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상' 성형 외상시대 천태만상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8.19 11: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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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터 대고 돈은 나중에

[일요시사=사회팀] 성형공화국,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국제미용성형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13.5건의 성형수술이 이루어진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세계 1위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탓일까. 이제는 대출까지 받아 성형의 문을 두드린다.



경제발전과 여성 사회진출의 급격한 증가는 성형수술이 보편화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 사회진출이 늘며 이들의 능력과 더불어 외모 또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게 됐다. 성형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는 수많은 성형외과를 탄생시켰다. 이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여성들도 외상으로 성형을 하는 ‘성형대출’의 시대가 왔다.

외모도 경쟁력

의료법 제27조 3항에 따르면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최근 불법 브로커와 손잡고 환자를 유치해왔던 강남 일대 성형외과 27곳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에 알선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의료법을 어기고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알선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불한 수수료가 지난 1년 반 동안 무려 7억7000만원에 달했다. 이른바 ‘성형대출’ ‘후불제성형’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진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들은 성형을 위해 돈을 모으거나 아예 포기한다. 잘 살기 위해서는 예뻐져야 한다. 뿌리깊은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성형공화국’에서 얼굴은 곧 힘이다.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선 자신이 원하는 부위 성형수술을 받고 그 비용은 나중에 갚는 방식의 후불제 성형, 즉 성형대출은 합리적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고금리다. 비싼 이자는 불만족스러운 외모만큼이나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형대출은 알게 모르게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아마 ‘텐프로’ ‘쩜오’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상급의 외모를 자랑하는 유흥업소 여성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러나 자연미인은 드물고 대부분이 성형미인이다. 수준급의 외모가 자신의 값어치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뻐야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화류계에 신종 직업이 등장했다. 바로 ‘성형브로커’다. 이들은 성형외과병원과 손잡고 수수료를 챙겨먹는다. 15%에서 40%까지 주는 게 관행처럼 이어져 온 것이다.
유흥업소 여성들은 성형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병원 측은 여성들에게 “아는 언니들 소개시 40%를 준다”는 식으로 떡밥을 던진다.

사업부 두고 대대적 마케팅
단골 접대부 브로커로 활동

강남의 유흥주점에 종사하는 A(29)씨는 “5∼7년 전 병원이 유흥업소 여성에게 텔레마케팅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황당한 건 아예 성형브로커로 ‘전업’한 유흥업소 여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가 좀 찼거나 일을 그만두려는 여성이 많이 택했다. 이들은 1000만원어치 수술을 받을 사람을 소개하면 최소 200만∼400만원까지 수수료를 받는다. A씨는 “언제부터인가 마담들이 언니(종업원)들에게 수술을 시키려고 안달나기 시작했다”며 ”여기만 고치면 좋을텐데 조금 손보면 네가 가게의 1인자가 되는 건 충분하다”는 식으로 성형의 달콤함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아예 대놓고 ‘넌 성형 좀 해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많은 유흥업소 여성들이 성형을 앞날을 위한 ‘투자’라 여기며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 성형대출을 통해 수술을 결심했다는 설명이다.

화류계에서 이렇게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던 그들만의 성형마케팅이 이제는 기업화되며 ‘무이자 성형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성형외과에 번지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고금리 일수상품이다. 이들은 병원과 기업적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성형수술비 1000만원당 최고 400만원의 수수료를 챙긴다. 처음엔 무이자라는 명목으로 2달여 동안은 이자를 받지 않지만, 정해진 기간 안에 갚지 못하면 이후 월 20%정도의 폭탄 이자가 붙는다.

A씨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게 뭐냐면 성형하고 금방 예뻐져서 빨리 갚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도 안 된다”며 “60일안에 수술하고 부기 빼고 다시 1000만원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특히 경기 불황으로 손님이 뚝 떨어지자 종업원들의 수입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결국 수술비를 제때 갚지 못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12개월 분납으로 수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혹 했던 B씨(27)는 C씨(32)를 소개 받았다. 처음엔 800만원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원금과 이자를 합치니 1000여만원이 넘었다. 뒤늦게 후회하며 스스로를 원망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돈 없는 학생에 후불제 권유
대출 알선에 다단계식 영업도


특히 20대 대학생들은 성형대출 후 신용불량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큰 목돈을 마련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성형대출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반 양성적인 상태다. 성형외과 관계자들과 브로커들은 블로그 및 카페 등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며 성업중이다. 화류계에서 일반인에게 넘어간 것이 가장큰 문제인 상황이다.

한 성형대출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 여대생이나 직장인들도 성형수술을 위한 목돈이 없어 이런 대출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추세”라며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원졸업이 최종학력이라면 더 낮은 금리로 최대 30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예뻐지려는 게 나를 위한 투자”라며 “성형대출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분납(할부)’ 형태를 이용해 수술받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수술부터

이처럼 일수형태의 성형대출 외에도 성형을 명목으로 대출을 해주는 곳이 있다. 바로 제2금융권이다. 모 성형대출 업체에 문의한 결과 “우리와 제휴를 맺은 D성형외과, R성형외과 등에서 수술받는 게 어떠냐”고 권하기도 했다. 성형대출로 받은 돈을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성형대출 업자는 성형외과수술에 동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번 성형대출 관련 조사를 담당한 정채기 서울 강남경찰서 지능팀장은 “이번에 적발된 브로커 중에는 불법 대부업자도 있었다”며 “성형대출을 통해 수술받은 사람 중에는 20대 초반 여성이 적잖았다”고 말했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져가면서까지 성형수술을 받는 것은 삼가야 한다”며 “과도한 부채는 또다른 범죄의 유혹에 휘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정근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홍보이사는 “대부업체와 결탁해 무분별한 성형수술을 조장한 이번 사건에 우리 회원이 관여돼 심히 유감스럽다”며 “위법사실이 있다면 성형외과의사회에서도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해외에선 지금…
과도한 성형광고 금지

프랑스는 2005년부터 모든 성형광고를 규제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2012년에 미용성형외과의사협회에서 성형광고를 전면 규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 이유는 “성형광고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의 상태를 부정적으로 느낄 수 있고, 마치 인생의 문제를 성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일명 ‘포토샵 금지법’이 있다. 영국에서는 2011년에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화장품 광고를 금지한 적이 있다. 이유는 포토샵을 이용한 과도한 보정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2012년 광고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정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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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