 원래 열차가 서지 않았다고 한다. 주민들이 시멘트를 사다 역사를 짓고 나서 양원역이라는 이름으로 열차가 서게 되었다. 간이역이라 부르기도 어색할 정도로 작지만, 내부는 향수를 자극하는 구식 TV와 책들로 꾸며졌다. 열차가 서는 시각에 맞춰 찐 감자를 가지고 나와 파는 할머니도 계신다.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문구로 잘 알려진 승부역을 지나 석포를 거쳐 철암에서 멈춘 열차는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분천으로 돌아간다. 협곡의 비경을 다시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비동마을에서 양원역까지 2.2.km 이어지는 체르마트길을 걸어보자. 양원마을과 비동마을 주민들이 걸어 다니던 길로, 분천역과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 하면서 새롭게 명명되었다. 열차 창밖으로 보이던 협곡을 걸으며 때 묻지 않은 계곡의 절경과 울창한 산길, 철길을 만날 수 있다. 민가도 없는 오지이므로 길동무와 함께 걷는 것이 좋다. 
비동마을에서 분천마을까지는 콘크리트 포장길이 약 4.6km 이어지는데, 오가는 차량이 없고 너른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라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 그만이다. 분천역에서 비동마을로 가서 체르마트길을 걷고 양원역에 도착하는 V-train을 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보면 좋겠다.


분천역에서 춘양역으로 나가면 정자와 고택의 고장 봉화의 매력에 빠진다. 봉화만산고택은 조선 말기의 문신인 만산 강용이 1878년에 지은 집으로 긴 행랑채와 너른 사랑채, 서재와 별채, 안채를 거느린 빼어난 건축물이다. 문인과 우국지사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모의한 의양리 권진사댁, 충재 권벌 선생의 후손이 지은 봉화한수정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춘양역에서 봉화읍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안동 권씨 집성촌 달실마을에 닿는다.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 명당으로, 조선 중기의 충신이자 대학자인 충재 권벌 선생이 일가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른 한옥 마을이다. 종가에서는 왕이 명한 불천위 제사를 지금까지 지내는데, 충재 선생의 유품을 모아 정리한 충재박물관에는 불천위 제사의 내용이 자세히 정리되었다. 충재 선생이 지은 청암정과 그 아들이 지은 석천정사의 계곡은 달실마을이 품은 보석이다.


국보 201호로 지정된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도 찾아보자. 호고산 자락의 바위에 새겨진 부조 형식 여래좌상으로,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지림사는 의상대사가 머물며 축서사 창건의 계시를 받은 곳으로 알려졌다. 지림사에서 약 10km 거리에 위치한 축서사도 함께 돌아보면 좋겠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 여행 코스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 타기 / 분천역 V-train 탑승→ 분천~철암 
구간 왕복→ 만산고택→ 권진사댁→ 달실마을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분천역→ 비동마을→ 체르마트길 트레킹→ 양원역에서 
  V-train 탑승→ 철암→ V-train 구간 왕복→ 분천역→ 만산고택 숙박 
·둘째 날 : 권진사댁→ 봉화 서동리 동·서 삼층석탑→ 한수정→ 달실
  마을→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축서사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 www.v-train.co.kr 
· 코레일 1544-7788, www.korail.com
· 봉화군청 문화관광 http://culture.bonghwa.go.kr 
· 권진사댁 054)672-6118, http://blog.naver.com/kwonjinsa
· 달실마을 054)673-0963, www.darsil.kr
· 축서사 054)672-7579, www.chooksersa.org

문의 전화
· 봉화군청 문화관광과 054)679-6341 
· 분천역 054)672-7711 
· 봉화역 054)672-7788 
· 춘양역 054)673-7788 
· 만산고택 054)672-3206 
· 지림사 054)673-6735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 출발(07:45), 수원 출발(07:40), 제천출발(15:00, 15:03)  
             중부내륙순환열차(O-train) 분천역 정차 
? 문의 : 코레일 1544-7788 www.korail.com 

자가운전 정보 
중앙고속도로 풍기 IC에서 빠져나와 우회전→신재로 따라가다 
영주·풍기 방향 좌회전→36번 국도 따라 이동→노루재터널 
→분천삼거리에서 분천역 이정표 보고 좌회전→분천역 

숙박 정보
· 만산고택 : 춘양면 낙천당길, 054)672-3206 (한옥에서의 하루) 
· 권진사댁 : 춘양면 낙천당길, 054)672-6118 (한옥에서의 하루) 
· 추원재 : 봉화읍 충재길, 054)673-0963 

식당 정보
· 우돈명가 : 청국장, 춘양면 의양로4길, 054)672-2234 
· 홍가네매운탕 : 매운탕, 춘양면 소천로, 054)673-1541 
· 솔봉이 : 송이돌솥밥, 봉화읍 내성천1길, 054)673-1090 
· 인화원 : 송이돌솥밥, 봉화읍 유록길, 054)672-8289 

축제와 행사 정보
· 은어축제 : 2013년 7월27일~8월3일, 봉화읍 내성천 일원, 

주변 볼거리
청량산도립공원, 다덕약수, 천주교 우곡성지, 영화 〈워낭소리〉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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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