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국세청 잔혹사' 막전막후

대형사건만 터지면…뇌물 걷는 국세청

[일요시사=경제1팀] 전 국세청 차장 구속을 시작으로 중수부 격인 조사4국과 전 청장의 자택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국세청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사실 내국세의 부과 및 징수를 담당하는 국세청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대기업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으레 국세청 관련 비리가 이어졌다. 대형 사건만 터지면 국세청이 꼭 연루될 정도다.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지난 7월30일 서울국세청 조사4국과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울국세청을 방문해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고 조사4국에서 2006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주식 이동과 관련한 세무조사 자료 일체를 제출받았다. 검찰은 또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전 전 청장의 아파트 자택에 수사진 3명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내부 보관 문서, 각종 장부 등을 확보했다.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와 관련, 국세청은 2006년 이 회장의 주식 이동 과정을 조사해 3560억원의 탈세 정황을 확인했지만 한 푼도 세금을 추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송광조 서울국세청장은 지난 1일 사의를 표명했다. 송 청장은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골프 접대 등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월27일 검찰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CJ 로비 의혹 수사과정에서 송 청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드러나 국세청에 비위사실을 통보했다"며 "다만 형사처벌할 정도의 범죄혐의는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전군표,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의혹


국세청 비리는 잊을 만하면 터진다. 국세청장이 비리에 연루되지 않고 임기를 마치는 사례가 오히려 드물 정도다. 국세청이라는 조직자체에 견제와 감시가 어려운 폐쇄적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내국세 부과 및 징수 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으로서 내국인의 소득이나 거래에 부과되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상속세 등의 내국세 부과·감면 및 징수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어처럼 국세청은 국민의 혈세를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이권개입 논란에 시달리며 '국민'보다는 '기업'을 위해 일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1966년 3월 재무부 외청으로 발족한 국세청 초대 청장은 5·16 쿠데타의 주체세력이자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을 지낸 이낙선 전 청장이다. 2대 청장은 해병대 준장 출신의 오정근 전 청장, 3대는 육군 대령(육사 8기) 출신의 고재일 전 청장이다. 5대 안무혁 전 청장과 6대 성용욱 전 청장도 각각 육사 14·15기로 군인 출신이다.

군인 출신이 잇따라 수장을 맡게 됨에 따라 국세청은 초기부터 '상명하복'이 철저했다. 국세청 직원들은 상관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했고 자연스레 내부 견제와 감시는 어려워졌다.

2012년 9월 기준 국세청 총인원은 2만14명. 정무직 1명을 제외하고 고위공무원은 34명으로 0.2%, 3급 14명으로 0.1%, 4급은 309명으로 1.5%, 5급은 1084명으로 5.4%를 차지하고 있다. 사무관인 5급 이상으로 올라서기가 무척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철저한 정보 비밀주의까지 겹치면서 국세청의 비리는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뭔가 비리가 터졌다 하면 제일 먼저 청장이 직격탄을 맞은 이유다.

 

국세청이 외청으로 발족한 이래 배출된 국세청장 중 8명은 장관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권력과의 유착이나 검은 돈의 유혹에 넘어가 각종 비리나 의혹에 연루되면서 옥고를 치르거나 불명예 퇴진한 청장도 많았다.

실제 초대 이낙선 전 청장부터 김덕중 현 청장의 전임자인 19대 이현동 전 청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8명이 구속되거나 검찰 수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전현직 고위직 줄줄이 'CJ 쓰나미' 휩쓸려
역대 국세청장 19명 중 8명 검찰 수사 받아

먼저 안무혁(5대), 성용욱(6대) 전 청장은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안기부장과 국세청장으로 재임하면서 기업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불법 선거자금을 거둔 혐의로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공소장과 재판기록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87년 10월 당시 안기부장이던 안 전 청장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성 전 청장과 함께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모으라고 지시했다.

안 전 청장과 성 전 청장은 그해 말 기업 대표들을 사무실로 줄줄이 불러 대선 자금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이들이 13대 대선을 앞두고 걷은 자금은 114억여원에 이른다.

10대 임채주 전 청장은 1997년 대선 당시 이른바 '세풍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세청 고위간부들이 개입한 탓에 '세풍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임 전 청장과 이석희 전 차장 등이 기업인들을 협박, 한나라당에 대선자금을 조달해준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경쟁 상대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친동생인 이화성씨가 구속 기소돼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 추징금 5000만원 선고를 받았다.

12대 안정남 전 청장은 2001년 9월 건교부 장관으로 기용됐다가 부동산 투기, 증여세 포탈 등 의혹이 제기돼 취임 20여 일 만에 장관직을 사퇴했다.

최초 호남 출신인 13대 손영래 전 청장은 썬앤문그룹 세무조사와 관련해 뇌물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손 전 청장은 2002년 6월 썬앤문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서 서울국세청 홍모 전 과장에게 지시해 71억원 이상이었던 세금을 25억원 미만으로 줄여 추징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철저한 상명하복
폐쇄적 조직문화

15대 이주성 전 청장도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6월, 추징금 960만원 등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전 청장은 2005년 11월 대우건설 인수를 시도하던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을 만나 매각권한을 가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시가 20억원가량의 아파트를 받았으며 2005년 모 건설사 대표이사 K씨에게서 식탁, 오디오 등 비용으로 5000여만원 상당을 받고, 지인들에게 1000만원 가량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수백∼수천억 만지다 보니 몇 억은 껌값?"

