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신격호 애타게 찾는' 부산 아지매 사연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7.08 11:36:04
  • 댓글 0개

"회장님 꼭 한번 만나야 합니다"

[일요시사=경제1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애타게 찾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있다.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지난 10년간 편지도 수차례 보냈다. 신 총괄회장 별장에 찾아가기도 했다. 평범한 아주머니가 재계 5위 그룹 총수를 찾는 이유는 뭘까.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님을 만나야 합니다. 꼭 전해야만 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부산 연제구 거제2동에 거주하는 평범한 가정주부 김명숙(62)씨의 간절한 소망이다. 김씨는 지난 10여 년간 신 총괄회장을 만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다.

김씨에 따르면 이들의 인연은 신 총괄회장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어져왔다. 신 총괄회장의 부친 고 신진수씨와 김씨의 부친 김진태씨가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

"신 총괄회장의 집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며느리(신 총괄회장의 첫째 부인 노순화 여사)가 많이 아팠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해 주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당시 제 부친은 동네에서 부유한 축에 속했습니다. 자가용과 함께 운전기사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 부친은 종종 그 집의 며느리를 태워 병원 통원을 시켜줬습니다."

부인 남겨두고
나홀로 일본행

신 총괄회장은 1922년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빈농 신진수·김필순씨의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35년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신 총괄회장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1년 뒤인 36년 면장을 지낸 큰아버지 신진설씨의 도움으로 간신히 울산농업보습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학업성적은 신통치 못했다. 또래에 비해 덩치는 별로 크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으며 신중한 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습학교 졸업 후 그는 백두산 밑에 있는 '명천국립종양장'의 연구생으로 1년 동안 있었다.

18세가 되던 40년 신 총괄회장은 같은 마을의 노순화 여사를 아내로 맞아 결혼하고 경남 양산에 있는 경남도립종축장의 기수보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직장 부근에서 혼자 하숙을 했다. 이때 그는 일본으로 밀항할 생각을 품었다. 이듬해 신 총괄회장은 돈도 벌고 못다한 공부를 더하기 위해 단돈 83엔을 쥐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얼마 뒤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이 태어났다.

도쿄에 도착한 신 총괄회장은 스기나미에 있는 연립주택의 다다미방 하나를 빌려 자취생활을 하고 있던 고향친구들과 함께 기거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우유배달을 했고 대학진학을 위해 와세다 중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원래 문학 전공을 꿈꾸던 신 총괄회장은 와세다공업고등학교(현 와세다대학 이학부) 야간부 화공과에 적을 뒀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다. 당시는 전쟁준비를 하던 때라 실업계 학교에 지망해야 징병을 면할 수 있었다.

신 총괄회장에게 첫 사업기회는 한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전당포와 고물상 주인 일본인 하나미쓰 노인이 매사에 성실했던 신 총괄회장을 눈여겨 보면서 시작됐다. 44년 어느 날 하나미쓰는 신 총괄회장에게 자신이 전액 출자(6만엔)한다는 조건으로 군수용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제조공장을 차릴 것을 제의, 이를 받아들인 신 총괄회장은 도쿄 아오모리에 공장을 임차해 사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공장은 미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됐다. 신 총괄회장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두 집안 부친 신진수-김진태 절친 사이 인연
일본 밀항후 한국에 남은 본부인·장녀 돌봐

친구들은 신 총괄회장에게 귀국할 것은 종용했지만 46년 신 총괄회장은 도쿄 스기나미구의 낡은 창고에 '히라끼 특수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포마드 등 유지제품을 생산·판매해 1년 반 만에 차입금 6만엔을 전부 상환했다. 전쟁 직후 생필품이 귀했던 일본의 상황 덕분이었다.

기세를 몰아 신 총괄회장은 추잉껌 제조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풍선껌은 비행기의 창유리를 녹인 초산비닐수지에 송진과 도료인 가소제를 섞은 것을 가마솥에 넣어 녹인 후 여기에 사카린과 향료 등을 추가해 만들었다. 원료는 통제를 받지 않아 얼마든지 확보가 가능했고 가마솥과 칼만 있으면 껌의 제조가 가능했다.

신 총괄회장은 47년 약제사 1명을 고용하고 수동식 기계를 설치 2엔짜리 풍선껌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대박. 신 총괄회장은 48년 롯데를 설립했다. 신 총괄회장이 감명 깊게 읽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이름을 따왔다. 신 총괄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신 총괄회장은 당시 최고스타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광고모델로 사용하고 2엔짜리 껌에 1000만엔의 상금을 거는 이벤트를 실시하는 등 탁월한 마케팅능력을 발휘, 롯데 껌으로 일본 껌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던 중 신영자 이사장을 홀로 키우던 노순화 여사가 51년 2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신 총괄회장의 첫째부인은 원래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저희 집에 부인 병간호를 부탁했고 약 3년 정도 아버지가 철도병원까지 입원 및 통원 치료를 도왔습니다."

신 총괄회장은 52년 일본인 다케모리 하쓰코씨와 재혼했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으로 결혼 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신 총괄회장의 일본 이름은 다케오 시게미쓰다. 2년 뒤인 54년 신동주 일본 롯데그룹 부사장이, 55년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태어났다.

