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내나라호국·안보여행 ⑤무주 덕유산

덕이 있는 산에서 만나는 의병의 외침

임진왜란 때 산속으로 숨어든 백성들은 다행스럽게도 짙은 안개가 드리워지며 왜군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후 ‘덕이 있는 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덕유산은 전북 무주와 장수, 경남 거창과 함양 등 4개 시군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자락이 넓고 평평해 넉넉한 기품이 그대로 느껴지지만, 구한말 일본에 항거해 분연히 일어난 의병들의 은신처이자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덕유산 굽이굽이마다 일본군에 항거한 기개 오롯이
계곡 따라 걷는 옛길 정취…반딧불이 불빛 축제는 덤

덕유산 의병길은 덕유산에 의지해 의병들이 왕성하게 활동한 곳이자, 한을 품고 쓰러져간 안타까운 곳이다. 칠연의총과 칠연폭포를 지나 동엽령까지 이어지는 왕복 9km 길로, 덕유산국립공원 안성탐방지원센터가 출발점이다. 안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계곡을 하나 건너면 넓은 터에 칠연의총이 남아 있다. 
“의병은 민군이다. 나라가 위급할 때 즉시 의로써 일어나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싸우는 사람이다.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다.” 
상하이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이 <한국통사>에 남긴 말처럼 의병 활동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장점으로 일본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선 순수하고 자발적인 민간군대다. 칠연의총에 잠든 의병들 역시 나라를 위해 스스로 일어선 백성이다. 
칠연의총에서 의병장 신명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신명선은 대한제국의 핵심부대였던 시위대 출신이다. 

구한말 의병 묻힌 
‘칠연의총’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된 후 군대가 해산되자, 덕유산을 중심으로 동지들을 규합해 의병장이 되었다.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들은 전북 진안과 장수, 경남 거창과 함양, 충북 옥천을 오가며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다. 
신명선의 의병대는 진안과 임실, 순창에서 일본군과 교전했으며, 문태서 의병대와 함께 진안, 거창, 함양에서 숱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1908년 4월 장수의 주재소를 습격하고 돌아오다가 칠연계곡에서 전열을 가다듬던 중, 일본군 토벌대의 기습을 받아 신명선과 휘하 의병 150여 명이 전사하고 말았다. 그 후 살아남은 의병 중 한 명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유해를 수습, 송정골에 안치한 것이 지금의 칠연의총이다.


칠연의총에서 나와 20여 분 오르면 칠연폭포와 동엽령으로 가는 삼거리에 이른다. 동엽령으로 가기 전 칠연폭포는 꼭 들러볼 일이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10분도 안 돼 칠연폭포를 만난다. 칠연폭포는 암반 사이로 계곡 물줄기가 흐르면 7개 폭포와 그 아래로 7개 연못을 이룬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울창한 숲과 계곡의 폭포, 연못이 어우러지며 비경을 뽐낸다. 인적이 드물고 폭포의 맨 윗부분에서 길이 끝나기 때문에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물소리만 요란하다. 


동엽령에 가려면 칠연폭포 삼거리로 다시 나와야 한다. 동엽령은 예부터 전라도와 경상도의 물산이 넘나들던 고개로, 동엽령 혹은 동업이재라고도 부른다. 안성면은 우시장이 유명했는데, 소를 몰고 동엽령을 넘어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의병들도 일본군의 눈을 피해 서로 소식을 전하느라 이 고개를 넘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오붓한 숲길이 이어진다. 울창한 숲을 따라 좁은 길을 구불구불 지나기도 하고, 둥글게 휜 소나무 두 그루가 만든 문을 지나기도 한다. 계곡을 따라가기도 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며 두 시간쯤 지나면 동엽령 정상에 이른다. 

숲·계곡·연못 
어우러진 비경


덕유산에서 발원한 계곡은 흔히 구천동이라 불린다. 1경 나제통문에서 33경 덕유산 향적봉까지 구절양장처럼 흐르는 물줄기가 빚어낸 수많은 절경을 품고 있다. 덕유산에는 칠연의총 외에도 백련사 탐방로와 나제통문에 의
병들의 흔적이 있어 녹음이 짙어지고 더위가 느껴지는 요즘 덕유산을 즐기며 함께 음미해보면 좋다.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에 오르는 백련사 탐방로는 가파른 구간이 거의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다. 게다가 시원한 계곡 물줄기를 옆에 두고 구천동의 비경까지 덤으로 눈에 담을 수 있다. 탐방지원센터 우측으로 구천동 자연탐방로와 인월담, 사자담, 청류동, 비파담에 이어 금포탄까지 이어진 덕유산 옛길을 걸어보자. 흙길 사이로 울창한 숲과 구천동계곡이 이어져 종전 탐방로와 사뭇 다르다. 
삼공탐방지원센터에서 약 1.3km 떨어진 지점에는 ‘덕유산 호랑이’로 군림한 구한말 문태서 의병장 순국비가 있
으니 잊지 말고 찾아보자. 



