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새는 눈먼 나랏돈?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8.05 1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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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 축내는 '버스왕' 꼬리 잡힐까

[일요시사=사회팀] '국민의 발'인 버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 회사에는 공공성을 담보로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투입된 예산이 각 업체별로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감시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무뎌진 사이 일부 버스 회사들이 '눈먼 나랏돈'을 불법 전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정당국이 국내 굴지의 운송업체 A사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A사의 모 회장은 '버스왕'으로 불리는 버스재벌로 수천대의 버스 및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한 대부호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버스왕
지원금만 꿀꺽?

경기 외곽에서 만난 A사의 옛 직원 ㄱ씨는 과거의 답답한 기억 때문인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외부로 알려진 것과 A사의 참 모습은 다르다"며 일례로 '버스 인센티브 제도'를 끄집어냈다.

버스 인센티브 제도란 경기도가 대중교통 선진화 등을 명목으로 지난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 경기도내 각 운송업체는 '경영 및 서비스 평가'에 따라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씩 인센티브를 챙겨가고 있다.

ㄱ씨는 이 인센티브 제도를 A사가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사는 모두 15개의 운송업체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데 이들이 챙겨가는 인센티브는 막대하지만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대로 아는 이가 거의 없다고 했다.


ㄱ씨는 버스업체에 대한 지원이 정부의 경영 및 '서비스' 평가에 따라 이뤄지므로 이 돈을 버스 회사의 모든 구성원과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자가 확인한 평가 항목에는 ▲차내 서비스 수준 ▲교통사고 발생 및 위험지수 ▲운행횟수 준수율 등 버스 기사의 직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항목들이 있었다.

경기도 내 또 다른 버스업체에서 근무 중인 ㄴ씨는 자신의 회사로부터 이 인센티브 명목으로 "별도의 상여금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ㄴ씨가 있는 회사는 경기 외곽에서 시내버스 약 40대를 운행하는 작은 업체다.

ㄴ씨는 "상여금을 돌려받을 때 도에서 (지원금을)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써야한다고 말해 현금으로 돌려준다란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지원금을 두 업체가 다르게 쓰고 있는 셈이다.

감점 피하려 사고책임 기사에
직원 길들이기로 악용 의혹

그렇다면 A사는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어떻게 쓰고 있을까.

ㄱ씨에 따르면 A사는 이 지원금을 '직원 길들이기'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ㄱ씨는 "나 그만 둘 때까지 일반 직원들은 인센티브를 구경도 못해봤다"면서 "말 잘 듣는 팀장급들에게만 금반지를 좀 해주고, 자체 사보에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썼다고 홍보하는 등 국가 세금을 마치 선심 쓰듯 전횡했다"고 폭로했다.

몇 년 전 ㄱ씨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A사가 각종 위법적 근무를 강요하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버스 회사에 만연한 저임금·중노동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A사의 유력 계열사인 모 운수업체 기사들은 회사가 정한 운행횟수를 맞추기 위해 하루 15∼18시간의 근무를 2∼8일 연속으로 했다. 이런 중노동으로 인한 과로와 수면부족은 졸음운전으로 이어져 잦은 사고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업체는 산재 및 공상처리를 회피함은 물론 사고의 손실보상을 기사 자부담으로 돌렸다. 운행 중 사고는 '보조금 지원'을 위한 정부의 서비스 평가 시 감점 요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즉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회사 직원들을 쥐어짜내는 야만적인 행태가 업계 관습처럼 이어져온 것이다.

회사는 웃고
기사는 울고

A사는 경기 구리, 광주, 남양주, 의정부 등 경기 서부지역 시내버스를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동두천, 양주 등 경기 외곽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노선을 독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 경북, 충북 등을 아우르는 시외버스 노선도 A사 손아귀에 있다.

국내 버스업계에서 A사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피복·정비·식품 업체를 자회사로 갖고 있으며,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터미널사업, 의료사업 등에도 진출했다. 더불어 A사는 한 유명 지역방송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버스 업계 관계자는 "인센티브 외에도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유류세 등 보조금이 버스 운영이 아닌 다른 곳에 출자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상 돈이 업체로 넘어가면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ㄷ씨는 "성과이윤(버스 인센티브 제도)은 사실상 눈먼 돈"이라며 몇 장의 문서를 내밀었다. 인천시가 작성한 '성과이윤 지급현황 표'였다.