남편 성공 못보고
쓸쓸히 눈 감아

56년 세계 최대 껌 메이커인 미국 리글리가 일본에 상륙하면서 신 총괄회장은 위기를 맞았지만 10여 년간의 사투 끝에 껌 전쟁은 롯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신 총괄회장은 껌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59년 3월 자본금 2000만엔의 롯데상사를 설립하고 61년부터는 초콜릿 제조사업에 착수했다.

당시 일본 초콜릿 시장은 메이지제과와 모리나가제과가 석권하고 있었다. 후발업체인 롯데는 이들을 능가하기 위해 유럽에서 손꼽히는 초콜릿 제조기술자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설비를 확보했다. 64년부터는 'VIP초콜릿'이라는 상표로 시장공략에 나섰고 68년 롯데는 연매출 700억엔에 종업원 3000여 명의 일본 최대 종합과자 메이커로 성장했다.

롯데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부터였다. 이후 국내 일본 자본 진출이 늘었고 이를 계기로 신 총괄회장도 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고국에 진출했다.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한국에 진출한 신 총괄회장은 초기 형제 간 골육상쟁을 겪었다.

"3년간 입원
치료 도왔다"

신 총괄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철호씨는 59년에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서 ㈜롯데와 롯데화학공업을 설립하고 넷째 동생 춘호씨와 함께 껌과 캔디, 비스킷, 빵 등을 생산했다. 그러던 중 신 총괄회장이 모국 사업발판 마련을 목적으로 ㈜롯데와 롯데공업을 정리하려 하자 동생들이 크게 반발한 것. 하지만 결국 철호씨는 캔디와 비스킷 부분을 떼내어 '메론제과'를 설립하고 춘호씨는 '롯데공업'을 차려 라면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춘호씨는 신 총괄회장에 의해 '롯데'라는 상호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완전한 독립을 하고 ㈜농심을 설립했다.

신 총괄회장은 71년 껌 국내 생산을 개시하고 73년 기업공개 및 상장을 했다. 이후 한국 롯데그룹은 급속하게 성장해 현재 국내 재계 순위 5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73년 당시 발행가 500원이던 주가는 2013년 현재 16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76개 계열사를 소유, 일본 롯데보다도 사업 규모가 더 커지게 됐다.

김씨는 신 총괄회장이 한국에 들어와 자신의 가족들을 찾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신 총괄회장이 우리 가족을 찾았는데 65년 제 부친이 돌아가시고 연락할 길이 없어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롯데그룹 쪽에 수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내고, 신 총괄회장의 별장에서 잔치가 열릴 때마다 '신격호 회장을 만나야 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만들어 찾아가기도 했지만 여태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씨가 공개한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는 "울주군 삼동면 본리 562번지 고 김진태씨 자녀입니다"로 시작, "신 회장님이 우리 가족을 찾았다는 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다보니 만나뵙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락처를 알려드리며 만나뵙기를 원하옵니다"라고 적혀있다. 편지와 함께 김씨의 아버지인 고 김진태씨의 흑백 사진도 첨부돼 있다.

신 총괄회장은 매년 5월 고향 울주군 둔기리의 호숫가 앞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이고 있다. 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해서 모았고 71년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이며 시작된 잔치는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신 회장 일본 가면서 부인 간호 부탁
신영자 홀로 어렵게 키우다 세상 떠나

모임 이름도 마을 이름을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롯데 측은 둔기회 회원들을 관리하며 매년 잔치에 모이도록 연락을 하고 있다. 수십명이던 회원수는 회원들의 자손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1000여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 5월6일 열린 제43회 둔기회에도 전국 각지에서 1000여 명이 몰렸다. 장기자랑과 딱지치기, 제기차기 등 추억의 놀이 체험이 이어졌고 어린이들을 위한 비눗방울 공연도 마련됐다. 신 총괄회장은 인근 별장에서 친지들과 담소를 나눴다.

"신 회장님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제 옆을 지나쳤지만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신 회장님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든 알려져 부친의 유지를 받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씨가 신 총괄회장을 만나려는 이유는 오직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신 회장님에게 전하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내용물은 밀봉 상태로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유언
받들고 싶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11월 일본에 있는 가족과 지인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가 12월 귀국한 뒤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마련돼 있는 집무실 겸 숙소에 머무르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편지를 수차례 보냈다고 하는데 그룹 쪽에는 관련 편지가 도착한 적이 없다"며 "또한 지난 5월 잔치에서 신 총괄회장은 차를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이동해 만일 플래카드를 들고 잔치를 찾았다면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 비서실에는 일주일에 몇 건씩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온다"며 "전달할 물건을 비서실을 통해 전달하면 그룹 측에서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친 유언 따라 전해줄 물건 있다"
롯데 "비서실 통해 전달하면 조치"

신 총괄회장의 맏딸 신 이사장은 롯데쇼핑 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와 신 총괄회장이 국내에 진출한 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뒀다. 장남 재영씨는 재계에서 은둔의 재벌 3세로 통한다.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이렇다 할 그룹 경영 활동이 전혀 없다. 맏딸 혜선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둘째딸 선윤씨는 화장품 전문업체 블리스를 이끌고 있으며 롯데백화점 에비뉴엘관 오픈을 진두지휘한 인물로 유명하다. 막내딸 정안씨는 2004년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이다.

신 이사장은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친어머니 노순화 여사의 제사는 신동빈 회장이 한국에 정착한 이후 매년 꼬박꼬박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