현재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16대 전군표 전 청장은 검찰과의 질긴 인연을 자랑한다. 검찰 조사만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지난 2006년 정상곤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미화 1만달러와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6월을 선고 받았다.


검찰-국세청
'질긴 악연'

감옥에 있던 2009년에는 17대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게 그림 로비를 받았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한 전 청장의 부인이 전 전 청장의 부인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500만원짜리 그림 '학동마을'을 줬다는 혐의였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아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다.

전 정 청장에게 인사청탁을 한 혐의를 받은 한 전 청장도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9년 한 전 청장이 물러나면서 국세청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은 지난 7월27일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와 관련한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 등에 따르면 허씨는 2006년 하반기께 CJ그룹 측이 전 전 청장의 취임을 전후해 미화 30만달러를 전 전 청장에게 전달해달라며 건넨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검찰과 국세청의 악연은 수차례 압수수색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2009년부터 벌써 일곱 차례나 된다. 올 3월 국세청 직원 뇌물수수와 관련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한 것을 빼면 6번은 검찰이 했다.

또 지난달 12일 ISMG코리아 A 대표의 현대그룹 경영 부당 개입 의혹과 관련해 서울국세청 조사1국을 압수수색한 것을 제외하면 5번 모두 특별세무조사 전담부서이자 국세청의 '중수부'로 통하는 조사4국이 털렸다.

조사4국은 과거 청와대로부터 지시받은 사안과 사정기관의 첩보를 통한 세무조사를 도맡아 했다. 성격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요즘에도 대규모 세금 탈루 혐의가 있는 회사 개인을 심층 세무조사한다. 재계는 "조사4국이 떴다"는 말만 들어도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이다.


국세청이 '안방'을 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5월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이던 대검찰청 중수부가 서울국세청 조사4국과 세무조사 당시 조사4국장이었던 국세청 법인납세국장 사무실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

당시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은 박 전 회장의 청탁을 받고 천신일 세중나모그룹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로비에 나선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다. 검찰은 국세청 압수수색에서 1700억원 상당의 탈세 의혹을 내부적으로 조사한 자료를 확보하고 천 회장이 CJ그룹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정황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서하면서 수사가 중단됐다.

2010년 10월에는 태광그룹 편법증여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이던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가 서울국세청 조사4국에 수사관을 보내 태광그룹 세무조사 관련 자료를 압수했다.

정치에 개입하고 
기업서 돈 받고 
5년새 7번 압색

국세청은 2007년 태광그룹의 모기업인 태광산업과 비자금 창구로 알려진 고려상호저축은행 등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벌였다. 당시 국세청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996년 선친인 고 이임용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차명 주식을 현금화해 1600억원가량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2008년 초 이 전 회장이게 상속세 790여억원을 추징했으나 '(세금포탈에)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하지 않아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서울국세청은 조사1국 사무실도 2번이나 뒤집어졌다. 서울국세청 조사1국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부서다. 지난 7월22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조사1국을 방문,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조사국 측의 협조를 받아 해당 사건과 연관된 현대상선의 2011∼2012년 세무조사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A 대표가 현대그룹 계열사에 실제 단가보다 부풀린 사격으로 납품한 뒤 차익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모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A 대표와 현대상선이 미국 내 물류를 담당하는 용역업체를 통해 340만달러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당시 A 대표와 현대그룹 간 직접적인 유착관계를 찾지 못해 현대상선에만 세금 30억여원을 추징했다.

임원급이 아닌 일반 직원들 사이에도 비리는 존재했다. 올 초에는 경찰이 국세청을 압수수색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지난 2009년 서울 강남경찰서가 변호사법 위반 사건 수사를 위해 중부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한 이후 처음이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3월 서울국세청 조사1국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지난 1월부터 서울국세청 조사1국 전·현직 직원 10여 명이 세무조사 대상 기업들로부터 각각 수천만원대의 뇌물을 조직적으로 건네받은 정황을 잡고 수사를 벌여왔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서울국세청 조사1국에 근무하던 2010년 해운회사와 식품회사, 유명 사교육업체 등 7곳을 세무조사하면서 이들 업체로부터 '잘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받은 뇌물은 모두 3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국세청에선 잊을만하면 비리가 터지는 악순환이 수차례 반복돼 왔다. 그러면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의 첨병이 되어 힘을 키워왔다. 차관급인 청장이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이유다.

국세청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면서 권력기관으로 군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특히 국세청장 임기제, 국세청법 도입 등과 같은 제도개편을 통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세금 적게 받고
뇌물 많이 받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도 국세청 개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과 진보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좋은예산센터·복지국가소사이어티·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조세개혁포럼'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지난 2월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은 '세무조사에 관한 법'을 발의했다. 세무조사의 실효성과 공평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전문가가 과반수 이상 참여하는 세무조사위원회에서 세무조사 기준을 승인토록 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국세청도 나름(?) 개혁을 위해 힘쓰고 있다. 김덕중 청장이 취임하자마자 30명으로 구성된 '세무조사 감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비리와의 단절을 선언했고 한 번이라도 금품수수가 적발된 직원에 대해서는 조사 분야에서 영원히 배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과거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일 뿐"이라며 "세무행정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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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