인천시는 지난 2009년 1월부터 버스 회사의 재정적자를 100% 보조하는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다. 즉 인천시의 성과이윤은 경기도의 적자 보전과는 돈의 성격이 다른 플러스알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인천시가 지난 2009년부터 각 업체별로 지급한 성과이윤은 모두 86억여원에 달한다. 전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 돈은 고스란히 버스 업자의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매년 150억∼200억원 지급
인센티브 타내려 위장배차

인천시가 제정한 '수입금공동관리 준공영제 운영지침'에 따르면 "성과이윤은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사업자별 차등 지급 방식으로 운용한다"고 돼 있을 뿐 지원금의 사용목적과 사용처가 명기 돼 있지 않다. 이는 사업자가 받은 돈을 어디에 써도 법적 제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인천 일대에서 A사와 같은 위상을 점하고 있는 버스재벌 B사의 경우는 각 계열사로 지급된 성과이윤을 취합했을 때 연간 수억원의 ‘공짜’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인천시가 작성한 '운수회사별 성과이윤 내역'에 따르면 업체 별 지급현황은 2009년 하반기 기준 ▲S여객 3855만원 ▲S버스 3549만원 ▲S교통 4171만원 ▲I교통 3366만원 ▲J교통 3121만원 등이다. 이 업체들은 모두 B사의 계열사로 지원금의 합은 약 1억8000만원에 이른다.

2011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하면 ▲S여객 9471만원 ▲S버스 4268만원 ▲S교통 1288만원 ▲I교통 2296만원 ▲J교통 2262만원 ▲G버스 4696만원 등 2억4000여만원으로 2년 새 약 6000만원가량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묻지마 지원금
누구도 못말려

ㄷ씨는 "인천시는 준공영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시로부터 지급된 인센티브 규모가 작지만 경기도는 자율 체제기 때문에 인센티브 지급 규모가 훨신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ㄷ씨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평가 기간 동안 배차를 늘린 뒤 보조금을 받으면 다시 유휴차를 늘린다든가 오지 노선을 헐값에 인수한 뒤 보상금은 타내면서 배차를 줄이는 눈속임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회 민경선 의원은 오래 전부터 A사의 독점적 버스 운영과 몰아주기식 보조금 책정을 비판해왔다. 그는 "A사가 교통 약자를 위한 저상버스를 도입하기로 해 놓고 기본 약속조차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사실상 A사를 향한 지원금 퍼주기가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이 제출한 '2011년 도정감사 자료'에 근거하면 A사는 경기도 전체 버스 재정지원의 3분의 1을 가져가면서도 ▲저상버스 도입율이 타 업체보다 낮고 ▲배차 가이드라인을 자주 위반했으며 ▲노후 차량 및 시설 개선 노력이 미흡했다. 그러나 A사는 어떤 페널티도 없이 매해 150억∼200억원의 재정지원금을 10년 가까이 도로부터 꼬박꼬박 가져갔다.

민 의원은 재정지원금을 부풀려 받는 수법으로 '차량 운행대수 부풀리기'를 지목했다. 실제 버스는 차고에 있지만 유류대를 허위로 작성, 운행대수를 부풀린 뒤 지원금을 실제보다 많이 타낸다는 것이다. A사 역시 이 같은 수법으로 몇 차례 배차를 줄였다가 현지 언론에 발각된 전력이 있다.

민 의원은 "여러 차례 A사와 관련한 위법 사항이 발견됐지만 지원금이 차감되거나 제대로 된 행정 조치를 취했던 적이 없었다"며 "재정지원금을 포함해 A사에 들어가는 정부돈만 600억∼700억원인데 이를 제대로 감독할 인력조차 없다"고 개탄했다.

