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20년' 덫에 걸린 총수들 잔혹사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8.13 09: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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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돈 꼬불치기' 예나 지금이나 판박이

[일요시사=경제1팀] 금융실명제법이 시행 20년을 맞았다. 금융실명제는 횡행하던 가명 거래를 원천 차단해 금융 질서를 단숨에 뒤집었다. 그러나 양날의 검이었다. 차명계좌를 통한 검은 돈 유통이 성행한 것. 특히 대기업 총수들이 연루된 대형 횡령·배임 사건과 탈세 사건에서 어김없이 차명계좌가 등장했다. 불법 자금 은닉에 이보다 더 좋은 수단이 없다는 인식이 기업 오너들에게 박혀 있는 셈이다.



금융실명제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때는 1982년 5월 터진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이후다. 사채시장의 큰손이던 장영자씨는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회사와 접촉해 현금을 빌려주고 몇 배의 약속어음을 받아냈다. 남편 이철희(전 중앙정보부 차장)씨의 경력을 언급하며 "특수자금이니 비밀을 지켜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로 불린 이 사건으로 청와대 배후설이 등장했고 은행장 2명과 기업 간부, 전직 기관원, 대통령의 처삼촌에 이르기까지 30명이 줄줄이 구속됐다.

비자금으로
드러난 허점

장씨와 이씨 부부는 법정 최고형인 15년형을 선고받고 10년가량의 옥살이 끝에 풀려났다. 2개월 뒤인 7월 정부는 '금융실명거래와 금융자산소득에 대한 종합과세의 실시방침(7·3 조치)'를 발표했다. 금융실명제 1차 도입 시도다. 방침의 요지는 ▲1년 뒤인 1983년 7월1일부터 모든 금융거래에 대해 실명제를 실시하며 ▲금융소득을 종합과세하고 ▲실명이 아닌 3000만원 이상의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과징금으로 5%를 내야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침은 여당 등 정치권의 반발에 밀려 1982년 12월 '금융실명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실시를 유보하기로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공약, 당선된 후 1988년 10월 "금융실명제를 1991년 1월1일부터 전면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두 달 동안 실명전환 기간을 뒀다. 실명전환 기간 직후 재무부가 발표한 잠정 집계결과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전체 가명계좌에 들어있던 2조8623억원 가운데 96%인 2조7480억원이 실명 전환됐다. 실명전환된 차명계좌는 27만5800좌(2조9246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금융거래 투명성은 어느 정도 높아졌다.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금융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도 사라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점이 있었다.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한 차명거래를 불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금융실명제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94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거지면서 부터다. 이 시기 서석재 당시 총무처장관(2009년 사망), 박계동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등의 폭로로 전·노 전 대통령이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95년 10월 박계동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신한은행 서소문 지점에 ㈜우일양행 명의로 예치된 110억원의 예금계좌 조회표 사본을 제시하며 '노태우 비자금 4000억원'이라고 발언,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이 여러 시중 은행에 차명계좌로 분산 예치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신한은행이 즉각 해명했고 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단서가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노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금융질서 잡는다' 가명거래 원천차단
대기업 회장들 측근 차명으로 비자금

지난 2001년 7월에는 이용호 G&G 회장이 삼애인더스, 인터피온 등 자신의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발굴 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 250억여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도 차명계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건의 수사를 위해 2001년 특별검사가 임명됐으며 특검 과정에서 신승남 전 검찰총장 동생,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및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등 권력층의 비리가 추가로 밝혀졌다. 홍업씨는 이후 검찰 수사에서 이권청탁 대가 등으로 47억여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홍업씨는 이 회장에게 받은 자금을 사채업자와 김성환 전 서울음악방송 회장의 차명계좌 등을 통해 자금을 세탁했다.

기업 오너가 차명계좌로 인해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을 통해서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자기도 모르게 차명계좌를 개설해 50억원가량의 현금을 입출금했다고 밝혔다.

