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25) 천호균의 쌈지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8.06 11: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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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직전 회사 넘기고 '유유자적'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지난 2010년 루이비통·구치 같은 외국 명품 브랜드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토종 브랜드 하나가 최종 부도처리됐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국산 잡화 브랜드 '쌈지'다.

쌈지는 천호균 전 대표가 1984년 설립한 '레더데코'를 전신으로 한다. 쌈지라는 이름은 레더데코 디자인실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천 전 대표의 부인 정금자씨의 아이디어다. 속담에도 쓰이고 레더데코의 주력 제품이던 핸드백과도 잘 어울려 브랜드 명으로 채택됐으며 99년에는 아예 사명을 쌈지로 변경했다.

7년간 적자

천 전 대표는 쌈지 이외에 '놈' '딸기' '아이삭' '진리' 등의 브랜드를 개발했고 창업 5년 만인 98년 544억원 매출에 20억원의 순이익을 올릴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2001년에는 코스닥에 등록, 기업을 공개했다.

2년간 이어지던 흑자는 2003년부터 적자로 전환했다. 적자는 7년간 이어졌고 2009년에는 매출액 578억원에 129억원의 적자를 냈다. 결국 쌈지는 지난 2010년 4월 코스닥 시장 퇴출과 함께 최종 부도처리됐다.

쌈지의 부도는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나친 사업 다양화가 그 이유였다. 천 전 대표는 쌈지의 코스닥 등록 이후 총 20억원을 투자해 프랑스 패션회사 '마틴싯봉'의 지분 66%를 확보, 인수했다.


2004년에는 경기 파주시에 '딸기가좋아'라는 문화 테마파크를 열며 부동산과 결합된 테마파크 사업에 진출했고 이듬해에는 서울 인사동에 '쌈지길'을 조성했다.

2007년에는 아이비전 영화사를 인수하면서 영화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첫 번째 영화 <무방비 도시>는 실패했고 두 번째 영화인 <인사동 스캔들> 또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사이 소비자들은 점점 쌈지로부터 등을 돌렸다. 테마파크 '딸기가좋아'는 입장료 외에 수익 모델이 없었고 '쌈지길' 또한 시민들의 반대로 입장료조차 걷지 못해 개점 이래 적자가 지속됐다. 2005년부터 시작된 명품 브랜드 선호 현상과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이탈 현상은 쌈지의 몰락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경영난에 시달리던 천 전 대표는 2009년 8월 쌈지 경영권을 양진호씨에게 넘겼다. 물론 쌈지는 양씨가 회사를 이끌던 시점에 부도가 난 것은 사실이다. 직접적으로 천 전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대표이사 퇴임 나흘만에 ㈜쌈지농부 설립
유치원·교육 사업으로 지난해 매출 80억

하지만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회사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던 상황에서 대표이사의 교체와는 상관없이 부도는 예정된 결과다" "무리한 사업 다각화가 토종 브랜드의 몰락을 가져왔다" 등 천 전 대표의 책임이 없지 않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쌈지는 법적 소송에 휘말려있다. 2009년 11월 퇴사한 200여 명의 직원이 밀린 임금과 퇴직금 31억원을 받기 위해 노무법인 세종을 통해 양씨를 고소했고 천 전 대표도 양씨를 고소했다.


천 전 대표는 2009년 쌈지 대표이사직을 물러난 지 나흘만에 ㈜쌈지농부를 설립했다. 그해 12월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신청해 2010년 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약 1억원가량의 지원을 받았다. ㈜쌈지농부 초기엔 천 전 대표가 대표를 맡았다가 현재는 쌈지 아트디자이너로 일했던 외아들 재용씨에게 전체 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천 전 대표는 서울문화재단 이사직에 올라 있다.

㈜쌈지농부는 생태문화공간 '논밭예술학교', 유기농가게 '농부로부터', 작가공방 '일하자', 생태가게 '지렁이다' 등을 운영 중이며 주력사업은 유치원·교육이다. 이를 중심으로 ㈜쌈지농부는 지난해 전체 사업장에서 80억원이라는 매출을 올렸다.

브랜드 '딸기'와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일명 쌈싸페) 등 문화예술사업은 그대로 유지 중이다. 부도를 맞기 전에 이미 독립법인으로 분리됐기 때문이다.

'딸기' 브랜드의 운영주체는 ㈜어린농부다. 부인 정씨가 이끌고 있는 ㈜어린농부는 '딸기' 캐릭터 상품과 함께 '딸기가좋아' 키즈카페 등을 운영 중이다.

'딸기가좋아' 키즈카페는 현재 잠실 올림픽공원점,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용인 블루키점, 부평 아이즈빌점, 순천 SC아울렛점 등 5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표로 재용씨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회사 망했는데…

또한 ㈜어린농부가 운영하는 유아 놀이교육 전문업체 '딸기봐봐'의 대표는 천 전 대표의 딸 재린씨다. 딸기봐봐의 본원은 헤이리예술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이를 포함 경기도 5개원(헤이리·광명·부천상동·일산·동탄), 서울 2개원(잠실·개포), 인천 송도원, 대구 수성원, 광주 광주원, 부산 부산지원, 경남 거제원 등 총 12개원을 운영 중이다.

쌈지사운드페스티벌도 2009년 초 쌈지에서 독립법인으로 분리된 ㈜쌈넷이 운영 중이다. ㈜쌈넷은 쌈지사운드페스티벌과 라이브클럽 쌤, 공연 매니지먼트사업을 운영 중인 대중음악 전문 콘텐츠 기업으로서 재용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쌈지 부도 전 쌈지길 대표를 맡았던 천 전 대표의 형 호선씨는 문화 전문교육기관 컬쳐리더인스티튜트 원장을 맡고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쌈지는?

▲1984년 레더데코 설립
▲1992년 브랜드 '쌈지' 개발
▲1993년 법인 전환
▲1995년 브랜드 '아이삭' '놈'출시
▲1998년 쌈지스포츠 출시
▲1999년 '쌈지'로 사명 변경
▲2001년 코스닥 등록, 기업 공개
▲2004년 테마파크 '딸기가좋아' 갤러리 '쌈지미술창고' '쌈지길' 개장
▲2007년 영화사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 흡수합병, 옥션별 설립
▲2009년 천호균 전 대표 퇴진
▲2010년 최종 부도. 상장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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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