2008년 A사로 지급된 인센티브는 59억원, 2009년은 64억원, 2010년은 42억원이다. 그리고 2011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시내버스 인센티브 지원금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도내 버스업체 간 서비스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이에 따라 A사로 지급된 인센티브도 늘어났다. 기자가 확인한 2012년 A사 계열 한 운송업체 인센티브 지원금은 4억4000여만원. 경기도 한 관계자는 "자료 유출 및 세부 공개가 금지돼 있어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매해 40억∼60억원 정도가 A사에 지원되고 있는 건 맞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 인센티브 제도가 준공영제를 채택하지 않은 광역단체 입장에선 합리적인 제도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회 국토위 소속 한 관계자는 "이 인센티브 제도를 둘러싼 오해가 많은데 실제로 확인해보니 평가의 투명성이 높았다"면서 "오히려 경기도가 제일 먼저 도입한 뒤 다른 지자체가 이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당국 국내 굴지의 운송업체 내사
수천대 버스 보유한 '버스재벌'도마
정부 보조금 유용·횡령 여부에 초점

실제로 경기도는 투명한 평가를 위해 10여 명의 외부 전문가를 영입, '경영 및 서비스 평가' 때마다 담당 TF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A사 외 기타 중소업체들은 급여를 제때 지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내부 반응이 좋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도의 공식적인 입장은 어떨까. 도 관계자는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일부 대형 운송업체로 나랏돈을 퍼주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 관계자는 "잘 아시다시피 제도 자체는 다른 지자체에서 도입할 정도로 (그 합리성을) 인정받았고, 지원금을 산정할 때도 다각도로 검증하기 때문에 특정 업체에 돈을 퍼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앞서 언급한 여러 의혹들을 차례로 해명하면서 "경기도는 준공영제가 아니기 때문에 적자 보전율이 30% 밖에 안 돼 업체들도 경영 상태가 열악한 편이다"고 반박했다.

A사 사정에 밝은 몇몇 관계자에 따르면 A사는 최근 일부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난을 타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도 관계자도 인센티브 지원금의 사적 전용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한 관계자는 "업체에 지원금을 전달할 때 '직원들을 위해 쓰시라'고 권고하지만 그 이상은 경영 문제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업체 사정이 어려운데 인천시 업체처럼 인센티브를 주물럭할 수 있겠냐"고 의견을 전했다.

수상한 커넥션
악행은 여전해

그러나 ㄱ씨 등 A사에서 근무했거나 관계된 인사들은 A사의 자금 운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과거 A사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전달했던 전력이 있는 회사"라며 "전직 국회의장, 현직 경찰서장, 국토해양부 고위 공무원 등 A사가 로비한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닐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A사는 최근 사고를 낸 직원에게 반성문을 쓰게하고, 이를 사내 전 직원에게 사인 받게 하는 등 인권유린적인 지침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정된 운행횟수를 지키지 않고 버스를 차고지 인근 외곽 도로에 놀리는 등 편법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 발'을 볼모로 한 A사와 관련한 의혹은 오늘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라지구 버스비리 의혹

없던 '황금노선' 만들어 제공

인천경찰청 금융범죄수사팀이 지난 4월 버스업체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버스노선 변경 등 편의를 제공한 혐의(뇌물수수)로 공무원 황모(52)씨를 입건한 가운데 비슷한 정황이 포착돼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한 제보자에 따르면 인천 청라지구를 관통하는 '황금노선'을 허가해준 공무원 A씨는 현재 다른 부서로 보직을 옮겼다. 그러나 제보자는 공무원 A씨가 인천 한 대형 운송업체에 "황금노선을 무단으로 제공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기자가 입수한 인천시 공문에 따르면 공무원 A씨는 지난 4월 "청라지구 개발지역 신규아파트 입주에 따른 시내버스 이용객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버스노선의 신설 및 증차를 허가한다"고 명기했다.

하지만 준공영제가 시행 중인 인천시에서 신규 노선 허가나 증차가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한 제보자는 이를 특혜라고 지적한 것.

한편 인천경찰청 금융범죄수사팀은 시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신모(55)씨 등 버스업체 대표 4명을 지난 4월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09년 1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시로부터 받은 버스준공영제 재정보조금을 임원·관리직 급여, 차량 할부금, 가스비 등에 불법 전용해 약 23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황씨는 버스업체 직원들과 함께 유흥업소에 다니며, 모두 26차례에 걸쳐 14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고 버스노선 변경 등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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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