삼공탐방지원센터를 나오면 수경대부터 나제통문까지 구천동 33경 중 14경의 풍광이 37번 국도와 나란히 이어진다. 1경 나제통문과 계곡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덕유정 주변에는 무주 출신 구한말 의병장 강무경 동상과 홍일점 의병 양방매 부부 사적비가 있다. 부부 의병의 일대기를 만나는 것도 흥미롭다. 
이와 함께 반딧불이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반딧불이는 짝짓기를 위해 불을 밝히는데, 그 아름다운 빛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주 일원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가 천연기념물 322호로 지정되었고, 해마다 이곳에서는 무주반딧불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반딧불이를 테마로 한 반디랜드는 곤충박물관과 천문과학관, 환경테마공원으로 구성되었고, 청소년수련원이나 통나무집, 캠핑장 시설을 갖추어 청정 자연에서 반딧불이의 불빛과 별빛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무주 덕유산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덕유산 의병길→무주머루와인동굴→적상산사고지, 안국사→트리스쿨 목공 체험 

 ?1박2일 여행코스

 첫째 날 / 덕유산 의병길→무주머루와인동굴→적상산사고지, 안국사→덕유산 곤돌라(설천봉~향적봉) 
 둘째 날 / 백련사 트레킹→무주구천동→반디랜드→지전마을 옛 담장길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무주군청 문화관광 http://tour.muju.go.kr 
 - 덕유산국립공원 063)323-0577, http://deogyu.knps.or.kr 
 - 무주머루와인동굴 063)322-4720, http://cave.mj1614.com 
 - 무주덕유산리조트 www.mdysresort.com 
 - 반디랜드 063)320-5670, www.bandiland.com 

 문의 전화
 - 무주군청 문화체육관광과 관광육성계 063)320-2547 

 대중교통 정보 
 · 서울-무주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5회(07:40~14:35)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 대전-무주 : 대전복합터미널에서 하루 18회(07:20?21:00) 운행, 약 50분 소요. 
 · 부산-무주 : 부산종합터미널에서 전주고속버스터미널까지 하루 12회(07:00?22:20) 운행, 3시간20분  소요.
 · 전주시외버스터미널-무주시외터미널, 하루 14회(06:45~20:35)운행, 1시간50분 소요. 

 ◆문의 
 · 서울남부터미널 02)521-8550, www.nambuterminal.co.kr 
 · 대전복합터미널 1577-2259, www.djbusterminal.co.kr 
 · 부산종합버스터미널 1577-9956, www.bxt.co.kr 
 · 전주시외버스터미널 063)272-0109 
 · 전북고속 063)270-1700, www.jbexpress.co.kr 

 자가운전 정보 
 - 대전통영고속도로 덕유산 IC→ 죽천교차로에서 우회전→ 죽천삼거리에서 덕유산로를 따라 덕산 방면 좌회전→ 용추사거리에서 칠연계곡 방면 우회전→ 덕유산국립공원 안성탐방지원센터 

 숙박 정보
 - 무주네버랜드 : 무풍면 구천동로, 063)322-8338,  www.mujuneverland.com (굿스테이)
 - 무주이리스모텔 : 무주읍 한풍루로, 063)324-3400 (굿스테이) 
 - 무주덕유산리조트 : 설천면 만선로, 063)322-9000, www.mdysresort.com
 - 국립덕유산자연휴양림 : 무풍면 구천동로, 063)322-1097, www.huyang.go.kr

 식당 정보
 - 천지가든 : 산채비빔밥, 무주읍 괴목로, 063)322-3456 
 - 별미가든 : 산채정식, 구천동로, 063)322-3123 
 - 천마루 : 해물갈비짬뽕·머루탕수육, 무주읍 무주로, 063)322-0433
 - 자연채밥상 : 청국장, 무주읍 무주로, 063)324-9233 

 주변 볼거리
 반디랜드, 적상산, 무주머루와인동굴, 안국사, 적상산사고지, 적상산 전망대, 무주덕유산리조트, 백련사, 
 덕유산 옛길, 무주구천동, 지전마을 옛 담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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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