폭로 후 삼성 측은 차명재산에 대해 "임원들의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삼성 특검'이 발족됐고 삼성 측은 이건희 회장이 선대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삼성특검은 이 회장이 임직원 명의의 1199개 차명계좌로 4조500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운영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삼성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만 이 회장을 기소하고 비자금의 조성과 사용처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회장은 여론에 밀려 사건의 책임을 지고 2008년 4월 경영퇴진을 선언하고 물러났다가 2009년 12월 '삼성 위기론'에 의해 유례없는 단독 사면을 받고 2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비슷한 시기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은 '변양균-신정아 게이트' 수사 과정서 비자금이 드러나면서 차명계좌 논란에 시달렸다. '변양균-신정아 게이트'를 수사하던 경찰은 신정아씨의 횡령 혐의를 밝히기 위해 2007년 9월 김 전 회장의 부인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괴자금을 발견했다.

시작은 찬란
과정은 암울

검찰은 자금 출처를 추적, 괴자금의 출처가 쌍용양회 임원들의 명의를 빌려 주식으로 보관하고 있다가 현금화한 것으로 최종 결론지었고 압수한 현금과 수표 63억원, 엔화 4억원, 차명계좌 14개에 예치된 20억원 등 총 87억원 전액을 국고로 환수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중 박용성 두산그룹 명예회장도 정치권의 느닷없는 의혹 제기로 장남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사장과 함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두산 총수일가가 1973년부터 2006년까지 33년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60여 개의 차명계좌로 몰래 관리하고 그 과정에서 증여세 탈세, 통정매매 및 불법적 현금이동 등의 불법행위를 일삼았다는 것. 의혹은 노희찬 전 의원의 입을 통해 나왔다.

개정 논의 급물살
안철수 법안 준비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해당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두산 총수일가가 60여 개의 차명계좌로 수백억원 규모의 주식과 채권, 현금을 불법·탈법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포착하고 그 자금출처를 추궁했고, 두산그룹 측으로부터 '1973년 동양맥주(현 두산) 주식을 상장할 때부터 대주주 지분 20% 가량을 차명계좌로 관리하기 시작했고 경영권 유지 등의 목적으로 운용했다'는 해명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또 "60여 개 차명계좌와 비자금을 관리한 사람은 바로 박용성 회장과 그의 장남인 박진원 상무"라며 "모 증권사 모 직원이 실무적으로 차명계좌 관리를 도왔다. 모 증권사 내부문서에 따르면 박용성 회장이 직접 비자금을 관리하다가 1999년 3월 아들 박진원에게 관리를 넘겼다"고 말했다.

수사만 시작되면
줄줄이 차명계좌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2009년 3월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2007년 3월께 박연차 당시 태광실업 회장에게 건넨 50억원의 출처가 차명계좌라는 사실이 불거지면서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불법거래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사종결하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정치권에서 라 전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도 금융실명제 위반과 관련한 일부 내용만 적발하고 공개하면서 업무정지 3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이에 최근 국회차원의 감사원 감사요구가 제기됐다. 지난달 참여연대와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 전원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검찰이 신한금융지주와 라 전 회장의 불법·비리 행위를 봐주거나 비호한 의혹이 있다"며 해당기관에 대한 국회차원의 감사원 감사요구를 청원했다.

참여연대 등의 주장의 요지는 라 전 회장이 90년대 말부터 재일동포 주주, 임직원 및 그 가족, 외부 지인 등 수십명의 이름을 빌린 차명예금과 증권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운용하며 막대한 사적 이익을 취해 왔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라 전 회장의 수십여 개 불법 차명계좌 운용 사실과 관련 비리 의혹을 접수·파악하고도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조치와 처벌을 추진하지 않은 국세청과 검찰의 행위에 대해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요구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태광그룹은 모자가 동시에 차명계좌와 임직원 명의 주식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의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는 2010년 10월 시작됐다. 100여 일간 이어진 수사에서 이들 모자는 임원과 사원들, 거래처 관계자 이름까지 빌려 무려 7000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3000억원대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무자료 거래, 허위회계처리 등 방법으로 회삿돈 500여억원을 횡령하고 골프장 건설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로부터 담보도 없이 돈을 빌리거나 주식, 골프연습장 등을 낮은 가격에 사들여 회사에 900여억원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6월과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태광그룹 계열사로부터 225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징역 4년과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6월에 벌금 10억을, 이 전 상무는 징역 2년과 벌금 10억원 등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용건 삼환기업 명예회장은 지난해 11월 삼환기업 노조가 "최 명예회장이 수십개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10여 년 동안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임직원과 다른 계열사를 통해 주식을 사들인 뒤 손실 처리하는 방법으로 계열사 간 부당거래를 했다"며 검찰에 고발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 같은 혐의로 지난 4월 최 명예회장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명예회장은 계열사인 신민상호저축은행에 3자 배정 유상증자 명목으로 120억원을 예금하는 등 계열사 간 부당지원으로 모두 183억여원 상당의 손실을 입힌 혐의다.

다만 최 명예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수백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횡령 등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자료와 주식취득자금 소명서, 차명계좌 확인서 등을 검토한 뒤 무혐의 처분했다.

"비리 차단하려면 
원주인 반환 금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차명 계좌와 차명 소유 회사 등을 통해 한화 계열사와 소액주주, 채권자들에게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돼 작년 7월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심은 김 회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했고 현재 대법원에서 상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 회장은 조울증과 호흡 곤란 등의 이유로 올해 1월 법원에서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받고 3월과 5월 구속 집행 정지 기간이 연장됐다.

처조카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아 주목을 받은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회장도 60억원의 회사 자금을 영업자금 대여 명목으로 횡령해 차명계좌로 주가를 조작해 5억원 규모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라 회장은 지난 6월29일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팔아 5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해외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굴리며 조세를 포탈해 재산을 불리고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리는가 하면 개인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회사에 수백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로이스톤 등 7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CJ그룹 주식을 사고 팔아 거액의 차익을 남기거나 CJ그룹 국내외 계열사의 주식을 차명 보유해 배당소득을 받고도 양도소득세와 배당소득세 등 274억7000여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검찰 조사 결과 이 회장은 지난 98~2002년 사이 CJ그룹의 해외법인 자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뒤 2004년부터 자사 계열사 주식을 차명보유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2003년 이전의 조세포탈 혐의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공소사실에서 제외됐다.

이 회장은 또 2003~2007년까지 CJ그룹 임직원 459명의 명의를 빌려 차명계좌 636개를 관리하면서 CJ(주) 주식을 사고 팔아 1182억원의 수익을 올리고도 238억4000여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지난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의 금융실명제법은 합의에 의한 차명거래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 않다. 금융기관이 모든 금융거래 당사자의 차명거래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이유다.

금융기관은 자금출처를 조사할 실질적 권한이 없다. 따라서 거래자의 주민등록상 실명 여부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의무도 없다. 거래자가 금융기관을 속이고 차명계좌를 만들어도 업무방해에 속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최근 금융정보분석원(FIU)법이 만들어지면서 금융회사가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고 의심되는 거래를 FIU에 보고할 의무가 생겼지만 합의에 의한 차명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법 조항은 없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금융실명제법 시행 20주년을 맞아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최근 전 전 대통령이나 CJ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차명계좌 논란에 불이 붙으면서 차명계좌를 전면 금지하거나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명제법 개정
찬반 입장 팽팽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최근 차명계좌가 적발되면 계좌 평가액 일부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실명이 확인된 계좌를 명의자 재산으로 간주하고 실질권리자의 반환청구를 금지하는 쪽으로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의원입법 1호로 관련 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금융권은 반대 입장이다. 금융권은 거래자의 '양심선언'이나 검찰과 국세청의 개입이 없고서는 금융기관에서 차명거래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정부는 차명계좌를 금지할 경우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동창회· 동호회 등 각종 친목도모를 위한 모임의 회비 등의 계좌를 개인 명의로 하는 경우, 부부의 생활비 통장 등 당사자 간 합의된 차명거래를 하는 이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는 것.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선의의 차명계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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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